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정에서 학대와 방임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제가 함께하는 아이들은 오랜 시간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시기에,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외면당하고 상처받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 시설에 들어오면, 그들의 삶은 '단체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틀에 맞춰집니다. 아무 연고도, 아무 관계도 없는 아이들이 '학대 피해 아동'이라는 한 범주로 묶여, 최소한의 보호와 기본적인 욕구만 간신히 충족시키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보살핌은 단순한 의식주를 넘어서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도 선택할 수 있다'라는 경험, '내 욕구를 표현해도 괜찮다'라는 허락, 그리고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자라는 순간부터 아이는 단지 생존이 아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 아이들에게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되었습니다. 단순한 생활지원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쿠폰은 아이들의 삶에 아주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쿠폰으로 고를 수 있는 물건은 크지 않았지만, 그 선택의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자유이자 존중이었습니다. 마트에 가는 길,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물건을 고르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이거 진짜 사도 돼요?"
그 질문 속에는 '나도 선택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존중 받아본 경험이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고르고, 망설이며 단순한 소비가 아닌 자기 삶의 주체로 한 발 내딛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쿠폰 한 장이 아이들에게 준 건 생필품이 아니라, 자신의 기호를 확인할 기회, 누르고 살아온 마음을 가볍게 할 작은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괜찮은 존재'라는 작지만 단단한 확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