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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리가 전달된 것은 신라 진흥왕 10년(549년)으로 ‘양나라에서 사신으로 입학승 각덕과 함께 파견하면서 부처의 사리를 전하자 왕은 백관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길에 나아가 맞이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법사가 당나라의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불정골( 부처님의 정골 뼈)와 치아사리 등 백 개와 부처님이 입었던 가사 한 벌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장법사는 사리를 황룡사 탑과 태화사 탑, 그리고 통도사 불단에 나누어 봉안했다.
현재는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등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데, 진신사리는 불상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봉안한 사찰에서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이 가운데 양산의 통도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불보(佛寶) 사찰로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대웅전 뒤편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두고 있다. 율사(律師)의 상징인 자장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탑 속에 안치하지 않고 계단이라 이름 붙인 부도와도 같은 장소에 모신 점도 큰 의미가 있다.
양산 통도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므로 불상이 없다. |
조선왕조 초기에도 사리 신앙은 왕실을 중심으로 매우 성행했는데 태조 이성계는 1393년 4월에 정릉의 흥천사에 사리각(舍利閣)을 건설하고 7일 기도를 올렸는데 이때 사리 4과가 분신(分身, 몸을 나누어서 화현하는 것)하여, 불당을 유동에 건립하고 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1398년에는 명나라 태조가 사리를 구하기 위해 황엄을 사신으로 보내자 왕은 각 도감사에 명하여 사리를 구하도록 명했는데 충청도에서 45과, 경상도에서 164과, 전라도에서 155과, 강원도에서 90과를 모으는 등 모두 800과를 도금한 금은합 속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특히 세조 때에는 사리에 관한 여러 기록이 전한다. 개성 연복사의 승려가 사리라고 진상한 함을 열어 보니 좁쌀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세조 10년(1464)에는 삼각산 장의사에서 사리가 분신하므로 백관이 서한을 올려 경하했더니 이날 오색구름이 나타났다고 한다. 세조는 원각사를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으며 양평의 용문사를 중창하고 사리탑을 세웠으며 양주에는 수종사를 창건하고 사리탑을 세웠다. 세조가 세운 사리탑은 수십 개에 이른다.
우리나라 역대의 고승 가운데는 구산 스님의 53과를 필두로 1966년에 송광사에서 열반한 효봉 스님 34과, 자운 스님 19과, 탄허 스님 13과, 학명 스님 10과, 청담 스님 8과, 혜운 스님 20과, 금담 스님 4과, 성철 스님의 스승인 동산 스님과 용성 스님이 각 2과의 사리를 남겼다. 2003년에도 정대스님으로부터 120과의 사리가 나왔고 좌탈입망(좌선한 채로 열반에 드는 것) 상태로 입적한 서옹 스님은 4과가 나왔다.
반면에 지난 1982년에 입적한 경봉 스님을 비롯, 만공스님 등은 사리를 남기지 않았으며, 은허 스님은 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다. 2004년 11월에 입적한 조계종 원로 석주(昔珠, 봉은사 조실) 스님의 다비식에서도 스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
<사리의 기원>
불교에서는 왜 사리를 중시하게 됐을까. 그러한 의문은 사리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면 쉽게 풀린다.
사리(舍利)는 본래 ‘신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arira’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여 사리라(舍利羅)라고 하였다가 줄여서 사리라 부르는 것이다. 사리라는 본래 ‘몸’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복수형으로 되면 신골, 유골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리는 본래 몸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인체를 화장하고 난 뒤에 남겨진 뼈 전체 또는 가루가 된 뼛조각까지 폭넓게 포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리는 단순히 죽은 자의 몸을 가리키거나 또는 그 뼈를 부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처를 향한 믿음이 충만한 불자들은 사리의 의미를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강우방의 글을 인용한다.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성철스님의 유해에서 수많은 사리가 쏟아져 나와 200과를 훨씬 넘어서게 되자 그 수효를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
‘석가모니는 약 40년간 거리에서 가르침을 전하고 여든 살에 인도 북동부의 쿠쉬나가라에서 생애를 마쳤다. 석가모니의 시신은 이웃 부족인 말라족이 인도 장례 풍습에 따라 화장하였고 화장 후에 얻은 유골로 탑을 세우려 했다. 석가모니의 화장 소식은 이웃 부족들에게 전해져 여덟 개의 부족이 석가모니의 유골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석가모니의 유골은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졌고 각 부족이 각각 탑을 세웠는데 이를 근본팔탑(根本八塔)이라 한다. 그런데 유골의 분배가 끝난 후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을 들은 모라족이 석가모니의 화장터에 남아 있는 재를 가져가 유골 대신 넣은 재탑(灰塔)을 세웠고 각 부족에게 원만하게 석가모니의 유골을 분배한 드로나라는 바라문은 석가모니의 유골을 담았던 병(또는 항아리)을 가져가 유골 대신 병을 넣은 병탑을 세웠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기원전 273〜232)은 석가모니의 무덤 여덟 기를 발굴하고 그 안에 있던 석가모니의 유골을 나누어 통일 왕조 영토 곳곳에 무려 8만4천 기의 탑을 세웠다. 이후 탑(스투파)은 석가모니의 유골 즉 사리를 봉안하는 구조물에서 나아가 석가모니의 실재로 인식되었다. 즉 아소카왕의 8만4천 탑 건립에서 진정한 분사리의 원리가 확립됐다.
