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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고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한국에게 부탄이 전하고 싶은 말
나는 이 글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부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는 색 안경을 끼고 행복의 비밀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부탄 사람은 정말 행복하냐고 묻는다. 나도 처음 부탄을 방문했을 때, 당신들 정말 행복한 것 맞아라고 묻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적이 있다. 물론 묻지 않았다. 실례이기도 하고 바보 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탄은 인구가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인구 75만 명의 소국인데, 부탄의 행복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또한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나는 부탄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명의 혜택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는 그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부탄의 어린 승려들을 위해서 작은 기부도 했다. 한국인이 부탄 사람보다 부유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가 더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굳이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부탄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 사회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부탄 행복연구소 연구원을 초청해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부탄의 행복정책과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내가 물었다. 부탄 사람이 행복한가, 우리나라 사람이 행복한가? 모든 사람이 부탄 사람이 행복한 것 같다고 답했다. 다시 물었다. 부탄에 살고 싶은가, 한국에 살고 싶은가? 거의 모든 사람이 한국에 살고 싶단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얘기다. 우리는 어차피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럼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부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을 성장만 쫓는 경제성장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의 증진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성장과 행복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나라다. 그 이유는 국내총생산(GDP)의 증대만으로만 평가되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에만 올인해서 다른 많은 것들 희생했기 때문이다. 부탄은 비록 가난하지만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을 위해서 물질적 요소와 더불어 정서적, 정신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다.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계산할 때 9 영역(심리적 웰빙, 건강, 교육, 문화 다양성 및 복원력, 굿 거버넌스, 생태 다양성 및 복원력, 생활수준, 공동체 활력, 시간사용)은 똑 같은 가중치를 갖는다. 생활수준이 문화나 생태 다양성보다 특별히 더 중요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부탄의 국민총행복은 다차원적(multidimensional)이며 전체론적(holistic) 발전 전략이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은 국민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특히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부탄 정부는 국민들에게 행복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으면서 사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때 당신 자신의 행복이 증진될 기회가 증대한다고 가르친다. 국민총행복은 더불어 행복을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총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할이 너무 많지만, 여기서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내가 굳이 아직 행복하지 않은이란 말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을 불행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싶지 않고, 국가와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하면 그들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이다. 아직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들의 빵(기본적인 의식주)과 사회 서비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은 역설적으로 빵의 중요성을 말한다. 