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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문화의 주인공 '장'

우리음식의 가장 기본…김치 능가하는 우수한 발효식품

2004.12.04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발효식품 ‘김치’」, 국정브리핑, 2004.11.28> 에서도 설명했지만 우리의 발효 식품에서 냄새에 관한 한 '장'은 김치보다 한 수 높으면 높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필자는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가능하면 한국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은 된장찌개였다. 우리들에게는 구수하게 느껴지는 된장찌개이지만 그 냄새가 이웃에게로 퍼졌을 때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렵게 구한 아파트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미리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에피소드를 1970년대 파키스탄에서 유학한 이강덕 씨의 글로 대신한다.

‘1970년 1월 파키스탄에 도착하자 학교 측에서는 외국인이라 특별히 배려해 제일 좋은 기숙사를 배정해 주었고 룸메이트도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끼니를 때우는 일이었다. 파키스탄 음식은 향도 강하고 입에 맞지 않는 데다 학생들이 밥을 손으로 집어먹는 모습은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6개월 정도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만 버티다보니 이러다 영양부족으로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참다못한 나는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해 방에서 밥을 해 먹기로 한 후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룸메이트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웩웩’ 구역질을 하더니 창문을 열어제치며 당장 치우지 않으면 갖다 버리겠다고 야단이었다. 아까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내 말도 듣지 않고 나가 버렸다.

궁리 끝에 구내식당으로 국냄비를 들고 주방으로 내려갔더니 주방장이 흔쾌히 허락했다. ‘보글보글’ 된장국이 끓어 갈 무렵, 갑자기 여기저기서 ‘주방장 나와라’ 아우성이었다. 된장 냄새가 주방은 물론 학생들이 식사하고 있는 홀까지 퍼진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된장국 냄비를 들고 나오는데 학생들이 수군거렸고 다른 방도가 없을까 골똘히 생각한 후 냄새 퍼지는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곳을 생각해냈다.

메주.
기숙사 뒤편 공터였다. 얼른 냄비를 들고 나가 큼지막한 돌 두 개 위에 올려놓고 주워 온 나뭇가지로 불을 지폈다. 그런데 문득 등 뒤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세상에, 그 많은 기숙사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잘 통하지 않는 말로 손짓발짓까지 해 가며 통사정하니 다행히 나를 불쌍히 여긴 학생들은 딱 오늘 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렇게 해서 한 숟갈 떠먹은 된장국이지만 그네들의 음식 냄새가 내게 불편했듯, 파키스탄 학생들에게 된장 냄새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콩 = 땅에서 나는 쇠고기>

냄새에 관한 한 김치를 능가하는 장이지만 장은 식생활 문화에 있어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시 여기는 음식이다. 왜냐하면 우리 음식 중에서 장(고추장, 간장, 된장)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세 가지 장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없다는 것은 이들이 우리의 입맛은 물론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장의 기본 원료는 콩이다. 그리고 콩의 원산지는 원래 우리나라라는 것이 근래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므로 장은 원천 재료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인 것이다.

콩의 원산지는 야생 콩의 자생지역이면서 야생 콩, 중간 콩, 재배종 등 콩이 가장 많은 곳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이 만주 남부이다. 만주 남부는 본래 맥 족의 발생지이며 고조선의 옛 영토다.

평양시 삼석구역 남경 유적 36호 집터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벼, 조, 기장, 콩, 옥수수 등의 곡식들이 탄화된 채 발견되었는데 이것의 연대는 기원전 4000년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에 발견된 대동강 유역의 삼석구역 표대 유적에서도 벼와 콩이 발견되었는데 이 곡식들은 단군조선 초기, 즉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벼와 콩이 한반도에서 일찍부터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경 유적의 오곡. 중앙이 탄화된 콩이며 기원전 4천년 후반기로 거슬러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콩은 기원전 7세기에 중국에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시경』에 '제나라의 환공이 산융에서 비로소 콩을 중국에 갖고 왔다'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콩이 동양을 벗어나 외국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도에는 18세기나 19세기 초에, 유럽에는 18세기에 진출했다. 1739년에 파리 식물원에 처음으로 콩을 심었고, 1786년에는 독일, 1790년에는 영국의 식물원에서 시험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콩의 주성분은 단백질(40%)과 탄수화물(30%) 그리고 지질(20%)로 그 외에 각종 비타민과 칼슘, 인, 철, 칼륨 등의 무기성분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 영양 성분이 쇠고기 등심보다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콩을 '땅에서 나는 쇠고기'로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콩은 예로부터 인체에 매우 유용한 식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집중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현재까지 알려진 중요한 효능은 다음과 같다.

