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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겨울 끝 노을을 만난 바람이 분다

[걷기 여행] 경기 시흥 늠내길

위클리공감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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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완충녹지대 ‘배움의 숲’ 산책로.

늠내는 시흥의 옛 지명으로 ‘뻗어나가는 땅, 넓은 땅’이라는 의미다. 시흥시는 2009년부터 걷기 코스를 만들어 ‘늠내길’이라고 명명했다. 총 4코스로 1코스 숲길, 2코스 갯골길, 3코스 옛길, 4코스가 바람길이다. 각 코스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은 원점회귀 코스다. 한바퀴 돌면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개인 차량으로 이동해도 부담이 덜하다. 두 명의 청춘과 함께 바람길 15킬로미터를 걸었다.

바람길은 옥구공원에서 시작된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공원관리사무소를 찾았다. 바람길은 공원관리사무소가 출발점이다. 미리 지도를 챙기지 않았다면 이 곳에서 지도를 받아둔다.

공원은 긴 겨울을 끝내고 실처럼 가는 봄바람이 살랑거렸다. 봄바람이 얼굴을 간지럼 피우는 곳에 추억이 될 만한 풍경을 만난다. 공원 주변으로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데, 그 중 토피어리 조형물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인에게 좋은 사진배경이 된다. 옥구공원 낙조대는 서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오이도, 월곶, 시화신도시, 인천 연수동을 볼 수 있으며 맑은 날에는 대부도도 보인다.

공원관리사무소 건물 왼쪽 화단에 안내도가 있다. 건물 뒤편 소나무에는 늠내길 화살표가 표시된 표지판이 붙어 있다. 늠내길 깃발은 건강지압로를 지나 물레방아 쉼터로 이어진다. 봄은 땅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겨우내 꽁꽁 얼었던 길이 풀려서 질퍽거린다. 진흙 덩어리가 신발 바닥에 달라붙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길이 봄으로 이끈다. 두 명의 청춘도 봄 길을 반기는 눈치다.

새떼 날아오르는 갈대밭 사이 징검다리 겅중겅중

진흙길 끝이 공원 끝이고 공원 끝이 갈대밭이다. 햇살이 갈대밭에 따뜻하게 내려앉는다. 갈대밭 사이로 징검다리가 놓였다. 청춘들이 갈대밭을 날아오르는 새처럼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뛰어서 건넌다. 때마침 센 바람이 불어오고 마른 갈대잎이 부딪치면서 새떼가 날아오르는 소리를 들려준다.

갈대밭이 끝나고, 키 작은 소나무 산책로가 반긴다. 어린 소나무들이 탐스러운 솔방울을 맺었다. 소나무길 오른쪽은 공사 중이다. 그래서 소나무 산책로 중간 구간은 공사로 인해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이 구간은 제지공장 뒤편 차도를 이용한다. 소나무 산책로를 지나면 오이도 방조제다.

늠내길 이정표.
늠내길 이정표.

겨울의 옥구천로.
겨울의 옥구천로.

원래 오이도와 옥구도(옥구공원)는 섬이었다. 서로 가까이 있는 두 섬을 묶어서 옥귀도(玉貴島)라 불렀다. 옥귀도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육지와 연결됐다. 오이도와 안산시 간에 방조제가 놓이고, 갯벌은 염전으로 일궈졌다.

해방 후에도 시흥 일대 염전은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했으나 염전 사업은 점점 쇠퇴했다. 옥구도는 자연공원으로 거듭나면서 현재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오이도는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관광지로 변모했다.

오이도 방조제 초입에는 덕섬이 살포시 놓인 듯 자리한다. 옥구공원에서 덕섬까지 1.5킬로미터. 지도에는 덕섬으로 표기돼 있지만 사실 섬 이름은 ‘똥섬’이다. 섬이 똥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똥섬이라 하기도 하고, 각종 새들이 찾아와 똥을 많이 눈다고 하여 똥섬이라고 불렀다. 근래에 똥섬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고 덕섬으로 고쳐 부른다.

문득 김용택 시인의 동시 <똥 눈다>가 떠오른다. ‘집에 가다 / 똥 마려워 바위 뒤에 쭈그려 앉아 / 끙끙 똥 눈다 / 뒤에는 강물이 흘러간다 / 바람이 분다 / 궁둥이가 시원하다 / 새들이 날아가다 내려다본다 …’

‘뒤에는 강물이 흘러간다’ 대신에 ‘뒤에는 바닷물이 흘러간다’라고 고치면 이 똥섬과 잘 어울리는 시다. 이름을 바꾸기보다는 재미난 동시 하나 적어두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미친다. 똥섬, 이름 참 좋다.

봄이라지만 갯바람은 사납다.

서울 근교에서 만나는 빨강등대는 사진 명소

오이도 방조제 곳곳에 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 빨강등대 전망대, 노을의 노래 전망대, 함상전망대, 오이도기념공원 전망대 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오이도 명물 빨강등대.
오이도 명물 빨강등대.