(중략) 사리는 탑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며 사리 봉안은 탑의 존재 이유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많은 승려들이 앞 다투어 사리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간 이유이다.’
이런 전통에 연유하여 사리를 숭배하고 공양하는 사리신앙, 즉 탑 신앙이 생겨났으며 부처의 진신사리를 보는 것은 부처를 친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자리 잡는다. 처음에는 부처의 사리만을 봉안했으나 나중에 불경과 고승의 사리를 모신 불탑도 세워지게 되었다. 사리는 단순히 몸 또는 뼈를 의미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매우 소중하게 모시게 된 이유라고 박경준은 설명했다.
부처의 사리를 진신사리, 불경을 법(法)사리,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로 구분하는데 이 중에서 승사리를 모신 탑은 부도(浮屠)라 하여 일반 불탑과 다른 형태로 제작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후반이지만 부도가 만들어진 것은 신라 하대인 9세기부터이다. 사리는 다비전의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다비 후의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되는데, 다비 후 나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은 쇄신사리를 뜻한다. 사리는 크기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황금색, 검은색, 붉은색, 흰색 등이 뒤섞여 영롱한 빛깔을 띤다.
마곡사의 철환 스님은 사리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들었다. 사리는 불에 타지 않으며 부서지지도 않고 물 속에 넣었을 때 가라않지도 않은 채 중간에 떠 있다는 것이다.
사리의 수습 절차는 다비(茶毘)의 마지막 의식에 해당한다. 다비란 불교계의 장례법으로 정착한 화장의 팔리어 원어가 ‘자피타(jhapit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다비에 의한 장례법이 인도 불교 이래 불교적 전통이 된 요인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추정한다. 첫째 아열대성 기후라는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시신의 부패를 막는데 다비가 적격이며 둘째 부처님의 장례를 다비했으므로 셋째로 부처님의 사상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다비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비에는 땅‧불‧물‧바람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육신을 다시 원류로 보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2004년11월 석주스님 다비식, 석주 스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사진 석동빈). |
신라 하대인 9세기는 당나라부터 선종(禪宗)이 들어온 때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중심으로 선풍(禪風)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들은 선문을 대표하는 조사(祖師)의 설법이나 교훈을 어록으로 남기고 입적한 뒤엔 장골처(藏骨處)에 조형물을 남겨 추앙했다. 이것이 부도였다. 부도는 다른 석조물과는 달리 탑비(塔碑)가 반드시 별도로 갖춰져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생애와 행적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문화상을 알 수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가장 오래된 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의 흥법사 염거화상탑(844년)이며 이외에 대안사 적인선사조륜청접탑(861년), 쌍봉사 철감선사탑(868년) 등이 유명하다.
1998년 11월 성철 스님의 입적 5주기를 맞아 완성된 사리탑은 높이 3.5미터이며 탑 주위는 지름 24미터의 원형 참배대를 설치했다.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조각하지 않고 높이하지 않고, 복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단 위에 두개의 반구(半球)와 한 개의 구를 포개 놓았다. 이에 대해 성철 스님 평소의 뜻과는 달리 사리탑을 너무 거창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리석을 정밀하게 다룰 수 없어 일본 기술을 빌려온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부처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리가 나온 성철 스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이와 같은 사리탑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다. 사실 성철 스님이 입적한 후 사리를 보기 위해 하루 2만 명 이상의 참배객이 몇 시간씩 기다렸던 사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사리를 어디에 모실까?>
엄밀한 의미에서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전하고 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탑의 어느 부분에 사리를 봉안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단원은 강우방의 글을 인용했다.
