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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고

우지숙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참관기
대학원에서 행정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나는 정책이 여론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정책이 여론을 이끌어야 할 것인가라는, 행정과 정치 분야의 오래된 질문에 대해 고민해 왔다. 여론을 무시하는 정부정책은 독재 또는 엘리트주의를 반영하는 것이 되겠지만 정책이 여론을 반영하는 데만 급급하면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여론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의견이 사안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답변한 내용이었는가도 늘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하나의 단초로서 단순히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시민들이 관련 이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거친 후에 갖게 되는 의견, 즉 정보에 근거한 의견(informed opinion)을 찾아서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 공론조사의 핵심이다. 매우 의미 있고 그 효용성도 검증되어 온 절차이지만 제대로 실시하려면 많은 비용과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자주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공론조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책홍보의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했던 참여정부가 2005년에 8,31 부동산정책에 대한 대규모 공론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를 비롯한 행정 및 홍보 분야 학자들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홍보의 여러 모델 중 쌍방균형모델, 즉 국민의 의견을 파악하여 국민을 더 잘 설득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부 정책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진정한 쌍방모델을 시도하는 건가 하고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공론조사의 이론적 배경과 방법론적 엄밀성을 충분히 적용하지 못한 채 외부 홍보컨설팅 업체에 이 조사를 맡김으로써, 방법과 절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오히려 고도의 여론조작 시도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부동산정책에 반대하는 측의 비난과 학계와 전문가의 비판을 한꺼번에 받아야 했던 참여정부에서는 그 이후 다시는 이러한 규모의 공론조사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후 나는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공론조사에 대해 가르치고 조별 과제로 소규모 공론조사를 실제로 실행해 보게 하고 있다. 그 때마다 831 부동산정책 공론조사 내용을 강의 자료로 삼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참여정부 때의 일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우리 학자들이 심하게 비판을 했던 것은 아닐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당시에는 아마도 다음 번의 공론조사는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 번이 12년 후에나 오게 될 줄은 아마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그리하여 2017년, 국민과의 소통과 숙의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신고리 5,6호기 재개 여부를 두고 공론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10월 14일 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참여자들의 2박3일 합숙현장에서 발표와 토론의 과정을 직접 참관하였다. 발표 및 토론의 세팅과 진행은 매끄러운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발표자, 토론자, 조사참여자들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성실하게 절차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슈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온 전문가 발표자들이 원전중단 측과 원전재개 측의 양측으로 나뉘어 지나치게 대립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한 점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당사자들이 전문가로서 발표와 토론을 맡은 경우도 많았고, 발표자들이 정보의 전달보다는 청중을 설득하려는 것에 더 중점을 두다 보니 상대측이 왜곡된 정보를 보여주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저 쪽 주장에 현혹되지 마라 등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참가자들은 전문가 발표를 끝까지 귀기울여 경청하면서 조금의 야유나 청중으로서의 무례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발표자들의 노력과 진정성을 높이 사며 세션이 끝나는 시점에 박수와 환호성으로 발표자들을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477명의 참가자들을 10명씩 나누어 47개의 조로 운영했던 토론 세션의 모습이었다. 나는 점심 시간에 한 토론조의 참가자들과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고, 그 분들의 양해로 한 세션의 토론 내용을 옆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물론 토론 과정에는 일체 참여하거나 관여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조건이었다. 1시간 동안의 토론 과정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합리적이고 수준 높은 것이었다. 각 토론조마다 전문성 있는 토론중재자(moderator)가 배치된 것도 도움이 큰 듯했다. 내가 참관한 세션의 토론중재자는 토론의 목적을 안내하고 시간을 안배하며 각 주제의 포커스를 잡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였고, 끝까지 발언을 하지 않는 참가자들의 발언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 토론시간이 끝난 후 전체 세션으로 돌아가 조별로 발표하게 될 질문을 뽑아내는 과정을 참가자들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등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토론을 진행하였다. 무엇보다도 10명의 토론참가자들은 각자가 가진 의견 뿐 아니라 개인의 관련 경험까지 편안하게 공유하였고, 서로에게 질문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수의 사람들이 토론을 지배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처음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두 명의 참가자들도 토론중재자의 중재로 곧 발언을 시작하였다. 