청춘들은 역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빨강등대를 흥미로워 한다.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전망대에 오른다. 빨강등대만큼이나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이 강렬하다. 오이도의 바다 끝은 수평선이 아니라 지평선이다. 동남쪽은 시화공업단지, 북쪽은 송도국제도시, 서쪽은 시화방조제가 펼쳐진다. 이 곳에서는 급변하는 서해안의 모습을 가까이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바람길은 늠내길 4코스 중 가장 변화무쌍한 길이다. 인간이 만드는 변화의 바람을 마주하고 걷기 때문이다.

등대에서 내려와 오이도 선착장을 둘러본다. 오이도에서 많이 잡힌다는 망둥이, 숭어, 간재미가 꼬들꼬들 마르고 있다. 생선 옆으로 굴을 담은 망탱이가 쌓여 있다. 굴 한 사발 5천원, 굴구이 1만원. 요즘은 굴이 많이 나는 철이다.

방조제 안쪽의 현란한 식당 간판들과 선착장의 소박한 어시장이 비교된다. 오이도는 조개구이와 칼국수가 유명하다. 많은 식당들이 ‘조개구이’ 간판을 달고 있는데, 비슷비슷한 간판 때문인지 한가족 식당처럼 보인다.

덕섬에서 이어지는 오이도 방조제.
덕섬에서 이어지는 오이도 방조제.

방조제는 오이도 살막길에서 막힌다. 살막길은 오이도 모래사장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러나 살막길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정 기간만 개방한다. 오는 3월에 문이 열린다. 살막길 앞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간다. 오이도기념공원까지 도로 옆 인도로 걷는다. 오이도기념공원은 겨울 끝이라서 그런지 텅 빈 건물처럼 쓸쓸하다.

오이도기념공원에서 맑은물관리센터로 가는 대부도 사거리는 공사 중이다. 보행 신호등도 짧기 때문에 서둘러 건너야 한다. 오이도기념공원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고, 다시 고가도로 밑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맑은물관리센터 방향으로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맑은물관리센터를 지나 공단 2대로를 통해서 옥구천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우리는 깃발과 표지판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공단 3대로를 걸었다. 전망대 삼거리를 직진하여 옥구8교에서 옥구천로를 만난다. 이 구간은 바람길 지도와 깃발 표시가 맞지 않아서 아쉬웠다.

옥구8교부터는 옥구천로를 따라 시화산업단지를 횡단한다. 약 3킬로미터 거리다. 옥구천에는 천변로가 있다. 천변로에는 마스크를 하고 걷는 주민들이 간간이 보였다. 바람길은 옥구천 위의 도로변이다. 플라타너스, 소나무 등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다. 나무 밑으로 지난 가을에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잎은 긴 겨울 동안 이불이 되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겨울을 잘 보낸 가지들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새싹 틔울 준비를 한다.

눈 쌓인 늠내길. 길게 이어진 길이 호젓하다.
눈 쌓인 늠내길. 길게 이어진 길이 호젓하다.

이 시기는 옥구천로보다 옥구천변로를 따라서 옥구3교까지 쭉 걷는 게 좋다. 옥구천로는 옥구8,7,6,5,4,3교까지 비슷해서 지루한 편이다. 여자 청춘이 길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다리의 고달픔을 에둘러서 표현한다. 남자 청춘은 신혼부부가 걸으면 좋겠단다. 인생이 꽃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길이란다.

살아온 만큼 길이 보이는 것일까? 두 청춘과 달리 나는 이 길이 꽤 평탄하다. 인생이 이 길만 같다면 괜찮은 편이다. 발바닥이 아프고 난 뒤에 인생과 시화산업단지가 얼마나 큰 지 실감한다.

아파트 단지 내 길들도 정감 넘치게 단장

황량한 옥구천로를 벗어나 중앙완충녹지대 ‘배움의 숲’으로 들어간다. 중앙완충녹지대는 공단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이동하는 대기오염 물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만든 인공 숲이다.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마중한다. 잎이 져도 잘생긴 나무는 멋지다.

중앙완충녹지대를 나와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바람길이 아파트 단지로 이어진다. 보통 아파트 단지 내 길들은 찍어낸 길처럼 똑같다. 나무도 같고, 피고 지는 꽃들도 같다. 그래서 아파트 길이 걷고 싶은 길이 되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데 시흥시 정왕동 아파트 길들은 색깔을 입혔다. ‘소담길’, ‘시의 거리’, ‘참나무 숲길’ 등 이름을 붙이고, 꽃을 심고,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꾸며 정감 넘치는 길로 만들었다.

걷기 좋은 거리를 벗어나 오이도역으로 향한다. 오이도역 언덕이 바람길이다. 땅에 내린 소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걷는다. 언덕 아래로 4호선 서울행 전철이 오이도역을 떠났다. 한빛자동차운전학원 옆 길이 정왕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호수 가장자리에 부들이 씨앗을 쏟아낸다. 겨울 바람이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일까, 봄바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씨앗을 날려보낸다. 옥구공원에서 정왕호수공원까지 11.3킬로미터. 그 길 위에 부들 씨앗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공원을 천천히 돌아 출발지점 옥구공원으로 향한다.

청춘들이 붉게 물드는 저녁을 올려다 본다. 오늘 청춘들이 걸어온 길에 노을이 내렸다. 봄바람이 분다.

오이도 갯벌의 저녁.
오이도 갯벌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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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김연미(여행칼럼니스트)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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