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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 [UN/중국(中國)방문]북방(北方)정책 결실(結實) 극대화 대통령직(大統領職)은 원래 엄청나게 바쁜자리다. 국가 원수이면서 행정부 수반으로 대통령(大統領)은 국정 전반에 걸쳐 문자 그대로 만기친람(萬機親覽)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북방(北方)외교 마무리 일찍이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이 자리에서 끝난다는 표어를 걸어놓고 늘 자신의 막중한 책임을 다짐했다. 盧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아준 대통령으로서 역사와 민족앞에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여 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에 임하고 있기에 그 생활에는 여념(餘念)과 영일(寧日)이 없는 것이다. 盧대통령의 가을 외교(外交)일정은 중요한 뜻을 지닌다. 9월의 유엔 연설과 중국 공식방문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북방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10월의 콜 독일(獨逸)총리의 우리나라 방문은 통일문제에 대한 귀중한 대화의 자리가 될 것이다. 재임중 39개국과 수교(修交) 또한 11월의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우리나라방문은 동북(東北)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두나라의 공동보조가 취해지면서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전기가 될것이다. 盧대통령은 북방정책(北方政策)의 마무리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돌이켜 보면, 盧대통령은 지난달의 한(韓)·중(中) 수교(修交)로 재임기간에 무려 39개국과 수교한 셈이 되었다. 어느 나라 외교사(外交史0에도 이러한 기록은 없을 것이다. 이로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활동무대는 5대양(大洋) 6대주(大州)로 확장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등 주변 4강(强)모두와 외교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우리 외교는 편향외교에서 벗어나 전방위외교를 지향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개방 분위기 성숙 그뿐 아니다. 이제부터 북한의 문을 활짝 열수있는 결정적시기가 빠른속도로 닥쳐오고 있는 것이다. 盧대통령이 모스크바의 문을 열고 북경(北京)의 문을 열 때의 궁극적 목표는 평양(平壤)의 문을 열자는데 있다. 꼭 그러한 우회전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그것과 병행하여 남북대화(南北對話)를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북한(北韓)이 종당에는 개발과 협력의 길에 들어서도록 분위기를 성숙시키고 있는 것이다. 盧대통령이 전방위외교 지향과 함께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경제이다. 사실 盧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안에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두배로 늘리는데 성공한 지도자다. 국민총생산과 1인당 소득이 모두 두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뿐인가. 부분적으로 부작용이 있기는 했으나 주택2백만호를 새로짓겠다는 공약을 이미 달성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주택혁명을 이룩하기도 했다. 盧대통령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우리경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수 있는 기초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는 정치권(政治圈)에 맡기고 경제에 전념하겠다는 연두(年頭)기자 회견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경제부서들을 독려하면서 국민경제 전반을 일일이 챙기고 있는 것이다. 경제와 관련하여 盧대통령이 가장 주의깊게 챙기는 분야가 물가(物價)이다. 특시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서는 일일보고(日日報告)를 받다시피하고 있다. 국정(國政) 운영 성실이행 주택가격의 동향과 토지가격의 동향을 포함한 부동산가격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 국민경제의 기조를 뒤흔들 수 있는 부동산 투기가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출입의 동향도 盧대통령이 직접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일차적 관심분야이다. 자유무역의 시대인만큼 지난 날처럼 수입을 제한하기 어렵다는 제약이 크다. 그러나 국제수지를 개선하는것이야 말로 국가경제의 내실화(內實化)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뜻에서 임은 물론이다. 이처럼 盧대통령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그날까지 잠시의 흐트러짐 없이 국정 전반을 충실히 이끌것이다. 盧대통령의 매우 바쁜 24시는 임기를 마무리짓는 시기라 하여 국정에 공백이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하겠다. 1992.09.17
