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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엄마표 김치찌개가 최고!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발효 과학 명품’ 김치찌개

“역시 이런 날은 뜨끈한 김치찌개가 제 맛이죠“

11월 들어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가운데 최근 열린 충남 공주시 연례 테니스 토너먼트 대회장. 각 클럽을 대표해 참석한 선수들이 점심시간 식사에 여념이 없다. 이날 운동장 한 켠에 늘어선 간이식탁의 ‘주인공’은 김치찌개였다. 선수들 중에는 “한 그릇 더”를 주문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묵은지에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어 만든 김치찌개의 구수한 맛을 넘볼 음식은 많지 않다. 특히 추운 겨울철이면 그렇다. 집안에서는 물론이고,  등산 등 야외 활동을 한 뒤 맛보는 김치찌개는 가히 환상적이기까지 한 메뉴라고 할 수 있다.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발효식품이다. (캐롤라인 녹스)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발효식품이다. (캐롤라인 녹스)

그러나 모든 김치찌개가 한결 같이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건 아니다. “수년 전 미국 시골을 여행하면서 한 동양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맛볼 기회가 있었어요. 돼지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고, 고춧가루도 얼큰하게 풀었는데 전혀 김치찌개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평소 미국 출장이 잦은 K씨는 “호텔에서 양식만 먹던 터여서 우리 음식이 간절했는데, 당시 김치찌개가 너무 기대에 어긋났다”고 회고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맛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로부터 폭 넓은 사랑을 받는 김치찌개처럼 맛의 수준이 천차만별인 음식도 그리 많지 않다.  이 집 다르고, 저 집 다르며, 이 식당 다르고 저 음식점 다른 대표적인 메뉴가 김치찌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맛의 차이는 김치찌개 요리를 한 사람들의 조리 실력 차이에서 비롯 되는 것일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김치찌개라는 음식의 경우, 주방장의 솜씨가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김치라는 원재료가 좋지 않으면 최상의 맛을 내는데 한계가 있다. 김치찌개의 ‘바탕의 맛’은 대부분 김치에서 시작되는 탓이다. 양질의 돼지고기를 첨가해도, 칼칼한 고춧가루를 넉넉히 투입한다 해도 김치 자체의 맛이 별로라면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를 식탁에 내놓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러니 김치찌개 맛을 좌우하는 건, 무엇보다 김치 자체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김치는 균일한 맛을 내기가 어려운 대표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똑 같은 재료를 사용해 똑 같은 사람이 담가도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또 같은 김장철이라고 해도, 11월 중순에 담근 김치와 12월 초순에 만든 김치는 맛이 미묘하게나마 서로 다를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 김치, 나아가 김치찌개 맛의 차이를 유발하는 걸까? 다름아닌 발효이다. 김치는 인간과 미생물의 협업,  즉 발효과정을 통해 숙성한다. 발효 음식은 사실 김치가 아니더라도 지구촌 전역에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와인이나 맥주 같은 주류에서부터 요구르트, 식빵 등에 이르기까지 발효식품들은 어느 나라를 가든 슈퍼마켓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친근한 먹을 거리라는 게 한 예이다.

발효식품은 왜 인기가 있을까. 무엇보다 발효 그 자체가 인체에 도움이 되거나 만족감을 주는, 즉 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효는 자연현상이다. 박테리아 효모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들로부터 나온 분비물이 당분 등을 분해하는 과정이 바로 발효인 까닭이다.

사람이 이런 자연적 현상을 능동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8000~9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예로 신석기 시대 중국 황하 유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과일이나 쌀 벌꿀 등을 이용해 술을 빚었던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겨울철 황량해진 마음까지 풀어주는 청국장 한 그릇.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겨울철 황량해진 마음까지 풀어주는 청국장 한 그릇.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특히 발효식품이 두드러지게 다양한 것은 자연환경은 물론 이런 역사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지역을 좁게 국한해서 본다면, 한국만큼 발효식품의 종류가 많은 나라도 흔치 않을 듯 하다. 가히 한국은 발효식품의 종가라고 할 정도로 일상적인 먹을 거리 가운데 발효과정을 거친 것들이 풍부한 나라이다.