콩의 효능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항암 효과이다. 항암작용은 대부분 이소플리본 안에 있는 제니스타인 때문이다. 제니스타인은 암세포의 증식을 저해하며 에스트로겐 리셉터와 결합해 암세포의 증식을 감소시키고 정상 세포의 분열을 촉진한다.

또한 고령자들의 가장 큰 사망 요인 중 하나인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뇌졸중이나 혈압이 오르는 대부분의 요인은 혈관 속의 콜레스테롤 과다로 인해 혈관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중요한데 콩의 지방 함량은 15퍼센트인데다가 대부분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적인 리놀산과 리놀렌산은 인지질인 레시틴과 함께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쌓인 콜레스테롤을 녹여내는 작용을 한다.

콩단백질을 물로 추출하면 90퍼센트가 용해되어 나오는데, 그 중 80퍼센트 이상이 글로불린에 속하는 글리시닌(Glycinin)이다. 콩단백질은 열 변성을 잘 일으키지만 탈지할 때 끓는점이 낮은 n-hexane(헥산)을 추출용매로 사용하면 단백질 변성이 작아지고 단백질 용해도도 높아진다고 서동인은 설명했다.

발효 중인 장. 된장과 간장을 만들 때 숯을 넣는다. 이것은 발효에 유익한 미생물의 서식지 제공, 부패 방지, 미네랄 공급을 위해서이다(사진 서울시문화재관리위원회).


최근에 들어서는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인 치매의 예방 효과도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뇌세포의 시멸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뇌가 위축되는 알츠하이머병(치매)의 원인은 아직도 완전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뇌에서 아세틸콜린이란 물질이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세포막의 주성분인 레시틴은 뇌 속의 아세틸콜린의 감소를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 말은 뇌의 활성화에 콩은 더없이 좋은 식품이라는 뜻이다.

콩의 역할은 이외에도 양질의 단백질이면서 비타민 E가 풍부해 피부의 기미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해준다. 특히 비타민 E는 혈액 중의 악성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을 감소시키고 혈액의 점도를 낮춰 중·고령기 얼굴 등에 생기는 갈색 기미(일명 노인반점)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등 노화 방지에 기여한다.

소위 인간의 원천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콩의 역할이 다대하다는 뜻이다.

『본초강목』에는 콩을 오래 먹으면 안색이 좋아지며 늙지 않고 흰 머리칼을 검게 해주며 피를 맑고 모든 독을 풀어준다고 적혀 있는데 학자들은 콩에 들어 있는 콩사포닌의 역할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는 오래 전부터 콩이 불로장수의 건강식품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2001년 특별호에서 「건강과 장수를 위한」이란 제목으로 콩을 다루고 있다.

『뉴스위크』는 우선 콩이 식물 중 유일하게 인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아미노산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붉은 고기에 함유된 다량의 포화지방이 없는 단백질을 제공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콩은 여성들의 폐경기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화끈거림 같은 증상을 15∼45퍼센트 줄일 수 있으며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을 현저하게 낮춘다고 설명했다. 또한 콩을 많이 먹는 일본 여성들이 유방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며 2001년에 미국에서만 무려 30억불에 달하는 콩 제품을 소비했다고 적었다.