- [내고장 멋을 살린다] <1> 제주도-「기생화산(寄生火山)」형(型) 곡선(曲線)지분건물 권장 삼천리 금수강산, 천혜(天惠)의 자연속에 살아온 한국인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무색무취(無色無臭)의 획일화된 환경변화에 동화(同化)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이를 보다못한 사회 일각에선 우리것을 찾자는 운동이 서서히 일고 있다. 이와함께 당국에서도 나무와 지붕모양을 지역특성에 알맞게 바꾸어 나가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본보는 이를 계기로 이들 개량사업계획을 지역별로 연재키로 한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여건으로 오랫동안 한반도의 본토와 다른 가족제도와 생활관습등으로 인해 독특한 문화적(文化的) 지역성을 이루어 왔다. 섬특성 살린 독특한 문화 그래서 제주 문화(文化)의 특성은 기후와 풍토 등 자연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한 삶의 지혜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주거(住居)문화와 가로수에서도 잘 나타난다. 제주도의 전통민가는 초가(草家)로 1년에 몇차례씩 불어오는 태풍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독특한 양식을 취한다. 이 초가(草家)가 본토의 전통주거와 가장 뚜렷하게 차이나는 점은 마당을 중심으로 한 구심적(求心的)배치와 철저한 벌통배치의 형식을 들 수 있는데 외형상으로는 대가족이나 실은 핵(核)가족인 특이한 가족제도에 부합되도록 만들어진 한·밖거리형 주거패턴이라는 점이다. 이는 무속적 사고와 풍수지리의 영향, 기후적요구, 제주도 도민들의 자립정신에 기인하고 있다. 건축재료도 주변에 널리 있는 새(띠), 흙과나무 등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재료는 방습(防濕)효과가 클뿐 아니라 여름철에는 뜨거운 태양복사열(輻射熱)을 차단시켜 시원하게하고 겨울철에는 열용량이 큰 흙벽으로 시간 지연효과를 가져와 따뜻한 실내환경을 유지해왔다. 특히 초가(草家)지붕을 잇는 새(띠)를 얻기 위하여 새왓이라는 밭을 공동으로 관리해 왔는데 이 새왓은 산간지대의 토심(土深)이 얕은 한정된 곳에서 만 재배됨으로써 주민들은 공동(公同)으로 이땅을 개간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공동체(共同體) 의식을 함양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본토 발전의 도약기였던 1970년대 초 전국적으로 점화된 새마을 운동의 기운과 제주도의 건축재료가 과거 현무암, 새(띠)에서 철근, 콘크리트로 바뀌면서 제주인(人)의 삶의 양식을 지배해왔던 전통초가도 점차 소멸돼 현재 도(道) 전체 가옥의 18.7%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제주도지사로 부임한 이후 건축양식이 과거와는 달라 서구화(西歐化) 또는 고층화(高層化) 획일화(劃一化) 되는 것을 보고 새롭게 개발되는 구조재 치장재 단열재 방수재 등은 필수적이라고 해도 인근 오름(기생화산)을 닮은 초가(草家)지붕 형태의 곡선미(曲線美)는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관계전문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본토의 건축인들의 제주도 주거(住居)건축의 향토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이들의 애향심은 나의 이러한 뜻과 부합돼 현재 신축되고 있는 건물의 지붕형태가 전통초가형태로 복고되고 있음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 대표적인 예로 88년에 완공된 民俗자연사 박물관과 현재 신축중인 서귀포 시청사(市廳舍) 등의 관공서를 비롯 일반주택에 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제주도 향토성 조형이 새롭게 창출되고 있다. 이는 제주인(人)의 얼을 잇는 일이기도 하가. 가로수(街路樹0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제주도에 가로수가 심어지기 시작한것은 1930년대 서귀면(현재 서귀포시(西歸浦市))에서 각 마을의 실정에 맞게 전개된 1가구1그루 나무심기운동과 맥락을 같이한다. 일반주택까지 초가형태 복고 이때 서귀포시의 신료마을 주민들은 일주(一周)도로변에 왕벚 5백그루를 식재(植裁)하여 벚꽃거리를 만든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제주도 가로수 식재(植栽)의 효시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기후는 근해에 흐르는 난류의 영향으로 따뜻한 해양성이지만 한라산의 영향으로 일기변화가 심하여 해풍(海風)에 잘 견디는 수종을 선택해야만 했다. 흔히 제주도를 태풍의 길목이라고도 말하지만 풍속 m/초 이상의 폭풍일수가 연간 1백14일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은 웬만한 수종(樹種)은 가로수로 선택할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1950년대에는 해풍에 비교적 강한 아카시아 플라타너스 포플러 은행나무 등을 식재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 이후 제주도가 국제적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자생(自生)수종을 심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어 이들 외래수종을 베어내고 제주도의 고유수종으로 대체했는데 지난 6월말 현재 제주도에서 관리하고 있는 가로수종은 26종에 3만5천여그루에 이른다. 