인도의 스투파는 안다 내부까지 이어진 야슈티(찰주) 아래에 석가모니의 사리가 봉안된다. 중국에서는 목탑의 경우 심주(心柱) 아래에 봉안되는데 지표 아래에서 3미터 가량 깊이에 거대한 심초석을 두고 그 위에 심주를 세우므로 모두 탑의 지하에 봉안하는 지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엔 목탑·석탑·전탑의 사리 봉안 위치가 모두 다르며 매우 다양하다.
목탑의 경우 심주 아래에 사리를 봉안하는데 심주 바로 밑에 석함(石函)을 두고 그 아래에 사리를 안치하는 방식, 백제의 제석사지 목탑터의 경우처럼 심초석은 지표로 올라오고 그 위에 심주를 세우는 방식이며 마지막으로 심주가 2층 탑신부터 올려져 있는 예로 쌍봉사대웅전이 유일한 예이다.
석탑의 경우에는 사리의 봉안 장소에 일정한 규칙이 없는 듯 보일 정도로 석탑의 여러 군데에서 사리함이 발견되는데 큰 틀에서의 규칙은 있다. 초기 석탑인 경우 목탑 관습에 따라 찰주가 끝나는 3층 탑신에 사리를 안치했으며 그 후 시대가 흐르면서 2층 지붕돌과 탑신돌을 거쳐 1층 탑신으로 사리 봉안의 위치가 정착된 것으로 추정한다. 예외적으로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김천 갈항사지 삼층석탑과 울산 청송사지 삼층석탑의 경우에는 기단에 사리를 안치했고 익산왕궁리오층석탑처럼 기단과 탑신부에 사리를 나누어 안치한 경우도 있다.
지표에 설치되는 목탑 심초석의 경우나 탑 안에 사리가 안치되는 석탑은 모두 돌 자체에 사각 혹은 원형의 사리공을 파고 그 내부에 사리를 봉안했다. 목탑의 심초석에 판 사리공은 모두 사각이고 석탑도 초기 석탑은 사각으로 파여졌으나 9세기 이후의 석탑은 원형이다.
인체 속의 결석, 사리를 인체 속의 결석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리는 결석이 아니라는 견해가 유력하다(사진 전세일). |
전탑의 경우 안동 임하사 전탑 터에서는 특이하게 심초에 사리를 안치했지만 대부분의 전탑은 별도의 석함을 제작하여 그 안에 사리와 공양물을 넣은 후 다시 그 함을 벽돌로 된 사각의 공간 안에 넣었다. 특이한 것은 벽돌로 탑을 쌓으면서 마련된 사각의 공간 안에 그대로 사리와 공양물들을 넣어도 되는데, 굳이 석함을 만들어 그 내부에 사리를 넣었다는 점이다.
이는 처음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할 때 ‘돌-동-은-금-수정’의 순서대로 넣어 봉안했던 전통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목탑의 심초석과 석탑의 사리공은 외함(外函)의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전탑에서 석함을 따로 만들어 넣은 것은 이러한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사리의 정체>
사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가 어느 날 대신들에게 사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하고 묻자 하륜이 대답했다.
“정신을 수련하면 정기가 생기고 정기가 쌓이면 사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조개에도 보주가 있고 뱀에게도 명월주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 그런 구슬이 생기겠습니까?”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국시를 의식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태조는 신덕왕후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여 왕후의 원찰인 흥천사에 불사리를 모시고 명복을 빌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알,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싼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을 천연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생기는 상세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진주질을 분비하는 외투막의 세포가 들어온 물질을 싸서 펄삭(Pearl sac)이라는 자루 모양의 조직을 만들어 둘레에 진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생기는 사리를 진주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는 해석은 수많은 사리가 한 사람의 몸에서 생기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면에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리를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유기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과 관여하는 물질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 유기물질은 다비식과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는 모두 연소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불길 속에서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무기물로 이루어진 뼈와 약간의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오색영롱한 사리뿐이다.
연세대학교의 이무상 교수는 사리 자체를 분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칼슘을 많이 포함한 신장의 결석이나 담석이 사리가 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 몸에서 가장 흔한 무기물이 칼슘이고 이 칼슘이 고열 속에서 다른 유기물질과 결합하여 어떤 화학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뼈를 제외하고 우리 몸에 생길 수 있는 무기물로는 콩팥의 결석이나 간이나 쓸개, 기관지에 생기는 담석 등이 대표적이다. 콩팥 결석이나 담석은 모두 칼슘을 포함하며 나이가 많아질수록 잘 생기며 사실 돌 자체는 우리가 밥 먹고 사는 동안 계속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병률이 30%, 증상이 있는 유병률이 8%나 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57호), 신라시대 부도 중 조각과 디자인이 화려한 최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
의학계에서는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도 15년간을 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유래 없이 사리가 많이 나왔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전세일 박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몸 안에 생기는 결석(돌멩이)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몸 안에서 돌멩이(結石)가 생긴다. 모래알도 생기고 자갈, 조약돌도 생기고 주먹만한 돌덩어리도 생긴다. 가장 흔히 생기는 장기가 담낭(쓸개)과 콩팥이다. 콩팥에서 방광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요로라고 한다. 이 요로에 모래알이나 자갈돌이 생겨 있는 것을 요로결석이라 부른다. 요로결석은 비뇨기과에서 발병 빈도가 높은 중요한 질환으로 전체 환자의 12%나 된다.
