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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모두에서 지워졌던 문인…1988년 이후 재조명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시인 오장환/충북 보은

2020.07.10 이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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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불이야!
황홀(恍惚)한 소방수(消防手) 나러든다

만개(滿開)한 장미(薔薇)에 호접(虎蝶)’

한낮에 불이 났다. 소방수가 오는데 뛰지 않고 날아온다. 표정은 화급하지 않고 황홀하다. 한낮의 불은 붉게 핀 장미다. 소방수는 호랑나비의 은유이다. 만개한 장미에 한 마리 나비가 날아들 때, 붉은 바탕에 노랗고 검은 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오장환의 시 <화염(火焰)> 전문이다. 갑자기 불이야! 하고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 뒤에 봄날 찬란한 순간을 단 세 줄로 잡아내는 솜씨. 호접! 하고는 뒤따를 수많은 말들을 침묵시키는 것은 한시 같은 느낌도 준다. 오장환은 이 시를 1933년 휘문고보 다니던 열여섯에 썼다.

충북 보은군에 있는 시인 오장환 생가.
충북 보은군에 있는 시인 오장환 생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작은 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한적한 곳에 오장환(1918~1951) 생가가 있다. 그 옆으로 오장환 문학관이 초등학교 분교처럼 아담하다. 문학관에는 휘문고 당시 쓴 초기 시와 ‘어린이’ 잡지에 실린 동시, 이육사 시인에게 보낸 친필 엽서, 해방 후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석탑의 노래>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해마다 9~10월 오장환문학제가 이곳에서 열리며 시·그림 그리기 대회, 시낭송 행사 등이 개최된다. 오장환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도종환 시인이 명예관장이다.
 
오장환(1918~1951)은 1931년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스승 정지용을 만나 시를 배우게 된다. 그는 문예반에서 활동하며 시를 쓰고 교지 ‘휘문’ 편집에 참여했다. 그의 첫 작품 <아침>과 <화염>이 여기에 실려 있다.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정식 데뷔했다. 1936년 ‘낭만’,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이듬해 ‘자오선’ 동인으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한다.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 ‘성벽’과 ‘헌사’를 통하여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신장병을 앓다가 병상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병든 서울>을 통해 해방의 감격과 혼란을 감각적으로 노래했다.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해방기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 해방 조국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인민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며, 오장환은 이를 위해 민주적 개혁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 일본 제국주의 잔재의 소탕, 봉건주의 잔재의 청산을 가장 시급한 일로 꼽았다고 도종환은 ‘오장환 시 깊이읽기’에서 쓰고 있다. 이 작품은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당시에도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생가 옆 오장환 문학관.
생가 옆 오장환 문학관.

오장환은 이듬해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 그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던 시기에 전국을 돌며 문화 활동을 벌이다가 공위 결렬이후 예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테러가 시작되자 북으로 도피했다. 그는 남포 적십자병원, 모스크바 볼킨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1950년 러시아 기행시집 ‘붉은 기’를 발간했다. 이듬해 한국전쟁 와중에 지병 악화로 34세의 짧은 삶을 마쳤다.

월북 이후 남한에서 그의 시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북에서도 1953년 숙청된 임화 계열의 문인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인지 북한 문학사에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다. 오장환은 남과 북 모두에서 지워진 문인이었다. 1988년 해금조치 이후 전집, 시집, 평론 등이 발간되면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조명이 이뤄졌고, 백석·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오장환 문학관에 있는 그의 시집 <병든 서울>.
오장환 문학관에 있는 그의 시집 <병든 서울>.

일제말기 단 한 편의 친일시를 쓰지 않으면서 그 어둡고 궁핍한 시기를 견디어 가던 그가 1938년 쓴 시 <The Last Train>.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마지막 기차가 출발하는 식민지 역사, 그 병든 역사의 모든 노선은 다 슬픔으로 연결되어 있다! 리듬이 통곡과도 같은 절창이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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