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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한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오늘도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씨름하고, 정부24에서 '세대주 확인'을 하지 못해 읍행정복지센터에 숨 가쁘게 뛰어오신 어르신을 보며 조용한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늦는 게 아니라는 것을, 행정서비스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업무 시작 전, 교육을 다녀온 팀장님께서 신기한 것이 있다며 우리를 불러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셨다. 화면엔 챗 지피티(Chat GPT)가 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이 입력한 내용은 단순히 "이것 좀 해줘"라고요구하는 명령이아니었다. 먼저 예문이 될 글을 제시하고, 그 글의 문단 구조에 맞게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거기에 몇 가지정교하고 섬세한 명령어를 사용하자 정말로 사람이 며칠은 고민해서 작성한 것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을활용하면 업무 시간이 단축되어 일이 한결 수월해질 거란 생각을 하며, 디지털이 우리 곁에 밀착되어있는 일상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오전 아홉 시가 되고, 업무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민원 창구를 찾은 민원인께서는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안내문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발급해야 하는 서류들이 꽤 많았다. 그중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가 있었는데 건강보험공단에서 발급받아야하는 서류다 보니, 행정복지센터 민원 창구에서는 발급할 수 없었기에 민원인께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발급받으시면 된다고 안내했다. 다른 서류들을 다 떼드리고, 남은 것이 건강보험 관련 서류였다. 청사에 무인민원발급기가 있지만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민원인들은 어려워하셨다. 어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모습, 연세로 미루어 짐작하니 왠지 이분도 그럴 것만 같았다.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엔 늘 사람이 많아, 뒤에 대기하고 계신 다른 민원인들도 있었기에 직접 안내해 드리지 못하고 발급기 위치만 알려드렸다. 어르신은 잠시 주저하더니 해보겠다고 말씀하시고 사무실을 나가셨다. 그 뒤로 세 분의 민원인을 더 응대했다.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사무실을 나오니, 아까 그 어르신이 발급기 앞에서 한참을 씨름하고 계셨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일인데, 내가 민원을 응대하고 있는 동안 계속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며 고민했을 어르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민원인들이 계셔서 차마 다시 돌아와서 물어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공단에서 발급을 받자니 20분 넘게 운전해서 시내로 나가야 하는 어르신의 난감함이 짐작이 되었다. 챗 지피티가 업무시간의 단축에 크게 기여하고, 카페나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를 먼저 찾게 되는 일상을 보내며 기술의 발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편리해진 생활에 감탄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원 현장에서, 발급기의 사용을 어려워하고, 정부24에서 전입 신고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어르신 민원인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치않다. 모바일 신분증 발급이 시작되고 나서 모바일 신분증을 발급받고 싶어 하는 어르신 민원인들은 많이 계셨지만, 정작 그분들은 애플리케이션 설치, 본인 인증, 정보무늬(QR코드) 촬영 등 발급에 필요한 절차를 낯설게 느끼고 어려워하셨다. 그때마다 어르신도 하실 수 있다고, 자꾸 해보면 익숙해진다고 말씀드리고 발급 과정을 천천히 보여드리고, 알려드리지만 밖에 나가셔서도 익숙하게 사용하고 계실지는 걱정이 된다. 한 시민이 충주시 동량면 행정복지센터 청사에서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하는 모습. 필자가 4년 전, 무인민원발급기 점검을 다녔을 때, 능숙하게 이용하시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필자 제공)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고 행정서비스를 요구하는 일을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끼는 어르신들을 보면 무언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색한 표정과 담당자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걸음걸이로 읍행정복지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르신 민원인들을 뵙고 나면, 그들이 '기약 없는 마라톤'을 하는 마라토너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라는 트랙 위에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뛰어가는 젊은 세대의 뒤에서 불편하고 무거운 신발이라도 신은 듯이 첫걸음을 뗄까 말까 망설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디지털 행정이 급속히 확산되는 요즘같은 시대에 공무원은 이 트랙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가장 중요한 순간은 주자가 지쳐갈 때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어르신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함께 걸어가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사람의 온기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다. 공무원의 역할은 단순히 행정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씨름하고, 정부24에서 '세대주 확인'을 하지 못해 읍행정복지센터에 숨 가쁘게 뛰어오신 어르신을 보며 조용히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어르신도 하실 수 있다고,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나는 이런 걸 못해.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우리 아들, 딸 올 때만 기다려."라고 말씀하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무인민원발급기 앞에만 서면 조급해지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읽으며 공무원으로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친절하게 기기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일이겠지만, 언젠가 어르신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급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늦는 게 아니라는 것을, 행정서비스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한 것은 아니라는것을. ◆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충주시에서 민원담당으로 일하며 겪은 일상을 수필로 쓴 글이 등단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공직 업무의 꽃인 '민원 업무'로 만난 수많은 일화들이 매일 성장통이자 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2025.05.20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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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육아 고민 아빠들에게 추천합니다…'100인의 아빠단' 어떻게 놀아주고 교육해 줘야 아이들에게 더 좋은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빠라면 전문가와 육아달인 선배 아빠들이 있는 국가가 인정한 아빠육아커뮤니티 "100인의 아빠단"을 추천한다. 현 시대 아버지 육아 참여는 대한민국에서 당당한 아빠들의 가족을 위한 노력이자 권리이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올해는 아쉽게 선정되지 못해 너무 속상합니다.'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위탁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운영하는 "100인의 아빠단"에 선정되지 못한 아빠들의 하소연이다. 2025년 5월 15기 100인의 아빠단이 전국적으로 발대식을 가지며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로 15년을맞이한 100인의 아빠단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이 인정한 온오프라인 대표 아빠 커뮤니티다. 오프라인으로는 공동체 육아를 통해 아버지들의 고민이나 공감을 함께 나누며 "함께육아"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온라인으로는 100인의 아빠단 육아커뮤니티를 통해 놀이, 교육, 건강, 일상, 관계 멘토들이 매주 1회 과제를 게시하여 매주 무엇을 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란 고민을 하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아빠육아 문화를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아빠단의 시작은 2011년 남성육아 참여 활성화 사업으로 "함께육아"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전국에서 육아에 관심 있는 초보 아빠 100명이 모여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발대식을 시작으로 시행되었다. 