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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조정자’ 역할 다시 한 번 발휘할 때다
[전문가가 보는 한반도 비핵화·남북관계] ⑥ 어느때 보다 좋은 남북 및 한미관계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지난 20여 년 동안 한반도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 최대 요인은 북한 핵문제였다. 북핵문제로 인해 작년에는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로까기 치달았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저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공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행히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해 분위기가 반전됐다. 하지만 북한이 어렵사리 핵무기를 개발했고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북한체제를 지켜줄 안전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 때문에, 김 위원장의 약속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는 그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의 최고지도자에게 공개적으로 비핵화를 약속했고 조만간 열릴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봄쯤 가톨릭 교황이 평양을 방문할 때 다시 한번 한반도 비핵화를 확약한다면 북한도 비핵화를 후퇴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 약속의 백미는 김 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행한 문 대통령의 연설이다. 문 대통령은 “핵무기 없고 핵위협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가기로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했다”고 공개했다. 이것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한반도 비핵화 약속을 못박은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 상응조치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취소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서양 속담처럼, 어떻게 비핵화를 실현할 것인지를 놓고 북한이 자신들이 내건 두 가지 조건이 실현될 때까지는 쉽게 비핵화를 진전시키지 않을 것이다.
첫째 조건인 군사위협 해소를 위해 이미 대규모 한미군사연습을 일시중단한 데 이어 9월 19일 남북 국방장관이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는 사실상 남북한의 불가침합의로서, 재래식 전력에서 열세인 북한이 군사위협 없이 비핵화에 적극 나서도록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조건인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서는 초기조치로 종전선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종전선언은 적대관계 해소를 상징하는 정치적 선언으로, 이미 ‘판문점 공동선언’에서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종전선언의 상응조치를 놓고 북미 양측은 이견을 조율중이다.
‘군사합의서’ 채택을 놓고 우리 측이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북측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고 숫적으로 우세한 함포와 해안포 포문을 폐쇄하는 등 우리가 양보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 약속을 얻어내지 않았는가.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을 유엔사나 주한미군과 연관짓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반도 비핵화의 촉진 위한 성실한 조정자가 필요
미국은 비핵화의 진전이 있을 때까지 대북제재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이 상응조치로 요구했던 북미 수교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비핵화를 완료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촉진을 위해서도 초보적인 상응조치인 연락사무소의 교환설치나 종전선언의 채택이 필요하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은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가 평양 남북정상을 통해 새롭게 동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북미간에는 여전히 종전선언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연락사무소 논의도 아직 초기단계다.
북미 양측은 오랜 적대관계로 인한 불신 때문에 사소한 문제로도 오해하고 의심한다. 지금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는 어느 때보다 좋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북미간의 성실한 조정자 역할(honest brocker)을 다시 한번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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