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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오페라극장 가면무도회에서 울린 총성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스웨덴/스톡홀름(Stockholm)

스웨덴이라면 복지·인도주의·혁신·신용·안전·환경·노벨상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좋은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나라이다. 이런 선진국의 수도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릴 정도로 물과 도시가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다.

스톡홀름은 13세기 중엽 맬라렌 호수와 바다 사이의 섬들을 중심으로 독일계 상인들이 모여 사는 상업 중심지로 발전한 것이 기원이 되는데 스톡홀름 중심부의 현재 이름은 감라 스탄(Gamla Stan), ‘옛 시가지’라는 뜻이다.

스톡홀름 시청 앞 테라스에서 본 감라 스탄. 리다르홀멘 교회의 첨탑이 강한 랜드마크를 이룬다.
스톡홀름 시청 앞 테라스에서 본 감라 스탄. 리다르홀멘 교회의 첨탑이 강한 랜드마크를 이룬다.


감라 스탄의 심장 대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500-700미터 안에는 스톡홀름의 주요 역사적 건물들이 몰려있다. 그런데 오페라 팬이라면 먼저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원래 배경이 바로 스톡홀름이고 주인공이 구스타브 3세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구스타브 3세는 스웨덴이 선진사회를 건설하는데 기초를 다진 왕이었다.  
 
감라 스탄의 대광장에는 아기자기한 옛 건축물과 스웨덴 아카데미(한림원)으로 세워진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매년 노벨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 광장과 연결된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는 왕궁이 보인다.

또 이 섬과 서쪽에 맞붙은 섬에 세워진 리다르홀멘 교회는 감라 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높은 첨탑은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띈다. 이 교회에는 1632년부터 1950년까지의 스웨덴 국왕들이 잠들어있는데 왕궁과 가까워서 국왕의 장례식과 같은 중요한 국가의식을 거행하기에 아주 편리할 것이다. 

감라 스탄의 심장인 대광장.
감라 스탄의 심장인 대광장.


왕궁 북쪽에 바짝 붙은 작은 섬에는 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고 이 섬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구스타브 2세 광장이 펼쳐진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1594–1632)라면 17세기에 스웨덴을 엄청난 군사 강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 사회를 개혁하고 스웨덴을 문화의 나라로 이끌어 올린 왕은 구스타브 3세(1746-1792)였다. 이 광장에는 19세기 후반에 세워진 왕립오페라극장이 있는데 원래 이 곳에는 구스타브 3세가 세웠던 스웨덴 최초의 왕립오페라극장이 있었다.
 
구스타브 3세는 1772년에 즉위해 의회와 귀족들의 지위와 권익을 축소하고 전제왕권을 확립하면서도 민중의 편에 선 혁명적인 계몽군주였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 죄인에 대한 고문을 폐지했고 사형은 장기수감형으로 바꾸었으며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휴가일 수를 일 년에 20일로 정했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종교의 자유를 주었을 정도였으니 그의 사회개혁 정책은 어떻게 보면 프랑스 혁명보다 한발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귀족들은 그의 정치에 불만을 품었다.
 
구스타브 3세는 이러한 개혁뿐 아니라 음악·미술·문학·연극·발레 등 모든 예술분야를 진흥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 한림원·왕립 오페라단·왕립 음악원 등을 비롯한 여러 문화기관이 설립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의사당에서 다리건너 보이는 구스타브 2세 광장. 오른쪽 건물이 왕립오페라 극장이다.
의사당에서 다리건너 보이는 구스타브 2세 광장. 오른쪽 건물이 왕립오페라 극장이다.


그는 특히 오페라에 관심을 갖고 이탈리아와 독일 작곡가들을 초빙해 스웨덴 시인들이 쓴 스웨덴어 작품을 기조로 한 스웨덴 오페라를 쓰게 했고 다른 나라의 유명한 오페라 작품들은 모두 스웨덴어로 번역해서 공연하도록 했다.  

또 왕립 오페라 극장 건축을 계획, 1775년에 착공해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는 1782년 9월30일에 개관했는데 이 극장은 19세기까지 스톡홀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오페라 극장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그런데 그는 왕립 오페라 극장 개관 10주년 기념을 반년 앞둔 1792년 3월 16일 저녁, 이곳에서 열리던 가면무도회에서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 범인은 왕의 정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귀족 장교 앙카르스트룀이었다.
 
당시 유럽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이 암살사건을 소재로 프랑스 작곡가 오베르는 극작가 스크리브가 쓴 대본에 오페라 <구스타브 3세, 혹은 가면무도회>를 작곡했다. 그러자 이탈리아의 베르디도 그 내용을 이탈리아어로 다시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했다.

대광장 옆길. 멀리 스웨덴 국기가 꽂힌 건물이 왕궁이다.
대광장 옆길. 멀리 스웨덴 국기가 꽂힌 건물이 왕궁이다.


하지만 왕의 암살 사건을 다룬 내용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당국의 검열로 제목을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로만 하고 작품의 배경도 스톡홀름이 아닌 영국이 식민 통치하던 미국의 보스턴으로 바꾸었다. 게다가 주인공도 구스타브 3세가 아닌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로 바꾸었고 앙카르스트룀도 레나토로 바뀌었다.

오페라에서는 자신의 아내와 총독과의 관계를 의심한 레나토가 가면무도회에서 총독을 칼로 찌른다. 20세기 중반부터 이 오페라는 원작대로 배경을 스톡홀름으로 복원해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내용은 기본적으로 사랑과 질투라는 삼각관계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계몽군주로서 구스타브 3세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엿볼 수 없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스웨덴을 앞선 나라로 이끌어 올렸던 구스타브 3세. 그의 석관은 리다르홀멘 교회 안에 안치되어 이 교회를 찾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페라를 너무나 좋아했던 그는 자신의 비극적 죽음이 나중에 오페라화 될 줄은 조금도 생각해 못했으리라.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2017.11.10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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