또한 한 명의 참가자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발언 기회를 받자 이 문제는 어차피 정부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위에서 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는 들러리 서고 있는 것 뿐이며, 정부에서 공약을 깨는 것을 회피하려고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등 공론조사 자체의 의미를 축소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에 대해 한두 명의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정말 그런 면이 있지요라고 맞장구를 친 후, 다른 한 명의 참가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국민의 표본이다. 우리는 여기서 열심히 토론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전처럼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견을 묻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것이 고맙다.라고 발언하면서 토론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전체적으로 모든 참여자가 열린 자세로 활발히 토론하였고 몇 번의 발언이 오간 후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후에도 토론에 임하는 진지함이나 예의 등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맞장구치면서도 본인의 입장에 대한 표현에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숙의와 경청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토론 과정도 완벽하거나 좋은 점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좋은 토론을 구성하는 하나의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견을 대하는 자세는 시민성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고 좋은 토론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 열 명의 토론이, 심지어는 477명의 토론이 아무리 잘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부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또한 477명이 아무리 대표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공론조사는 정부정책을 결정하는 최종 결정도구도 아니고 사회적 합의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정책의 최종 결정자는 정부이며 그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정부가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결정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느 정도든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여론을 구성하는 국민 의견의 질(quality)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비전문가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비판 역시 공론조사를 반대하는 이유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당사자들이 포함된 국민의 의견을 배제하고 전문가들만 모여서 정책을 결정해도 되는 사안이란 없다. 또한 국민들의 비전문성보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와 편향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국민들도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가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이다. 공론조사는 국민의 의견의 질을 높이고, 참여하는 시민들의 효능감과 시민성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공론조사가 숙의적 정책결정과정과 민주적 거버넌스 모델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려운 공론조사를 다시 시도한 우리 정부와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론화 위원회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흔쾌히 토론 과정의 참관을 허락해 주신 열 명의 토론참가자 분들과 토론중재자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우지숙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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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한기봉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힘
헬무트 콜은 1990년 거의 무명에 가까운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 연구원 앙겔라 메르켈을 여성청년부 장관에 발탁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년 뒤다. 위대한 독일통일의 아버지는 약관 36세의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05년 소녀는 총리가 되었다. 독일 역사상 최초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전후 최연소 독일 총리가 됐다. 독일인은 그 이후 지금까지 총리관저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자신이 당에서 축출한 정치적 대부이자 최장수 총리였던 콜과 같은 16년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3)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혔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는 지난 1일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하며 메르켈을 가장 먼저 호명했다. 그는 7년 연속 포함됐고 열두 번 1위를 차지했다. 두 해 전인 2015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메르켈을 선정했다. 여성 단독으로는 30년 만이었다. 앙겔라 메르켈이 21세기 첫 4반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빛나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이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메르켈의 정치적,외교적 리더십에 대한 분석과 일화는 차고 넘친다. 책도 많이 나왔다.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경험과 위기에서 단련되고 만들어지지만, 여성 정치인 메르켈의 경우에는 좀 특별하다. 그의 인간적 성품 자체가 리더십의 큰 부분을 차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그의 인간적 면모와 품성과 개인 생활은 정치외교에 비해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성품 자체가 소탈하고 드러내길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가 장관에 발탁되었을 때 독일 정치판은 압도적으로 남성 천하였다. 마흔도 안 된 이혼녀에 아이도 안 낳아본 여자에게 여성청년부를 맡기냐고 말이 많았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얼핏 콜걸을 연상시키는 콜의 여자(Kohl's Girl)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세련된 구 서독 정치인의 이미지에 익숙했던 언론은 동독의 촌스런 시골 여자를 대놓고 놀렸다. 콜 총리도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는 메르켈이 자기 옷을 입고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언론이 뭐라 떠들든 대꾸하지 않았다. 