100인의 아빠단 1기 당시에는 "마더 하세요(마음을 더하세요)"캠페인으로 마더 배우미, 마더 나누미, 마더 알리미로 나뉘어져 마더 배우미는 가사, 육아, 놀이, 요리, 건강과 관련된 육아 비법을 연예인이 스타멘토가 되어 알려주고 마더 나누미는 다함께 즐거운 가정을 알리는 아빠 리포터가 되어 활동한다. 마지막 마더 알리미는 유쾌한 우리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누리소통망(SNS)에 공유하는 활동을 하였다. 당시에는 육아에 참여하기 어려운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했었다. "바깥아빠, 바깥남편" 15년이 지난 지금 1기의 용기 있는 아버지들 덕분에 지금은 아빠육아 문화의 변화가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당시에 아빠의 사랑을 처음으로 온전히 받은 아이들은 15년이 지난 지금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빠육아의 효과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그 후 100인의 아빠단은 한 번의 대전환기를 맞이한다. 2019년부터 전국에서 100명이 아닌 전국 각 지자체와 인구보건복지협회 지역별 지회와 연계하여 서울부터 제주까지 17개 시도에서 직접 100명을 모집하여 총 1700명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00인의 아빠단 커뮤니티.(필자 제공) 이때부터 지자체별 아빠단 1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멘토들도 더 다양해지며 실제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100인의 아빠단 우수 아버지들도 합류하게 되면서 양육을 고민하는 아버지들의 공감을 더욱 이해하며 활동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2024년부터는 육아 전문가 멘토 5명이 합류하여 더욱 전문성을 높여 나갔다. 2025년 아빠단의 시작은 멘토들이 알리며 시작되었다. 지난 4월 23일에 전국에서 뽑힌 멘토들의 오리엔테이션(OT)과온라인 발대식이 이루어졌다. 특히 14기까지 이어오며 보건복지부 사업 특성상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100인 아빠단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매년 아빠들이 속상해했는데 올해부터는 초등 2학년(만 8세 )까지 확장되어 아빠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이처럼 아빠들이 함께하는 육아는 매년 그 성장세가 증가하고 있다. 세종시 100인의 아빠단 활동 모습.(필자 제공) 인구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2019년 17개 지자체로 처음 확대되었을 당시 1700명 모집에 1574명이 선발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5년이 지난 2024년에는 총 2023명이 선발되며 오히려 1700명을 훌쩍 넘겨 버렸다. 올해는 더 많은 아빠가 선발되어 아빠육아의 혜택을 받으며 육아문화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이는 대도시지역의 저출생 문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경북지회는 올해 100인의 아빠단 대구 지역 신청자가 140명에 달한다고 이야기하며 작년보다 아빠들의 활동이 더욱 왕성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지회의 경우는 100명 모집에 257명이 신청하며 2.5:1의 경쟁률의 인기에 힘입어 기존보다 많은 190명의 아버지를 선정하였다. 결국 67명은 아쉽게 선정되지 못하고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아빠 육아 참여의 효과는 2023년 보건복지부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0~5세 아동 발달 수준으로 볼 때 아버지가 양육에 참여할수록 아이들의 인지, 언어, 사회성 등의 발달이 증가한다고 나타났다. 이제 아버지들은 양육 참여로 내 아이의 발달 성장을 촉진 시키기 위해 당연히 양육에 참여하고 있다. 단, 어떻게 놀아주고 교육해 줘야 아이들에게 더 좋은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빠라면 전문가와 육아달인 선배 아빠들이 있는 국가가 인정한 아빠육아커뮤니티 "100인의 아빠단"을 추천한다. 4월 30일부터 첫 놀이 과제가 시작되었고 선발이 되지 않았더라도 과제는참여할 수 있기에 전국에 있는 아빠들과 네트워킹을 이루며 아빠들의 세상에 함께해 보길 권한다. 현 시대 아버지 육아 참여는 대한민국에서 당당한 아빠들의 가족을 위한 노력이자 권리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으로 활동하며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육아와 남성육아휴직 인식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05.15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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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한때 모두의 즐거움이었던 '우표'의 귀환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우표가 지금은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것이 커다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한때는 모두의 즐거움이던 우표가, 다시 또 이 시절에 누군가의 즐거움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5월, 날씨가 요사스레 변덕을 부린다. 하루는 여름이다가, 다음 날은 겨울이 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 덕분에 장롱 안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옷들이 뒤섞여 난리가 나버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 연휴에 큰마음 먹고 장롱 정리를 시작했다. 잔뜩 걸려있는 두꺼운 겨울옷을 정리하다 보니,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초등학생 시절의 일기장과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 어린 내가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보물들이 튀어나왔다. 그 중,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것은 '6학년 4반 이재우'가 우표를 모아 만든 책받침이었다. 벌써 삼십여 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추측하건대 아마도 방학을 맞아 '취미와 관련된 만들기 작품 제출하기' 같은 숙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취미가 무엇인지는 고사하고, 취미의 뜻도 제대로 몰랐을 어린 시절의 나는, 당시 가장 대중적인 취미였던 '우표 수집'을 주제로 숙제했던 것 같다. 필자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표로 만든 책받침. 그랬다. 1990년대는아이들도 '내 취미는 우표 수집'이라고 할 정도로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체국 선배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날이면 새벽부터 우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우체국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몇 년 전, 빵을 사면 들어있는 캐릭터 스티커 모으기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1990년대에는 '우표'가 그 정도 위상이지 않았을까. 시대가 변하면서 손으로 쓴 편지가 귀해지고, 그만큼 우표를 보기도, 우표 수집가를 보기도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우표 수집은 여전히, 충분히 매력적인 취미이다. 부피가 작아 보관이 쉽고, 금액이 비싸지 않아 부담 없이 살 수 있으며, 매년 다양한 디자인의 기념우표가 발행되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 우표만으로 수집욕을 채우기에 부족하다면 해외에서 발행되는 우표로 시선을 돌리면, 얼마든 원하는 만큼의 확장을 할 수 있으니, 이 어찌 매력적이지 아니할까. 이처럼 큰 매력을 지닌 '우표'는 크게 '보통우표'와 '기념우표'로 구분된다. '보통우표'는 우편요금의 납부를 주목적으로, 발행 기간과 발행량이 정해지지 않은 채 소진된 수량만큼 지속적으로 발행되는 우표를 말한다. 반면, '기념우표'는 특정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행되며, 발행 기간과 발행량이 정해져 있는 우표로, '보통우표'보다는 희소성이 있는 우표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기념우표는 우정사업본부 고시에 의거하여 발행되는데, 우정사업본부는 매년 '국내외 주요 행사, 인물, 자연, 과학기술, 문화 등'의 색다른 주제를 선정하여 1년에 약 10~20회 정도의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2025년에는 총 21종의 발행이 계획되어 있으며, 지난 5월 8일에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사랑스러운 아기' 우표가 발행되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발행하는 기념우표 외에도 각 지방의 우정청이나 우체국,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자체적으로 기념우표를 기획·제작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1년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지방우정청과 강원일보사가 협업하여 발행한 우표첩 '찬란한 강원의 어제와 오늘'은 '강원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담아낸 소중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기념우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큰 호평을 받았다. 강원도테마우표첩 '찬란한 강원의 어제와 오늘' 중 '강원의 희로애락'편. 