공원(公園)속 제주도 만들기 한창 이를 수종별로 보면 구실잣 밤나무가 18.5%인 6천5백그루이고 해송 후박나무 왕벚나무 협죽도 등은 제주도의 5대 가로수 식재수종으로서 전체의 75%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 가로수들은 제주도의 기후와 풍토에 가장 적합한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로수가 20여년을 자라다 보니 식재 간격이 10m내외로 밀착(密着)되어 있음은 물론 수고(樹高0가 높아지고 수관(樹冠)이 확장되면서 수려한 관광요소중의 하나인 자연경관의 조망(眺望)을 가리는 곳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다. 또 도(道)전역에 협죽도 해송 등이 식재돼 시(市)·군(郡)별 특성이 없어져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또하나의 과제이다. 이에 금년 2월 수종의 신성이나 식재방법이 잘못된 곳과 한라산의 4계절 변화와 해안절경을 가로막는 차폐(遮蔽)수종을 정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과감한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앞으로는 가급적 바다쪽으로는 가로수를 심지않고 이동중에도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일주(一周)도로변이나 도심지 공터에 우리 고유의 나무를 심기위한 소공원 조성사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제주도내에는 87개소 12만7천여㎡의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공원(公園)속의 제주도를 지키고 가꾸기 위한 도민들의 애향심이 뜨겁다. 1992.09.17
- 주간 국정(國政)메모 한중(韓中) 체육교류협정추진체육청소년부 체육청소년부는 14일 올하반기중 한중(韓中) 두나라간의 체육인 교류와 상호전지 훈련 스포츠 과학정부 및 자료교환을 주내용으로 하는 체육교류협정체결을 추진키로 했다. 에너지절약 5개년계획발표상공부 상공부는 14일 에너지저소비형으로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산업부문 에너지절약 5개년계획을 발표,96년까지 철강 석유화학등 7개업종의 에너지단위(단위생산량당 에너지투입량)와 자동차, 가전제품의 에너지 이용효율을 최고 38.1%까지 개선키로 했다. 추석절교통사고 작년 비(比) 줄어경찰청 경찰청은 14일 추석절 귀성객 특별수송기간(9~13일)동안 전국적으로 모두 3천8백23건의 교통사고가 발생(사망은 1백94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사망은 31.9%)감소했으며 범죄발생도 전년동기대비 26.5% 줄었다고 발표했다. 불법어업(不法漁業) 일제단속기간 정해수산청 수산청은 15일 오는 10월을 불법어업(不法漁業) 일제단속기간으로 정하고 해경과 협조하여 전국 항포구와 불법어업이 심한 해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단속을 펴기로 했다. 1992.09.17
- [특별기고(寄稿)]노(盧)대동령 방중(訪中)에 거는 중국인(中國人)들의 기대 한 국 선(韓國善) 북경(北京) 민족출판사(民族出版社) 주임(主任)·민족단결(民族團結) 지(誌) 주필(主筆) 한중(韓中)수교가 공식발표된 1992년 8월24일은 한중(韓中)관계사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날이다. 이로부터 한중(韓中) 두나라의 미수교상태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청산되고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문화사업에 종사하는 중국(中國)의 한 공민인 나는 더없는 기쁜 심정으로 한중(韓中)수교를 열렬히 축하한다. 중국(中國)대륙과 한반도는 유사이래 4천여년간 말 그대로 순치(脣齒)의 관계였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접국이었음은 물론이지만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 중에서도 정치적 지배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면서 유구한 세월동안 보차상의(輔車相依) 해 온 나라는 중국(中國)과 한국(韓國)밖에 없다. 2차대전이후 40여년간 두나라가 적대시 외면해 온것은 실로 입술과 이가 상치, 상쟁하는 것 이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난 8월24일 역사적인 한중(韓中)수교는 서로 어긋난 이와 입술이 제자리를 찾아 동북(東北)아시아의 면모를 바로잡는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양산곤(楊尙昆) 중국(中國) 국가주석도 중(中)·한(韓) 두나라 인민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분야, 특히 문화면에서도 동질성을 공유해 왔다. 나는 中·韓간의 수교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씀한바있다. 