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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미리 가봤다

[임시정부, 그 길을 가다 ⑭] 중경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한국광복군 제1지대 터

정책기자 조성희 2019.04.10

‘저 산맥은 말도 없이 5천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5천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중경 광복군총사령부 복원한 건물 외관 모습)
중경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복원 건물 외관.
 

중경(충칭) 광복군 총사령부가 복원되고 있는 건물 앞에서 주책스럽게도 신형원 가수가 부른 ‘터’ 라는 노래 가사를 홀로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마음을 감추기 위해 카메라 뷰파인더만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중경 임시정부 청사에서 아들의 고조할아버지인 황학수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한국광복군의 발자취를 확인하고 난 후라 그랬을까요? 더불어 중경 임시정부 청사 중앙 계단, 환국 전 임정 요인들이 사진을 찍었던 그 장소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감동의 애국가를 부르고 난 후에 본 이 건물은 더욱 귀하게 보였습니다.

우리의 숨소리로 그 옛날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 터를 지켜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더 울컥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남의 나라 땅에서 지켜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분들의 땀과 울분과 노력이 겹쳐졌습니다. 

(중경임시정부 청사)
중경 임시정부 청사.
 

중경 임시정부가 가장 먼저 이룬 업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한국광복군 창설 아닐까요? 가장 마지막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던 중경 임시정부에 와서야 정부(임시정부), 당(한국독립당), 군(광복군)이라는 제대로 된 체계를 갖췄으니까요.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창설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정규군이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3월 29일 중국 중경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앞에서 열린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복원 기념식에 참석했다.(출처=국무총리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3월 29일 중국 중경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앞에서 열린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복원 기념식에 참석했다.(출처=국무총리실)
 

무엇보다 이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은 지난 2017년 12월 한중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빠른 복원을 요청했고, 15개월여 만에 복원 공사가 마무리 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직 내부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외부 건물만 볼 수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오픈 소식을 들었을 때 또 한 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주유적지기념관에 전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본부 건물 사진)
항주 임시정부 청사에 전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본부 건물 사진.
 

군대는 임시정부가 연합국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는 1939년 기강에 도착했을 때부터 광복군의 창설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로 전락했던 30여 국가 중 임시정부와 군대를 소유했던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는 사실이 저는 무척 뿌듯합니다.

(임시정부 항주유적지기념관에 전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방명록 액자)
항주 임시정부 청사에 전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방명록 액자.
 

광복군은 중국군사위원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중국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바로 장개석(장제스)이었죠.

중국군사위원회는 우리 광복군을 자신들의 지휘 아래 두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광복군의 창설을 독자적으로 추진해 1940년 9월 17일 가릉강 기슭에 위치한 가릉빈관이라는 호텔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해 국민당 정부 요인과 국공합작으로 중경에 와 있던 공산당 관계자, 중경의 외교사절 및 신문기자 등 총 2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저는 항주 임시정부 청사에서 당시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이름들이 적힌 방명록을 발견했습니다. 

(중경 임시정부 청사 전시실 사진 자료)
중경 임시정부 청사 전시실 사진 자료. 구보훈련 중인 한국광복군 대원.
 

하지만 창설된 광복군은 중국군사위원회에서 인정하지 않아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할 형편에서 오히려 중국군사위원회가 활동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1941년 5월, 중국군사위원회는 광복군을 지휘하는 조건으로 광복군을 승인하게 됩니다. 이후 광복군은 독자적인 작전권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 1945년 봄부터는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넘겨받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냥 광복군에서 한국광복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거죠.

(임시정부 항주유적지기념관에 전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관련 사진과 설명)
항주 임시정부 청사에 전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관련 사진과 설명.
 

박광일 작가로부터 감동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다 중국 전선으로 징병된 50여 명의 청년들이 중국 안휘성을 탈출해 수천km를 걸어 1945년 중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고(故)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언론인 겸 정치가인 고(故) 장준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연화지 중경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해서 군가를 부르고 이들을 맞이했던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 그 소식을 들었을 임시정부 요인의 가족들 모두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없었다면, 이런 감격스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에겐 수천 킬로를 달려올 중경의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시의 ‘대한민국’ 이었던 것입니다.

(한군광복군 제 1지대구지 터,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한군광복군 제1지대 터.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한국광복군 제1지대 터로 이동했습니다. ‘한국광복군 제 1지대 터’ 라고 추측하는 곳을 박광일 작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어딘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건너편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위치라는 설명에 임시정부 100주년 사각 프레임을 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현지에서 설명을 해준 가이드는 건너편 아파트가 모두 완공되면 아마 이 모습도 없어질 지 모른다며 마지막으로 보는 ‘한국광복군 제1지대 터’가 될 거란 설명에 다들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아쉬워했습니다. 

상해에서 시작해 항주와 기강, 중경을 거치면서 그 터를 지켜온, 또 지켜준 이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광일 작가의 설명처럼 모든 유적지와 터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다만 이 역사적인 곳들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이들 터에 다른 건물이 세워진다고 해도 그곳에 정확하게 표지판 하나라도, 또 바닥이나 건물 벽 한 귀퉁이에 간단한 표식이라도 붙어 있으면 그것을 보며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그 앞에서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중경 토교 한인촌에 세워진 기념비 뒷면 설명)
중경 토교 한인촌 기념비.
 

유난히 이번 중국 임시정부 탐방에서는 ‘터’에 대한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터’ 라는 공간을 통해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및 광복군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손으로 역사의 숨소리 그 날은 오리라
그 날이 오면은 모두 기뻐하리라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나가자’

중국 임시정부 탐방을 마치고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저는 가수 신형원의 ‘터’ 라는 노래 가사가 계속 입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당시 나라를 잃고 고통 속에 있던 임시정부와 요인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꿈을 꾸며 일상을 견뎠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분명히 돌아올 수 있는 당연한 ‘대한민국’! 그곳에 사는 우리는 좀 더 나은 자유, 한반도의 하나된 평화를 위해 이 ‘터’들을 기록하고 기억해야겠습니다.



조성희
정책기자단|조성희purejo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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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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