또한 지난해 태백우체국에서 발행한 '별빛 가득한 태백 은하수 기념우표', 올해 4월 양구군에서 발행한 '양구 9경 선정 기념우표'는 강원의 청정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어,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지자체를 홍보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우표가 지금은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것이 커다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한때는 모두의 즐거움이던 우표가, 다시 또 이 시절에 누군가의 즐거움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강원지방우정청 회계정보과 소속으로 2022년 공직문학상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화로 옮겨내 수상의 기쁨을 얻었다. 우체통과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우체국에는 온갖 이야기를 담은 우편물과 택배가 가득하다. 이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동화로 옮기는 중이다. 2025.05.13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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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기행 새우젓처럼 요긴한 삶이여! 강화 소창과 갈비젓국 방직팔이에 나선 억척스러운 강화 여인들의 쉰밥, 찬밥에 더없이 요긴했을 이 새우젓을 생각하면 그만 울컥, 해진다.그리고 끝내, 나와 어린 동생 둘 다 소창 기저귀 삶아 키운 엄마를 또 생각한다.맙소사,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 시인의 시를 생각한다.눈물은 왜 짠가, 새우젓은 왜 이다지 짠가, 우리네 인생은 왜 이렇게 애잔한가.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서울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쉽사리 만나는 근교 나들이 강화도를 가리켜 흔히 역사의 섬, 호국의 섬이라고 한다. 제주도와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강화도는 섬 전체에 유구한 역사가 굽이굽이 서렸대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선사시대의 흔적 고인돌부터 대몽항쟁의 거점이자 서구 열강의 침략을 온몸으로 막아온 마지막 관문과 같은 섬. 하지만 내게 강화는 그 모든 통한의 역사를 뒤로하고 계절마다 흥분시키는 식도락의 땅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봄바람 살랑거리면 숭어회, 봄 내음이 깊어지면 병어회, 녹음이 짙어지면 밴댕이, 가을이면 통통하게 살 오르는 대하(엄밀히는 양식 흰다리새우)와 갯벌장어 등. 강화 특산품 순무와 고구마도 있지만갯것들만으로도 강화는 충분히 사계절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그리고 강화는 무엇보다 마니산의 땅이다. 강화 8경에 속하는 마니산은 강화도 남서단이자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했다고 한다. 해발 472.1m의 마니산 정상엔 익히 알다시피 단군왕검이 천제를 올리던 참성단(塹城壇)이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가 행하고, 전국체전의 성화가 채화되는 민족의 영산. 나는 마니산을 퍽 좋아한다. 등정 자체가 그렇게 어렵지 않거니와 마니산은 한민족의 일원임을 자부하는 나의 정체성을 일깨운다. 아들내미 태권도 도장에서 가을 캠프로 해마다 마니산 등정을 떠나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근데 마니산도 아니고 로컬100에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 이름 올린 것을 봤을 때 솔직히 의아했다. 몇 해 전,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방직공장을 거대한 카페로 변신시킨 명소를 다녀온 터라, 이것 외 또 어떤 볼거리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이번에 둘러본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는 재미를 넘어 감동과 쾌감까지 선사했다. 1933년 강화 최초의 인견 공장 '조양방직'이 설립된 이후 1970년대까지 강화에는 무려 60군데가 넘는 방직공장이 있었다. 현재도 6개의 소창공장이 옛 방식 그대로 소창을 직조하고 있다니 놀랍기도 했다. 소창, 인견 제조로 명성 자자했던 강화직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폐 소창공장 '동광직물'을 생활문화센터로 개관하고, 1938년에 건축된 한옥과 염색공장이었던 '평화직물' 터를 리모델링하며 '소창체험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창체험관 전경.(필자 제공) 소창은 옷이나 행주, 기저귓감으로 많이 쓰는 천으로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로 짠 천인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면화를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에서 수입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금에야 대구가 직물산업으로 유명하지만 강화는 수원과 더불어 3대 직물 도시였습니다. 강화읍 권에만 60여 개 공장이 성행했고, 4000명이나 되는 직공들이 근무하면서 경제 활동을 했지요. 큰 방직공장은 임금도 후하게 쳐줘서 당시만 하더라도 어린아이도 일하던 때라, 열 몇 살 된 어린 직공들도 방직공장 다니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었죠. 12시간 주야간 교대하며 먼지 사이에서 근무했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아무래도 서울의 배후도시였던 것도 한몫했을 터, 그러고 보니 강화는 예부터 화문석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화문석(花紋席) 하면 이름 그대로 꽃무늬를 놓은 자리 꽃돗자리. 특히 강화의 강화 왕골은 순백색 완초의 기질이 있어 엮었을 때 문양이 기품 있고 아름다우면서 튼튼하고, 보온과 통기성이 뛰어난 인기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왕실이나 벼슬아치의 초상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화 화문석은 이미 고려 때부터 외국으로 수출과 동시에 사신에게 선물하던 극상품으로 명성 자자했다. 최고의 화문석을 짜던 강화 사람들의 손길은 방직으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맨 처음 수입해 온 콘 형태로 둘둘 말린 원사를 풀어서 타래를 만드는데 원래 목화에서 뺀 실은 약간 누렇다. 이 면사를 풀어 풀을 먹이며 삶고, 말린 풀을 건조해야 한다. "가마솥에 끓이면서 표백과정을 거친 후 옥수수 전분으로 풀 매김을 하죠. 이걸 또 건조하는 데 봄이나 여름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사흘이면 자연건조가 되고 겨울에는 한 일주일 정도 말려야 해요." 어느새 뽀얗고 부들부들해진 실을 씨실과 날실을 따로 뽑은 뒤 베틀에서 서로 교차시켜 평직물로 만드는 이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 수작업으로 이은 소창 실.(필자 제공) 남녘 마산에서 자란 나는 한 시절을 풍미한 '한일합섬'과 친숙한 터라 방직의 흔적에 묘한 향수를 느낀다. 솔직히 소창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되뇐다. 성격 깔끔한 나의 엄마는 삼남매 기저귀를 이 소창으로 만들어 쓰셔서부뚜막에선 늘 이 소창 기저귀를 삶던 기억이 있다. 아니, 내 기억 속의 소창은 행주일지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도 소창행주를 삶아 쓰니까. 소창은 발진이나 땀띠, 아토피에도 효과 있어서 지금도 꾸준히 수요가 있다니 반갑다. 소창체험관 담을 장식한 조형물.(필자 제공) "천이 다 완성되면 강화 여인들은 직접 이 방직물을 둘러매고 삼삼오오 조를 이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직접 판매를 했습니다. 지금의 '방판' 격이죠. 중간상인 없이 직접 팔았으니 아무래도 마진이 좋았겠지요? 배 조금 타고 나서면 북한 개풍이 가까워 그리도 많이 가셨다네요. 강화도 여인들이 억척스럽고 뻔뻔하단 말을 많이 듣는데 이 천 쪼가리들을 둘러메고 가는 건 물론 앞치마에다 새우젓 싸 갔답니다. 집마다 돌아다니다가 배고프면 아무 부엌이고 들어가 신세 지며 밥 한 덩이 겨우 얻어 이 강화 새우젓 하나를 찬 삼았습니다." 방직물을 직접 '방판'했다는 이야기도 새로운데, 강화도 새우젓을 주머니에 끼고 다녔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긴가! 필시 농사 비수기에 전국으로 품팔이하러 나선 강화 여인들에게 물기 꽉 짠 새우젓 한 점은 유일하게 싸다닐 수 있는 찬이었을 터, 그 얼마나 고맙고 귀한가. 전국 물량의 70~80% 담당하는 강화 새우젓, 혹은 젓새우. 서해안 전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게 젓새우지만, 강화는 드넓은 갯벌로 새우의 서식 환경이 좋은데다 무엇보다 한강과 임진강 두 개의 거대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든 터라 젓새우의 맛이 월등하다고 전한다. 짠맛이 강하기보다 들큼하면서도 담백해 지금도 늦가을 김장철이면 강화 새우젓을 사려는 인파로 섬이 들썩인다. 그리고 강화의 새우젓이 낳은 소박한 향토음식이 바로 젓국갈비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갈비젓국이 아니라 '젓국'을 당당히 앞에 놓은 바 이 음식의 주재료는 갈비도 호박도 두부도 그리고 냄비를 수북하게 덮은 배추도 아닌 '젓국'이다. 바로 새우젓이 이 모든 재료를 압도하는 주인공이다. 강화 향토 음식 젓국갈비. 새우젓이 주인공이다.(필자 제공) 조그만 돼지고기가 뼈다귀 살점 몇 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갈비'라는 이름이 거들긴 했으나 새우젓이 주는 파급력을 능가할 수 없다. 고기붙이의 기름기가 분명 더해지긴 했으나 이 슴슴하면서도(표준어는 심심하다지만 여기선 슴슴이 어울린다) 배추에서 우러난 단맛, 젓새우가 선사하는 더 찝찔한 감칠맛의 조화는 도드라지는 재료 하나 없이도 오묘한 맛을 낳았다. 특히 갈비보다 살짝 숨죽은 배추가 일품이다. 육수에 채소를 데치는 '샤부샤부' 이전에 강화 사람들은 젓국 하나로 이렇게 멋진 작품을 낳은 것이다. 두부며, 호박이며, 어느 하나 제 잘났다고 나서는 녀석 없이 맛이 둥글둥글하다.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고 부드러워진달까? "외포리가 새우젓으로 유명하지만, 저희 가게는 창후리에서 젓을 떼 옵니다." 강화 창후리는 교동도 길목, 교동 앞바다는 강화에서도 최고의 새우잡이 터로 꼽힌다. 강화에서 최고라면 전국 최고일 터 - 지금도 강화엔 몇 개의 여남은 젓국갈비 가게가 성행 중이다. 맛이야 대동소이하지만 절대 인공감미료로 흉내 낼 수 없는 새우젓의 미미한 감칠맛이 분명 뛰어난 집이 있으니 가게 선택이 중요하다. 대미필담(大味必淡)이라, 정말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담백하다고 한다. 