빵, 즉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복을 말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장에서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여성, 농민 등에게 정당한 보수가 지불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들에게는 괜찮은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평등의 근원인 재벌체제를 개혁하여, 재벌과 대기업의 몫(이윤)을 줄이고, 일하는 사람들과 중소영세기업의 몫(소득)을 늘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전환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소득주도성장이 아직 제대로 정착도 하기 전에 보수진영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서서히 뒷걸음치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 의도와는 달리 소득주도성장의 방점을 성장에 찍는 듯하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의 목적은 GDP 증가율로 평가되는 성장이 아니라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행복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GDP 증가 없이도 국민총행복의 증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속된 말로 이미 행복한 사람들과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언론의 성장담론에 휘둘리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고통을 느끼는 부분은 주택, 건강, 교육문제다. 그리고 전반적인 복지수준도 매우 취약하다. 시장에서의 분배개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공공 보육시설이 없어 직장을 그만 두는 워킹 맘, 늙고 병들어 아파도 편히 노후를 의탁할 수 없는 노인들, 불합리한 장애등급 조차 판정받지 못해 고통 받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공부는 잘하는 데 돈이 없어 대학을 못가는 일은 없어야 하고, 몸이 아픈데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는 일은 없도록, 교육과 의료 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최소한의 복지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재원이 문제라는 게다. 국민소득이 일인당 3000달러가 되지 않는 부탄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있는데,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는 나라가 재원이 없어 못한다면 말이 되겠나. 물론 부탄이 제공하는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가 재원의 부족으로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가거나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주거안정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와 복지를 충실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국가재정지출의 구조개편과 효율화를 꾀해야 하지만, 지금보다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북유럽의 훌륭한 복지제도를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북유럽사람들이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국내총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실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짜가 아니다. 다만, 세금은 소득에 따라 내는 것이니, 돈 많은 사람이 좀 더 많이 내야 한다. 그를 위해 누진세율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새로운 세제도 도입하자. 그렇다고 그것을 부유세라고 하지는 말자. 부유세란 말에 돈을 내야 하는 부자들이 거부감을 느낀다. 부유세가 아니라 나눔세 혹은 행복세라고 하자. 여유 있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나누는 것이니,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의 행복이 증진될 것 아닌가. 소득이 더 늘어나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물적 수준으로도 국민총행복이 증진되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 않고,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호모이코노미쿠스도 아니다. 인간은 호혜와 연대의 원리에 기초하여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총체적 존재이다. 촛불민심을 믿고 문재인 정부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보다 더 가감하게 추진해나가야 한다. 끝 박진도 (재)지역재단 이사장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에서 35년간 경제발전론, 농업경제학,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며 연구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에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지역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지역재단(KRFD)을 세워 2014년부터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충남연구원장 재직시 부탄을 첫 방문한 후 2013년 부탄을 다녀오고 2015년에는 두 달간 체류했다. 2017년 2월 부탄행복의 비밀을 출판했고, 최근에도 부탄을 다녀오는 등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총행복을 모든 정책의 기준으로 삼는 부탄 정부의 국민총행복정책을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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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김준