근래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북경(北京)방문을 앞두고 중국(中國)대륙에는 한국(韓國)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어 학습반 속속 개설 북경(北京)일대와 우리 조선족(朝鮮族)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쪽은 물론이고 황서(黃西), 재남(濟南)(산동(山東)) 위해(威海)쪽에 한국어(韓國語) 학습 속성반이 속속 개설되고 있고 내가 부교장을 맡고 있는 북경(北京) 조선어학교에도 중국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韓)·중(中)수교와 盧대통령의 중국(中國)방문을 계기로 중국인(中國人)들의 한국(韓國)에 대한 관심이 급속 확산되고 있는 증표가 아닐수 없다. 사실 그간 중국(中國)과 한국(韓國)은 40여년간 단절로 호상요해(互相了解)(상호이해)가 태부족이었다. 특히 대부분 중국(中國)사람들은 한국(韓國)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고 정확한 정보에 접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는 2차대전이후 한국(韓國)의 현대문학작품과 영화가 단 한편도 중국(中國)에 소개된적이 없고 한국(韓國)예술단의 공연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오직 한반도에 관한 한 북한(北韓) 것만을 접해왔기 때문에 북한(北韓) 쪽의 시각만이 존재해 왔을 따름이다. 중국인(中國人)들의 시야에 한국(韓國)이 처음 들어온것은 88서울올림픽 부터였다. 이후 중국(中國)의 개방정책이 시행되고 북경(北京)과 천진(天津)등지에 한국(韓國)의 기업이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자동차가 북경 시가지에 눈에 뜨이게 되고 한국(韓國)의 경제적 실력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고도의 선진기술 학습 이번 한(韓)·중(中)수교를 계기로 중국(中國)은 우선 한국(韓國)이 이룩해 낸 경이적인 경제발전의 지혜와 경험을 학습하려 하고 있다. 한국(韓國)이 그간 이룬 성과가 중국(中國)의 현 경제발전단계로서는 가장 적절한 모범답안일 뿐아니라 그 역작용과 시행착오까지 포함해서 경제 현대화의 전 과정과 경험을 가장 진솔하고 친절하게 나누어 받을 수 있는 친구로 한국(韓國)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韓國)은 기술의 숙련도와 자본의 집약도 면에서 중국(中國)을 상당히 앞서고 있다고 본다. 반면에 중국(中國)은 광활한 국토와 막대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의 남반부는 한국(韓國)이 고도의 기술과 자본, 경영기법을 십분 발휘하기에는 너무 좁은 감이 없이 않고 중국(中國)은 엄청난 잠재력에 비해서 기술수준이 나 자본집약도가 낮은 편이다. 따라서 한국(韓國)은 드넓은 중국(中國)대륙에서 그간 온축된 경제능력을 펼칠수 있는 무대를 찾을수 있을것이고 중국(中國)은 한국(韓國)과의 간단없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선진기술보다 효율적으로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韓國)이 제 1의 합작국이 되는데는 다른 선진국과의 경우 보다 훨씬 친밀한 분위기를 갖게 될 것이다. 구미열강 패권주의 견제 상호이익이 된다면 합작이든 교류든 양국간의 협력은 어떤 방식으로나 가능하다. 한국(韓國)이 중국(中國)인민의 잠재된 발전욕구를 자극하고 경제능력을 개발하는데 기여한다면 그것은 곧 한국기업의 시장개척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재 중국(中國)은 현대 자유(自由)시장체제의 문턱에 와있고 한국(韓國)은 선진국대열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기존의 歐美블록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中國)과 한국(韓國)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구미열강(歐美列强)의 지역적 인종적 패권주의에 밀려 동아시아 대륙은 세계무대에서 밀려날 위험이 적지 않다. 비록 경제발전 단계상 상당한 수준차가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러한 격차를 유무상통의 지혜로 활용한다면 한(韓)·중(中)양국은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세계의 진운에 병렬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中國)의 동북삼성(東北三省)과 상해(上海) 광동(廣東) 등 태평양 연안지역은 특히 한국(韓國)과의 경제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아무쪼록 중국(中國)의 상해(上海) 청도(靑島) 천진(天津)과 한국(韓國)의 인천(仁川) 군산(群山) 목포(木浦) 등 온화한 황해(黃海)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나라 항구사이의 뱃길이 노태우(盧泰愚) 대한민국 대통령의 중국(中國)방문을 계기로 세계에서 가장 빈번하고 순탄한 항로(航路)로 발전해 가기를 중국(中國)과 중국인민(中國人民)은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1992.09.17
