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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
이번 7·4경제보복조치는 사실상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이며 전쟁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그만큼 성장하고 경제 파트너에서 경쟁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좋게 해석하고 싶어도, 정치적 문제로 한 나라의 경제를 쥐고 흔들겠다는 오만은 신식민주의식 심보가 아닌가.
그렇다면, 전 국민을 반도체 전문가로 만든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민족주의자가 되어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지, 이에 대해 다른 변수는 제외하고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의 부당성과 향후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성에만 한정해서 언급해 보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은 기회비용보다 편익이 큰 합리적 선택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한국이란 이웃국가의 암묵적 비용과 명시적 비용에 해당하는 자유무역을 통한 비교우위론 두 개의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편익이 아주 작은 제국의 향수(鄕愁)를 선택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미국측 피해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한일 간 무역전쟁은 접근이 다르다. 일본 경제산업상 세코우 히로시게(世耕弘成)는 이번 조치 이유를 한국이 수출관리 의견교환에 응하지 않은 점, 수출관리에 관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한 점, 그리고 징용노동자 문제에서 신뢰관계가 무너진 점 등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런데 명분이 안서다 보니 말을 바꾸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7월 16일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수출 관리를 적절하게 실시하려는 관점일 뿐 징용문제나 외교문제의 신뢰와 관련된 대항조치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정치보복에서 안보논리로 말이 바뀐 것이다.
일본은 궁색하게도 또 다시 이번 규제강화가 수출 수속에 관해 일본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우대조치 ‘철회’이기 때문에 WTO 협정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3개 품목은 수출관리 틀 안에서 군용품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품목인데 부적절한 사안이 발견되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북한을 끌어들였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명분도 없다.
우리나라의 방향성
미국 캐나다 정도를 제외하면 국경을 맞댄 국가들은 대부분 사이가 안 좋다. 그러면서도 정경분리를 지키며 지내왔는데, 일본의 이번 처사는 도를 넘어섰다.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조치는 우리나라 기간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발생할 각종 불안한 옵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원천기술을 보유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과의 기술력 격차는 첨단제품 만이 아니다.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가위조차 일제가 아니면 쓰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한국은 일본기업이 먼저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감히 뛰어들지 못하는 ‘이류병’ 때문에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다고 비꼬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일본이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을법한 정부와 기업의 밀접한 상호의존적이며 협조적인 일본주식회사(Japan, Inc.)를 만들어 고도성장을 주도해 나갔던 것처럼,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이러한 특수한 관계를 우리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에 우리 경제와 산업계 전반의 민낮이 드러난 건 그런 점에서 전화위복의 기회이다.
둘째, 수동적인 대처법이지만 일본의 이성(양심)을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최소치에서 최대치까지의 피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양국 경제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 해도 품목 계약 건별 개별심사 시 90일 걸린다는 것은 행정처리수속으로 정해져 있는 기간일 뿐 보통은 4~5주 정도 걸린다. 지금부터 대처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냉정하게 다시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일본이 전제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물론 일본의 이성을 기대할 때의 최소치다.
셋째, 일본에 대한 자신감도 문제지만 패배주의와 비관론은 더 문제다. 양국 간 갈등이 조기에 해소되길 바라지만 경제 전면전으로 장기화될 개연성도 염두에 둔다면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는 조심해야 한다. 과도한 한국경제의 비관론은 국제자본을 이동시킬 위험이 있고, 잘못된 여론이나 왜곡된 보도를 해외언론이 인용하면 일본의 과잉반응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국내 실물경제를 위축시켜 실제로 경제 위기상황을 가져올지 모른다.
막강한 무기체제를 갖추었음에도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한 것은 미국 내 팽배했던 반전여론 때문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여론의 응집력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우리끼리 좌우 프레임을 만들어 내부의 희생양 찾아내기식 비판이 아니라 국익을 우선한 경제 해석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전쟁은 이겨 놓고 그 다음 책임을 따져 보자.
일본은 활용가치가 높은 나라이다. 반일이나 친일이 아니라 극일(克日)을 통해 용일(用日)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일은 우리 스스로 하기 어려웠던 구조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들여다 보면서 경제 체질을 바꾸고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외교는 외교대로 일본과의 대화채널을 열어 정상화로 돌리는데 우선해야 하지만, 일본을 탓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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