(중략) 쓸개에 생기는 돌을 담석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콜레스테롤로 이뤄진 담석은 색깔이 노랗고 사이즈가 크며 가장 흔한 편이다. 칼슘이 주성분으로 이뤄진 담석은 검정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칼슘과 단백질이 섞여서 생긴 담석은 갈색을 띤다. 담석의 자극으로 염증이 생기는 것을 담낭염이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오른쪽 가슴 밑과 바른쪽 어깨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담석으로 인한 통증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하다.
(중략) 이빨에 생기는 돌은 치석이라 한다. 음식을 섭취한 뒤에 치아에 부착되는 치태(dental plaque)와 침샘에서 분비되는 무기질이 합해져서 돌멩이가 생성된다. 침샘에 생기는 돌이 타석(唾石)이며, 귀밑샘, 턱밑샘, 혀밑샘 등에 생길 수 있다.
위장에서도 돌멩이가 생긴다. 이런 위석(胃石)은 이물질이 위내에서 지속적으로 응결되어 생성되는 것이다. 주로 우리가 삼킨 식물섬유, 모발(털), 약물, 면(솜), 플라스틱, 종이 부스러기 등에서 돌이 생겨난다.
통풍도 일종의 돌멩이이다. 요산이 축적돼 돌처럼 딱딱해지는데 가장 흔히 생기는 부위는 엄지발가락이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사리(舍利)도 역시 돌인데, 우리나라 성철 스님에게서는 130여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리가 결석이라는 설명은 위에서도 지적되었지만 매우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리가 나온 스님은 모두 입적하기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나온 수많은 사리가 결석이라면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서정돈 교수도 사리가 결석이라는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담석 또는 결석론도 사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담석 등의 칼슘 성분은 뼈보다도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이 가설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시신을 단시간에 고열에서 처리하는 화장의 경우는 아주 큰 뼈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버리지만, 그보다 긴 시간 동안 태우는 다비 의식의 경우 어떤 요인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비식의 경우도 사리가 보통 사람에게서 거의 나오지 않고 수행을 많이 한 스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다비 의식에 어떤 요인이 있다면 다비식을 치른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리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액 축적설도 있지만 그것도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정액 축적설은 성생활을 하지 않고 참선으로 평생을 수행한 스님을 화장할 때 사리가 나온다고 알려진 통설인데 여승이나 평범한 불자로부터 사리가 나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송림사전탑유리배사리장치(보물 325호). 송림사 5층 전탑의 이층탑신에서 나온 것으로 금으로 된 기단 위에 녹색의 투명 유리잔을 두고 금으로 만든 지붕을 씌운 전각의 모양을 하고 있다(국립경주박물관). |
사리의 양이 법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이라고 설한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리공양에 의한 공덕의 유무 문제는 초기 불교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속설과는 달리 일부 불교계에서는 수행 정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승으로 알려진 스님으로부터 사리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1989년에는 평신도인 85세의 할머니로부터 사리가 77과나 나온 예도 있다.
1994년에는 교통사고로 숨진 75세의 할머니가 경남고성 공설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는데 불자가 아닌 이 할머니의 몸에서 청색, 황색, 회색, 흑색을 띤 400 여과의 사리가 나오기도 했다(일반 사람들에게도 사리와 유사한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사리는 아니라는 설명도 있음).
이와 관련하여 공주 영명사의 정법 스님은 평신도나 일반인에게서 사리가 나오는 것은 전생에 그만큼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하튼 사리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끌게 되자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유기물이나 무기물을 고열로 처리해보면 무언가 단서가 잡힐 것이라며 실험을 역설했다.
반면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사리를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사리에 대한 분석이 사리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손상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의 호기심이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일 리 만무이다. 드디어 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도되었고 인하대의 임형빈 박사가 사리 1과(顆)를 분석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튬,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탈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되었다.
