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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 헌트릭스 무대 배경, 국립고궁박물관 '일월오봉도 병풍' 첫 공개 왕의 권위를 상징한 그림, '일월오봉도'와의 첫 만남 아직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나는 두 번 보았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는 애니메이션 속의 한국적인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로 감상했다. 그중에서도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장면은 '헌트릭스'의 보컬이 금빛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한 무대가 이렇게나 멋질 수 있다는 게 충격처럼 다가왔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마침 그 일월오봉도 병풍을 실제로 관람할 기회가 왔다는 게 아닌가. 국가유산청 국립고궁박물관에 따르면, 창덕궁 인정전을 장식했던 일월오봉도 병풍이 보존 처리 과정을 거친 뒤 처음으로 관람객들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일월오봉도 전시를 보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하던 일월오봉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관람객들이 많았다. 어린이 관람객이 안내 로봇을 활용해 박물관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지하 1층 궁중서화 상설전시실에 일월오봉도 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일월오봉도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물, 소나무 등을 그린 병풍이다. 일월오봉도의 장엄함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궁궐 정전의 옥좌 뒤편에 펼쳐두거나, 왕의 초상화인 어진이 있는 곳 등 왕이 머무는 공간에 두어 왕의 덕과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궁중 의례에서 병풍이 활용되는 예시. 실제로 병풍을 보고 있으니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왕의 권위를 상징했다던 그림답게, 높게 솟은 소나무와 산봉우리, 금방이라도 넘실거릴 것 같은 파도를 보고 있으니 그림이 표현하고자 했던 웅장함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미디어로도 일월오봉도를 만나볼 수 있었다. 한없이 위풍당당해 보이는 멋진 일월오봉도에도 사실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전시실에 있던 설명에 따르자면, 일제강점기 창덕궁 인정전에 놓여 있던 일월오봉도는 일본풍의 봉황도와 서수 그림으로 대체되고 말았다고 한다. 1964년에 인정전이 복원되면서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오랜 시간 동안 외부에 노출되면서 일부 손상이 생겨 6년 동안 국가유산청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의 보존 처리를 거친 뒤, 9년 만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일월오봉도에 대한 소개. 사실 나는 궁궐에 놓여 있던 병풍은 일월오봉도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월오봉도 외에도 궁궐을 장식하는 그림이 무척 많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왕실의 장식 그림에 대한 설명. 조선의 궁궐에는 공간의 성격과 더불어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위상에 따라 다양한 그림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앞서 보았던 일월오봉도는 임금을 상징하는 그림이기에 옥좌 뒤편과 진전에 놓여 통치자가 존재하는 공간임을 상징했다면,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열릴 때는 모란도를 놓아 장식했다고 한다. 모란도는 왕실의 위용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장식 그림이라고 한다. 일월오봉도와 모란도 사이의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는 것도 이번 전시를 통해 배웠다. 일월오봉도는 임금이 행차하는 자리를 모두 지키는 병풍으로, 임금이 승하하는 순간까지도 생전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내기 위해 쓰였다는데, 오직 국왕의 상 때에만 일월오봉도를 설치하고, 다른 왕실 구성원의 상에는 모란도 병풍을 세워 신분의 차이를 엄격하게 구별했다고 한다. 일월오봉도는 그야말로 왕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림이었던 셈이다. 여러 가지 장식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왕실 어른을 위한 경사스러운 잔치를 열 때는 잔치의 주인공인 어른의 무병장수를 바라며 십장생도를 두어 장엄한 분위기가 드러나게끔 연출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화조도, 영모도, 신선도와 더불어, 학문 숭상을 의미하는 책가도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장식 그림들이 있었다고 한다. 미디어로 전시된 책가도 장식 그림을 관리하는 부서도 따로 있었을까? 있었다. 이러한 그림은 주로 국가 의례를 관장했던 예조에서 관리하고, 예조의 지휘 아래 도화서의 화원들이 공동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나는 동양화를 감상할 때, "'해'는 임금을 상징하고 '달'은 왕비를 상징하고, 소나무는 '절개'를 상징하고." 이런 식으로 패턴을 찾아내면서 감상하곤 했었다. 패턴을 찾아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징이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마침, 이번 전시에서 그 설명을 읽어볼 수 있었다. 각 그림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고유한 내용과 화풍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고 정통성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새로 단장한 '궁중서화실'도 방문했다. 새롭게 단장한 궁중서화실의 모습. '기록의 국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조선에서는 국가의 신성한 권위와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궁중서화를 꾸준히 제작했다고 한다.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임금의 초상인 '어진', 국가 행사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화, 궁궐 내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화 등 특별한 목적과 쓰임새를 지닌 다양한 그림들에 이념을 담아 걸어두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예는 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전시실의 설명에 따르자면, 유교 정치를 펼쳤던 조선 왕실에서는 정신 함양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글짓기와 서예 수련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왕의 글과 글씨는 대대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어 보전해야 할 전승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을 읽고 나니 어필, 즉 왕의 글씨 안에 담겨 있는 힘을 느껴보면서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실 내부 모습.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어필각석'이었다. 이는 돌에 새긴 왕의 글씨라는 의미로, 왕이 쓴 시와 훈계의 글, 편지와 같은 기록물들이 후대에 오랫동안 계승되게끔 하고자 단단한 돌에 새긴 것이라고 한다. '어필각석'이 전시되어 있다. 선대 왕의 글과 글씨를 보전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효의 실행이자 위업의 전승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 위에 칼같이 새겨진 한자를 보면서 그 반듯함에 여러 번 감탄했다. 조선 시대 서예 활동에 사용되었다는 연적. 이 외에도 대나무, 옥 등으로 만든 필통과 붓, 다양한 그림이 새겨진 연적 등 여러 가지 다채로운 문방구를 감상하며 조선 시대의 문예 활동이 무척 발달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문방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왕실의 인장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왕실의 인장은 국가 업무에 쓰이는 국새, 왕이 사용하는 어보, 관청에서 사용하는 관인 외에도 왕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사인도 있다고 한다. 돌, 나무, 금속 등으로 제작되어 손잡이의 모양과 인장에 새겨진 내용도 제각각으로 다양하다고 한다. 사인 속 무늬를 찍어보는 체험을 했다. 전시실을 나가기 전에 왕의 취향이 담긴 사인을 나도 찍어보고 왔다.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라는 의미의 길상여의,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 라는 의미의 요산요수 등 인장마다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전시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체험을 하고 있다. '케데헌' 덕분에 우리의 고유한 문화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한 관심이 그저 흥미에서만 그치지 않을 수 있게, 때맞춰 공개된 전시가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조선시대의 문화 역시 오늘날의 문화 못지않게 풍성하고 아름다웠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무척 장엄하고 찬란했음을 느껴보고 싶다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달려가 보는 건 어떨까? ☞ (영상) [이제는 국가유산] 조선 국왕의 상징, 일월오봉도 정책기자단|한지민hanrosa2@naver.com 섬세한 시선과 꼼꼼한 서술로 세상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25.11.19 정책기자단 한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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