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 말고는 문화공간이 전혀 없던 우리 동네에 작은미술관이 생겨 너무 좋습니다.”
집 앞에 산책하듯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면 어떨까. 부산 금정구 서동에 사는 박 모(67) 씨는 “작은미술관이 생기면서 동네에 문화의 꽃이 핀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서동 작은미술관 갤러리 작품들은 ‘조용히 관람해주세요’, ‘만지지 마세요’ 라는 팻말 대신 마음껏 만지고 연주해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서동 미로시장 입구에 위치한 작은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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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동에 작은미술관이 생기면서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됐다. |
작은미술관은 지역의 공공 유휴공간을 활용한 지역 밀착형 미술공간으로서, 전시와 교육, 주민 참여 창작활동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공간을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작은미술관은 2015년부터 등록 미술관 등 전시공간이 없는 지역의 주민들도 미술을 경험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은미술관이 위치한 부산시 금정구 서동은 1960년대 말 철거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곳으로 원도심에서도 산을 넘어야 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소외지역 중 하나이다. 1970년대 금사공단이 들어서면서 공장 노동자들이 모였고, IMF 외환위기 이후 금사공단 쇠퇴로 인구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집과 빈 점포가 늘어났다.
문화적으로 낙후된 이곳을 되살리고자 2012년 서동예술창작공간이 생기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5년 간 쓰레기 더미에 쌓여 방치돼 온 회센터를 개조해 주민들과 다양한 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2018년 서동예술창작공간 1층에 작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문화 재생에 물꼬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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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 작은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9년도 작은미술관 전시 활성화 지원사업’ 일환으로 지난해 총 3회에 걸쳐 전시를 진행했다. |
부산금정문화재단 이정형 대리는 “문화소외지역인 서동의 문화 접근성을 높인 것이 작은미술관”이라며 “생활 밀착형 문화시설로써 주민들이 쉽게 시각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귀띔했다.
서동 작은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9년도 작은미술관 전시 활성화 지원사업’ 일환으로 지난해 총 3회에 걸쳐 전시를 진행했다. 지난해 9월 열린 첫 전시는 ‘해피 해피 스마일(HAPPY HAPPY SMILE)’이라는 주제로 서동 미로시장 27명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찰나지만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는 ‘인생기록 전시’를 선보여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모자를 쓰고 밝게 웃는 60대 남자 상인을 비롯해 일터에서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격려하는 웃음 등 다양한 웃음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사진작품들이 작은미술관에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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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60㎡ 아담한 규모에서 열린 첫 전시는 ‘해피 해피 스마일(HAPPY HAPPY SMILE)’이라는 주제로 서동 미로시장 27명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사진=금정문화재단) |
먹고 살기 바빠 문화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문을 연 전시회 주인공이었던 상인 이 모(60대) 씨는 “우리 동네 작은미술관은 굳이 차려 입지 않아도 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만으로 휴식 같은 공간”이라며 “시장 안에 있어 틈날 때마다 들를 수 있어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직장인 박미은(49) 씨는 “예전에는 시장에 들르면 물건만 사고 나왔다면 작은미술관 사진 전시회를 보고 나선 시장 상인들에게 전시회에서 봤다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게 되는 등 주민간의 끈끈한 문화 교류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멀티플렉스 문화시설을 가지 않아도 시장에 장보러 가듯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어 편리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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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 미로시장 입구에 위치한 서동 작은미술관 첫 전시를 찾은 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의 모습.(사진=금정문화재단) |
두 번째 전시는 ‘유앤아이(YOU&I)’란 주제로 회화를 통해 세대 간 차이를 알아보고 서로의 시대를 공감하는 전시로 기획됐다. 주민 도슨트로 참여한 김경희(60대) 씨는 “전에는 그냥 그림 보는 것이 좋았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작가의 마음까지 읽게 되면서 미술작품을 보는 폭이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세 번째 전시는 ‘빛의 이중성’이란 주제로 직접 만지고 오감 체험하는 작품들을 전시해 주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하루 평균 5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석해 3회 전시 기간 동안 4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이곳을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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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 3회 전시 기간 동안 지역주민 12명이 주민 도슨트로 참여해 직접 작품 설명과 전시 안내 등을 맡아 주민 참여형으로 진행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진=금정문화재단) |
이렇듯 서동 작은미술관은 지역에 밀착해 소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생활 속 예술작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하면서 미술관의 딱딱한 문턱이 사라진 듯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지원 대상을 11개관(지난해 9개관)으로 늘려 7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으로 지난 2월 작은미술관 공모를 한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난 5년간 조성된 작은미술관 17개관에 관람객 총 23만명이 방문해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