<생명 유지의 필수품 메주>

메주로 만드는 장이라는 개념 자체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로부터 수입된 콩으로 장을 최초로 만든 것은 중국인들이다. 그러나 『주례』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장은 현재 콩으로 메주를 쑤어 담그는 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장에는 '해'와 '혜'가 있는데, 해는 새고기, 짐승고기, 물고기 등 어떤 고기라도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술에 담그고 여기에 조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만든다.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즙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만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장은 식해의 일종으로 육장이다. 그러나 우리의 장은 콩장이므로 선조들이 중국으로부터 식해를 만드는 가공기술을 도입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로 창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장을 담갔는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290년경 진수가 작성한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인은 장양(醬釀 : 장 담그기·술 빚기) 등의 발효성 가공 식품 제조 솜씨가 훌륭하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 메주를 쑤어 장을 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메주가 우리 문헌상에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삼국사기』 「신문왕」편에 나온다.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683년) 예물로 보낸 품목 명세 속에 메주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는 메주가 당시 매우 귀한 식품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거란의 침입으로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하자 소금과 장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문종 6년(1052)에도 개경의 굶주린 백성 3만 명에게 메주를 내렸다는 글이 있다. 과거의 메주는 지금의 메주나 장을 함께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한문이 많이 사용되면서 메주즙만을 '장'이라고 부른다. 당시에 메주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식품으로 인식될 정도로 중히 여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메주는 입동을 전후해 김장을 끝내고 만든다. 콩을 충분히 불린 다음 무쇠솥에 끓여 삶은 것을 절구에 찧어 으깬다. 이것을 둥글거나 네모나게 빚어 단단하게 만든 다음 더운 뜰아랫방에 짚을 깔고 드문드문 포개어 약 27도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 숙성시키거나 1개씩 짚으로 엮어 매달아 띄우기도 한다. 겨울을 나는 동안 곰팡이와 세균이 번식하면서 표면이 누르스름한 갈색으로 변하는데 봄이 되면 잘 뜬 메주를 꺼내 햇볕에 바짝 말린다. 시골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메주야말로 집안 식구들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가장 큰 재산이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삶은 콩에 밀가루와 종곡을 첨가하여 발효시키는 개량식 메주가 보급되고 있다. 재래식 메주는 콩만으로 만들고 간장과 된장 겸용으로 쓰이지만 개량식 메주는 간장용과 된장용으로 구분하여 별도로 만든다.

재래식 메주는 야생 잡균이 많이 번식하여 특유의 향을 내며 숙성 관리가 미비하여 발효 숙성이 불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개량식 메주는 아스퍼질러스 오리재라는 곰팡이를 순수 접종, 배양시킨 종국(koji)을 이용하기 때문에 품질이 균일하며 불쾌한 냄새가 적은 장점이 있다. 반면 과거에 집집마다 전통으로 삼던 독특한 장맛을 내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때문에 전통 메주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메주로 만드는 장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있다.

고추장과 된장(사진 5623hj).


<메주의 과학성>

콩의 단백질이나 곡류의 전분은 메주를 띄우는 과정에서 미생물의 번식에 의해 단백질은 구수한 맛을 갖는 아미노산으로, 전분은 단맛을 갖는 엿 성분으로 분해된다.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번식하여 메주에 아미노산과 저분자 당류가 축적되면 이들을 이용하여 번식하는 다른 종류의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메주 고유의 맛과 향을 내는 것이다.

메주는 세균이 겉과 속에 골고루 분포하는데 비교적 수분 함량이 낮은 메주의 바깥쪽에는 곰팡이류인 아스퍼질러스속(Aspergillus oryzae)이 자라지만 축축한 내부에는 청국장을 만드는 세균인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가 주로 자란다.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는 메주에 번식하는 가장 중요한 세균으로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하는 강력한 효소를 분비한다. 우리나라 간장이 일본 간장보다 톡 쏘는 맛을 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메주는 학자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것은 메주를 띄울 때 번식하는 아스퍼질러스 오리재와 유사한 아스퍼질러스 프라뷔스(Aspergillus flavus)가 암을 유발하는 곰팡이 독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플라톡신이 지금까지 알려진 천연 발암 물질 중에서 가장 발암성이 강한 물질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메주를 띄울 때 이 곰팡이가 번식한다는 보고와 함께 우리나라 간장과 된장에 발암성 물질이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에서도 기사화되어 한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국인 모두가 발암 물질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장'문화가 한마디로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런 보고에 의구심을 표명하고, 한국인의 기본 음식인 장을 먹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암 환자가 많거나 증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들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아플라톡신이 생성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메주에 이를 억제하는 무엇, 즉 발암 물질을 상쇄할 수 있는 요소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반된 의견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학자들은 메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는데, 연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발암 물질로 알려진 메주가 오히려 항암 성분을 지닌 건강식품이라는 것이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플라톡신을 생산하는 아스퍼질러스 프라뷔스라는 곰팡이가 전통적인 메주에서 번식하더라도 바실러스 서브틸리스와 아스퍼질러스 오리재 등 정상적인 메주 미생물과 혼합된 상태에서는 아플라톡신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메주에 아플라톡신을 넣는다 해도 장을 담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와 미생물 작용으로 완전히 분해된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는 메주로 만든 장은 발암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발암성을 상쇄하는 항암작용이 있다는 의미이다. 메주로 만든 장이 우수한 건강식품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간장>

『증보산림경제』는 간장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다.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맛좋은 장이 있다면 반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간장은 우선 장 담그기에 주의하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하는 것이 도리이다.'