사리의 성분이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2000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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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윤 대통령, ‘대한민국과 체코가 함께 짓는 원전’ 비전 제시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오전 체코의 페트르 피알라 총리와 함께 체코 플젠시(市)에 있는 발전용 터빈 원천기술 보유기업 ‘두산스코다파워’사와 원전 기자재 생산기업 ‘스코다JS’사를 방문했다. 플젠시는 수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여 거리에 있으며, 방산, 중공업, 기계 산업 등이 발달한 도시이다.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는 두산스코다파워 도착 직후, 양국 원전 관련 기업·기관·단체와 두산스코다파워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 참석했다. ☞ 현지 원전 산업 시찰(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 축사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이번 협약식을 계기로 원전 설계, 운영, 핵연료, 방폐물 관리 등 원전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요 부문에서 총 13건의 MOU가 체결됐다. 양국 정상은 이들 중 5건의 MOU 서명 행사에 임석해 대한민국과 체코 간 원전 협력이 본격화되는 것을 축하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특히,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스코다파워는 이날 협약식에서 내년 3월 체코 원전 건설사업 최종계약을 체결하면, 플젠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생산한 터빈을 사용하기로 확정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통해 대한민국과 체코는 ‘두 나라가 함께 짓는 원전’이라는 비전 실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또한 이날 협약식에서는 원전 정책을 담당하는 양국 산업부 간 원전 건설부터 기술 개발, 인력 양성 등 원전 생태계 전 분야에서 협력하고, 민간의 협력도 양국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이외에 분야별로는 ▲양국 대학 간 원전 전문인력 양성 협력, ▲RD 지원기관 간 원전 기술 공동연구, ▲협회 간 터빈 이외의 추가 기자재 공급망 구축 등 원전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기 위한 양국 원전기관들 간의 MOU도 체결됐다. 협약식 이후,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는 터빈에 장착되는 블레이드(회전날개)에 함께 서명하는 행사를 가졌다. 두 정상의 공동 서명에는 대한민국과 체코가 원전을 함께 짓고, 기업 간 협력을 양국 정부가 함께 지원한다는 협력 의지가 담겨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과 터빈 블레이드 서명식을 마친 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윤 대통령은 이어 진행된 정상 연설에서 체코 원전과 관련해 세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대한민국 팀 코리아는 50년 이상 원전을 안전하게 건설하고 운영해 왔다고 소개하고, 체코 원전 건설에서도 ‘On Time, On Budget’(공기·예산 준수)약속을 지키는 최적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체코에 새로 짓는 원전은 ‘한국과 체코가 함께하는 원전’이 될 것이라고 밝히며 체코의 원전 관련 기업들과 팀 코리아가 함께 하기 위해 오늘 MOU에 서명했으며, 원전 건설 뿐만 아니라 운영, 정비, 핵연료, 방폐물 등 원전 생태계의 전 주기에 걸쳐 두 나라가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원전 협력 약속들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한국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원전 협력을 계기로 한국과 체코는 세계 원전 르네상스 시대의 미래 주역이 될 것이라며 한국과 체코의 우수한 원전 기업 등 모두가 힘을 합쳐 새로운 미래를 함께 이끌어 가자고 제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스코다JS 공장을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함께 찾아, 스코다JS에서 생산한 사용후 핵연료 저장용기 완제품을 관람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는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진행된 행사를 마친 후 인근에 있는 스코다JS를 방문해 원전 기자재 생산 현장을 시찰했다. 정부는 이번 두산스코다파워 방문에서 체결된 정부와 민간 차원의 협력 MOU가 차질 없이 이행되고, 체코 원전 건설 최종 계약이 성공적으로 체결돼 ‘함께 짓는 원전’이라는 비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 카드뉴스 [한·체코 정상회담 9.19.] 원전을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은 양국 경제 동반 발전의 이정표” - 윤석열 대통령 “한국 참여에 기대가 크고 한수원의 최종 수주를 낙관” - 페트르 파벨 대통령 ■ 원전을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원전 사업 최종 계약까지 체코 측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첨단산업, 에너지 안보 등 전략적 공조를 약속했습니다. ■ 바이오, 디지털, 교통 인프라 협력 방안 모색 제조업 중심 협력을 넘어 첨단기술, 응용과학을 바탕으로 미래 동반성장 기반을 함께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 북핵 문제 등 글로벌 현안 공조 강화 북 도발, 러·북 불법 군사협력에 굳건히 맞서 함께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입니다. 내년 수교 35주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10주년을 앞둔 한국과 체코 깊은 신뢰를 서로 확인하고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 ‘한·체코 정상회담’ 정책뉴스로 자세히 보기
