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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내 인생 최고의 행복”

[기고] ‘아빠 육아휴직’ 후 복직 회사원 이동림 씨

2015.05.22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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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 입니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와 보낸 1년의 시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내가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직 시기가 다가오자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첫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무심코 내 입에서 “내가 아이를 볼 테니, 걱정 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 한마디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그동안은 남자가 육아휴직을, 그것도 내가 육아휴직을 하리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육아휴직이 가능하고 휴직 수당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부모님이나 회사에서는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자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육아에 대한 나의 확고한 의지를 알고 결국은 승낙을 해주었다.

나는 평소 아이를 좋아하고 잘 놀아주는 편이라 육아를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차라리 일하는 게 훨씬 편하겠다”, “부모님이 우리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겠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힘들었다.

첫째인 딸과 함께 산책 중인 이동림 씨.
첫째인 딸과 함께 산책 중인 이동림 씨. (사진=이동림)

아이와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다시 올 수 없는 최고의 시간

아이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고 잠깐이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가 열이 올라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기저귀를 세탁기에 같이 돌리기도 하는 등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와의 적응시간이 지나고, 육아를 조금 더 잘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1년이 아이와 가장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자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에 많은 것을 같이 해보려고 노력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지금도 몇 가지가 또렷이 생각난다. 한번은 유아 발달에 맞게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퇴근 후에 이유식을 만드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이유식에 도전했다. 이것저것 배워가며 직접 만든 이유식을 아이 입에 떠먹여주는 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그 순간을 같이한다는 것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직도 이유식을 받아먹으며 맛있다고 환하게 웃어주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육아휴직 전에는 출근길에 아내가 “퇴근 후에 바로 집으로 와” 하는 말을 무심히 들어 넘겼다. 또 가끔은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이유로 약속을 어기기도 했다. 상황이 바뀌어 내가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자 아내가 퇴근하고 오면 정말 반가웠다. 그러나 아내가 야근이나 회식으로 퇴근시간을 넘겨 돌아오면 속 좁게도 아내가 미워 보이고 짜증도 났다. 이를 통해 새삼 가족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와의 외출은 평소와는 다르게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아이가 충분히 배부르고 기분이 좋아야 외출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출을 하려면 가지고 나가는 짐도 장난이 아니었다. 분유, 기저귀, 물수건, 여분의 옷, 화장지 등 하나라도 빼놓으면 곤란한 일을 겪기에 바리바리 챙겨야 했다. 학생시절 이렇게 철저히 가방을 챙기고 공부를 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서만 아이를 돌보던 나는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니기로 결심했다. 문화센터에서의 첫 수업시간, 남자 보호자는 나 혼자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선생님이 ‘아빠가 왔다’며 칭찬을 해줘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귓속말로 “저 아빠, 한두 번 오면 안 올 거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 중에는 친해진 엄마들과 수업 후 같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육아 정보도 주고받았다. 엄마들은 “아빠가 오는 모습이 정말 보기좋았다”고 말해주었다. 1년간 꾸준히 문화센터를 다녀 수료증도 받았다.

아이가 물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일주일에 한 번씩 아쿠아리움에도 데리고 갔다. 동물원, 키즈 카페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딸바보’, 아이는 ‘아빠 바보’라고 불릴 정도다. 가끔은 아내가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모습도 보인다.

1년은 정말 딸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소중한 추억들을 어떻게 쌓을 수 있었을까. 육아휴직 기간은 아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맞벌이 아내를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동림 씨는 건축설계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딸(5), 아들(3)을 둔 아빠. 첫째 육아휴직 후 복직했다. 둘째가 태어나자 이번에도 약 5개월간 육아휴직을 한 뒤 지난 4월에 복직했다.
이동림 씨는 건축설계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딸(5), 아들(3)을 둔 아빠. 첫째 육아휴직 후 복직했다. 둘째가 태어나자 이번에도 약 5개월간 육아휴직을 한 뒤 지난 4월에 복직했다. (사진=이동림)

더 많은 아빠들 육아휴직 할 수 있기를

둘째가 태어나자 사정상 1년이 아닌 약 5개월간만 육아휴직을 했다. 첫째를 키워본 경험으로 둘째를 돌보는 일은 훨씬 수월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아이가 편한지, 시기에 맞는 육아가 어떤 것인지 등을 알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주위의 육아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부모보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가 부모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은 어쩌면 유아기 때 불과 몇 년의 아주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승진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승진을 조금 미루더라도 부모의 사랑이 전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아이가 쑥쑥 커가는 모습을 함께하는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많은 아빠들이 나처럼 아이와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아가길 기대해본다. 더불어 남성 육아휴직의 편견이 사라지고 남성 육아휴직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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