간장은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콩으로 만들어지는 발효식품으로 불교의 보급과 더불어 육류의 사용이 적어지면서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전통 간장은 크게 즙장과 청장 두 가지로 나뉜다. 즙장은 콩에 밀기울을 섞어 만든 즙장 메주를 가루로 빻아 소금과 물을 섞어 봉하여 말똥 속에 묻었다가, 일주일 가량 지난 뒤 다시 곁불 속에 2주일 가량 묻는다. 즙장은 말똥 속에 묻는다고 하여 '말똥즙장'이라고도 한다. 청장은 거르지 않은 메주 발효액에서 액체만 따로 분리하여 얻는 장이다.

장독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매일 뚜껑을 열어 햇볕을 쪼이면서 일정 기간 발효를 촉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단백질 등 주요 성분이 가수분해되면서 맛과 향이 우러나오고 동시에 숙성되는 것이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된장마을(사진 낭만).


간장은 주로 메주 내부의 세균이 단백질 분해효소로 분해되어 수용성 질소물로 전환된 아미노산, 그 밖에 저급화 분해산물이 가용성화되어 소금물에 용출되고 내염성 세균, 효모 등에 의해 숙성된 것이다. 장을 담글 때 장독에 금줄을 치고 고추와 숯을 장 위에 띄우는 것은 부정을 막아준다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지만 살균과 흡착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간장의 성분은 0.6퍼센트의 질소, 20퍼센트 내외의 염분, 1퍼센트 내외의 당분과 10퍼센트 가량의 고형분을 함유하고 있다. 아미노산의 분해산물인 멜라닌과 멜라노이딘 성분에 의하여 갈색을 띠며 β메틸메르캅토프로켈 알코올에 의해 고유한 맛이 생긴다. 또한 간장의 특유한 냄새는 알코올, 알데히드, 케톤, 페놀, 에스테르 등이 혼합하여 생긴다.

오래된 간장이 얼마나 좋은가는 과학적인 실험에서도 증명된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시험 분석에 의하면 1년 묵은 간장은 100그램 당 아미노태질소(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의 중간물질)의 함량이 43밀리그램이었는데 2년 된 간장에서는 680밀리그램이나 되어 16배나 증가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사람보다 육류 소비량이 적어 아미노태질소가 부족하기 쉬운데 오래 묵은 간장이 바로 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화학간장에는 이런 영양소가 없다. 화학간장이란 콩을 염산으로 가수분해하여 아미노산으로 만든 후 간장 맛을 내기 위해 맛, 향, 색깔을 합성시킨 것이다. 아미노태질소가 재래식 메주나 개량 메주로 만드는 양조간장에만 있다는 말이다.

<된장>

된장은 간장을 담아 장물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기본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로부터 간장과 된장과 유사한 장을 담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문헌으로는 『구황촬요(救荒撮要)』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된장 제조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된장은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맛도 달라지기 때문에 그 종류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청국장, 담북장, 빰장 등이다.

여기서 청국장은 장류 중에서 숙성 기간이 가장 짧은 속성장이다. 만드는 데 시간이 적게 드는데다가 영양 손실 없이 콩을 섭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장이다. 청국장의 감칠맛은 글루타민산과 유기산에 의해 일어나며 독특한 냄새는 여러 가지 휘발성 물질 때문에 생긴다. 가끔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 분해되었기 때문에 나는 것이다.

청국장에 많이 들어있는 글루타민산은 끈적끈적한 실 같은 물질로 칼슘의 흡수를 촉진하고, 탁솔이란 항암물질을 체내에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레시틴과 사포닌도 많이 들어 있는데, 이런 물질들은 과다한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성분을 빨아들여 체외로 배설하는 역할을 한다. 고기를 많이 먹고 난 후 청국장 찌개를 먹으면 느끼한 느낌이 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청국장은 주 재료인 콩이 발효되면서 각종 영양성분의 흡수율이 증가해 콩에 없던 미생물과 효소, 생리활성물질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발효식품이다.

이런 성분들이 몸의 신진대사 기능을 크게 해 여러 효과를 나타낸다. 청국장에 있는 바실러스(1그램에 약 1억 마리) 발효균과 섬유질은 장을 튼튼하게 해줘 변비를 막아주고 숙취를 해소하고 숙변을 제거하는 등 정장작용도 한다. 이런 효능들이 2차적으로 비만과 성인병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학자들은 청국장의 경우 5분 정도 끓이면 청국장 안의 미생물과 효소 핵산 등이 완전히 파괴되며, 비타민 B군도 80퍼센트 정도 파괴되므로 가능한 한 생청국장으로 먹는 것이 좋다고 임호준은 추천했다.