- 여행 숲내음 맡으며 힐링하기 좋은 자연휴양림 4곳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면 자연휴양림으로숲내음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여행을떠나고 싶은데요. 다양한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을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여행하기 좋은자연휴양림을 소개해 드립니다. ★ 추천 코스 ★ 영인산자연휴양림, 고산자연휴양림, 덕유산자연휴양림, 장령산자연휴양림 영인산자연휴양림 영인산자연휴양림은 야영과 숙박시설, 어린이 생태원 등 다양한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자연휴양림입니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야영장은 운반용 손수레를 이용하여 짐을 쉽게 운반할 수 있고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숙박시설 또한 인원수 별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1박 2일 코스로도 추천해요. 입구에서 올라오면 보이는 잔디밭에서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좋아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숲속에서 휴식시간을 가져보세요. ※ 영인산자연휴양림 - 주소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온천로 16-26- 운영시간 : 매일 08:00~18:00-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고산자연휴양림 고산자연휴양림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워 언제든지 방문하기 좋은 자연휴양림입니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봄에는 벚꽃과 철쭉, 여름에는 계곡, 가을철 단풍과 겨울 설경으로 늘 인기가 많은 곳인데요. 숙박시설은 인원수에 맞춰 머무를 수 있으며 캠핑장과 카라반까지 있어 방문자의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어요. 숙박시설 주변으로 운동시설이 있어서 농구와 족구, 간단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이 가능해요. 산에서 불어오는 숲내음을 맡으며자연을 즐겨보세요. ※ 고산자연휴양림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고산휴양림로 246- 운영시간 : (월, 수~일요일) 09:00~18:00* 매주 화요일 휴무-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덕유산자연휴양림 국립 덕유산자연휴양림은 깊은 산골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함과 기분 좋은 숲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자연휴양림입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입니다. 울창한 숲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산책코스와 야영장, 등산객들을 위한 등산로도 갖추고 있어 자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곳이에요. 덕유산국립공원이 주변에 인접하여 함께 자연을 둘러보기 좋습니다. 다양하게 마련된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의 절경을 즐겨보세요. ※ 덕유산자연휴양림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풍면 구천동로 530-62- 운영시간 : (월, 수~일요일) 09:00~18:00* 매주 화요일 휴무-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장령산자연휴양림 장령산자연휴양림은 휴양림 사이로 흐르는 금천계곡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자연휴양림입니다. 금천계곡은 어름치가 서식할 정도로 맑고 깨끗한 계곡인데요.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산책이나 등산을 즐기고 물가에 발을 담그며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또 이곳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있어 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기기 좋아요. 장령산자연휴양림은 야영장 뿐만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와 여러 편의시설이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장령산자연휴양림에서 자연을 가득 느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 장령산자연휴양림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장령산로 519- 운영시간 : 매일 09:00~18:00-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SNS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 MOU 서명식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성에서 열린 한·체코 간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개발 협력과 인도적 지원 등 분야 MOU 체결식에서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성에서 열린 한·체코 간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개발 협력과 인도적 지원 등 분야 MOU 체결식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얀 리파브스키(Jan Lipavsky) 체코 외교장관이 서명식을 진행하는 동안 임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성에서 열린 한·체코 간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개발 협력과 인도적 지원 등 분야 MOU 체결식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얀 리파브스키(Jan Lipavsky) 체코 외교장관이 서명식을 진행하는 동안 임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성에서 열린 한·체코 간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개발 협력과 인도적 지원 등 분야 MOU 체결식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얀 리파브스키(Jan Lipavsky) 체코 외교장관이 서명식을 진행하는 동안 박수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조선왕릉·궁궐 답사 체험 프로그램 ‘왕릉천(千)행’, 오픈런 이유 있었네! 