배추김치, 무 김치,  갓 김치 등 적게는 200여 종에 이른다는 각종 김치는 근본적으로는 발효 현상을 이용한 식품이다. 갖은 젓갈들 또한 대개는 발효의 산물이며, 된장,  간장, 청국장 등 장류 역시 발효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식품들이다. 한반도는 4계절이 분명한 온대권 지역인데다, 3면이 바다이고, 산과 평야가 고루 분포하는 까닭에 먹을 거리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발효 음식이 농산물 해산물 임산물 등에 다양하게 걸쳐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이다.
 
게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 또는 밑반찬으로, 또는 음식이 쉬 상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발효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인 탓에 다양한 식재료들이 발효처리 될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한국 음식 문화의 뼈대는 발효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음식점 상위에 올라온 반찬들. 발효식품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이다.(LWY)
음식점 상위에 올라온 반찬들. 발효식품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이다.(LWY)

한국인의 밥상에서 발효식품들이 유달리 돋보이는 시기는 두말 할 나위 없이 겨울철이다. 김장김치가 아니더라도 된장찌개, 청국장찌개 등 찌개류가 제 맛을 내는 계절이 바로 추운 시기이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봄 여름과 달리 신선식품을 접할 기회가 적은 탓에 비타민이나 무기질 등 필수 영양성분을 발효식품을 통해서 얻는 게 손쉬울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발효식품들은 그 종류의 다양성으로만 이목을 끄는 건 아니다.  김치 맛이 계절에 따라, 집안에 따라 혹은 식당에 따라 제각각 다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정형화 되지 않은 풍부한 맛은 한국의 대부분 발효식품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무엇보다 발효를 유발하는 특정 종균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대개는 자연상태의 미생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데서 비롯됐다.

공기 중이나 토양 혹은 물 등에 들어 있는 미생물들에 발효를 의지하다 보니, 똑 같은 발효식품이라도 계절마다 혹은 집안마다 맛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혹자는 ‘음식 맛은 손맛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손맛은 어쩌면 서로 다른 발효 조건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발효가 음식이나 자연생태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생아에서부터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장은 발효화학 공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장내에선 발효가 활발하다. 장내의 발효는 일어나도 혹은 안 일어나도 되는 부수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온전한 건강을 누리기 위해 바람직한 발효는 필수적이다. 김치 같은 적절한 유산균을 함유한 음식의 섭취가 권장되는 것도 사실 장내 발효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브라질 일간지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에 소개된 한국 음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브라질 일간지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에 소개된 한국 음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장내 발효란 인간의 장내에 있는 미생물들이 음식물을 인체가 보다 쉽게 소화 혹은 흡수하도록 절단하고 가공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생물들 역시 발효 과정에서 자신들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이런 점에서 미생물과 인간은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설사나 변비 같은 문제는 십중팔구 장내의 발효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아서일 확률이 높은데, 이는 장내 발효가 개개인의 건강에 얼마나 긴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근 들어 육식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의 식단은 채식 위주였다. 식물성분 가운데는 사람들이 곧바로 소화시키기 어려운 것들이 적지 않다. 채소와 곡물에 비교적 흔한 다당류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을 소화시키기 쉬운 단당류로 바꿔주는 게 바로 미생물들이며 발효현상이다. 이는 바꿔 말해 채식이 주식이었던 한국인들에게 발효식품이 일종의 ‘운명적 음식’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십수 년 사이 급증세인 대장암 등의 발병 요인 가운데 하나로 육식 위주로 급격한 식단 변화와 함께 발효식품의 섭취 부족을 꼽곤 한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몸은 발효식품에 최적화돼 있는데, 실제 섭취되는 발효식품이 적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발효 음식문화가 한국 음식문화의 고갱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자동차가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적절한 연료가 주입돼야 하는데, 인체를 차량에 비유한다면 발효음식은 우리 몸에 최적화된 에너지 원인 것이다. 더불어 발효 음식은 우리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한국 식문화의 요체이기도 하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2017.11.14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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