된장은 주로 메주 표면 부분이 아스퍼질러스속, 리조푸스속, 바실루스속 균주의 효소에 의해 분해되고 내염성 세균, 효모 등에 의한 숙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최근 들어 과학적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그 다양한 효능이 입증되고 있다.

우선 된장은 영양이 풍부하여 100그램 당 열량은 128킬로칼로리이며 단백질 12그램, 지방 4.1그램, 탄수화물 14.5그램, 회분, 칼슘, 인, 철분 비타민 B1, B2도 포함되어 있다. 된장의 여러 가지 약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음과 같다.

콩이 항암 효과에 탁월하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지만 된장은 한국의 발효 식품 가운데 항암 효과가 가장 탁월할 뿐 아니라 간 기능 회복과 간 해독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된장 속에 키토올리고당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된장을 끓인 경우에도 항암 효과는 유지되는데 쥐를 암에 걸리게 한 후 된장을 먹인 결과 된장을 먹지 않은 쥐보다 암 조직의 무게가 80퍼센트나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한국암예방협회>에서 1994년 11월 「암 예방 수칙」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한 항목이 '매일 된장국을 상식할 것'이다.

또 된장은 간 기능을 강화시켜준다고 한다. 인간에게 간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영양소의 축적이 일어나 비대해질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등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 간염으로 발전하는 등 각종 간 질환의 원인이 된다. 간 독성 지표인 아미노기 전이효소의 활성을 떨어뜨린다는 된장의 간 기능 촉진 효과는 근래에 밝혀진 것이다.

특히 된장의 노화 방지 효과는 항암 효과나 간 기능 증진 효과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노화작용을 방지하는 물질로는 콩에 함유된 폴리페놀류에 속하는 다이드제인 또는 다이드진을 비롯한 이소즈라빈류이다. 된장의 또 다른 항산화 물질은 아미노산류와 당류의 반응으로 생성된 맬라노이딘류의 물질로 된장 내에 존재하는 산화 가능한 지질류의 산화를 막아준다는 보고가 있다.

이 밖에 된장에 함유되어 있는 다이드제인과 다이드진류는 두통을 경감시켜주고 고혈압을 예방한다. 또한 된장은 지혈작용뿐 아니라 혈액 응고를 방지하는 역할까지 한다. 혈관 내에 혈전이 형성되면 영양소와 산소의 공급을 방해해 뇌혈전증이나 뇌출혈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데 된장 속의 바실루스균이 특수한 단백질을 분비해 혈전 덩어리를 잘게 부순다는 것이다. 이는 된장을 많이 먹으면 뇌졸중이나 뇌출혈 등 혈액 순환 장애로 인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실루스균은 열을 가하면 파괴되기 때문에 된장은 날로 먹는 것이 좋다. 따라서 된장찌개를 끓일 때 5분을 넘기면 효능이 없어진다고 한다.

한방에서도 해독작용, 소화불량, 부종과 어혈, 임신하혈, 빈혈, 식중독과 설사, 초기 감기, 가벼운 상처, 생인손 앓을 때, 두드러기, 벌레물린 데, 염증 등등 많은 부분에 된장 사용을 추천한다. 과거에 가장 흔한 된장이 가장 요긴한 가정상비약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의 된장은 그 제조법에 따라 재래식 된장과 개량된장으로 나뉜다. 재래 된장은 옛날부터 가정에서 만들어 온 방법으로서 간장에서와 같이 콩만으로 메주를 만들고 이것을 소금물에 담근다. 대체적인 발효가 끝나면 메주덩어리를 걸러내어 액체부분은 간장으로 하고 찌개에는 소금을 더 넣어 항아리에 채워 두면 한국식 재래된장이 되는 것이다.

재래된장은 옛날부터 가정에서 만들어 온 방법으로, 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이것을 소금물에 담근다. 대체적인 발효가 끝나면, 메주덩어리를 걸러내 액체 부분은 간장으로 만들고, 찌꺼기에는 소금을 더 넣어 다른 항아리에 재워두면 재래 된장은 된다. 된장은 간장을 거르고 남은 건더기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항아리에 담는다. 메주를 만들었을 때의 1/10에 해당되는 콩을 삶아 찧어 두었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함께 섞어 넣어 담으면 맛이 더욱 좋다. 이때 '메주 : 소금 : 물 = 1:1:4'의 비율이 좋다는 설명이다.