주말 아침, 그 좋아하는 늦잠을 포기했다. 설렌 까닭일까. 집에서 왕릉천(千)행 집결지까지도 제법 걸렸지만 힘들지 않았다. 멀리 주차장에 주차된 두대의 버스가 보이자,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홍살문에 관해 설명을 듣고 보고 있다 . 왕릉천(千)행이 돌아왔다. 왕릉천(千)행, 말 그대로 조선왕릉을 여행하는 천 가지 방법이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한 여행 답사 체험 프로그램 왕릉천(千)행을 상·하반기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궁능유적본부에서 발간한 조선시대 능행 연구 용역 보고서를 활용해 조선 왕들의 능행을 따라가는 코스로 진행, 전문 강사와 함께 조선왕릉과 궁궐, 주변 지역 문화유산 등을 보며 문화체험을 한다. 올해 하반기는 9월 6일~11월 16일까지 6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상반기에 없었던 2개의 코스가 새롭게 선보여 관심을 끈다. 왕릉천(千)행은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그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갓성비(가격 대비 성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의미)라고 불리며 신청 시작 몇 분 만에 마감되기도 한다. 9월 7일, 하반기에 새로 생긴 1490 성종능행길에 참여해 550여 년 전 성종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1490 성종능행길 코스는 여주 영릉(세종대왕릉)과 여주 향교(약식 과거 시험), 여주 도자기 체험으로 구성됐다. 이날 참가자 40여 명에게는 안내 책자와 수신기, 기념품 등이 든 가방이 제공됐다. 특히 기념품은 세종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있고간식은 발달장애인들이 만든 쿠키라 의미를 더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 황석현 전문 강사는 일정과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줬다. 해시계에 관해직접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다. 능행은 조선시대 국왕이 선대 왕, 왕비의 능에 제사 등을 위해 행차하는 걸 말해요. 조선시대 한양서 여주는 상당히 먼 거리거든요. 그래서 능행 동안 그 지역 선비의 사기 진작을 위한 과거 시험이나 왕의 훈련을 겸한 강무라는 행사를 열었어요. 성종은 영릉(세종대왕릉)을 여주로 옮긴 후 두 번 찾았단다. 그중 1490년 능행은 9일이 걸렸으며 여주 및 이천의 향교 문묘에 재를 올리고 과거도 치렀다. 우리 역시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 돌아올 때쯤이면 참가자들도 성종의 마음이 와닿을까. 여주 영릉(세종대왕릉) 2시간을 달려 여주 영릉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릉이다. 밖으로 나가자 무더운 공기가 훅 느껴졌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 한글에 관해 듣고 있다. 참가자들이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먼저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 설명을 들으며 둘러봤다. 강사는 국립고궁박물관과 서울 공평도시유적 전시관에 가면 진품 혹은 더 많은 유물을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으며 다음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나자고 대화를 나눴다. 참가자들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며자세히 설명을 듣고 있다. 입구에서 안내도를 살폈다. 보통 왕릉천(千)행에서는 능침(왕과 왕비의 무덤)공간까지 가게 되는데 오늘은 출입이 금지돼 능 옆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가는 도중 세종 때의 과학기구들이 전시된 야외전시장이 나왔다. 나름 그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정말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천문과학기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왕이 친히 행사를 여는데 시간이 안 맞는 거예요. 당연하죠, 중국 걸 받아 썼으니까. 우리나라와 중국의 남중고도는 다르잖아요. 이걸 깨달은 세종은 천문에 모든 투자를 하게 되죠. 지금까지 못 봤거나 스쳐 갔던 과학기구들도 자세히 설명을 해주니 꽤 흥미로웠다. 해시계도 직접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돼 앞으로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쳐다보게 될 것 같다. 주제(왕릉)가 아닌 내용까지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오고 싶어졌다. 향로와 어로. 특히 흥미로웠던 건 향로와 어로였다. 윗부분에 화살이 있는 붉은 홍살문을 지나면 높이가 다른 길이 나온다. 높은 곳은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길(돌아가신 분을 위해 향을 바치는 길), 낮은 길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지나는 길이란다. 참가자들은 모두 낮은 길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왕릉을 가는 내내 흥미로운 해설을 들었다. 송시열이 처음으로 주장을 꺾지 않고 썼다는 비문과 고기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왕릉 제사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왜 사람들이 왕릉천(千)행을 여러 번을 가려는 지 이해가 됐다. 