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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옥돔은 누가 다 먹었을까

[콩트] 추석 전날 밤의 해프닝

2015.09.26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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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허라미
일러스트·허라미

어렸을 때는 명절이 찾아오는 것이 그저 좋았다. 사촌들과 만나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궁리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논과 밭이 전부인 시골이었지만, 그것은 제약이라기보다는 가능성에 더 가까웠다.

우리는 어느새 밭고랑을 누비고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나무 사이로 신나게 뛰어다녔다. 일 년에 두어 번 보는 게 고작인데도, 어떻게 만나자마자 마치 엊저녁에도 함께 논 사이처럼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다. 두세 시간을 뛰어놀다가 큰집으로 돌아가면 맛있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갈비찜,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는 각종 전, 색색 빛깔의 온갖 나물들이 눈과 코와 입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온 가족이 함께 시골로 가는데 사촌들과 놀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번에는 축구공도 챙겼으니 놀이의 가짓수가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시골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일찍 도착한 작은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 가족을 맞아주었다. 잠시 후, 추석 연휴 직전에 제주도로 출장을 떠난 큰아버지가 큰집으로 바로 오셨다.

양손 가득 선물 상자를 들고 말이다. 사촌들과 나는 한달음에 마당을 가로질러 입구로 나갔다. 우리는 그것이 각종 과자들이 들어 있는 상자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과자가 든 상자라면 연휴 내내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잊지 않고 챙겨온 축구공처럼 그것은 먹거리의 가짓수를 늘려 입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다.

할머니가 선물 상자를 뜯었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말았다. 사촌 동생 한 명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과자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상자 안에는 난생처음 보는 붉은 생선이 들어 있었다. 우리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촌 누나는 곧바로 흥미를 잃고 마루로 올라갔다. “이게 뭐예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자 큰아버지가 ‘옥돔’이라고 했다.

제주 연안에서 갓 잡은 것으로 일명 ‘당일바리 옥돔‘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이거 오도미 아니냐? 이 귀한 걸 어디서 가져왔어?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생선인데.” 안방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옥돔을 보고 반색하셨다. 큰아버지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부모님께 맛있는 것을 기꺼이 사드리는 어떤 뿌듯함 같은 것이 서린 표정이었다.

우리는 아직까지 희망을 완전히 잃지는 않고 있었다. 아직 선물 상자가 하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의 내용물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사이좋게 뒷걸음질을 쳤다. ‘최상품 건옥돔’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스티커가 상자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딱 봐도 말린 생선 특유의 꾸덕꾸덕한 질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먹을 게 아닌 것 같다.” 사촌 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들 축구공을 들고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처음 보는 생선이 신기하기만 했던 나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옥돔이네요!” 분주하게 전을 부치던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왔다. “생옥돔은 오늘 먹고 건옥돔은 내일이나 모레 요리해 먹으면 되겠네요.”

엄마의 입에서는 옥돔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예로부터 제주도에서는 옥돔을 제사상에 올리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만큼 귀한 생선이라는 것이다. ‘역시 우리 엄마는 먹을 거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어!’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괜스레 우쭐해져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이걸 어떻게 해 먹죠? 귀한 거라고 하니 과감하게 손대기도 망설여지네요.”

작은어머니가 생옥돔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할 수 있는 거 많지. 생옥돔구이를 해서 먹어도 되고 양념을 해서 옥돔찜을 해도 되고. 생옥돔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면 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 맑게 탕을 끓여도 개운하고. 무엇을 만들든 상다리가 휘어지겠다.” 엄마의 말에 다들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날 저녁은 그 어떤 명절 끼니때보다 배가 불렀다.