제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갔고 점수를 따나갔다. 정치는 이미지라고도 하지만 메르켈은 자신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이다.여성임을 표 나게 앞세우지도 않는다.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대처처럼 대차지도 않고, 힐러리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패셔니스타로 통하는 이웃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처럼 차림새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관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화장기 없고 바른 듯 만 듯한 립스틱, 이발소에서 싹둑 깎은 듯한 숏컷 헤어 스타일, 박스 모양 재킷에 벙벙한 검은 바지, 뭉툭한 단화. 독일인들은 그 차림을 총리의 유니폼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머리 모양에 대한 지적에 대해 머리를 매만질 시간이 없어서 한 번 만진 머리는 열두 시간 이상 버텨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스타일 사진이 두 번 국내외 언론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5년 국가부도를 선언한 그리스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을 때, 맨 얼굴에 채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로 급하게 공관에 출근하던 모습이 하나다. 그 사진은 지금도 그날의 올림머리와 비교돼 인터넷을 맴돈다. 또 하나는 정반대다. 2008년 노르웨이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공연에 초대받았을 때다. 메르켈은 가슴과 등이 파격적으로 깊게 파인 검은 이브닝 드레스에 푸른 숄을 걸치고 왔다. 언론에서 난리가 났다. 사진에는 드디어 총리가 가슴선을 보여 줬다는 설명이 붙었다. 한 신문은 메르켈의 대량 살상 무기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실었다. 다음날 총리 대변인은 총리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보다 드레스에 이목이 쏠린 상황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다. 행사의 주인공인 노르웨이 공주보다 관심이 더 집중돼 미안하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드레스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지난 여름에는 영국의 한 언론이 메르켈 총리가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의 한 호텔에서 매년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늘 같은 옷이었다며 보라색 체크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의 5년간 사진을 증거로 보여줬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도 같은 옷을 여러 차례 다시 입고 등장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 메르켈은 총리관저에서 살지 않는다. 남편과 베를린 시내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문에는 남편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화학과 교수의 이름이 붙어있다. 남편 역시 대중 앞에 나서기를꺼린다. 아내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휴가를 떠날 때도 메르켈은 관용기로, 남편은 민간 여객기로 따로 간다. 메르켈은 두 번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다. 물리학자와 결혼했다가 5년 만에 이혼했는데 첫 남편의 성인 메르켈을 고집하고 있다. 집에서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며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쉬는 걸 좋아한다. 다섯 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사저에서의 생활은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남에게 드러내길 싫어하지만 소탈하고 특권을 내세우지 않는 그는 시장이나 약국,미용실,음식점 같은 의외의 곳에서 시민이나 언론과 마주쳐 사진이 찍힌다. 2015년 조선일보 베를린 주재 기자가 동네 수퍼마켓서 메르켈을 만난 기사와 사진을 보도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꼬깃꼬깃한 장바구니를 들고 전용차에서 내려 1유로 동전을 넣고 카트를 꺼냈다. 1993년부터 매주 이 곳에 들러 생필품을 구입한다고 한다. 이날은 종이에 적어온 걸 보면서 오렌지, 가지, 양배추, 로션, 주방용 타월, 레드와인, 초콜릿, 밀가루, 토마토소스 등을 사고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자기 카드로 결제했다. 동네의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다. 주인도 쇼핑객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를 다룬 평전을 보면 메르켈은 꽤 인문학적이며 학구적이다. 그런 취향이 지도자의 덕목인 혜안과 통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메르켈은 러시아어와 러시아 역사에 능통한 문학 애호가다.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체홉,푸시킨 책을 탐독한다. 2014년에 회갑을 맞았는데 집권 기독민주당(CDU)이 주최한 회갑 선물은 역사 강연회였다. 저명한 학자 위르겐 오스터함멜이 역사의 시간적 지평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가 직접 초대했다고 한다. 이 생일파티 때문에 브뤼셀에서 열기로 했던 유럽연합 정상회의 날짜가 연기됐다. 그게 유럽에서의 메르켈의 위상이다. 메르켈의 인간적 품성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소박한 차림, 검소한 생활, 소탈한 품행이다. 마초 같은 상남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뚝심에, 이웃집 아줌마 같은 편안함이 정치적 장수의 첫 번째 비결이라고 분석한 정치평론가가 많다. 그래서 독일인이 붙인 그녀의 별명은 무티(Mutti, 엄마)이고 그녀의 리더십은 엄마 리더십이라고 불린다. 그에 대한 독일 언론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메르켈은 권력을 가진 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바꿔 놓았다. 그녀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힘을 가졌다. 메르켈은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서울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국내 몇몇 언론이 두 지도자가 여러 점에서 닮았다고 기사를 썼다. 여성-비슷한 나이-보수(정당)-전공(이과)-분단의 역사를 거론했다. 그로부터 7년 후, 한 여자는 4연임에 성공했고 한 여자는 임기 중에 창살에 갇혔다. 그런데 두 여인을 비교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간과했다. 메르켈은 동독의 작은 교회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다. 그는 자수성가했다. 박 대통령보다 2년 4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그때에도 눈가와 입언저리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였다.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기봉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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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평창 메달, 평창만의 독창성과 한국의 미 표현”