한 참가자가 왕릉을 찍고 있다. 참가자들은 능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오롯이 능을 본 것도 꽤 오랜만 같다. 한 어르신이 옛날에는 늘 왕릉 안까지 자유롭게 가고 그랬어요 라고 말하자 젊은이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점심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힘을 냈다. 왕의 행차라 해도 잘 먹어야 든든하다. 점심은 불고기와 여주 쌀로 지은 밥을 먹었다. 먹으면서 옆에 앉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온 참가자도 있었지만, 여러 번 참여한 사람이 더 많았다. 향교 여주향교.평상시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여주향교에서 미니 과거 시험을 볼 차례. 차 안에서 과거와 항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동했다. 향교는 고려 및 조선 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자 제사 공간을 겸하고 있다. 여주향교는 1391년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돼 1685년 다시 세워졌다. 평상시는 개방하지 않지만, 특별히 이날은 대성전까지 볼 수 있었다. 이런 게 왕릉천(千)행의 묘미 아닐까. 과거시험 문제지를 받아들었다. 곳곳을둘러본 참가자들은 명륜당에 앉아 과거 시험을 봤다. 시험지를 받아든 어린이나 어르신이나 진지한 표정은 같았다. 두 과목 세 문제였지만공정하게 치러졌고 당시처럼 3명을 선정했다. 도자공방 도자기 체험 전, 공방에 모여 도자기에 관해 듣고 있다. 아이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여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다름아닌 도자기. 도자기는 여주, 이천, 광주가 유명한데 여주는 생활도자기로 유명하단다. 도예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참가자들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다. 한 달 뒤, 왕릉천(千)행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우리가 만든 도자기가 집으로 배송된다. 그럼 또 다시 이날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전문강사에게 들은 이모저모 같은 곳을 가도 얼마나 보이는지는 다르다. 황석현 전문강사는 무더위 속 시원한 해설로 왕릉천(千)행의 시각을 넓혀줬다.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해설을 들려준 황석현 전문 강사. ◆왕릉천(千)행 올해 주제가 능행이었어요.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궁능유적본부에서 올해 주제를 능행으로 정했는데요. 점점 체험이 중요시되고 있어 작년에는 미션을 주고 채점해 선물을 드렸지만올해는 참여자 모두 도자기 체험을 하도록 기획했습니다. 코스는 해마다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데요. 작년은 상·하반기 코스가 같았는데 올해는 하반기에 두 코스가추가되었고요. 서울 이외지역주민을 위해 올해는 대전에서도 출발했습니다. ◆이번 1490 성종능행길에서 특히 눈여겨 볼 곳이 있다면요. 능행이 무형유산인 만큼 세종대왕릉이 중심이 되겠지요. ◆많은 왕릉을 다니셨을텐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왕릉이 있으신지요. 능침을 올라간다는 전제하에 저 개인적으로는 동구릉의 건원릉, 남양주 광릉을 좋아해요. 조선왕릉의 원형을 볼 수 있거든요. ◆오늘은 능침을 못 봤는데요. 능침에서 관람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역으로 우려되는 점도 있을까요. 가까운 곳에서 찍어본 영릉. 능침에서 본다는 건,돌아가신 분의 위치, 당시 시선에서 보는 거잖아요. 조금 더 가까이서 둘러 보는 만큼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죠. 능침을 개방하면 많이 볼 수 있지만. 어떻게든 훼손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대안으로 측면으로 돌아가 최대한 훼손을 줄이려고 하고 있어요. 이곳 세종대왕릉도 그렇고요. ◆왕릉을 보기 전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미리 인터넷 등에서 역사, 왕릉 특징 등을 알고 오면 더 흥미로울 거고요. 해설사가 동행하지 않는다면 입구에서 팜플릿을 챙기고 안내판에서 전체적인 구조와 그림 등을 살펴보고 중간중간 해설판 등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거 같아요. 참여자들의 한마디 저는 도자기 체험이 너무 즐거웠어요. 저도요. 아. 참 과거 시험도 재밌었어. 또 오고 싶어요. 쑥스러운 듯 성종에 관해 조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김주영양. 김주영(서울 강동구, 초4), 육다은(성남 분당구, 초4)학생은 각자 엄마와 함께 참여했다. 다은 양이 전학간 후, 이렇게 주말마다 함께 할 기회를 만든다고 했다. 주영 양은 사전에 성종에 관해 조사하고 적어왔다. 자못 수줍어 하며 보여주는 종이에는 열심히 빽빽하게 적은 흔적이 담겨 있었다. 인천에서 온 어르신 부부도 있었다. 남편은 여러 번 왔는데 부인은 세번 째라고 했다. 그는 단종의 길이었던 영월이 참 좋았다고 추천을 해줬다. 이제 10월, 11월왕릉천(千)행이 기다리고 있다. 10월 신청은 9월 24일 화요일 오전 11시, 11월 신청은 10월 22일 오전 11시에네이버 예약 누리집(https://naver.me/xB43M7q0)에서 신청하면 된다. 회차당 선착순 20명이며 1인당 최대 4매까지 신청가능하다. 만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전화(02-738-4001)로도 예약할 수 있다. 인기가 많은 만큼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성공하길 바란다.가을 왕릉의 길은 준비해 떠나는 자의 것이다. 정책기자단|김윤경otterkim@gmail.com 한 걸음 더 걷고, 두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 영상 [두산 스코다 파워 및 스코다 JS 산업시찰] 두 나라가 함께 짓는 원전, 한-체코 비전 실현의 첫걸음 ☞ 대통령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