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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장르,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28)비애의 왕자 김정호②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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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 조용필에게 ‘창밖의 여자’가 있다면, 김정호에겐 ‘이름 모를 소녀’가 있다. 조용필에게 ‘고추잠자리’가 있다면, 김정호에겐 ‘하얀 나비’가 있겠다. 노래 제목부터 무언가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이다.

4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창밖의 여자’(1980년)와 ‘이름 모를 소녀’(1974년)는 두 사람의 사실상 데뷔곡이다. 데뷔곡이 곧바로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중가요의 기존 작법과 달랐고 ‘지독하게’ 애절하다는 점도 그렇다.

1974년 ‘이름 모를 소녀’가 실린 김정호 1집.
1974년 ‘이름 모를 소녀’가 실린 김정호 1집.

조용필과 김정호는 그 다음 해 또 한 번 매우 독창적인 노래 ‘고추잠자리’와 ‘하얀 나비’를 발표하며 가요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한몸에 받는다.
 
조용필보다 두 살 어린 김정호는 무명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1973년 음악적 동지인 포크 듀오 어니언스(임창제·이수영)의 데뷔 앨범에 ‘작은 새’와 ‘사랑의 진실’, ‘저 별과 달을’ 등을 작사·작곡해줬다. 엄청난 성공이었다.

이 노래들은 애초 임창제 작품으로 발표됐으나 임창제는 바로 김정호의 것임을 털어놓는다.

김정호가 대중에 신비한 존재를 드러낸 것은 그 1년 후인 1974년이다.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제1집 ‘이름 모를 소녀’를 내놓으며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다.

70년대 중후반 한국 포크계에 독보적으로 우뚝 선 천재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이었다.

1970년대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가 점령한 트로트 천하를 벗어난 포크와 록의 전성기였다.

김민기, 양희은,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 한대수, 이장희 등 포크의 창의적 거물들이 등장했다. 신중현의 록도 빼놓을 수 없다.

통기타 하나에 의지해 기존의 노랫말들과는 사뭇 다른 문학적이고 서정적이고 반항적 가사를 입힌 포크는 당시 정치·사회적 억압의 그늘에서 성장한 ‘청통맥’(청바지·통기타·생맥주) 세대의 출구였다.

전문 작곡·작사가가 아닌 가수 스스로 곡을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의 태동이기도 하다. 음악의 자가발전을 이뤘다는 점에서 포크를 ‘한국 음악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들이 있다.
 
포크의 대약진 속에서도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는 이색적이었다. 딱히 포크라고 분류하기도 애매한, 굳이 말하자면 ‘김정호 장르’의 시작이다. 노랫말과 멜로디, 가창 모두 남들과 달랐다. 양희은처럼 청아하지도, 윤형주처럼 달콤하지도, 송창식처럼 현실도피적이지도, 김민기나 한대수처럼 이념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순수하고 근원적인 슬픔을 노래했다. 가사는 대놓고 슬픔의 단어를 말하지 않았으나 창법과 멜로디에는 비애가 뚝뚝 묻어났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작은 몸짓이 영혼을 실어 토해내는 쓸쓸하고도 처절한 가창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그의 목청은 다른 가수들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한국 대중가수에서 몇 안 되는, 창(唱)의 유전자를 내포했다. ‘한(恨)의 가객’이 불쑥 등장한 것이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연못, 새, 달, 바람, 물결, 안개…. 밤이다. 물결은 달빛에 젖어 금빛으로 출렁거린다. 고요하다. 산새들은 잠이 들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안개가 인다. 그 풍경 속에 한 소녀가 앉아있다. 누구일까. 그냥 이름 모를 소녀면 어떤가. 그 소녀는 무슨 마음을 달래려고 여기 왔을까. 무엇을 기다렸을까. 어디로 떠났을까. 굳이 그 대답이 필요하기나 한 걸까. 누구나 언젠가는 무언가를 기다리다 쓸쓸히 떠나갈 운명인데. 그 소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어쩌면 김정호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정호의 노랫말 중에는 유독 길 잃은 것들, 정처 없는 것들이 많다. 허무와 무상이다. ‘하얀 나비’에도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갈까요’라는 구절이 있다. ‘작은 새’에는 길 잃은 새 한 마리가 집을 찾아 수만리 먼 하늘을 그저 날아만 간다. 김정호의 짧은 생애는 ‘길 잃은 나그네’요, ‘님 찾는 하얀 나비’였다.

1975년 ‘하얀 나비’가 실린 김정호 2집(한정판).
1975년 ‘하얀 나비’가 실린 김정호 2집(한정판).

당시 CBS 김진성 PD는 ‘이름 모를 소녀’를 듣고 나서 “한국의 모차르트가 탄생했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노래의 성공에 힘입어 그해 김수영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정애정은 자신의 예명을 ‘정소녀’로 바꾸어 버렸다.

‘이름 모를 소녀’에 이은 ‘하얀 나비’는 김정호 장르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는 님 찾는 하얀 나비가 되었다. 지나간 일들, 떠난 님을 생각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말라 한다. 허무의 초월이다. 닥쳐올 종말을 예감했던 것일까. “음” 하며 노래를 여는 허밍에는 얼마나 많은 말들이 생략됐을까.

‘하얀 나비’는 2014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수상한 그녀’(‘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에서 주인공 심은경이 부르면서 40년이 지나서 역주행하기도 했다.

두 노래는 지금 들어도 구식스럽지 않다.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여전히 리메이크하고,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자주 소환된다. 하지만 김정호의 노래는 오직 김정호의 목소리만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김정호는 인기를 떠나서 노래와 인생을 맞바꾼 가수다. 그는 인기를 끌 때부터 폐결핵을 속으로 앓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노래에 혼을 쏟아부었다. 1985년 그의 사망 6개월 전 두문불출했던 그를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음악평론가 박성서에 따르면 김정호는 “의사는 노래를 부르면 죽는다고 경고했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되레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정호가 떠난 지 1년 후인 1986년 선배 가수들이 파주 기독교 공원묘지에 세운 추모비.(온라인 커뮤니티)
김정호가 떠난 지 1년 후인 1986년 선배 가수들이 파주 기독교 공원묘지에 세운 추모비.(온라인 커뮤니티)

하늘은 야속하게도 왜 음악 천재들을 일찍 데려갈까. 김정호(1952~1985)는 나이 서른셋 되던 해 11월에 갔다. 교통사고로 스물다섯에 간 유재하(1962~1987), 폭음이 초래한 간경화로 서른둘에 간 김현식(1958~1990)도 11월이다. 파주시 기독교 공원묘지에 있는 김정호의 비석에는 ‘하얀 나비’ 가사가 묘비명을 대신하고 있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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