흔히 평양냉면 같은 고급 음식에 더러 차용되는 말이지만 나는 젓국갈비를 대미필담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애호박의 단맛, 배춧잎의 구수한 맛을 끌어올리는 저 미미한 새우젓이 맛의 한 끗을 좌우한다. 오늘 소창의 역사를 알고 나니 이 새우젓이 유독 달라 보이는지 모른다. 방직팔이에 나선 억척스러운 강화 여인들의 쉰밥, 찬밥에 더없이 요긴했을 이 새우젓을 생각하면 그만 울컥, 해진다. 그리고 끝내, 나와 어린 동생 둘 다 소창 기저귀 삶아 키운 엄마를 또 생각한다. 맙소사,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 시인의 시를 생각한다. 눈물은 왜 짠가, 새우젓은 왜 이다지 짠가, 우리네 인생은 왜 이렇게 애잔한가. 로컬100 칼럼 작성 차 들렀다니, 갖은 이야기 다 들려주시며 무척이나 친절하셨던 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 직원들과 문화해설사에게도 다시 또 감사하다. 세상은 이리 감사할 일이 도처다.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에서 체험객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필자 제공) ◆ 소창체험관 주소 |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20번길 8 영업시간|매주 월요일 휴관 / 오전 10시~오후 6시 문의전화 | 032-934-2500 ※소창 스탬프 체험(매일) 20분 이상 (무료, 단체 시 사전예약) ☞'강화군' 누리집 '소창체험관'관련정보 바로가기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 주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35 영업시간|1월 1일, 명절 당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날 휴무) 운영10:00, 11:00, 13:00, 14:00, 15:00, 16:00 (회당 약40분 소요) 문의전화 |032-934-8708 ※직조체험 무료 프로그램 (초등학생 이상, 정원 10명) : 예약 전화 ☞ '강화군' 누리집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 바로가기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2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 2025.05.08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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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 지역에 부는 온기나눔 바람 '볼런투어' 여행문화의 발전속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중심에 두고 사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여행을 특별히 '볼런투어(Voluntour)'라고 부른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나눔과 교류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 여행, 그것이 바로 볼런투어의 진정한 의미다. 김의욱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센터장 코로나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이후 사람들 사이에는 예전과 다른 '사회적 거리감'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게 되었고, '낯설고 새롭고 다른 것'에 대해서 혐오하거나 거부하는 정서가 팽배해졌다. 개인들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으며, 단절감의 벽이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고립과 외로움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공동체의 문화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23년부터 '온기나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온기'는 사람의 체온이 주는 좋은 기운을 말한다. 이 온기는 촉감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태도와 행동을 통해서 서로 알아챌 수 있다. 이처럼 온기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느끼고 알아채는 호혜적 온도다. 이런 온기가 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캠페인이라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온기나눔 캠페인은 온기를 품고 있는 자원봉사, 자선사업, 기부운동의 관련기관들과 행정안전부는 온기를 나누는 지속가능한 환경과 기반을 만들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관련 법을 개정하고, 협력을 통해서 문제의 해결력을 높일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왜냐하면 온기를 나누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실제적인 문제해결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점차 온기나눔 캠페인은 중요한 계절마다, 절기마다, 그리고 재난과 같은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동군자원봉사센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하동 자원봉사 첫걸음인생 2막 첫걸음' 참가자들이 지난해 10월19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공원에서 열린 '섬진강 달마중' 행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하동군자원봉사센터) ◆ 서로의 온기를 주고 받는 '볼런투어' 우리가 익숙한 삶의 공간을 벗어나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여행' 혹은 '관광'이라고 부른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관광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여행은 그곳의 사람들과 장소를 깊이 있게 만나고 관계를 맺는 '상호작용'에 더 큰 의미를 둔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여행의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낯선 곳에 가보고, 낯선 문물을 구경하는 관광이 주를 이뤘지만 점차 여행자의 관심과 욕구를 반영한 다양한 경험이 중심이 되는 여행이 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초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이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몇 개 나라를 가봤는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새로운 경험과 발견이 있었는가'가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결국 오늘날의 여행은 단순히 '어디를 갔는가'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연결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장소 중심의 관광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경험 중심의 여행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문화의 발전속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중심에 두고 사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여행을 특별히 '볼런투어(Voluntour)'라고 부른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나눔과 교류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 여행, 그것이 바로 볼런투어의 진정한 의미다. 볼런투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의 시작점인 여행지 선택부터 특별한 의미와 목적을 담는 기획이 핵심이다. 이때 선택되는 여행지는 단지 아름다운 경관을 넘어, 그 지역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장소, 숨겨진 오지의 비경을 찾아가는 여행, 기후위기로 인해 재난을 겪은 지역을 찾아가는 여행은 모두 그 지역에 대한 배려와 긍정적인 영향을 전제로 기획된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아울러, 소중한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나누는 여행도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염두에 둔 볼런투어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목적을 가진 볼런투어에서는 여행지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여행은 단지 장소를 보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와 연결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여행의 전 과정 속에서 만남은 단순한 스침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순간들로 이어지며, 이는 곧 여행자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서로를 통한 변화의 경험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일방적인 도움이 아닌,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며 생각이 확장되는 '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으로서 여행자와 지역주민이 함께 긍정적 변화를 얻게 된다. 의성군자원봉사센터가 진행한 '여행어때 봉사어때 의성어때' 볼런투어에 참여하며 농촌일손돕기 설명을 듣는 대학생 참가자들의 모습 (사진=의성군자원봉사센터) ◆ 멀어진 사회적 거리를 다시 잇는 온기나눔 여행 올 봄에 온 국민이 경험한 산불은 기후위기가 어느 낯선 나라의 문제나 앞으로 다가올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봄에 우리 마을 뒷산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문제로 확인시켰다. 더구나 이 산불의 피해지역들은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심각한 위기지역 이기도 하다. 