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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주당 최장 52시간 근로제가 7월 1일부터 실시된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종래 26개에 달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5개로 축소된다. 관공서에만 적용되었던 공휴일 규정이 민간 기업에게 까지 적용되게 된다.
이번 52시간 근로제는 단계적으로 실시된다. 올 7월에는 우선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과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이 대상이다. 50~300인 미만 기업은 2020년 1월부터, 그리고 5~50인 미만 기업의 경우 2021년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라 할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5년 전인 1993년에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48시간으로 제한하였다. 48시간 또한 유럽연합 차원의 최장 근로시간이고, EU 각 회원국은 이보다 훨씬 짧은 국가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가령, 독일은 1995년부터, 프랑스는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예테보리시(市)의 스바테달렌 지역에서 주당 30시간 근무를 실험하고 있다. 한국이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도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
사실 우리나라에서 주당 최장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것은 이미 2004년의 일이었다. 당시에도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주당 40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노사 합의하에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주당 노동시간은 그때 이미 최장 52시간이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1주는 월~금요일이라는 ‘기이한’ 행정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주말 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가 허용됨으로써 마치 주당 허용된 최장 노동시간이 68시간인 것처럼 운영되어 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제 2조 1항 제7호에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이러한 편법 운영의 가능성을 바로 잡게 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삶의 질의 개선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에 관한 교서’를 통해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일중독 사회로 과로사가 벌어지고 있는 노동 현실을 바꾸려는데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시간 당 생산성의 개선과 일자리 창출 또한 이번 제도 도입의 중요한 목적이다. 장시간 노동에 따라 일과 삶의 균형이 저해되었을 뿐 아니라, 생산성 또한 매우 낮았던 게 사실이었다.
특히 한국은 ‘적게 뽑아 오랫동안 근무시키는 방식에 익숙한’ 나라였다. 일이 있는 사람은 과로사 가능성을 염려할 만큼 일에 시달리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은 일이 없어서, OECD 최대 수준의 자영업 전선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300인 이상 기업 및 공공기관에 대한 근로시간 52시간제의 실시만으로도 최소 수 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일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이 헛되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층적이고 형식적인 보고체계는 ‘적폐’ 수준의 잘못된 관행이라 할 것이다.
적게뽑아 오랫동안 근무시키는 익숙함을 내려놓아야
업무 처리에 2주가 걸린다면 실제 담당자가 해당 업무를 파악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다.
앞의 5일은 최고경영진의 업무 지시가 실무자에게까지 내려오는 시간이고, 뒤의 5일은 과장, 부장, 상무를 거쳐 기업과 그룹 내 최고 경영진으로 보고하기까지 층층별 불필요한 훈수와 해당 사안에 대한 윗분의 심기 파악에 많은 시간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른 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에서도 왕왕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번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이러한 잘못된 직장문화를 상당 부분 제거하는 계기로 삼을 수만 있다면, 노동시간의 단축은 그 어떤 기술 혁신 이상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획기적인 혁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의 선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관행을 타파하고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노사간의 상호 협의와 노력이 요구된다.
잘못된 직장문화 타파 계기…선도적 노력 필요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근무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동료들과 짧은 대화도 하지 못하는 것이냐’는 식의 문제 제기가 있는데, 당연히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근무시간은 오직 근무에만 충실해야 한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만든 다큐멘터리 ‘독일 사람 되어보기’란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영국인이 직접 독일로 이사 가서 독일 공장에 취업하여 독일의 높은 생산성과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동시간을 경험하는 내용이었는데, 영국인이 경험한 독일 직장에서의 근무 시간은 정말 일만 하는 시간이었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클릭을 한다거나, 잡담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일을 하다가 발각이 되면 상사에게 혼나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주변 동료들이 그러한 행태를 용납하지 않는 독일에서의 직장문화가 그려졌다.
최근 노동시간 단축을 앞두고 직장 내 회식이 근로시간이냐 아니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회식은 근무시간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사실 이것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해결할 일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오후 4시 근무가 끝나면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장한다. 직원끼리 어울리거나, 부서 내 회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한국의 직장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편하고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양으로 때우기보다 시간 당 생산성을 높이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줄이는 노동시간을 당장 생산성 향상을 통해 대체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양으로 때우기 보다 시간당 생산성 높이는 일에 매진해야
이미 1930년 말 미국 캘로그는 하루 6시간 노동을 실천한 적이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 8시간 3교대를 6시간 4교대로 바꿔, 교대조 하나를 통째로 새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지역 내 해고 노동자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근로자들은 주급의 일정한 감소를 수용했고, 경영진은 시간 당 노동 비용의 증가를 감수함으로써 고통을 분담했다. 시간 당 임금을 첫해 12.5%, 둘째 해 12.5% 인상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손실을 2년만에 해소했다.
놀랍게도 5년 만에 생산라인 취업자는 39%나 증가했고, 단위 당 노동비용은 시간 당 임금 인상과 추가적 근로자 고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10%가 감소되었다. 기업의 이윤은 2배나 증가했다.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6시간을 제외한 남는 시간을 가족과 학교, 지역사회를 위해 쓸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저임금 근로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중소기업에게 노동시간의 단축은 부담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저임금 근로자는 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 총액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비용의 증가를 걱정해야하기 때문이다.
50~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2020년 1월까지 매우 중요
이점에서 특히 50~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는 2020년 1월까지 향후 1년 6개월의 시간이 중요하다. 이 기간 중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사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대·중소기업 관계의 상생적 발전, 가맹사업본부와 가맹점주간의 불공정한 관행의 개선, 그리고 소상공인의 가장 큰 부담인 임대료에 대한 안정화 대책, 그리고 카드 수수료의 인하와 같은 보완 대책을 향후 1년 6개월 이내에 충분하게 마련하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 제도의 정착을 위해 정부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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