이석우 디자이너가 지난 9월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메달 공개 행사에서 메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은,동메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달 디자인의 컨셉은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음성 체계이자 우리 민족의얼이담긴 한글이다. 메달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한 온 국민의 기대와 염원을 품은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IOC와 국제경기연맹으로부터 역대 올림픽 메달 중 신선하고 창의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평창올림픽 메달, 우리 민족의 한글 입체감있게 표현 내년 2월강원도 평창에서 선의의 경쟁을 치른 선수들에게 수여될 금,은,동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40)를 서울마포구 서교동 디자인컨설팅회사 SWNA 사무실에서 만나 메달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는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약 1년간 메달 디자인에 몰두했다. 한국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영광스럽다고 밝힌 이석우 디자이너는 책임감을 갖고 메달 디자인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되서 굉장히 영광스럽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들었죠. SWNA 회사 스탭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이큰 힘이 됐고요.아무래도 아이디어를 다듬고 발전시켜 최종 결과물에 이르는 데 가장 고심했죠. 형태, 소재, 제조 공정 전 과정에 디자인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일관되게 반영되도록 노력했어요. 이석우 디자이너.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은 역대최초로 측면에 메시지가 담겼다.메시지는 바로우리의 민족의 근간을 뜻하는 한글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메달 디자인에 반영할지 고심했다며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각 나라 선수의 열정과 노력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강원도 평창의지역적인 특색을표현하는 동시에우리 민족의 정신을메달에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문화의 근간의 커다란 뿌리는 바로 언어죠. 이런 언어 생활양식은 그 민족과 국가의 문화를 만들고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글을 창의적으로 형상화하고 입체화할지에 중점을 뒀죠.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은 현존하는 가장 완성도 높은 음성체계인 한글을 모티브로 자음이 길게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역동적이면서 새로운 형상을 제안하는 컨셉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의 씨앗이 진화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꽃과 열매가 된다는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기존 메달과 다른 평창만의 독창성을 담고 싶었다며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며 우리 문화의 근간이자 씨앗이며그 씨앗이 곧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자음을 입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정신 선수들의 노력과 인내표현 메달 앞면을 보면 좌측 상단에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이 그려졌다. 선수들의 노력과 인내를 표현한 역동적인 사선이 펼쳐졌다. 뒷면에는 대회 엠블럼과 세부 종목명을 담았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인 측면과 정면. (사진 =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측면이다. 테두리를 빙 둘러 평창동계올림픽이공일팔의 초성과 종성의 자음을 딴 ㅍㅇㅊㅇㄷㅇㄱㅇㄹㄹㅁㅍㄱㅇㄱㅇㅇㄹㅍㄹ을 새겨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그는문자와 사선이 연결되는 부분의 경우 제조공법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스트랩도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소재라 여러 과정을거치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설명했다. 또한복의 천을 사용한 메달 리본과 우리 기와의 곡선을 살린 메달 케이스를 통해 전통미와 독창성을 부각했다. 한국적인 세련미를 표현하는 초점이 맞춰졌다. 메달을 목에 걸 리본(스트랩)에는 PyeongChang 2018과 오륜기를 새겼다. 전통 한복 특유의 갑사 기법을 통해한글 눈꽃 패턴과 자수를 섬세하게 적용했다. 리본은 대회 룩의 라이트틸(Light Teal)과 라이트레드(Light Red)의 두 가지 색을 사용했는데 폭은 3.6cm이고, 메달을 장착했을 때의 길이는 42.5cm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한복에는 은은하고 단아한 멋이 있다며 이 아름다움을 메달 리본에 잘 표현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국적 아름다움 살린 메달 리본 원목으로 만든 메달 케이스는 전통 기와지붕의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했다. 2014년 소치 대회와 비교하면 금메달과 은메달은 더 무거워졌고 동메달은 가벼워졌다. 메달의 지름은 92.5㎜, 두께는 최소 4.4㎜, 최대 9.42㎜이다. 무게는 금메달이 586g, 은메달이 580g, 동메달이 493g이다. 금메달과 은메달은 순은(순도 99.9%)으로 제작했고, 금메달의 경우 순은에 순금 6g 이상을 도금하도록 한 IOC 규정을 준수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은,동메달. 동메달은 단동(Cu90-Zn10) 소재이며, 은메달과 함께 착조 형태로 마감된다. 동계패럴림픽 메달은 현재 제작 중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과 더불어 패럴림픽 메달 디자인에도 참여한이석우 디자이너는 패럴림픽 메달은 사선 모양이 아니라 수직 패턴이며 이는 평등하다라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설명했다. 메달은 올림픽의 상징이다. 우승자에게 금,은,동메달이 수여되기 시작한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 때였고 선수 가슴에 달아주었다. 목에 거는 메달은 1960년 로마올림픽에 등장했다. 메달은 개최국의 특색을 드러내는 동시에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년만에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평창올림픽 메달의가치, 올림픽 메달의 정신이 잘 드러나도록 심혈을 기울인 만큼 내년에 올림픽 때잘 쓰여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는 평창올림픽 메달을 모두 259세트를 제작한다. 한국조폐공사가 제작에 참여한다. 259세트 가운데 222세트는 102개 세부종목 영광의 입상자들에게 수여하고, 나머지는 동점자 발생 대비용(5세트)과 국내외 전시용(국제올림픽위원회 25세트, 국내 7세트)으로 활용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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