문제는 다음 날 터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가 갈팡질팡 허둥대고 계셨다. “무슨 일이에요, 어머니?” 작은어머니가 묻자 할머니가 “없어졌어”라고 짧고 다급하게 답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관절 뭐가요?’라는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알고 보니 간밤에 건옥돔 상자가 사라진 것이다. 친척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옥돔을 먹었는데 건옥돔이 사라졌네?” 작은아버지의 농담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가 잔뜩 난 큰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최상품 건옥돔’이라고 적힌 문구가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옥돔을 친척들 중 누군가가 챙겼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옥돔이 없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안 분위기는 삽시간에 위태로워졌다. “이웃 중에 누가 가져가는 거 못 봤어요?” 고모가 친척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바람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다름 아닌 우리였다. 우리는 살벌해진 분위기 탓에 소리 내어 뛰어놀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옥돔이 뭐라고.” 입이 비죽 튀어나온 내가 작게 말하자 “그러니까. 그깟 옥돔이 뭐라고. 우리가 그걸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사촌 형이 응수했다. TV에서는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한창이었는데, 샅바를 팽팽하게 쥔 것은 방 안에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잠시 정신을 놓기라도 할라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식사하세요.” 내일이 추석인데 추석 전날 밥상에는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식사를 하시던 할머니가 숟가락을 놓고 말씀하셨다. “그거 가져간 사람은 발 뻗고 잠자기 힘들 거야.” 특정한 누구를 대놓고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불특정 모두를 향한 큰아버지 말씀에 밥상 앞은 일순 냉랭해졌다. “지금 우리들 중 누가 그걸 가져갔다고 의심하는 거야, 오빠?” 고모가 언성을 높였다. 밥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 길이었다. 그때만 해도 화장실이 집 밖에 있던 시절이었다.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저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가는데 화장실 옆 창고 입구에서 어제 봤던 그 상자 비슷한 게 살짝 보였다. ‘저건 최상품 건옥돔이다!’ 상자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어제 봤던 큼지막한 글씨가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큰아버지, 작은어머니! 여기로 와보세요!” 나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아니, 쟤는 왜 저렇게 호들갑이야!” 고모가 슬리퍼를 신고 허둥지둥 걸어오다 상자를 보고 놀라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아궁이 위에 둔 게 왜 여기 있대!” 동네 고양이들이 합심을 해 상자를 자신들의 아지트인 창고로 가져간 게 분명했다. 고양이들이 허발을 하고 달려든 탓에 옥돔 상자는 그야말로 폐허 상태였다. “망할 괭이 새끼들 같으니라구!” 할머니는 그 앞에서 아까움을 감추지 못했고 할아버지를 비롯해 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건이 해프닝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지를 내리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그때 그 시절이 어쩐지 아득해지고 말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명절이 찾아와 친척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게 느껴졌다. “공부는 잘하냐?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고?”와 같은 심상한 질문에서부터 “대학은 어떻게 하려고? 서울 아이들이 새벽까지 공부하는 건 잘 알고 있지?”와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구체적 질문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와도 가기도 그렇고 안 가기도 뭣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공부해야 한다며 가지 않은 적도 있고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는 경우도 생겨났다. 허물없이 지내던 사촌들과도 데면데면해지고 “잘 지내지?”와 같은 피상적인 질문만 주고받게 되었다. 옥돔이 있던 그 시절이, 정확히 말해 옥돔이 있었다가 없어진 그 시절이 그리웠지만 그리움을 슬쩍 꺼낼라치면 어느새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명절은 매년 돌아오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수험생들에게는 공부 이야기, 대학생들에게는 취직 이야기, 직장인들에게는 결혼과 승진 이야기가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다. 명절 때 해야 할 말들을 기록해놓은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매년 비슷한 질문들이 오간다. 별수 없이 귀를 닫고 입을 다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그럼에도 이번 추석에는 사촌들과 옛날을 추억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옥돔은 없어도 우리가 나눈 시간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옥석이니까. 놀이의 가짓수는 줄었을지언정, 그때 만들었던 추억들은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늘 반짝이고 있으니까. “그때 그 옥돔 기억나?” 추석 연휴 때 사촌들 앞에서 틀 대화의 물꼬를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글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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