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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양현 전속… 적함을 향해 돌진하라”
당시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들을 향해 돌진하며 40㎜·76㎜ 기관포로 응사해 교전이 일어난 지 14분여 만에 북한 함정을 격퇴하는 승리를 거뒀다.
2008년 6월15일은 제1차 연평해전 승리의 9주년을 맞는 날이다. 해군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5일 오후 2시 평택 해군 2함대 충무동산에서 제1연평해전 승전기념 9주년을 맞아 전승비 제막식을 갖는다고 13일 밝혔다.
당시의 상황을 재연, 우리 해군의 용맹한 전투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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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15일 대연평도 서쪽 서해 해상. 이날 북한 경비정 4척은 오전 8시 45분부터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우리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관할 해역을 침범한 북한 함정은 점점 늘어났다. 9시 4분에는 모두 7척의 북한 함정이 침범해 왔다.
우리 해군 고속정도 대응 기동에 나섰다. “총원에게 알린다. 지금부터 적함에 대해 충돌 공격을 수행할 예정이다. 충돌과 적의 기습사격에 대비해 만반의 태세를 유지하라.” 해군 고속정 참수리 325호의 안지영(대위) 정장은 고속정 승조원들에게 충돌과 유사시 적의 공격에 대비토록 지시했다.
“기관 양현 전속, ○○○ 잡아.” 안대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타실에 있던 기관장 허욱 대위는 즉각 배의 속력을 최대로 높여 순식간에 34노트에 도달했다. 우리 고속정들이 충돌로 NLL을 침입한 북한 경비정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고속정 승조원들은 9일째 계속된 해상 대치로 인한 수면 부족으로 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장병들의 의식은 얼음 폭포 속에 서 있듯 명료했다.
해군 고속정 325호정과 338호정은 함께 파도를 가르며 적함을 향해 기동해 들어갔다.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바빠지기 시작했다. 조타실에 있던 전탐장 이용일 중사 눈에 함포를 겨누고 있는 북한 군인들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우리 고속정이 쏜살같이 돌진하자 북 경비정도 맞받기 위해 함수를 돌려 덤벼들었다. 이때부터 20여 척의 함정이 뒤엉켜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리는 질주가 벌어졌다.
9시20분
고속정 338호정이 북한 경비정의 함미에 충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338호정 함수가 적 경비정 함미를 타고 올라가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참-325정. 참-338호정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적 경비정 현측에 충돌을 가하라.”편대장의 다급한 지시가 참수리 325호정으로 전달됐다.
“키 왼편 전타, 양현 앞으로 전속.” 참수리 325정은 전속력으로 적함 현측을 향해 기동하기 시작했다.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속하고 과감한 기동에 의한 충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지금부터 적함에 충돌을 가한다. 총원 총격에 대비하라.”
안대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꽝’ 소리와 함께 참수리 325호정이 북한 경비정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조타실에 있던 곽영진 일병은 충돌 후 적 경비정 현측에 2m 크기의 구멍이 난 것을 목격했다. 다행스럽게 충돌은 성공해 참수리 338호정이 무사히 빠져나왔다.
“양현 뒤로 전속.” 안대위는 적 경비정으로부터 신속하게 이탈하기 위해 후진을 지시했다. 하지만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함수가 적 경비정에 너무 깊이 박혔기 때문이다. “이대로 적의 기습공격을 받으면 끝장이다. 빨리 이탈해야 한다.”
적은 모두 포를 이용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참수리 325호정은 위치상 함수포만이 사용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극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잠시 후 참수리 325호정이 후진하기 시작했다.
9시28분
적 경비정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그 순간 “따따땅 쾅쾅” 요란한 총·포성이 울렸다. 북측의 선제공격이 시작된 것. 참수리 325호정의 승조원들도 즉각 응사에 나섰다. 40㎜ 사수였던 병기장 임갑종 중사는 쓰고 있던 철모에 총탄을 맞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적에 대한 사격을 늦추지 않았다.
소총사수인 서득원 하사가 허벅지 관통상을 입자 임무를 대신 수행하던 기관사 우중국 상사는 머리에 파편상으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면서도 M-16 소총을 놓지 않았다. 교전이 계속되면서 고속정 대원에게 지급된 개인화기의 실탄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유하사는 실탄을 추가로 지급하기 위해 총탄이 난무하는 갑판 위로 올라갔다.
위험한 상황인 줄은 알았지만 전우들에게 실탄을 지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했기 때문이다. 갑판 위를 뛰어다니며 실탄을 지급하던 유하사는 허벅지가 화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실탄 지급을 계속했다. 적 포탄 파편에 맞아 바지 왼쪽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전투가 끝난 후였다.
이 무렵 고속정 325호 옆쪽에서 ‘쾅’ 하는 굉음이 울렸다. 아군 경비정을 엄호 중이던 우리 측 초계함이 쏜 76㎜ 함포가 북한 어뢰정에 명중한 것이다. 안대위는 “북한 어뢰정에서 붉은 화염이 하늘로 치솟더니 이내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북한 고속정을 뒤로하고 325호 고속정은 신속하게 후방으로 빠져나왔다. 우리 초계함과 고속정들도 총포탄을 적함을 향해 쏟아부었다.
9시42분
전투가 끝난 후 확인해 보니 고속정에는 적의 사격으로 100여 개가 훌쩍 넘는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장병들은 평소 ‘배운 대로, 익힌 대로’ 싸우며 대처했다. 실전을 통해 진정한 전사로 거듭난 것이다. 교전시간은 정확하게 14분이었지만 참전자들은 모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했다는 이야기다.
■ 전과와 의의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들을 향해 돌진하며 40㎜·76㎜ 기관포로 응사해 교전이 일어난 지 14분여 만에 북한 함정을 격퇴하는 승리를 거뒀다. 북한 함정 중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1척 대파, 2척 반파, 2척을 파손시키는 전과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우리 해군은 일부 고속정과 초계함의 기관실과 선체 일부가 파손되고 9명의 장병이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
그러나 해군 관계관들은 1차 연평해전은 이러한 수치적 전과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과의 교전을 통해 기동력과 화력, 작전능력은 물론 장병 정신전력도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실감했을 뿐만 아니라 싸우면 이긴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 가장 값진 성과”라는 것이다.
특히 1차 연평해전의 완승은 그냥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해군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무엇보다 평소 실전 같은 상황별 대응훈련을 해 오는 등 땀과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1차 연평해전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 평소 지휘관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언제, 어디서, 어떠한 상황에서 적이 도발해 오더라도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필승 신념으로 무장했던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침착하게 지휘를 계속한 안대위는 “만약 두려웠다면 그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늠름하게 말해 국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1차 연평해전에 참가한 장병들은 하나같이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필승의 확신이 있었다” “교전 중 부상자가 생기면 다른 수병이 그 자리에 앉아 계속해 응사했다”고 증언한다. 1차 연평해전 승리의 밑바탕에는 장병 모두의 투철하고 강인한 필승의 정신력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 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