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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니] 23년만에 다시 가본 파주 DMZ

예비역 장교 정책기자의 파주 ‘DMZ 평화의 길’ 탐방기

정책기자 이재형 2019.09.02

파주 하면 분단의 상징들이 먼저 떠오른다. 임진각과 망배단, 자유의 다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녹슨 증기기관차 말이다. 그만큼 전쟁의 아픔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파주 임진각 근처에는 판문점이 있다. 이곳은 남북 군사대치의 최접점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와 남북교류를 위한 길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는 1996년 8월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에 파주 인근 부대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육군 장교로 18개월 동안 근무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망배단(望拜壇)이다.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실향민들이 망배단에 모인다. 망배단은 군사분계선(DMZ) 7km 남쪽이다. 망배단에 모이는 실향민들을 보며 분단의 아픔을 느끼곤 했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과 망배단이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임진각과 망배단.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실향민들이 모이는 곳이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고향을 보고픈 열망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한 DMZ 평화의 길! 고성(4월 27일), 철원(6월 1일)에 이어 세 번째로 파주 평화의 길이 8월 10일 열렸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 인근 DMZ 평화의 길이 열린다니 안 가볼 수 있겠나! 첫 번째 방문부터 신청했지만 두 번이나 연거푸 추첨에서 떨어졌다. 낙첨되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열망을 알았는지 세 번째 만에 당첨됐다.

지난 8월 하순, 파주 DMZ 평화의 길로 가는 전날 밤 잠을 설쳤다. 23년 전 근무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임진각 평화누리에 도착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장병들도 여전히 폭염 속에서 소총을 들고 철모를 쓴 채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멈춰선 증기기관차도 보인다.

파주 DMZ평화의 길은 도보와 차량 등을 이용해 10.7km에 이르는 길을 약 3시간 동안 탐방한다.
파주 DMZ 평화의 길은 도보와 차량 등을 이용해 10.7km에 이르는 길을 약 3시간 동안 탐방한다. 출발에 앞서 해설사가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임진각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오후 1시 30분 안내소로 갔다. 주민등록증 등으로 신원 확인 후 노란색 조끼를 받아 입었다. 해설사에게 유의사항 설명을 들은 후 오후 2시 정각에 DMZ 평화의 길로 출발했다. 파주 DMZ 평화의 길은 도보와 차량 등을 이용해 10.7km에 이르는 길을 약 3시간 동안 탐방한다.

임진각 안내소에서 생태탐방로에 도착했다.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 라는 솟대 앞에서 탐방객들은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촬영이 허용된 구역이다. 그리고 생태탐방로를 따라 통일대교 입구까지 약 1.4km를 걸어갔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긴장한 탓인지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탐방객들이 걷는 동안 승합차가 뒤를 따라왔다. 힘들면 차를 타도 좋다고 했지만 아무도 타지 않았다.

어느새 통일대교에 도착했다. 통일대교는 개성으로 가는 관문이다. 1번 국도 최북단에 있는 다리로 남북평화와 교류의 길목이다. 1998년 고 정주영 회장이 소떼 1001마리를 이끌고 건넜던 다리다. 이 길이 활짝 열려 이산가족은 물론 남북 물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주 DMZ 평화의 길 초입에 나오는 생태탐방로다. 여기서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솟대 앞에서 탐방객들은 기념촬영을 했다.
파주 DMZ 평화의 길 초입에 나오는 생태탐방로다.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 라는 솟대 앞에서 탐방객들은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촬영이 허용된 구간이다.


통일대교 아래에서 마중 나온 현역 군인들이 인원 점검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차량을 타고 도라전망대에 도착했다. DMZ 안보관광 버스투어와 파주시티투어 때 들르는 곳이다. 도라전망대는 서부전선 최북단에 위치했다.

구 도라전망대는 폐지되고 지난해 10월 새로 신축한 도라전망대에는 학생, 시민 등이 많이 찾았다. 이곳에서는 육안으로 개성공단과 북한 기정동 마을, 송악산 아래 개성 시내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실향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고향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이번 탐방에는 최고령자인 81세 어르신도 동행했다. 탐방객 중 정강훈 씨 부부는 60대다. DMZ 평화의 길을 꼭 탐방하고 싶어 신청했는데 운 좋게 한 번에 됐다며 기분 좋아했다. 정강훈 씨는 “남북 간 평화 무드가 조성된 덕분에 DMZ 길을 들어가 본다. 내 살아 생전에 비무장지대를 들어가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와 이렇게 와보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강훈부부는 DMZ평화의 길을 꼭 탐방하고 싶었는데 남북평화 무드가 조성된 덕분에 오게 됐다며 감개가 무량하다고 했다.
정강훈 씨 부부.


