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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한파와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롱패딩이 큰 유행이다. 롱패딩의 열풍으로 명품을 사기 위해 자기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한다는 ‘등골 브레이커’라는 은어가 나왔다. 사진은 등굣길 롱패딩을 입은 여고생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이번 겨울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가장 추운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듯 하다. ‘동계’라는 의미에서는 더 없이 잘 어울리지만, 야외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나 이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관중들로서는 ‘강추위’ 올림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한을 찾은 북한 응원단이나 예술단원들의 복장에서도 이번 추위가 만만치 않음을 어렵잖게 느낄 수 있다. 털모자에 하나같이 두툼한 코트를 몸에 두른 모습들이었다. 북쪽동포들이 아무래도 추위에 더 단련됐을 터인데, 그들에게도 이번 겨울 추위는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올 겨울 월동 복식 가운데 속칭 ‘패딩’이 널리 유행하는 현상 역시 추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무리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해라지만, 2014년 소치 올림픽 때처럼 이상난동이 찾아온다면 패딩 복장으로 집밖을 나서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겨울철 패딩 옷의 소재로 이용되는 새 털 가운데 깃털(페더) 부분. 깃이 있고 거친 점이 솜털(다운)과 확연히 다르다. (제공=로저 맥라우스) |
인류에게 기실 옷은 멋이기에 앞서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명제 같은 것이었다. 인간 생활의 이른바 3대 기본요소라는 ‘의식주’에서 옷이 먹거리나 거처보다 앞에 위치하는 건 옷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수도 있다.
동물 가운데 옷을 입는 부류는 사람이 유일하다. 바꿔 말해 인간의 피부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는데 가장 취약하다. 뜨거운 여름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면 ‘익는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종국에는 화상을 입고 마는 게 인간의 피부이다. 반면 이번 겨울처럼 기승을 부리는 강추위와 접하면 인간의 피부는 ‘얼어 터지는’ 상황을 면치 못한다.
복식이라는 형태로 문화의 큰 흐름을 형성하기 이전의 옷은 웬만한 무기보다도 더 중요한 생존수단이었을 것이다. 1만2천~3천년 전 끝난 빙하기를 옷 없이 맞았다면 인류는 절멸하거나 극소수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인류가 지금 정도의 문화와 문명을 일궈내는 데 옷이 기여한 바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의미이다.
패딩의 주 소재인 솜털. 보온성이 깃털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 (제공=요키) |
옷이 생존 수단으로써 그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계절은 여름보다는 겨울이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빙하기나 겨울철을 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옷의 주요 소재가 모피였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990년대 특히 절정에 달했던 ‘모피 배척 운동’은 모피에 대한 인간의 선호가 뿌리 깊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동물 애호가들의 시각이 아니더라도 동물로부터 가죽 혹은 깃털을 얻어 옷의 소재로 삼는다는 건, 잔인하거나 최소한 동물들에게 크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피부가 취약한 인류가 그 옛날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모피를 찾았던 것은 무엇보다 다른 선택수단이 없었던 탓이다. 화학섬유를 소재로 한 상대적으로 값싼 옷들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봐야 2차 대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과거 러시아 원정에서 패퇴한 것은 전력의 우열을 따지기에 앞서, 동장군과 싸움에서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불과 200년전만 해도 군복이든 일상 복장이든 엄혹한 겨울을 이겨낼 만한 옷감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최강의 옷감이 모피라는 사실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요즘에도 여전히 과학적으로는 유효하다. 동물의 가죽이나 새의 털 등을 보온성, 배수성 등에서 능가하는 화학섬유 옷감은 아직까지도 개발되지 못한 실정이다.
1994년 세계적인 여성 톱 모델들이 앞다퉈 모피 소재의 옷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동물의 가죽을 옷감으로 삼는 잔인함에 적잖은 사람들이 넌덜머리를 냈고, 때마침 양호한 인조가죽, 화학섬유 소재들이 널리 수용되면서 모피의 수요는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모피를 찾는 사람들은 미미하지만 다시 꾸준히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안이나 사무실, 차 안 등의 난방이 크게 좋아진 요즘은 사실 모피 옷이 없다 해도 한겨울을 나는데 큰 문제는 없다. 그럼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고가의 모피 옷을 찾는 것은 과시욕이나 실용성 혹은 인류의 조상 때부터 면면히 이어온 모피에 대한 애착적 본능의 소산일 수 있다.
