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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 껌딱지가 제 캔버스예요”

충북 보은고 2학년 박송이 양, ‘껌 아트’ 작품 100여 점에 등굣길 화사해져

2014.10.15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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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고 2학년 박송이(17) 양이 교정 길바닥에 붙어 있는 껌딱지를 도화지 삼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충북 보은고 2학년 박송이(17) 양이 교정 길바닥에 붙어 있는 껌딱지를 도화지 삼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껌아트’. 길바닥에 붙어 있는 껌딱지를 도화지 삼아 멋진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최근 한 여고생이 교정 내 길에 붙은 껌 딱지를 멋진 작품으로 만들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충북 보은고등학교 2학년 박송이(17) 양의 얘기다.

송이는 지난 7월 중순부터 교정 곳곳을 누비며 지저분한 껌딱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두 달 여간 박 양의 손놀림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변한 껌 딱지는 100여 점이 넘는다. 이 작품들로 보은고 교문에서 본관까지 가는 회색의 아스팔트 길에는 아기자기함이 더해졌다.

“처음에는 친구 얼굴을 그리고 별명을 적어 넣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학교 모습, 지역 특산물인 보은대추, 아이스크림, 수박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 봤어요.” ‘껌 아트’에 푹 빠진 박 양은 요즘 가을의 정취를 담은 낙엽과 책상, 옷가지 등 다양한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아티스트로 변했다.

진로상담 선생님 권유로 미술에 대한 열정 살려

송이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미술에 대한 열정과 꿈을 키웠다. “집을 리모델링하게 됐는데 그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보고 반했어요. 미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머니를 졸라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미술이 너무 재미있어 이듬해에는 미술관련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간디자이너 활동을 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는 게 그의 꿈이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하기엔 여건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는 전문 미술선생님이 없었다. 보은고에 입학한 후 가입한 미술동아리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려는 학생이 많지 않은 데다 그나마 네댓 명의 회원들도 호기심이나 취미로 하는 이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오래 다닌 미술학원도 서울로 이사를 가 별도로 지인을 통해 미술 공부를 하는 상황이다.

미술에 대한 열정과 달리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웠던 송이는 지난 7월 초 최현주 진로상담 교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최 교사는 유학시절 봤던 미국의 ‘껌 아트’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박 양에게 도전해 볼 것을 권했다.

“처음 껌 아트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땐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허락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재료를 사주시며 꼭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꾸준히 하다 보니 기술도 생기고 재미도 붙었어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처음엔 무엇보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고무장판을 깔고 땅에 엎드려 500원짜리 동전 만한 크기의 껌 딱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여고생 입장에선 쑥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습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도 많이 했다. 심지어 실제로 지나가던 사람에게 “거지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선은 익숙해졌다. 송이가 하는 일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줄었다. 뜨거운 여름에 작업할 땐 우산을 받쳐주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친구, 제자를 위해 방석을 만들어주는 교사들도 생겼다.

박송이 양이 그린 껌 아트 작품들.
박송이 양이 그린 껌 아트 작품들.

송이는 “처음엔 학교에 싫어하는 분들도 있고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몇 달째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처음과 달리 이젠 인정받아 기뻐요”

그는 이어 “시골이라 웬만한 친구들은 다 아는 사이고 서로의 꿈도 잘 안다”며 “혹시 내 작품을 보고 실망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들 귀엽고 아기자기하다고 말해줘 점점 자신감도 붙는다”고 덧붙였다. 그의 부모님도 든든한 후원자다. 그림을 그리려고 아침 일찍 나가는 딸을 보며 건강을 걱정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송이는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껌 아트 작업을 한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너무 늦으면 8시 30분에 시작하는 수업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송이가 그림을 그릴 껌 딱지는 교내에 아직 많이 남았다. 그러나 송이는 “날씨가 더 추워지면 당분간은 작업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땅이 얼면 그림을 그리기 어렵고 아크릴 물감이 잘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물 묻은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 점도 애로사항이다.

미술활동 자체를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학교 문예부 회장 활동을 하고 있다. 겨울에는 내년 축제에서 쓸 소품들을 직접 만들 생각이다. 회원이 많지 않지만 미술동아리 총책임자가 되면서 전시회 등의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물론 날씨가 괜찮아지면 껌 아트도 다시 시작할 거예요. 사실 걱정돼요. 미대에 진학하려면 공부도 해야 하는데 미술활동이랑 병행하는 게 버겁거든요. 하지만 제가 즐기는 지금 이 활동이 꿈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의 응원대로 끝까지 해볼 거예요.”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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