이렇듯 기후위기와 지역의 위기, 고령화와 저출생과 같은 인구위기는 우리의 일상을 규정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이 봄에 서로가 가진 온기를 나누고, 서로 느낄 수 있는 만남이 더욱 절실하고 소중해졌다. 전국의 자원봉사센터에서는 산불피해지역의 응급복구가 마무리 되면서 새로운 온기나눔 캠페인을 시작했다. 피해지역 주민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돌보고, 서로의 온기를 전하는 재난회복 여행이 그것이다. 5월 가정의 달에는 많은 지역에서 산불피해지역의 마을을 찾아가서, 서로의 손을 맞잡는 볼런투어가 진행된다. 영덕군에서는 볼런투어 참가자들이 함께 진달래를 심는 공원 만들기도 추진하고 있다. 이 봄, 서로 멀어진 지역과 지역을 다시 연결하고, 개인과 개인들을 만나게 하는 온기나눔 여행이 많은 지역에서 제안되고 있다. 온기를 나누는 이 봄의 여행을 통해서 멀어진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이어보자. 2025.05.02 김의욱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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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아이가 태어나는 도시, 우리가 꿈꾸는 미래 이제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조건'을 넘어, '아이를 낳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일 것이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며 인구 구조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4년 소폭 상승 하였으나 감소하는 출생아 수는 단지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소멸, 경제 성장 둔화, 사회복지 부담 증가 등 미래 사회 전반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단순한 숫자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듯이 지금은 바로 '아이가 태어나기 좋은 도시, 부모가 행복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전환점이다. 전국 지방 중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은 이미 전체 기초자치단체의 절반을 넘겼다. 전라북도 고창군, 경상북도 의성군, 강원도 인제군 등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20년 내 행정 기능과 교육, 의료 서비스 등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경북 의성군은 현재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50%에 육박했으며,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곧 지역의 일자리 축소 청년 유출 출산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고착화시킨다. 지역 소멸이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 서울과 인천도 위기를 직면하고 현실감 있는 양육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수도 서울과 출생률 증가율 전국 1위 인천의 양육 정책을 비교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은 출산지원금, 아이돌봄 서비스, 공공보육시설 확충 등 여러 방면에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높은 주거비용과 육아시설 접근성의 불균형으로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다. 반면 인천시는 산후조리원 비용 최대 150만 원, 첫째부터 육아수당 지급, 아이 플러스 시리즈, 천사지원금, 육아종합지원센터 확대 등 실질적이고 체감 가능한 정책을 통해 시민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정책의 총액이 아닌 체감도와 접근성이 출산 결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 양육정책의 사례이다. 인천시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지원금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양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인천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브랜드화를 통해 육아지원정책을 체계화하고 있다. 공공어린이집 비율 확대, 부모 교육 및 심리지원 확대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며, 인천시만의 특별한 혜택으로 부모들의 양육 불안을 줄이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서 신생아들이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다. 2025.2.26.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은 많은 노력으로 2024년 출산 의향이 68.5%로 전년 대비 12% 올라갔지만 정책이 분산된 형태로 작동하며, 육아가 고립되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돌봄 공백은 저출생 극복을 위해 서울 뿐 아니라 과밀지역에서도 꼭 해결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다. 저출생 문제 극복에 있어 실효성이 높았던 육아 정책들의 공통점은 '생활 밀착형 정책'과 '민간-공공 협력 체계' 다. 아산시의 경우 '100원 택시-산모 전용', 인천시의 '가족친화 인증제', 광주시의 '출산축하용품 패키지 제공' 등은 소규모 예산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정책은 '지속성과 체감도'의 효과성이 올라가고 예산 대비 만족도가 높아, 중소도시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정책 모델이다. 또한, 아빠 육아휴직 장려, 탄력근무제 의무화, 출산 직후 부모 상담 서비스 등은 단기적 출산율 개선뿐 아니라 양육 지속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의 효과성과 실효성 있는 정책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3가지 과제를 요약해 본다. 첫째 제도적 연속성이다. 정부 지자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산정책이 단절되지 않도록, 국가 기본법에 근거한 출산-육아 정책 통합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기업과의 파트너십이다. 육아휴직, 유연근무제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도록 가족친화기업 인증 및 조직문화의 변화와 정책 사용 인센티브제 도입,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급하다. 셋째 시민 인식 전환이다. 출산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이 키우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기쁨'으로 바꾸는 건강한 문화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도시의 모습과 지향해야 할 도시는 단지 출산율이 높은 도시가 아니다. 아이 키우는 것이 자랑스러운 도시, 부모가 존중받는 도시, 함께 돌보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여야 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란 공공보육, 안전한 양육 환경, 촘촘한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다. 부모가 행복한 도시란 일과 육아의 균형을 지원하는 기업문화와 아이 키우는 부모를 지지하고 인정하는 지역사회 문화가 정착된 도시다. 아이 낳고 살고 싶은 도시란,출산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양육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행정과 미래가 있는 도시다. 자랑하고 싶은 도시는부모와 아이가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제공받으며 시민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주어지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도시다. 이러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저출생을 극복하는 길이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저출생은 분명 우리 사회의 위기이지만, 이 위기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의 재설계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을 바탕으로 각 지자체와 기업, 시민들이 역할을 나누고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 회복에 협력한다면, 아이들이 웃으며 자랄 수 있는 사회는 절대 멀지 않다. 이제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조건'을 넘어, '아이를 낳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일 것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으로 활동하며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육아와 남성육아휴직 인식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04.30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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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개 유엔회원국과 수교 완결, 외교관계 대기록 세우다 한국은 지난해 2월 북한과만 수교해 오던 '쿠바'와 외교 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이번 '시리아'와의 수교까지 성사시키며 '모든 유엔 회원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대기록을 세웠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 2025년 4월 10일, 대한민국은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마지막 미수교국이던 시리아와 마침내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극비리에 수도 다마스쿠스를 찾아 이뤄낸 이번 수교는 한 편의 외교 첩보극을 방불케 했고 우리 외교 지형에서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조 장관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 어렵게 마련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리아를 방문했다"며 양국 수교를 '끝내기 홈런'에 비유했다. 