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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의 추억과 색바랜 곰돌이 인형 한쌍

[2017 청렴 사연·수기 공모전] ⑤ 공직부문 우수상

2017.10.13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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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의 시행 등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으로 바뀐 삶의 이야기 등 청렴과 관련된 국민들의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한 공모전 우수작을 정책브리핑에서 공유한다. 과연 우리는 생활 속 청렴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청렴의 의미를 국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편집자 주)

* 수상자 중에는 공익신고자가 포함돼 있어 개인 실명 등은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신사임당의 유혹

금요일 저녁이면 나는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익숙한 풍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창동역 앞 작은 포장마차로 들어서면 조금은 낡았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원탁과 함께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13년 지기 친구 한 놈이 나를 반긴다. 조금 허름하지만 한없이 아늑한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소주 한 잔에 인생의 씁쓸함을 털어 넘기고 새로운 희망의 한 잔을 따라오고 있었다.

2017년 4월의 한 금요일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만 다르지 않았으리라. 맞은편에 앉은 친구 H는 그날따라 유독 말수가 적었다. 실수를 연발하는 직장 동료, 결혼과 혼수 문제, 뉴스 기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 등등… 만날 때마다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던 놈이 연거푸 술잔만 들이키는 것이 의아했다. 무슨 일이 생겼냐는 물음에도 쉽게 대꾸를 하지 않던 H는 네 번째로 주문한 소주병을 매만지더니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옥아, 너 예전에 도시 계획이나 대규모 사업 관련해서 전기 공급이 되는지 검토해달라는 요청 문서나 정보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었지?”
“그렇지. 일단 우리가 사용가능 여부를 확인해줘야 그쪽에서도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다시 한참 말을 아끼던 H는 수없이 들이킨 소주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눈을 또렷이 보며 말을 꺼냈다. “그 자료들 따로 정리해서 내가 좀 받아보면 안 되겠냐?”

기나긴 친분도 곤란한 요구하나에 쉽게 무너질 수 있었기에 난감한 부탁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우리였다. H가 말한 문서와 자료들, 모두 실제로 내가 회사 업무를 하며 빈번하게 접하는 것들이었다.

적기적소에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회사 특성상 사전에 충분한 자료와 계획을 입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떤 지역에 무엇이 들어설 것인지, 그 규모는 얼마인지, 그리고 추진하는 사업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H가 왜 그 부탁을 했는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H는 얼마 전 부서 내에서 실적이 뒷순위로 밀린 것에 대한 압박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투자 정보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H의 부탁은 곧, 나에게 내부문서를 빼 오라는 의미이다. 분명 H도 그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굉장히 어렵게 말을 꺼냈을 것이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못 들은 이야기로 생각하라고 소주잔을 털어 넘겼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고, 침묵의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들어온 나는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친구가 얼마나 힘든 마음에 그런 부탁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사실 들키지 않고 조금 도와주는 셈 친다면 문제없는 것 아닐까. 그래,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거겠지…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휴대전화를 찾으려 가방을 열었다. 그런데 가방에 넣어둔 기억이 없던 봉투 하나가 보였다. 그 안에는 신사임당이 그려진 종이 여러 장이 보였다. 5만 원권 10장이었다.

도움이고 뭐고 머릿속이 새하얘진 나는 다급히 H에게 전화를 걸어 이 돈의 정체를 물었다. 그런데 H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만약 앞으로도 자료를 줄 생각이 있다면 그때마다 대가는 섭섭지 않게 챙겨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전화를 끊은 나는 봉투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세상 누구나 가진 공통의 고민거리, 바로 돈일 것이다. 사실 나도 지금의 월급으로는 아주 빠듯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대학을 졸업한 나는 남들에 비해 시작부터가 마이너스였고, 2015년 갑작스레 찾아온 아버지의 뇌경색 치료로 빠져나가는 지출이 상당했던 탓에 나를 위한 저축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내 손에 들린 신사임당의 얼굴, 그것은 세상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 날 이후 H는 연락이 없었고, 나는 며칠째 퇴근 후 침대에서 봉투만 만지작거렸다. 하고 싶지만, 하면 안 되는 일… 도와주고 싶지만, 분명 문제가 되는 일… 하염없이 머리를 싸매다 옆으로 돌아누운 나는, 문득 방 한 구석에 자리한 낡은 장식장에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색이 바랜 곰돌이 인형 한 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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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아, ‘촌지’보다는 떳떳함으로 이겨내야 한단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소위 ‘촌지’라 불리는, 불법 찬조금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사교육을 받으며 높은 성적을 얻는 ‘있는 집 자식’들은 부모들이 매 학기 학교에 찔러 넣는 뒷돈으로 날개를 달았다. 나름 상위의 성적을 유지했던 내가 우등생 명단에 항상 들지 못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나와 같은 반에 있던 우등생 중에는 ‘있는 집 자식’이 한 명 있었다. 경쟁심 아니,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만큼은 제치고 싶었고, 어렸던 내 생각으로는 ‘촌지’만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도서관을 다녀오겠다고 한 나는 무슨 용기였던지 동네 건물 지하에 있던 부업장 문을 무작정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처럼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다가와 나를 내쫓으려 했으나 너무나도 완강했던 나의 태도에 결국 소일거리를 하나 받아낼 수 있었다. 인형 눈알 한 쌍 붙이기에 40원, 하루 할당량 200개.