그리운 가을, 섬 곁 노을은 외롭지 않다
작은 섬 여행을 할 때 잠잘 곳보다 큰 걱정은 끼니다. 캠핑이 목적이라면 모르지만, 게다가 그 섬의 맛을 보고 싶다면 더욱 그렇다. 넉살좋게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가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밥 좀 얻어먹을 수 있나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옛날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섬을 찾아다닐 때는 젊기도 했지만 주민들도 외지인을 경계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섬주민들이 그렇게 바뀐 것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육지것들 책임이 크다. 그래서 나도 섬에 갈 때면 그런 육지것 중 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도가 그랬다. 인천에서 71㎞, 덕적도에서 23㎞ 남서쪽에 있는 섬이다. 서해5도를 제외하고 인천하면 뱃길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다. 하지만 태안군 만대항까지는 26㎞에 불과하다. 울도에 가려면 덕적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야 하고,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어 주말이나 연휴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배표도 구하기 힘들다. 당산 아래 큰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30여 가구에 한 때 200여 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갯벌이 발달해 썰물에는 선착장에 배를 접안할 수 없다. 마을에서 어른 걸음으로도 20여 분은 걸어야 배를 탈 수 있다. 파도막이섬, 울도 덕적도에서 문갑도, 굴업도, 백야도, 지도, 울도를 순항하는 배를 타야 한다. 덕적도는 말 그대로 바다역 기능을 하는 셈이다. 배가 도착하자 트럭과 전동차와 오토바이가 마중을 나왔다. 파출소장도 자주 나와서 직접 여행객과 주민들을 마을까지 실어다 주기도 한다. 울도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가는 길은 줄잡아 몇 킬로미터는 될 것 같다. 갯벌이 발달한 탓에 썰물에도 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곳에 선착장을 만들다보니 그리 되었다. 섬은 남동에서 북서로 덕적도를 향해 활처럼 굽어 있다. 선착장 안쪽 만입 부분 당산 아래 마을이 자리해 있다. 1960년에 37가구 206명이 살았다. 지금도 가구 수는 차이가 없지만 상시 거주인구는 40여 명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주민들은 큰마을에 거주하며, 몇 가구가 거주했던 작은마을은 비어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며 산은 섬 북서쪽으로 발달해 있다. 선창에서 마을을 바다 보면 왼쪽으로 펼쳐진 숲과 산이 북망산이요, 오른쪽으로 이어진 산은 180봉이라 부른다. 마을 뒤 당산(220m) 정상에 등대가 있다. 마치 두 팔을 벌려 큰 섬 덕적도는 물론 크고 작은 섬들을 안고 있는 형국이다. 덕적도가 바다역이라면 울도는 종착역이다. 그래서 생긴 말일까. 울면서 들어왔다가 울고 나가는 섬이라 했단다. 뭍사람들이 생선을 사려고 섬에 들어올 때 무서운 파도에 울고, 나갈 때는 섬사람들의 착하고 순박한 마음에 정들어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울었단다.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걱정이 되어 아내가 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다른 유래로는 숲이 우거져 있는 섬이라 울(鬱)도(島)라고 했다고 한다. 또 섬이 울타리처럼 덕적군도로 들어오는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섬이라 울타리섬이 울도가 되었다는 말도 전해온다. 실제로 울도를 중심으로 백아도, 지도, 선갑도와 주변에 작은 섬들은 덕적도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는 파도막이섬역할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 덕적도가 오롯이 섬살이를 할 수 있는 배후에는 이렇게 작은 섬들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울도에서 본 덕적군도 덕적도에서 본 덕적군도. 울도 당산에서 본 덕적군도의 모습은 덕적도 비조봉에서 본 덕적군도 모습과 사뭇 다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른 것은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울도는 덕적군도를 감싸는 파도막이 섬의 중심이고 덕적도는 그 덕에 편안하게 섬살이를 한다 덕적어민 먹고 살았던 바다, 울도어장 강할머 집에서 나오다 뒤뜰에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자연산 홍합을 발견했다. 지금은 홍합도 귀한 산물이지만 일제강점기에만 해도 민어 주산지였으니 보이기나 했을까. 지금은 우럭과 놀래미도 감사하고 있다. 봄이면 인근 바다에 꽃게 잡는 배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거주할 만큼 어장이 좋았다. 당시 울도어장은 청진어장과 함께 일제가 지정한 어장으로 꼽혔다. 특히 젓새우가 많이 잡혀 파시가 형성되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큰 마을에 살지만, 어장이 좋을 때는 작은 마을에도 사람이 살았고, 젓새우잡이 파시가 있던 때는 그곳에 술집도 있었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덕적팔경 하나로 울도어화가 꼽히는 것도 내력이 있는 것이다. 덕적근해 황금어장을 개척한 이도 울도주민이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새우를 잡아 백아, 장고, 지도 등지에서 말려 팔려나가기도 했다. 