현재 시리아 과도정부를 이끄는 이슬람주의 반군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시리아해방기구)이 지난해 12월 초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면서 가능해진 놀랍고도 반가운 변화다. HTS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이후 알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워왔다. 2024년 11월 말, 전열을 재정비한 HTS는 다마스쿠스에서 300㎞ 떨어진 거점을 출발해 열흘 만에 수도를 장악했다. 정부군은 이렇다 할 저항조차 못 한 채 투항했고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리던 알아사드는 후원국인 러시아로 도주했다. 1970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이래 54년간 이어진 부자 세습 독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한국은 지난해 2월 북한과만 수교해 오던 쿠바와 외교 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이번 시리아와의 수교까지 성사시키며 모든 유엔 회원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대기록을 세웠다. 북한은 주요 해외 공작 거점을 또 잃게 되었고, 외교적 고립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실제로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하던 당시 현지 북한대사관은 서둘러 철수했다. 한국은 이번 시리아와의 수교를 성사시키며 북한을 제외한 191개유엔 회원국 모두와외교 관계를 맺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진은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 모습.(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시리아 세습 독재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독재체제 특유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독재체제는 겉으로는 평온한 정치 상황을 유지하는 듯 보이다가도, 별다른 전조 없이 극적으로 무너지는 속성을 지닌다. 억압과 통제로 내부 여론을 차단한 결과, 체제는 몰락의 징후조차 감지하지 못했고, 부패와 불신 속에 한순간에 무너졌다. 독재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중동 정세의 급변도 시리아 몰락에 결정적이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지상전을 거쳐 2024년 10월 역내 '새로운 질서' 작전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이 후원한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사실상 와해됐고, 이란 혁명수비대도 큰 타격을 입었다. HTS가 다마스쿠스로 진격할 당시 시리아의 오랜 뒷배 역할을 해온 이란은 정부군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었고, 우크라이나전에 발이 묶인 러시아 역시 무기력했다. 북한과 닮아 있는 시리아 정권의 몰락은 북한에 실존적 불안감을 안겨줄 것이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알아사드 정권은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과 혈맹 관계를 이어왔고 시리아처럼 북한도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에 생존을 의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까지 약속한 북한으로서는, 최근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밀월 기류가 어디까지 진전될지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2025년 1월 HTS 수장 아흐메드 알샤라는 과도정부를 구성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알샤라 대통령은 "전쟁으로 붕괴된 경제와 국가 제도를 복구하고 헌법 채택과 선거 시행까지 최대 4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내전 이후 경제가 85% 이상 위축되고 인구의 90%가 빈곤선 이하에 놓인 절망적 상황이 최대 과제로 지적된다. 시리아는 한국의 경제 성장 비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발전 모델을 배우기 위한 실무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개발 경험 공유, 인도적 지원, 경제 재건 협력을 제안했다. 실제로 한국은 많은 중동 국가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경제를 이룬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중동 이슬람 국가들은 전통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상 사회주의 체제나 서구식 자유주의 모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우리의 경험이 새로운 시리아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확신을 줄 수 있길 바란다. 2025.04.30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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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공원 벤치와 낡은 의자, 어르신의 선택은? 일상을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지역 주민들의 하루 삶이 비추어 내는 실태와 경험이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어 국민 체감적 정책이 수립되기를 소망한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날씨 좋은 어느 날 어르신들이 공원에 모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떡과 음료를 나누시는 즐거운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디에서 가져오신 것인지 모를, 때로는 대형폐기물 스티커까지 붙어 있는 낡고 고장난 등받이 의자를 가져오셔서 둘러앉아 계신다. 공원에 어르신들이 앉을 곳이 부족해서인가 하여 둘러보면 버젓이 평상형 벤치가 설치되어 있지만 어르신들은 낡고 고장난 의자에 앉아 계신다. 필자가 직접 어르신들께 여쭈어보니 그곳의 벤치는 불편하다 하신다. 낡고 허름할지언정 이 의자는 등을 기댈 수 있고 엉덩이를 앉힐 좌판도 쿠션이 있어 차갑지 않다고 하신다. 운이 좋아 팔걸이까지 멀쩡한 의자를 구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 말씀하신다. 지자체에서 멋있고 깔끔하게 조성한 공원의 정자와 평상, 벤치는 등받이가 없고, 오래 앉아 있기에 딱딱해서 엉덩이가 배기며, 여름과 겨울에 뜨겁고 차가워 앉기 싫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의 휴게의자.(필자 제공)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어르신을 위하며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집과 마을, 도시와 지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절대적으로 정책 대상자의 삶을 살펴보고 개선점을 찾아야 함을 반증하는 일화이다. 국민의 일상적 하루 삶을 현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국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확인해야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평상과 벤치 대신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의 일상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어르신들의 일상적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와 통계 자료로는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가 있다. 노인 실태조사는 '노인복지법'에 근거하여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65세 이상 어르신 1만여 명의 건강과 기능 상태, 돌봄 실태 등과 함께 거주 주택의 종류와 편리성을 조사한다. 주거실태조사는 '주거기본법'에 근거하여 국토교통부가 매년 전국의 일반 가구와 노인·장애인 등 특수가구를 대상으로 자가보유율과 점유형태, 주거부담 및 주택과 주거환경 만족도 등을 조사한다. 다시 말해 "집에 방은 몇 개입니까?", "지금 사시는 곳에서 몇 년 거주하셨습니까?"와 같은 사실을 확인함에 집중하는 일종의 사실 확인식 조사라 할 수 있으며, 어르신들의 평균적 삶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국가승인통계로써 활용가치가 높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의 일상적 삶의 부족과 불편에 대한 지원은 "집 현관은 이용하시는데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공원과 공원 시설물 이용에는 무엇이 불편하십니까?"와 같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활환경에 대한 인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할 것이다. 실태조사와 같은 사실 확인식 조사와 일종의 경험 체크식 조사가 결합될 때 우리 사는 마을과 지역에서 부족하고 불편한 부분에 대한 국민 체감의 지원 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 커뮤니티 정책연구센터가 2021년 발간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은 이러한 어르신들의 경험 체크식 조사결과를 종합한 예시가 될 수 있다. 