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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암울한 시기에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다.
동무들아 오너라 오너라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어여쁜 새들이 방긋이 웃는다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이 노래는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이 가사를 붙인 추억의 동요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가사처럼 동무들이 함께 모여서 마음껏 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 가사 중 ‘동무’가 북한에서 널리 쓰는 용어로 굳어지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를 ‘친구’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언제 작곡된 것일까?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부터 60년대 초 사이일까? 사실은 훨씬 이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노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동요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전래된 노래이며 그것도 몇 백 년 전에 작곡된 것이고 작곡가의 이름도 확실하게 전해진다.
작곡가라고 해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거물급 음악가가 아니라 서민들이 찾던 빈의 선술집에서 백파이프를 불며 익살스럽게 노래하던 마르크스 아우구스틴이라는 떠돌이 악사였다.
이 노래의 원래 제목과 가사는 우리가 부르는 동요와는 완전히 다르다. 원래 독일어 제목은 <Oh, Du lieber Augustin>, 즉 <오, 사랑하는 너, 아우구스틴>이다. 아우구스틴은 돈과 여자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빈털터리가 된 자신의 신세를 익살스럽게 한탄하면서 불쌍한 자신에게 ‘오, 너 사랑하는 아우구스틴’이라 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틴의 생애에 관해서는 1643년에 태어나 1685년에 사망했다는 것 정도만 전해질 뿐이지만 그의 이름과 생몰년대가 전해진다는 것은 그가 후세 사람들에도 오랫동안 기억되었다는 뜻이다.
빈에는 그가 이 노래를 처음 불렀던 선술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지금도 영업 중이다. 이름은 ‘그리혠바이즐 레스토랑’, 위치는 빈의 중심인 슈테판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레스토랑은 18~19세기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과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이 즐겨 찾은 명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우구스틴이 부른 이 흥겨운 노래는 아주 암울한 시기에 탄생했다. 1679년에 창궐한 페스트가 빈을 온통 죽음의 공포로 휘몰아가던 매우 끔찍한 시기였다. 당시 빈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목숨을 잃었고,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거리곳곳에 널렸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하늘의 은총을 간구하며 나날을 보냈다.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생지옥 같은 빈을 떠나 다른 안전한 지역으로 도피하면서 페스트가 물러나면 하늘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념물을 빈의 중심가 그라벤 한가운데에 세우겠다고 기도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아우구스틴이 부르던 노래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그 작은 즐거움은 곧 삶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우구스틴은 선술집에서 밤에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 술이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만 구덩이에 빠졌다.
술에 너무 취한 상태라서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시체처리 작업반은 그가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은 줄 알고 그와 백파이프를 도시성벽 바깥에 파 놓은 구덩이에 다른 시체들과 함께 내던졌다.
다음날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우구스틴은 시체더미에 깔린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시체를 헤치고 구덩이 밖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사람 살려!”라고 소리쳐도 멀어서 소용없었다.
다행히도 백파이프는 손에 잡혔다. 그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 곡조를 백파이프로 불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고는 그를 구하러 달려왔다.
그런데 아우구스틴은 죽은 자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는데도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고 멀쩡했다. 따라서 졸지에 그는 당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삶의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역병이 물러나고 죽음의 그림자가 걷히자 황제 레오폴트 1세가 세우겠다고 한 기념비는 건축가 피셔 폰 에를라흐와 여러 조각가들의 손에 의하여 1682년에 착공 10년 걸려 완공되었고, 제막식은 1694년에 있었다. 이 기념비는 ‘삼위일체 기둥’, 또는 ‘페스트 기둥’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아우구스틴은 애석하게도 이 기념비가 완공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제막식 때도 <오, 너 사랑하는 아우스틴>을 흥겹게 부르지 않았을까? 참고로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음악가 후멜(J. N. Hummel 1778-1837)은 1814년에 이 노래를 테마로 하는 연주시간 9분 정도의 변주곡을 작곡했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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