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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다른 세상의 문을 열다

2020.09.12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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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우리 국민이 집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사는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투기수요 근절, 실수요자 보호, 생애주기별·소득수준별 맞춤형 대책의 3대 원칙에서 주택시장 안정책과 실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지원·공급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어떤 정책이 실수요자를 보호하고 투기수요를 근절할 수 있을까. 정책브리핑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전한다.(편집자 주)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이나 이사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새로 이사 갈 곳을 찾아 부동산중개업소를 전전하고, ‘실례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 살고 있는 집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이삿짐을 싸고 풀고, 전입신고를 하고 난 후에야 한 번의 이사가 끝난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올 사람, 앞으로 살 집에 살고 있는 사람과 이사 날짜를 맞추어야 하고, 계약금과 잔금 치를 날짜도 맞추어야 한다. 이 복잡한 이사 과정 동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사업체, 부동산중개인과도 비용, 서비스 범위 등을 놓고 옥신각신 하기 일쑤다.

고 제정구 의원은 “과일 나무를 옮겨 심을 때 흙으로 감싸서 옮겨도 3년간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몸살을 앓는다.”고 했다. 그동안 세입자들은 과일 나무가 다시 자리 잡는데 필요한 3년에도 훨씬 못 미치는 2년마다 삶터를 옮기고 또 옮겨야 했다.

하지만 2020년 7월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대차 보장기간은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났다. 1989년 임대차 보장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지 31년만의 변화이다. 이번 개정으로 세입자는 임대인에게 전·월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가지게 되었고, 이 때 임대료의 인상률 상한은 5%로 제한된다.

개정 이후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임대차 보장기간 연장’이 세입자들의 이사에 미친 영향은 바로 나타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이사하지 않게 되면서 전월세 건수가 동반 감소하고 있다. 2020년 9월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의 전세 건수는 7월 9770건에서 8월 6022건으로, 월세 건수는 7월 3650건에서 8월 2292건으로 각각 감소했다. 건수는 바뀔 수 있겠지만 전월세 건수 감소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전세 매물 실종’, ‘전세 거래 절벽’이라 부른다. 하지만 전세 뿐 아니라 월세 건수도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의 당연한 결과인 세입자의 거주 기간 증가에 따른 전월세 거래의 총량 감소를 의미한다.

전월세 거래의 총량 감소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감소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임대차 보장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두 배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전월세 건수가 반토막이 나는 것이 정상인데, 7∼8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건수의 감소폭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새롭게 부여된 권리가 적절하게 행사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주요내용(이미지 출처=국토교통부).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주요내용(이미지 출처=국토교통부).


법 개정 이후 한 달간 그동안에는 없던 처음으로 행사하게 된 계약갱신청구권이 낯설어 권리 행사에 주저하는 세입자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법 개정 후 체결된 임대차 계약 뿐 아니라 개정 전 체결된 기존 계약에 대해서도 1회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했다. 기존 거주 기간과 상관없이 갱신청구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미 4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이번 법 개정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세입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한 세입자는 부산에서 약국을 하는 임대인이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와서 산다고 나가달라고 하는데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무조건 집을 비워줘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사실이 아닐 경우 갱신을 거절한 임대인이 임차인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 개정 내용은 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입자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권리를 보호하는데 있어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아직 멀리 있다.

정책 당국은 앞으로 전월세 건수 변화 등 전월세 시장 동향을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필요한 행정적인 조치들을 할 필요가 있다. 세입자들이 몰라서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홍보, 교육, 정보 제공, 법률 상담, 분쟁 조정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주민과 만나는 시군구, 읍면동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임대차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법·제도적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주거급여 수급액이 인상되는 만큼 매년 오르는 쪽방의 월세도 이번 법 개정으로 영향을 받게 되지만 권리 행사를 쪽방 주민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법 개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촘촘한 임대차 행정으로 보여줘야 한다. 

최소 6년 이상으로의 임대차 보장기간 연장, 신규 계약시의 인상률 제한 도입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 개정으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입자들이 삶터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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