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시골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혼자 지내고 계십니다. 적적하실까봐 여섯 딸이 돌아가며 엄마 곁을 지키고 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와 전화 통화가 잘 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연락이 어려워지자 가족 단톡방에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 하나둘 쌓여갔습니다.
"엄마, 왜 전화 안 받아요?"
"휴대폰은 폼으로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전화 오면 잘 좀 받아주셔."
그때, 조용하던 단톡방에 엄마의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느릿느릿한 독수리 타법으로...
"얘들아… 미안해. 사실은… 엄마 귀가 잘 안 들려…"
그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엄마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고, 단톡방은 한순간에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넷째 동생이었습니다.
"엄마, 내일 저랑 병원 같이 가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
다음 날, 엄마는 진천에 사는 딸들 곁으로 오셨고, 자연스럽게 '엄마 대책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번에 나라에서 민생지원금 나왔잖아! 나 그걸로 엄마 안경 해 드릴 거야."
"그래? 그럼 보청기는 내가 해 드릴게." "그럼 난 용돈 챙겨드릴게."
딸들의 속전속결 집행력에 엄마는 잠시 고개를 떨구셨지만, 이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최신 휴대폰, 새 안경, 새 보청기까지. 엄마는 정말 아이처럼 신나 하셨고,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오래간만에 진짜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엄마를 모시고 동네 횟집으로 향했습니다. 평일이었지만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우리는 맨 뒤쪽 자리에 앉아 모둠회를 시켜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정식 회가 나오기도 전에 쉴 새 없이 나오는 음식들. 엄마는 너무 좋아하셨고, 큰사위의 아재 개그에 웃느라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그 웃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날은 정말 잊지 못할, 따뜻하고도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식사비는 그날 큰딸인 제가 기쁜 마음으로 결제했습니다. 물론, 민생지원금으로 말이지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