도라전망대를 관람한 후 차량을 탄 채 DMZ 철책선 통문을 통과했다. 이 문은 장병들이 작전을 위해 드나드는 문이다. 민간인들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문이다. DMZ 평화의 길 개방 덕분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장교로 근무할 때는 자주 드나들었지만 전역 후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가니 감회가 새롭다. 육중한 철책선 통문이 열렸다. 무장한 차량들이 탐방객들을 태운 셔틀버스를 앞뒤로 경호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DMZ 안으로 약 1.8km 이동했다.

DMZ로 들어서자 탐방객들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도로 옆 곳곳에 지뢰 표지판이 보인다. 말로만 듣던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니 긴장이 안 될 수 있겠나! 경호를 위해 동행한 무장 군인들 얼굴은 땀이 송글송글 흐르고 표정에서 긴장이 묻어난다. 사실 민간인에게 DMZ를 개방한 것은 분단 이후 최초다. 이는 남북 간의 대결과 긴장이 그만큼 완화됐다는 방증이다.

DMZ 안에 남아있는 장단면사무소 건물. 1934년 지어진 건물 전체에 총탄 자국이 벌집처럼 남아있다.(출처=문화체육관광부)
파주 DMZ 평화의 길에서 본 장단면사무소 건물. 1934년 지어진 건물인데 여기 저기 총탄 자국이 벌집처럼 남아있다.(출처=문화체육관광부)


‘철마는 달리고 싶다!’ 파주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는 장단역 증기기관차.


통문을 통과한 뒤 장단면사무소에 버스가 잠시 멈추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34년에 지어졌다가 한국전쟁 때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정말 뼈대만 남은 낡은 시멘트 건물이다. 건물 외벽을 보니 한국전쟁 때 맞은 총탄 자국이 여기저기 보인다. 차에서 내려서 보고 싶었지만 DMZ 내라 승합차 창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장단면사무소에서 전방 1km 지점에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는 증기기관차가 멈춰있었다. 이 열차는 분단의 상징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31일, 남으로 향하던 화물열차가 폭격으로 장단역에 멈춰섰다. 이후 지금까지 이 증기기관차는 한반도 분단의 상징으로서 비무장지대를 지켜보았다. 이 열차는 2006년 가을에 이전하여 보존 처리 후 2009년 6월 25일부터 임진각에서 전시되고 있다.

장단면사무소를 지나 도착한 곳은 파주GP(경계 초소)다. GP는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각 11곳의 GP를 철거했는데 그중 한 곳이다. 이곳은 내가 근무할 당시 24시간 확성기 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감시했던 곳이다. 지금은 확성기 대신 과학화된 첨단장비(CCTV)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철거된 파주GP 소망트리에 탐방객들은 각자 적은 희망메시지를 달았다.
철거된 파주GP 희망트리에 탐방객들은 각자 적은 희망 메시지를 달았다.


철거된 GP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만약 ‘4.27 판문점선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직도 내 후배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근무를 서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후배들 대신 파괴된 GP 흔적들만 보인다. 이는 4.27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이 불과 1년여 만에 이뤄낸 성과다.

철거된 파주GP 희망트리에 탐방객들은 각자 소망 메시지를 달았다. 그리고 자유의 종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GP는 카메라, 휴대폰 등을 일체 휴대할 수 없기 때문에 해설사가 휴대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준다.

DMZ 평화의 길은 고성, 철원, 파주 등 세 곳이다. 아직 개방 초기라 신청자들이 몰려서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선정한다. 아직도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나도 두 번 떨어진 후 세 번째 당첨됐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만 참가할 수 있고, 10세 미만 아동은 참가가 제한된다. 탐방 당일 오전 10시, 오후 2시 두 차례 진행된다. 회당 탐방 인원은 20명이다. 탐방일 참가자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니 꼭 지참하기 바란다.

13년 만에 다시 가본 파주 DMZ은 확성기소리도 들리지 않고 대결과 긴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23년 만에 다시 가본 파주 DMZ에는 확성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대결과 긴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철거된 파주GP ‘자유의 종’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23년 만에 다시 가본 파주 DMZ에는 확성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대결과 긴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서 북한군을 마주보고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근무했던 GP 중 한 곳이 사라졌다. 이곳에 근무하는 후배 얘기를 들어보니, 남북한 간의 평화분위기에 따라 망배단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이제 곧 비무장지대는 국민의 것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그 약속처럼 굳게 닫혔던 고성(동부), 철원(중부), 파주(서부)의 철책선 통문이 열렸다. 이 통문이 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나! 이제 통문처럼 남북한 간의 화해와 협력의 문도 활짝 열리길 바란다. 그것이 평화의 길 탐방에 나선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아닐까?

☞ 평화의 길 탐방 신청
두루누비
https://www.durunubi.kr/  디엠지기 http://www.dmz.go.kr



이재형
정책기자단|이재형rotcbl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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