- “한반도(韓半島) 평화위한 구체적 협의 있을듯” 한중(韓中)수교는 양국 외교의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발점입니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이번 중국(中國)방문은 양국이 서로간의 협력을 다짐하고 장래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설정한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오는 27일부터 3박4일간의 공식일정으로 이뤄질 盧대통령의 중국(中國)방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노재원(盧載源) 주중(駐中)대사는 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한(南北韓)간의 교착상태를 해결하고 한반도(韓半島)의 항구적인 평화조건을 만드는 문제에 대한 협력논의가 이번 정상(頂上)회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것이라며 盧대통령의 방중(訪中)의의를 밝혔다. 그는 이어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중(韓中)양국은 그간 민간협정으로 되어 있는 무역·투자보장·항공협정 등을 정부간 협정으로 전환시키는 성과를 얻을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盧대사는 한중수교(韓中修交)이후 북한(北韓)의 태도변화 가능성과 관련 북한(北韓)은 현재 국제정세의 정확한 양상을 주시하면서 기본 외교노선 정비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이번 한중(韓中) 정상회담은 대외(對外)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한(北韓)의 결심을 앞당기는 요인이 되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정상회담(頂上會談)의 요지는 평소엔 양국간 여러해 걸릴 여러 가지 안건들을 한꺼번에 빠른 시일내에 처리, 효율적으로 양국관계를 규제하는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회담에 지나치게 성급한 기대를 하는것은 금물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盧대사는 盧대통령이 방중(訪中)시 만날 인사들에 대해정상회담은 양상곤(楊尙昆)국가주석과의 회담으로 이뤄질 예정이며 그 외의 이붕(李鵬)총리, 강택민(江澤民)당총서기와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중국(中國)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鄧小平)과의 만남은 그때의 형편에 따라 이뤄질 수 있으리라 본다고 밝혔다. 1992.09.17
- [광장(廣場)]서울올림픽 4주년… 시민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문 태 갑(文胎甲) 서울올림픽 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서울올림픽을 치른지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외국인들은 서울 대회를 회상하며 격찬(激讚)을 말을 잊지 않는다. 올림픽운동이 서울올림픽에 진 빚은 너무도 크다는 말과 함께 서울올림픽은 스포츠의 축제속에 문화시민정신(文化市民精神)을 꽃피워 낸 또 하나의 축제였다 서울올림픽은 한국인(韓國人)들의 시민정신(市民精神)이 금메달을 딴 대회였다는 이야기 들이다. 올림픽대회사상 가장 완벽 그러면서 1988년 서울의 스타디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인(韓國人)의 자신감(自信感)과 긍지(矜持)로 꽉 차있었다는 말도 꼭 덧붙인다. 이러한 서울대회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찬사(讚辭)는 바르셀로나올림픽 기간에도 끊이지 않고 꽃피웠다. 1988년 9월 실로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50억 지구촌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픽대회 사상 완벽한 대회의 연출도 연출이었거니와 이를 엮어 낸 찬란한 우리 고유의 문화(文化), 그리고 원숙된 우리들의 선진시민정신(先進市民精神)은 세계인들이 놀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세계인들에게 우리는 동북아(東北亞)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귀퉁이에 자리하는 가난한 한 나라의 국민이라고만 기억되고 있었을 뿐이다. 겨우 한국동란에 참전했던 병사들이나 장삿일로 드나드는 외국상인들의 눈에 비쳐 전해진 우리의 모습은 전쟁과 가난 그리고 데모와 무질서로 얼룩진 바로 그것들 뿐이었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때 온 세계에 비쳐진 우리의 참모습은 그러한 세계의 비뚤어진 시각과 사고를 말끔히 씻어 내지 않았던가. 그것은 7년이란 기나긴 서울올림픽 준비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쏟았던 정성과 눈물겨운 노력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갈고 닦아 찾아낸 우리 본래의 참모습 바로 그것이 세계로 하여금 우리들을 바로 보게 했다. 당시 우리들은 서울대회 준비를 단순한 체육인들만의 축제나 예술인들만의 한마당 잔치로 준비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대회준비는 문화적(文化的)으로 사회적(社會的) 경제적(經濟的) 정치적(政治的)으로 성숙된 사회건설(社會建設)이라는 선진창조(先進創造)의 궤도위에 맞춘 엄숙하고도 땀어린 준비였다. 이는 전세계를 향해 우리의 자존(自尊)을 찾고 지키려는 도전(挑戰)이었다.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같이 도시에서부터 농촌에까지 꼭두새벽부터 밤잠을 설쳐가며 온갖 힘과 지혜를 모았다. 농촌에서는 한시도 아쉬운 농사일마저 제쳐두고 집앞길을 꽃심어 단장하고 성화 봉송로를 가꿨다. 도시의 새벽거리에는 담배꽁초와 휴지를 줍고 찢어진 광고물로 얼룩져 있는 담벼락을 씻는 시민들의 손길이 바빴다. 도시미화로 손길 바빠 거리의 택시기사들은 차를 닦고 또 닦으며 차안을 응접실처럼 손질했으며 뒷골목의 식당들 또한 주방과 화장실을 깨끗이 가꾸는데 땀을 흘렸다. 