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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때가 더 행복했던 것이다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2020.01.14

가끔 선물을 주거나 받는 일이 있다. 선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한테 예기치 못한 호의나 친절이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나도 어쩌다 그런 선의를 베푸는 일도 생긴다. 연말연시에 몇몇 지인들과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런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그간 받은 것과 베푼 것이 무엇이 있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내가 주고받은 선물 대상과 목록, 내가 베풀거나 받은 호의를 떠올려봤다. 그런데 받은 건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명절 같은 때 백화점에서 단체로 배달된 인사치레 선물이 많았던 것도 한 이유겠지만 특별하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런데 내가 누구에게 베푼 건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세상이 허무해졌다는 친구에게 책 한 권 보냈던 일,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투병 중인 지인을 병문안 갔던 일, 기자 시절에 취재했던 어떤 소녀가장 후원 계좌에 한동안 정기적으로 돈을 보냈던 일, 한겨울 지하철 출구에서 더덕을 까서 파는 할머니의 재고를 몽땅 다 사드린 일(하지만 이게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나를 두고 고민했다), 동창이 어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자발적으로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해결책을 메일로 보내줬던 일….

결국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내게 더 기쁨을 주었나 보다. 갈비짝 받은 건 잊혔는데 책 한 권 보낸 건 왜 기억에 남아 있지? 설득력 있는 심리 분석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봤다.

제법 알려진 연구 결과가 있었다.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자 에드 오브라이언 교수 팀이 2018년 미 심리과학협회 저널 ‘심리과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실험 방식은 이랬다.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5일간 매일 일정한 돈을 줬다. 그리고 한 쪽은 자신을 위해 소비하게 하고, 다른 한 쪽은 기부를 하거나 타인을 위해 쓰도록 했다. 그리고 매일의 행복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명확한 패턴이 드러났다. 자기를 위해 쓴 그룹은 5일 동안 조금씩 행복감이 감소했다. 그러나 남을 위해 쓴 그룹은 행복감이 줄지 않았고 마지막도 처음과 같은 행복의 강도가 유지됐다.

결론은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이다. ‘소유’와 ‘경험’의 차이로 풀이하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 쓰거나 사는 건 ‘소유’의 개념이지만, 남에게 베푸는 건 ‘경험’이다. 사람들은 ‘경험’에서 새로운 기쁨을 더 얻게 되고 그 기억도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백 달러 지폐에 초상이 그려진 프랭클린은 늘 자신을 험담하는 한 정적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다 그 사람이 진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책을 빌려줄 수 있냐는 정중한 편지를 보냈다. 그 사람은 책을 빌려주었고 프랭클린은 감사의 글과 함께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 후 정적의 태도가 달라졌다. 친밀감을 표시하고 먼저 말까지 걸어왔다. 그 후 둘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도움을 베푼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즉 적을 친구로 만드는 관계의 기술이다. 프랭클린은 자서전에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적이 당신을 한 번 돕게 되면, 계속 돕고 싶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 정적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7년 발표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으로 설명된다. 사람은 인식과 현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생기면 그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을 바꿔 그 불편함을 해소해버린다는 실험 결과다. 담배가 해로운 걸 알면서도 금연하기란 어렵다. 이때 “윈스턴 처칠은 하루에 담배를 세 갑 이상 피우고도 장수했지” “흡연은 긴장완화에 도움이 돼”라는 식으로 스스로 인지적 갈등을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도움을 줄 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의 ‘존중감’이라고 한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기꺼이 베풀었을 때 나의 ‘쓸모’를 확인하면서 뿌듯해진다. 누구에게 부탁한다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존중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나에게 부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도움 요청을 받은 사람은 내가 용도폐기된 인물은 아니구나, 내 삶이 그리 비루하거나 허무하지는 않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매사 세상에 불평불만이나 하고 남의 탓이나 하던 책임전가 심리도 줄어든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성숙해져 가는 느낌이 생긴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를 때, 가슴도 더 두근거리는 법이다. 

직장에서 과장님에게 깨졌을 때 “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절반 점수밖에 받지 못한다. 조용히 찾아뵙고 “제가 무슨 점이 부족하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진지하게 조언을 구해 그 분께 도움의 기쁨을 선사해야만 예쁨을 받는 것이다. 알아서 척척 일을 잘 하고, 잘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영 위태로운 신입 사원이 있다 치자. 상사는 결국 후자를 더 응원하고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결국은 나 자신을 돕는 행위가 아닐까. 이타심이 아니라 선한 이기심이라고나 할까. 동정이나 측은지심도 있겠지만 내 만족도 크다.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이다. 삶의 작은 기쁨과 내 존재감을 찾고 싶다면 도움을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도와 보면 어떨까. 선물을 기다리지 말고 주어 보자. 한 달에 1만 원이라도 기부하는 곳을 적어도 한 군데는 만들어 보자. 선물을 주고받았을 때의 뇌를 비교 촬영한 연구가 있었다. 주었을 때 기분을 조절하는 꼬리핵과 중격의지핵의 활동이 활성화됐다. 자발적으로 주었을 때는 더 활발해졌다.

혜민스님은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40대가 되어 깨달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그 중 하나다.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기봉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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