굴업도에 민어파시가 설 수 있었던 것도, 연평바다에 조기가 찾았던 것도 사실은 이곳에 새우어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래와 군도가 만들어낸 섬그늘과 새우 서식처가 사라지면서 조기도 민어도 사라지고 새우도 꽃게도 위기에 처해 있다. 그 덕에 말없는 갯바위를 지키던 홍합만 죽어나간다. 꽃게를 잡는 어선과 그물, 울도어장은 청진어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2대어장으로 꼽혔다. 덕적팔경에 울도어화는 그냥 생긴 경치가 아니다. 지금도 낚시꾼들이 손맛을 즐기기 위해 찾는다. 보물선, 고승호의 비밀 일제시대 울도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보물선 고승호 이야기이다. 고승호는 영국국적의 상선으로 청이 군대를 조선으로 수송하기 위해 대여한 선박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일본과 청국은 군인을 파병한다. 이때 청국은 조선정부 지원요청으로 함대와 병력을 아산만에 주둔했다. 이를 눈치 챈 일본이 미리 아산만으로 들어오는 풍도 근처에 전함과 수뢰정을 배치해 기습 공격하여 청 함정을 침몰시켰다. 이어 2차 병력을 싣고 아산으로 향하던 고승호도 어뢰를 맞고 울도 근처 바다에 침몰했다. 이 전투가 풍도해전이며 청일전쟁의 시작이다. 고승호에 보물이 실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제시대에 몇 차례 인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최근까지 몇 차례 발굴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은괴, 중국에서 유통되던 멕시코 은화, 술잔, 무기류, 유골 등 발견되기도 했다. 동아일보1935년 2월 24일자 해저에 든 3천만 원 은괴 관련 기사를 보자. 이 병선은 멕시코 은과 마제은을 합하여 5돈(현 시가 3천만원)과 병정과 무기를 만재하고 명치 27년 7월21일 중국을 떠나 동 23일 인천에 와 동 25일 드디어 인천항으로부터 서남 14마일 지점에 잇는 울도의 남방 동경 126도 북위 37도 지점에서 침몰되었다 한다. 북망산, 살아서 걷다 5년 전 초여름이었다. 울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다. 배에서 내려 큰마을까지 칠게도 구경하고 야생화와 눈을 맞추고 멀리 작은 섬들도 살피며 걷다보니 한 시간도 부족했다. 밭에서 일하는 마음씨 곱게 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니 작업을 했다. 괜스레 다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이가 몇인지, 나이에 비해 젊다는 등. 실제로 나이에 비해 젊으셨다. 잠은 재워 줄 수 있지만 밥은 어렵다는 할머니를 앞세우고 짐만 두고 섬을 둘러보겠다고 반승낙을 받았다. 할머니는 등대 길과 솔 숲길과 북망산 길까지 알려주셨다. 배에서 내린 사람은 혼자였고, 마을 안에 낯선 이도 나 뿐이었다. 이런 날 섬길을 걷는 일은 행복하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북망산 길로 향했다. 방향은 북쪽이 아니다. 왜 그곳을 북망산이라 했을까. 오솔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소나무는 차츰 소사나무로 바뀌었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소사나무 숲길은 싱그러웠다. 사람은 많이 다니지 않았지만 길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었다. 길가에 간간이 밭이 보이고 하나 둘 작은 무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멀어 질수록 봉분이 많아졌다. 자손들이 관리하지 않는 무덤까지 생각하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주민들이 이곳을 북망산이라 한 이유를. 살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서 걷는 길이었던 것이다. 섬사정을 모르는 객이야 경치가 좋다고 걷겠지만 주민들에게 그 길은 결코 유쾌하지 않는 길이었다. 길이 잘 정돈 된 것도 자식들이 간간이 들어와 벌초를 하면서 오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 없지 않는가. 그렇게 또 한참 더 가니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우이도나 대청도 모래언덕 수준은 아니지만 훌륭했다. 게다가 찾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없으니. 정말 여름철이면 벗고 수영이라도 할 판이다.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달랑게나 엽낭게들이 화들짝 놀라 숨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데 노인들에게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걷는 일은 고통스러운 길이다. 울도가 특히 그렇다. 게다가 다시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자식들이 사는 인천으로 나갈 수 있다. 북망산으로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만난 모래언덕과 해수욕장이 이채롭다. 북망산의 의미를 모르고 걷는 여행객에게는 숲길도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몰려드는 여행객, 반겨야 할까 추석연휴라서 그랬을까. 덕적도를 찾는 여행객은 말할 것도 없고, 백패킹을 하려는 사람들도 덕적도 진리 선착장에 가득했다. 여름피서기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여행객들이 섬을 방문하면 주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늘 버릇처럼 생각하게 된다. 펜션과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과 편의점 주인은 크게 반길 일이다. 그렇다면 식당도 펜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섬은 어떨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들어가는 백패킹족이다. 잠잘 곳은 물론 먹을거리도 모두 가지고 간다. 