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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 ‘군함도’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2017.08.16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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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오독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를 보면 맥락도 없이 어설픈 각성에 빠져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를 실감케 한다. 처음 군함도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진실을 일깨워주고 국가의 의미라도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마름질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비단을 맡겨 귀한 옷감을 상하게 한 모양새라고 할까. 군함도 비극의 본질을 드러내기는커녕 거꾸로 차폐막을 쳐 역사의 실상을 가려버리는 결과가 됐다. 역사를 역사로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강조하듯 ‘군함도’가 ‘일본은 악, 조선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른다.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자기 허물도 돌아보는 자세는 좋다. 영화를 만들면서 사실과 허구를 접목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에게 그런 재량이 주어지는 만큼 책임은 더욱 막중할 수밖에 없다. 군함도처럼 민감한 역사에 기반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도의 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단순히 이분법을 버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얼마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가 역사의 진실과 대면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본은 군함도 죄악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는 장승처럼 꿈쩍 않는데 피해자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량을 베풀며 선과 악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 과연 정의의 관념에 부합한 일인가. 우리의 도덕 감정이 용납하는가. 이 시대의 실천윤리로 삼아야 하는가. 굳이 애국정신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말을 끄집어 낼 필요도 없다. 옳은 건 옳은 것이고 그른 건 그른 것이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설파했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건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다. ‘관용하는 자’가 ‘잘못을 저지른 자’보다 더 죄다” 역사가 증명하듯 선악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옥과 돌이 다 불에 타버리는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왜 옥석구분(玉石俱焚)의 재앙을 자초하려 하는가. 

일본을 드러내놓고 좋게 그리는 것만이 친일영화가 아니다. 마땅히 그려야할 ‘절대악’을 그리지 않는 것 또한 부작위에 의한 역사왜곡이요 또 다른 친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결과적 가중(加重)’의 책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은폐된 친일이 공공연한 친일보다 더 악랄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군함도’는 이 같은 논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군함도’에서 조선인의 ‘상대악’은 사뭇 신랄하게 묘사된다. 영화 속 주인공은 모였다 하면 서로 으르렁대는 조선인들을 향해 “누가 조선 종자 아니랄까봐”라고 조롱조로 말한다. 막장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조선의 ‘지하생활자’들은 정말 그렇게 ‘엽전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편싸움이나 벌인 것인가. 영화가 그리듯 조선인들은 그렇게 최소한의 동류의식도 없이 오사리잡놈 같은 행태를 보였단 말인가. 창작이 됐든 실화가 됐든 거칠기 짝이 없는 접근이다. ‘군함도’는 해외 155개국에 판매될 예정이다.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그 나라 사람들이 이런 조폭영화 같은 ‘막장면’을 보게 되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일제가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타율성론이니 당파성론이니 정체성론이니 하는 것들이다. 조선 민족은 본래 자율적으로 하는 게 없고, 무리지어 싸우기나 하고, 일본이 근대화시켜줘서 그나마 그 정도라도 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조선 종자’ 운운하는 영화 주인공의 자조적 언사는 바로 이런 일제 식민사관의 연속 아닌가. 영화를 영화로 봐야 한다고들 하지만 ‘군함도’를 보면 그런 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님을 실감으로 알 수 있다.   

군함도 논란의 핵심은 역사왜곡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 논란에 직면해 뜬금없이 ‘친일파 청산’을 외치고 있다. 논점을 흐리려는 심산인가. 논의구조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도 만든 후에도 정직해야 한다. 누가 친일파 청산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친일파 청산이라는 하나마나한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며 역사왜곡의 본질을 비껴가려 하는 것은 떳떳지 못하다. ‘군함도’를 친일 청산을 다룬 영화로 봐줄 만큼 관객은 어리석지 않다. 가해자는 그냥 저기 저만치 멀리 있는데 피해자들끼리 시종 드잡이를 벌이는 이상한 방향의 오락 활극영화를 만들어 놓고 친일청산 메시지를 읽어내라는 것은 모순이다. 감독이 관객을 가르치며 이기려고 하는 것은 정치인이 국민과 싸우며 이기려고 하는 것 만큼이나 무모한 일이다.    

군함도 소재로 물론 친일파 청산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친일청산 영화를 만들 의도였다면 이렇게 찍는 게 아니다. 건강한 상식을 지닌 감독이라면 군함도라는 소재를 다루며 제일 먼저 어떤 지점에 착목할까. 그것은 필경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일 것이다. 영화의 뼈대를 바로 세운 연후에 대탈주를 넣든 러브라인을 넣든 해야 최소한 ‘역사영화’로서 값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군함도라는 역사적 공간을 그저 탈주극 액션의 배경으로 소비해버렸다. 일제의 악행을 소름끼칠 정도로 충실히 기록하며 당시의 정치 상황, 전란의 현황, 강제징용 조선인의 일상과 탈주, 그리고 귀환을 맞는 조국의 모습까지 총체적으로 그렸어야 했다. 군함도라는 민족사의 동통(疼痛)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시대에 대한 고민을 조금만 더 치열하게 했다면 이런 식의 값싼 상업주의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군함도’는 의미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초점을 잘못 맞춤으로써 결국 불편한 ‘역사왜곡 영화’로 남게 됐다. 영화를 통해서나마 군함도의 진실과 마주하려 했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역사는 얼마나 경외로운 것인가.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또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 ‘군함도’에서 그런 교훈이라도 캐내며 역사를 사유해보자.   

김종면

◆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서울신문에서 문화부장 등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을 했다.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로 세계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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