겨울 옷감의 소재인 모피는 주로 포유류의 가죽에서 얻는다. 포유류 모피는 공급의 제한, 비싼 가격 등의 요인으로 인해, 잔인성 윤리성 등을 떠나 대중적인 옷감의 소재가 되기는 어렵다. 이런 형편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포유류 모피를 대신해 새의 깃털이 겨울 옷의 주 소재로 사용되는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다운’(down)이라고 불리는 조류의 털이 그 것이다.
옷감 소재로 수요가 적지 않은 붉은 여우의 모피. 한때 모피에 대한 혐오가 적지 않았으나 최근 미미하지만 다시 모피 수요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제공=플로렌트 비욘스타드) |
조류의 털은 바깥쪽에 자리한 깃털(feather)과 안쪽에 보푸라기 같은 솜털(down)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솜털과 깃털은 보온성과 물을 침투를 배척하는 성능에서 포유류의 털을 능가한다. 세칭 패딩 옷은 안감으로 이들 조류 털을 사용하고 바깥을 화학섬유로 밀봉하듯 해 만든 외투를 가리킨다.
새털 중 보온성과 배수성이 뛰어난 건 깃털보다는 솜털이다. 디자인과 메이커 수준이 비슷하다면 솜털 비중이 높은 걸 더 쳐주는 것은 이런 과학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패딩의 옷감 표식을 살펴보면 보통 ‘다운 90, 페더 10’ 혹은 ‘다운 80, 페더 20’ 등의 수치가 적혀 있는데 같은 종류의 새털이라면 다운 함량이 높은 게 값이 비싸게 마련이다.
흔히 새털이라고 하지만 옷감으로 사용되는 건 거위 털과 오리 털 사실상 이들 두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오리 털보다 거위 털을 더 쳐주는 이유는 거위 솜털이 특히 오리 솜털보다 가닥이 길고 보푸라기도 크게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한마디로 거위 털이 오리 털보다 보온성과 배수성이 좋은 것이다.
모피만큼은 아니지만 전세계적으로 새털이 널리 겨울 옷감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해서도 동물윤리적 측면에서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거위나 오리 같은 조류의 생명이 여우 같은 포유류에 비해 다소 경시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한 생명이 희생된다는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모피와 새털은 공급의 원천이 조금 다른 면은 있다. 모피의 경우 자연산 포유류와 토끼 같은 사육 포유류 양쪽에서 흔히 얻지만, 새털 즉 거위나 오리 털은 거의 전적으로 사육을 통해 공급되는 게 일반적인 까닭이다. 고기는 식용으로 유통되고 털은 털대로 따로 팔려나가는 식이다.
동물의 신체 일부를 어떤 방식으로든 옷감으로 사용하는 건 윤리 문제를 완전히 비껴가기 힘들다. 헌데 요즘 지구촌 문화의 대세로 자리잡은 친환경 문제에 관한 한 모피나 새털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쳐들고 있어 논란이 되는 실정이다.
화학섬유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쉽게 말하면, 석유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것이다. 추출과정에서 이산화탄소 같은 지구온난화 물질이 다량 배출될 수 밖에 없다. 요즘 주목을 받는 ‘북극곰의 비애’ 같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지구온난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날로 끔찍해져 가는 양상이다.
하지만 모피나 새털이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에도 허점은 적지 않다. 사람의 손으로 모피나 새털을 얻기 보다는 기계의 힘을 빌리고 무두질 등의 과정에서 화학 염료 등을 상당량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계를 돌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나 화학 염료 등은 결국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옷을 입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인간이 동물이나 생태계에 어느 정도 피해를 주는 건 불가피하다. 다만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생태계를 과도하게 착취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항시 깨어있는 눈으로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 기술적으로 면 소재 등을 이용해 보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도 모색해야 할 듯하다.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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