그러니까 현지에서 쓰는 돈은 뱃삯 외에는 없다. 뱃삯은 선사가 가져가고, 주민들은 고스란히 삶터만 내줘야 하는 꼴이다. 이것만 아니다. 먹었으면 십중팔구 싸야 한다. 한적하고 후미지며 전망이 좋은 곳만 찾는데 공중화장실이 있을 리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배설물과 먹고 자고 남기고 간 쓰레기가 넘쳐난다. 배설물은 최소한 파고 싸고 묻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공공시설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나 파고라에 텐트를 치고 독점하는 얌체족도 적잖다. 낭만도 좋고, 추억도 좋다. 배낭 하나에 수백만 원이며 텐트와 기본 장비를 마련하는데 목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명품 아웃도어와 캠핑장비가 인기 있는 점도 되새겨볼 일이다. 이들 중에 주민들에게서 마늘을 사고, 홍합을 사고, 산나물을 사서 들고 가는 이는 보기 드물다. 섬을 지키고 평생 살아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드나들어야 한다. 울도등대. 일망무제, 울도등대 다음날 이른 아침 덕적군도 사이로 오르는 해를 보기 목너머 솔숲으로 향했다. 어제 무리한 탓일까 등대까지 올라갈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일출시간에 맞췄다. 선창과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군도 사이로 오르는 해를 보았다. 어제 밤에는 맞은편 낭개부리가 내려다보이는 솔숲에서 해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려오면 별빛과 달빛에 숙성 중이던 우럭도 아침해를 맞고 있었다. 여명이 걸린 생선들, 가장 멋진 자태는 망둑어다. 작지만 균형 잡힌 몸매다. 쭉 빠진 서구 몸매를 자랑하는 장대 사이에 우럭이 걸렸다. 맛으로 치면 으뜸이지만 볼품은 셋 중에 가장 떨어진다.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인간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황태만 밤과 낮의 기온차를 이용해 숙성하는 줄 알았는데 우럭도 장대로 망둑어도 그렇게 익어가는 줄 몰랐다. 아니면 게으른 주인 탓일까. 강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등대로 향했다. 울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당산이라 부른다. 울도등대는 1964년 11월 29일 점등했다. 그 무렵 이곳 울도어장에 젓새우 파시가 섰을 무려비다. 울도항은 199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2004년과 2006년에 서쪽과 동쪽에 방파제 등대를 세웠다. 덕적도에서도 직선거리로는 짧지만 여객선을 타면 두 시간에서 약간 모자라는 시간을 할애해야 닿는 섬이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간간이 줄을 잡고 오르고 소사나무 숲길을 지나야 한다. 중간에 전망대에 쉬었다 오르면 30분, 40분이면 족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하얀 등대가 숲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덕적도 운주봉이나 비조봉에서 보는 배경 못지않게 맞은편 울도에서 펼쳐진 바다와 섬 경치도 훌륭하다. 일몰과 일출을 보기 좋은 곳이다. 덕적도의 일출과 일몰. 울도의 다른 명소로 자갈마당을 권한다. 덕적도에만 자갈마당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즈넉하고 툭 터진 전망은 울도 자갈마당이 앞선다. 덕적도 낙타바위 못지않는 촛대바위와 낭개부리도 좋고, 문바위처럼 잘려진 바위 위에 자란 해국들이 꽃을 피웠다. 자연이 빗어낸 솜씨가 신기할 따름이다.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이 몽돌을 감싸며 크기에 따라 다르게 울리는 파도소리 화음이 멋지다. 해안경관과 소리에 취하다 보면 멋진 노을이 펼쳐진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섬마실 길라잡이 김준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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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평창 메달, 평창만의 독창성과 한국의 미 표현”
이석우 디자이너가 지난 9월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메달 공개 행사에서 메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은,동메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달 디자인의 컨셉은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음성 체계이자 우리 민족의얼이담긴 한글이다. 메달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한 온 국민의 기대와 염원을 품은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IOC와 국제경기연맹으로부터 역대 올림픽 메달 중 신선하고 창의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평창올림픽 메달, 우리 민족의 한글 입체감있게 표현 내년 2월강원도 평창에서 선의의 경쟁을 치른 선수들에게 수여될 금,은,동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40)를 서울마포구 서교동 디자인컨설팅회사 SWNA 사무실에서 만나 메달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는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약 1년간 메달 디자인에 몰두했다. 한국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영광스럽다고 밝힌 이석우 디자이너는 책임감을 갖고 메달 디자인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되서 굉장히 영광스럽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들었죠. SWNA 회사 스탭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이큰 힘이 됐고요.