해당 발간물의 내용 중에는 기존 노인실태조사 또는 주거실태조사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어르신들의 주거공간 중 불편하고 위험한 장소로서 인식되는 화장실이 불편하고 위험한 이유로 욕조의 높이가 높아서 들어가기에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응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어르신에게 적정한 높이와 충분한 너비의 욕조, 앉고 서기에 편안한 변기, 미끄럼 방지를 위한 바닥재와 안전손잡이 설치 지원의 시급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집 밖을 나와 외부 활동 시에는 보행로의 고르지 못한 보도블럭으로 낙상을 경험하셨음을 확인하였으며, 어르신에게 안전한 보행신호가 여전히 짧아서 서둘러 길을 건너려다 낙상을 경험하셨음을 확인하며, 어르신이 많이 이용하시는 장소에 설치된 건널목의 보행신호 조정 필요를 시사하기도 한다. 자료제공 : 건축공간연구원 보고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2021)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어르신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준비하고 시행 중이다. 특히 올해는 향후 더욱 본격화할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 대응 국가 기본계획인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이 수립되는 시기이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및 다분야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주요 정책과제와 사업추진 방향을 설정하는 중이다. 국민 체감적 정책 개선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나아짐을 의미한다. 부디 일상을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지역 주민들의 하루 삶이 비추어 내는 실태와 경험이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어 국민 체감적 정책이 수립되기를 소망한다. ◆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 기획재정부 인구위기대응 TF 고령사회 대응반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국토교통부 인구대응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와 복지의 연계, 고령친화 공동체마을 등에 대한 고령친화 건축도시공간 정책연구 전문가이다. 2025.04.29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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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의 새로운 길, AI와 함께 만드는 예측의 시대 최근 정부는 산업재해의 대응 방식을 '예방'에서 '예측'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정책적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또한 AI가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판단하도록 학습하는 시스템은 이론을 넘어 실증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기술은 예측과 판단의 공백을 메우는 수단이며, 그 기술이 현장에 맞게 설계되기 위해서는 작업자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손병창 나사렛대학교 재활의료공학과 교수 4월 28일 '세계산업안전보건의 날'을 맞을 때마다, 산업현장에서 반복되는 사고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무겁다. 산업재해는 단순한 통계나 업무상의 변수로 설명될 수만은 없다. 그것은 한 개인의 생애를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며, 그 파장은 가족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를 마주할 때마다 반복하는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전문가로서, 또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산업안전은 단순히 사고를 줄이는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사회의 윤리적 성숙과 인문적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산업재해자는 약 13만 6천 명이었으며 사망자는 약 2천 명에 달했다. 광업, 건설업, 제조업이 전체 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소규모 사업장과 제조업의 기계 관련 사고가 집중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이는 특정 업종이나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와 문화, 기술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해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270만 명이 산업재해나 직업병으로 사망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매 15초마다 한 명이 일터에서 생명을 잃는 셈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열악한 안전관리 체계와 인력 구조로 인해 사고 발생률이 높고, 대응 역량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 일부 선진국은 AI 기반 예측 시스템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산업안전 수준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위험요소를 조기에 감지하고, 시스템 중심의 대응체계를 갖추려는 정책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정부는 산업재해의 대응 방식을 '예방'에서 '예측'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정책적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2025년부터 추진되는 '제조안전고도화기술개발사업'은 그 일환이다. 이 사업은 업종별 사고사례를 기반으로 AI 기술을 적용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식별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초기 적용 업종으로는 이차전지, 석유화학, 섬유 등이 선정됐다. 이들 업종은 단일 사고의 규모가 크고 반복되는 사고 유형이 뚜렷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6월 화성시의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는 31명의 사상자를 낳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섬유산업은 수작업 공정이 많아 끼임, 절단, 넘어짐 등 인적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으며, 유해물질 사용도 빈번하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국토교통기술대전'의 한 부스에서 선로 안전 로봇을 전시하고 있다. 2024.5.15(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산업안전이 갖는 기술적 접근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사고 유형별로 수년간 누적된 데이터(예컨대 끼임 사고는 2017~2021년 사이 총 3만8584건에 달함)를 기반으로, AI가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판단하도록 학습하는 시스템은 이제 이론을 넘어 실증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적용은 결코 기술 자체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제조안전 얼라이언스'라는 협업 구조를 통해 기업, 연구기관, 지자체가 함께 데이터를 공유하고 현장에서 기술을 실증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기술의 현장 적합성을 높이고, 제조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조선업계의 경우, 이미 실증된 AI기반 안전 시스템이 해외 수출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업환경의 구조적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정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작업자는 다양해지고 있으며, 작업환경의 변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안전은 숙련이나 경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기술은 예측과 판단의 공백을 메우는 수단이며, 그 기술이 현장에 맞게 설계되기 위해서는 작업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산업안전은 단순히 자동화 기기나 정교한 시스템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운영하고 적용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보호하려는 조직의 의지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져야 진정한 안전이 가능해진다. 결국 이 모든 기술적 진보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산업안전 기술은 설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다. AI 기술이 작업자의 스트레스, 행동 이상, 피로도 등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신규 인력 등 다양한 취약계층을 고려한 포용적 기술 또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안전은 기술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현장 구성원의 인식과 조직 문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술, 정책, 사람의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변화는 현실이 된다. 매일 반복되는 산업현장의 노동이 더 이상 생명의 위험과 맞바꾸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술은 그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며,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과 사회 전체의 선택이 자리한다. 