어린이들은 학교길을 빗질하고 상인들은 시장길을 휴지 한조각 없이 말끔이 가꾸었다. 국방을 책임지는 군인들도 국가적(國家的) 행사에 아낌없이 땀방울을 보태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전국 곳곳에서는 아무리 바쁜길, 먼길이라도 마다하고 자기용 홀·짝수제를 잊고 나온 차량에 대해서는 주위의 차들이 경적을 울려 옐로우카드를 제시하는 시민정신(市民精神)을 발휘하기도 했다. 비를 맞으면서도 운동장에서 열을 흩트리지 않았던 우리들의 어엿함 그리고 승자(勝者)에게 축하와 함께 패자(敗子)에게도 격려의 따뜻함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의 격높은 시민정신(市民精神)은 온 세계가 금메달을 주고고 남음이 있었다. 때문에 아직도 세계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서울의 스타디움에서는 한국인(韓國人)의 자신감(自信感)과 긍지(矜持)가 가득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한 구석에 이런 문명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었다고 감탄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끊이지 않는 찬사(讚辭)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포스트올림픽이 채 가기도 전에 이같은 우리의 모습들이 점점 퇴색되고 사라져 가고 있음은 너무도 안타까운일이다. 우리는 너무도 값진 것들을 잃고 있다. 서울올림픽에서 얻은 우리민족의 가장 큰 승리(勝利), 가장 값진 실물(實物)이 우리의 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우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아무리 변혁기의 한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나만이 편해 보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利己主義), 혼자 만은 밑기지 않겠다는 물질서 이러한 것들이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흘린땀과 정성의 결실을 헛되게 하고 있는것은 마음 아픈일이 아닐 수 없다. 88정신 밑거름 재도약 다짐 한마음이 되어 온갖 힘을 다해 쌓아 올린 도약(跳躍)의 징검다리를 우리가 허물고 우리가 모처럼 되찾은 우리의 자존(自尊)을 우리 스스로 짓밟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외부로부터의 존경을 마다하고 차가운 경멸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는 일은 너무도 서글플 뿐이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할 수 있고 하면된다고 다짐했던 자신감(自信感), 해내고야 말았다고 가슴벅찼던 긍지(矜持)를 되찾아야 한다. 세계가 놀랐던 우리의 성숙한 시민정신(市民精神)을 다시 찾아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하고 영광된 이 시기를 지켜나가야 한다. 자기(自己)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수없다는 평범한 경구를 다시한번 우리모두들 가슴에 되새겨 자기비하적, 자포자기적 병폐를 괴감히 떨쳐 버리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한번 옷소매를 거둬 매고 거리의 휴지를 줍고 흙탕물의 담벼락을 씻는 대열에 나서자. 그래서 우리 세대가 이룩한 88서울올림픽의 값진 문화시민정신을 되살려 다시한번 우리의 자존을 드높이자. 가능성과 저력은 이번 바르셀로나올림픽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았겠는가. 1992.09.17
- [경제]문답으로 알아보는 한국경제의 좌표 ⑮ ▲ 중소기업의 당면애로 대책은 -최근 섬유 신발 등 경쟁력이 약화된 일부업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체들의 부도가 발생하고 있음. 중소기업의 부도증가는 자금애로요인 이외에도 근본적으로 고임금과 인력난을 극복하지 못한 한계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겪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특히 부동산 등에 투자한 기업들이 도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 -정부는 한정된 자금이 중소기업부문에 보다 많이 지원될 수 있도록 자금의 흐름을 개선해 나가는데 역점을 두면서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유망중소기업에 대해서 선별지원을 강화할 방침임. -이와 함께 중소기업이 수출산업의 기초가 되고 우리경제의 전반적인 경쟁력에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기술개발지원, 인력난과 입지난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강화방안등을 수립,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음. -우리 경제가 조정기를 거치면서 향후 몇 년간 감속성장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당면애로가 지속될수 있으나 정부는 보호위주의 단기지원을 강구하면서 동시에 90년대의 경제여건 변화에 적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효율중시의 육성정책을 병행해 나갈 계획임. 199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