아무래도 아이디어를 다듬고 발전시켜 최종 결과물에 이르는 데 가장 고심했죠. 형태, 소재, 제조 공정 전 과정에 디자인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일관되게 반영되도록 노력했어요. 이석우 디자이너.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은 역대최초로 측면에 메시지가 담겼다.메시지는 바로우리의 민족의 근간을 뜻하는 한글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메달 디자인에 반영할지 고심했다며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각 나라 선수의 열정과 노력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강원도 평창의지역적인 특색을표현하는 동시에우리 민족의 정신을메달에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문화의 근간의 커다란 뿌리는 바로 언어죠. 이런 언어 생활양식은 그 민족과 국가의 문화를 만들고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글을 창의적으로 형상화하고 입체화할지에 중점을 뒀죠.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은 현존하는 가장 완성도 높은 음성체계인 한글을 모티브로 자음이 길게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역동적이면서 새로운 형상을 제안하는 컨셉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의 씨앗이 진화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꽃과 열매가 된다는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기존 메달과 다른 평창만의 독창성을 담고 싶었다며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며 우리 문화의 근간이자 씨앗이며그 씨앗이 곧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자음을 입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정신 선수들의 노력과 인내표현 메달 앞면을 보면 좌측 상단에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이 그려졌다. 선수들의 노력과 인내를 표현한 역동적인 사선이 펼쳐졌다. 뒷면에는 대회 엠블럼과 세부 종목명을 담았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인 측면과 정면. (사진 =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측면이다. 테두리를 빙 둘러 평창동계올림픽이공일팔의 초성과 종성의 자음을 딴 ㅍㅇㅊㅇㄷㅇㄱㅇㄹㄹㅁㅍㄱㅇㄱㅇㅇㄹㅍㄹ을 새겨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그는문자와 사선이 연결되는 부분의 경우 제조공법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스트랩도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소재라 여러 과정을거치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설명했다. 또한복의 천을 사용한 메달 리본과 우리 기와의 곡선을 살린 메달 케이스를 통해 전통미와 독창성을 부각했다. 한국적인 세련미를 표현하는 초점이 맞춰졌다. 메달을 목에 걸 리본(스트랩)에는 PyeongChang 2018과 오륜기를 새겼다. 전통 한복 특유의 갑사 기법을 통해한글 눈꽃 패턴과 자수를 섬세하게 적용했다. 리본은 대회 룩의 라이트틸(Light Teal)과 라이트레드(Light Red)의 두 가지 색을 사용했는데 폭은 3.6cm이고, 메달을 장착했을 때의 길이는 42.5cm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한복에는 은은하고 단아한 멋이 있다며 이 아름다움을 메달 리본에 잘 표현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국적 아름다움 살린 메달 리본 원목으로 만든 메달 케이스는 전통 기와지붕의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했다. 2014년 소치 대회와 비교하면 금메달과 은메달은 더 무거워졌고 동메달은 가벼워졌다. 메달의 지름은 92.5㎜, 두께는 최소 4.4㎜, 최대 9.42㎜이다. 무게는 금메달이 586g, 은메달이 580g, 동메달이 493g이다. 금메달과 은메달은 순은(순도 99.9%)으로 제작했고, 금메달의 경우 순은에 순금 6g 이상을 도금하도록 한 IOC 규정을 준수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은,동메달. 동메달은 단동(Cu90-Zn10) 소재이며, 은메달과 함께 착조 형태로 마감된다. 동계패럴림픽 메달은 현재 제작 중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과 더불어 패럴림픽 메달 디자인에도 참여한이석우 디자이너는 패럴림픽 메달은 사선 모양이 아니라 수직 패턴이며 이는 평등하다라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설명했다. 메달은 올림픽의 상징이다. 우승자에게 금,은,동메달이 수여되기 시작한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 때였고 선수 가슴에 달아주었다. 목에 거는 메달은 1960년 로마올림픽에 등장했다. 메달은 개최국의 특색을 드러내는 동시에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년만에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평창올림픽 메달의가치, 올림픽 메달의 정신이 잘 드러나도록 심혈을 기울인 만큼 내년에 올림픽 때잘 쓰여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는 평창올림픽 메달을 모두 259세트를 제작한다. 한국조폐공사가 제작에 참여한다. 259세트 가운데 222세트는 102개 세부종목 영광의 입상자들에게 수여하고, 나머지는 동점자 발생 대비용(5세트)과 국내외 전시용(국제올림픽위원회 25세트, 국내 7세트)으로 활용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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