한편 KBS-TV에서 숯을 넣은 재래식 된장이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가 강하다는 실험결과를 방영했다. 된장은 메주, 물 , 소금이 주 원료인데 여기에다 숯을 약 300그램 정도 넣는다.

된장에 숯을 넣는 이유는 된장이 발효식품이므로 발효를 돕는 미생물이 잘 살아야하는데 신기한 것은 곰팡이같이 덩치가 큰 미생물은 숯에 기생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유익한 미생물은 1천분의 1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숯의 구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숯이 유익한 미생물에게만 서식지를 제공한다는 것이 귀엽기만 하다.

또 숯은 탄소가 85퍼센트, 미네랄이 10퍼센트 이상 차지하고 있다. 탄소는 환원작용을 하므로 된장의 부패를 막는다. 미네랄은 체내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미량물질인데 숯에는 나무가 빨아올린 미네랄이 그대로 농축돼 녹아 있으므로 숯을 넣은 된장이나 간장에는 자연히 미네랄이 풍부하게 된다. 성도제 박사는 과거에 어머니가 집에서 숯을 넣어 담가준 된장과 간장의 맛이 좋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미네랄 효과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추장>

순창 고추장.


고추장은 매운맛, 단맛, 짠맛이 조화를 이룬 우리의 독특한 음식이지만 간장이나 된장보다는 늦게 개발되었다. 고추가 도입된 이후에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된장과 간장은 중국과 일본에도 있지만 고추장은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되는 순수한 우리의 전통 식품이다.

고추장은 고추에서 나오는 매운맛과 함께 전분의 분해에서 발생하는 당류의 단맛, 그리고 콩단백질의 분해로 생산되는 아미노산의 구수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 향신료로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발효 식품이다.

고추장 제조법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1760년경에 발행된 『증보산림경제』이다.

고추장의 종류는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메주가루와 고춧가루라는 기본적인 재료에 찹쌀가루를 섞어 만든 찹쌀고추장, 멥쌀을 섞어 만든 멥쌀고추장은 물론 수수, 보리, 밀, 팥을 섞어 만들기도 한다. 메주가루를 만들고 남은 메주무거리에 굵은 고춧가루를 넣어 만드는 무거리고추장, 누룽지로 만든 누룽지고추장도 있다.

고추장은 숙성 기간 중에 원료에 없던 당류와 구연산, 젖산, 아세트산 등 유기산과 알코올이 생산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것은 찹쌀의 전분이 메주 또는 엿기름에 있는 전분 분해효소의 작용을 받아 단맛의 당류가 생산될 뿐만 아니라 젖산균 등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생장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고추장의 고유한 맛을 낸다.

고추장은 찌개, 매운탕, 생채, 조림의 양념이나 생선회의 양념 등으로 우리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품이다. 특히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주므로 생선조림이나 찌개에서는 필수적인 양념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요리는 잘 못하지만 고추장을 사용하는 생선매운탕만은 잘 끓인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법은 고추장이다. 생선매운탕을 끓일 때 고추장을 조금 풀어 끓이면 다른 부재료가 없어도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고추장 없이 매운탕을 끓여보면 곧바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고추장을 만들 때 재래식 메주가루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당화나 단백질 분해가 잘 이뤄지지 않아 맛이 잘 조화되지 않는 결점이 있다. 따라서 당화력과 단백질 분해력이 강한 고오지균을 인공적으로 접종 배양한 개량메주를 사용하면 더욱 맛이 좋은 고추장이 된다. 이것이 개량고추장의 원리이다.

우리나라 식단의 3대 양념인 간장, 된장, 고추장은 우리나라 음식의 특징 중 하나인 '국물 음식'을 만드는 데 절대적인 재료이다. 우리나라 식단에서 이 세 가지 장이 없었다면 결코 국물 음식은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효 식품과 이를 저장하는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장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장 문화 역시 김치와 마찬가지로 세계화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아무리 된장찌개의 향기를 구수하게 느낀다 하더라도 '된장맛 향수'는 당분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토종연구가로 알려진 홍석화는 선배가 '된장 냄새나면 장사가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된장 맛을 알리려는 원대한 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의 결단을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이종호 님>은 1948년생. 프랑스 뻬르삐냥 대학교에서 건물에너지 공학박사학위 및 물리학(열역학 및 에너지) 과학국가박사로 88년부터 91년까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해외연구소소장(프랑스 소피아앤티폴리스)과 92년부터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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