그날 이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출근하듯 부업장으로 들어갔다. 물론 집에는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돈을 떼일까 불안했던 어린 마음에 그날의 대가는 바로 현금으로 받았고, 일이 끝난 뒤에는 본드 냄새가 너무 심해 한참 동안 거리를 서성이다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눈알과 싸우기를 한 달. 5000개째의 눈알을 붙인 나는 봉투에 20만원을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학급 공지에 대한 회신문을 가져오라는 날이 있어 봉투를 함께 넣은 회신문을 교무실에 조용히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상함과 답답함이 기억에서 잊혀갈 무렵,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려는 나를 선생님이 붙잡았다.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잔다. 쭈뼛쭈뼛 따라나선 나는 동네 고깃집에 들어갔고 방으로 들어가라는 종업원의 안내에 구석진 방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계셨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자리에 앉힌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이 잡은 내 손은 아직 본드로 인한 상처들이 낫지 않은 채 갈라지고 벗겨진 상태였다. 내 손을 가만히 내려 보시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성민아, 난 네가 최근 한 달 동안 뭘 했는지 다 봤어. 그렇게 남아서 질문도 많이 하고 도서관도 바로 가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른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이상하더라. 미리 알았을 때 그만두게 하지 못했던 건 미안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성민이에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번 기회에 알려주고 싶었어.

아직 그런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선생님은 이런 돈 절대 안 받아. 내 학생들을 돈 몇 푼으로 다르게 보고 싶지 않거든. 정말 중요한 건 내 학생들이 떳떳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거란다. 성민이가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기념으로 오늘은 선생님이 맛있는 저녁 사줄게. 그리고 성민이가 열심히 모은 돈으로 내일 선생님이랑 서점가서 같이 좋은 참고서나 몇 개 골라보자.”

그날 선생님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껍질이 심하게 벗겨져 연필도 제대로 잡기 어려운 손, 매일 거짓말을 해야 했던 죄책감이 서러움이 되어 한 번에 터졌지 않았나 싶다. 선생님은 정말 다음날 서울에서 가장 큰 서점에 나를 데리고 가주셨다. 그날 이후로 마음을 다잡았던 덕분일까. 나는 성적이 점점 올라갔고, 교내에서 인정받는 장학생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졸업할 수 있었다.

내 마음, 깨끗한 곰돌이 인형처럼

여전히 내 방 장식장에 있는 인형 한 쌍은 부업 마지막 날 사장님께 얻어온 기념품이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진 탓에 그 인형이 내게 주었던 소중한 깨달음도 인형의 색처럼 바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형을 깨끗이 세탁한 나는 바로 H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같은 반이었던 바로 그 ‘있는 집 자식’에게. 늘 만났던 그곳에서 우리는 재회했고, 나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미 나의 결정을 예상하였다는 듯, H는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H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한때는 경쟁자였지만 지금은 많은 것을 공유하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이기에. 그래서 H도 며칠 전 봉투를 준 날 이후로 굉장히 후회했었고, 오히려 내게 미안함이 너무 커서 연락을 못 했다고 했다. H는 진지한 사과의 말과 함께 비록 지금은 어렵더라도 떳떳하게 살면서 반드시 이 상황을 이겨내 보이겠다고 결의에 찬 눈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끈끈한 우정, 새로운 다짐을 위한 잔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날 술은 내가 샀다. 맡겨놓은 돈에 대한 이자라고 생각하라고.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 집에 들어선 나는 다시 내 방에 있는, 지금은 깨끗해진 곰돌이 인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주었던 존재, 잠시 잊었던 큰 깨달음을 다시 일깨워준 소중한 존재를. 그리고 재차 다짐했다. 항상 바르고 올곧은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저 깨끗한 곰돌이 인형처럼.

자료제공: 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http://blog.daum.net/lovea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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