산업안전은 특정 업종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는 고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일 현장의 사고라도 특정 지역을 넘어 국가 시스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안전에 대한 작지만 꾸준한 관심과 낯선 현장의 리스크에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이 시대의 안전 문화를 이루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산업재해는 사회의 기술 역량뿐만 아니라 윤리적 성숙도를 비추는 거울이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책임이며, 예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2025.04.29 손병창 나사렛대학교 재활의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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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퇴직 후, '부부 화목' 생각해 보셨나요? 퇴직 후 노후자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부부 화목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부부 모두가 낮 동안은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활동이든, 이 세 가지를 겸한 활동이든 자기만의 시간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퇴직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퇴직수기를 공모하는데 우연히 심사위원을 맡은 일이 있다. 심사를 위해 105건의 수기를 읽고 많이 놀랐다. 공무원들은 60세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도 받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 없을 것이라고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기 내용이 '퇴직하고 나니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더라'는 것이었다. 갈 곳이 없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고위직 공무원 한 분의 수기를 소개한다. 이 분은 퇴직도 했고 연금도 받으니까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 가지 못했다. 3개월쯤 놀아보니 즐겁기는커녕 답답해서 미치겠더라는 것이다. 가장 힘든 게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의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다. '저 양반은 오늘도 안 나가나?'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노인들이 신문 한 장 보려고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안 되겠다. 취직해야지'라고 결심하고여기저기 원서를 보냈는데 준비가 안 되어서인지 면접 보러 오라는 곳도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군데서 면접보러 오라는 통지가 왔다. 최근 들어 많이 생기고 있는 주간노인보호센터였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이웃나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기고 있는 이른바 노노(老老) 케어 일자리 중 하나이다. 면접에 합격하여 하루에 5~6시간 일을 한다고 했다. 노인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일이다. 이분이 성격이 싹싹한 분이고 또 시골에 혼자 계신 노모를 생각하여 성심성의껏 돌봐 드린다고 했다. 그래서 받는 월급 70만 원과 집에서 내던 건강보험료 30만 원을 합하여 100만 원을 벌어다 주고 집에 없으니까 그 수기의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렇게 무섭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 퇴직한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갈등문제를 다룬 TV토크프로에 출연하여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일도 있다. 참여자들에게 주어진 질문 중 하나는 퇴직한 남편이 낮에 집에 있으면 당사자인 남편이나 그 아내 입장에서 불편을 느끼느냐는 것이었다. 남녀 참여자들 대부분이 '불편을 느낀다'고 했다. 여성들은 퇴직하고 집에 있는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게 부담스럽고 왠지 속박을 당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했다. 게다가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게 너무 서투르고 잔소리까지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남성들은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은 아내의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는 대답이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다가 아주 사소한 실수로 핀잔이라도 듣게 되면 화도 나고 서글픔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20년쯤 고령사회를 앞서가고 있는 일본에서는 더 오래전부터 남편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어 있었다. 퇴직 후 부부 갈등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도 한다. 퇴직한 남편이 집에 있음으로 해서 아내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 이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증상으로는 우울증, 고혈압, 천식, 공황장애, 암공포증, 십이지장궤양, 키친드링커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라고 해서 '부원병(夫源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편 퇴직 후에 이렇게 부부 갈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커플문화를 가진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와 일본은 남편이 현역으로 있는 동안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분단된 세계에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남편이 현역으로 있는 동안은 배우자의 사정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각자 자기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남편은 회사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아내는 가사에 열중하다가 자녀양육이 끝나면 아르바이트, 취미, 지역사회 활동 등을 하며나름의 삶의 보람을 찾는다. 그런데 이렇게 분단되어 있던 아내의 세계에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 있게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퇴직 전에는 평일 저녁과 휴일에만 집에 있었던 남편이 거의 매일 집에 있다. 남편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때까지는 신경쓰지 않았던 남편의 성격이나 생활습관이 아내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나타나고 심한 경우 중년·황혼이혼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지난 이십수 년 사이 이혼 건수와 이혼율 자체는 크게 줄었는데, 전체 이혼건수 중 혼인지속기간 20년 이상인 중년·황혼이혼의 비율은 1990년의 14%에서 2023년에는 23%로 늘었다. 문제는 중년·황혼이혼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이다. 종래부터 있어왔던 이유인 성격차이, 경제문제, 배우자의 외도 등과 더불어, 퇴직 후의 부부 갈등이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인 걸 어찌하겠는가? 이 때문에 일본의 노후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후의 부부 화목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하고 있다. 특히 낮 동안은 가능한 한 부부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경남 거창군 신원면 해발 950m 고지 감악산 풍력 단지 정상 부근에서 한 노부부가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있다. (거창군 제공) 2022.10.7.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노후설계전문가 오가와유리 씨 같은 경우는 자신의 기고에서 퇴직 후 가장 인기있는 남편은 집안일 잘 도와주는 남편, 건강한 남편, 요리 잘하는 남편, 상냥한 남편 중 그 어느 것도 아니고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 쓸 정도이다. 우리나라 또한 남편 퇴직 후의 부부 갈등 문제가 빠르게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 서로가 퇴직 후의 부부 화목에 대해서 거의 준비를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중년·황혼이혼은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 이십수년 동안 이혼율은 꾸준히 낮아져 왔는데 전체 이혼건수에서 차지하는 중년·황혼이혼의 비율은 1990년의 5%에서 2023년에는 무려 36%로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배경에는 퇴직 후의 부부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언론을 통해서도 노후설계 강의 현장에서도 퇴직 후의 부부 갈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 후 노후자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부부 화목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부부 모두가 낮 동안은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활동이든, 이 세 가지를 겸한 활동이든 자기만의 시간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수 있는 다양한 설계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 2025.04.28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