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영역
['왜올랐나'①경기부양]“이렇게까지 많이 풀었습니까”
경기부양, 투기를 유혹하는 목소리
[실록 부동산정책40년②] 제1부 ① 경기부양과 부동산의 딜레마
<1부> 왜 올랐나
1-경기부양과 부동산의 딜레마
2-유동성과 부동산
3-공급시차와 시행착오
4-부동산 심리와 정책불신
2006년 7월 1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이날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경제부총리로 옮겨온 권오규 후보자와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의장간 설전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주제는 경기진단과 경기부양. 두 사람은 과거 경제기획원(EPB)에서부터 상하관계로 일해 오며 인연이 깊었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만약에 작년도에 4%밖에 성장이 안됐다면 내년쯤에서 6% 성장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게 없는 거란 말이에요. 경기부양이라는 것은 거시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정책 당국의 인위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후보자=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거나 지나치게 확장적으로 경제 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정책 방향은 잠재성장률 경로를 따라가는 한에 있어서는 인위적인 부양을 하지 않는다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의장=지금 체감경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잠재성장률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1, 2% 정도 성장을 높일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이것을 해서 하나도 나쁠 게 없다 이게 제 생각인데.
권 후보자=저는 그점은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잠재성장률 경로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일단 경기가 들어가게 하면 그 다음 단계에는 분명히 잠재성장률 아래쪽으로 반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성장률 경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속기록)
경기부양을 둘러싼 입장차는 얼마 뒤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다시 불꽃을 튀었다. 같은 달 29일 강 의장은 “건설경기는 정부정책에 의해 강온조절이 가능한 유일한 분야다. 건설분야를 단기적 경기관리 수단과 영역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전반을 살리기 위해 ‘건설경기 부양’ 카드를 과감히 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하루 전날 같은 자리에서 권 부총리는 “인위적 건설경기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재정을 투입해 건설경기를 띄우던 시절은 지났다”며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경기부양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한 나라의 잠재성장률을 어느 수준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잠재성장률이 낮은데도 이를 초과해 경기를 부양한다면(인플레이션 갭) 경기과열, 물가상승 등이 일어난다. 반면 잠재성장률이 높은데도 실질성장률이 여기에 못미친다면(디플레이션 갭) 경기침체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거시경제에 대한 시각차 외에 정치적 입지도 경기부양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이유이다. 여론에 민감한 여당으로서는 체감경기와 일자리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기부양에 적극적인 반면, 경제의 안정적 운용을 중시하는 정부는 경기부양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경기부양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당장의 약발은 좋지만, 궁극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재정확대, 규제완화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은 투기심리를 자극해 큰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
◆ 참여정부의 뼈아픈 실책
참여정부도 딱 한 번 경기부양의 유혹에 흔들린 적이 있다. 그 결과 투기의 부활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된다.
2004년 6월 18일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성수기인데도 건설·제조·서비스업은 물론 농업부문에서도 고용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포문을 연 뒤 며칠 뒤 정례브리핑에서 “건설수요는 올 4분기부터 내년에 걸쳐 전반적으로 가라앉을 것이며, 건설투자의 급감을 막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당시는 2003년 10·29대책으로 건설경기를 중심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침체된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창 힘을 얻고 있을 때였다.
조선일보 2003년 12월 10일자. 2003년 10.29대책으로 집값이 잠잠해지자 지방건설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때마침 한국은행도 당시 3.75%인 콜금리 목표치를 13개월 만에 3.5%로 낮춘다. 당시 박승 한은총재는 “예상치 못한 고유가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데다 내수는 더디게 회복되는 반면 수출·건설경기가 너무 빠르게 식고 있다. 금리인하가 물가를 자극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경기를 살리는 게 더 급하다”고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 부총리는 “오히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은의 콜금리 인하가 결정되던 바로 그날, 당시 재경부 이종규 세제실장은 “부동산경기가 하락할 때 쓰는 정책은 상승할 때의 정책과 같을 수 없다”며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세제의 완화를 시사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정부와 여당 안에서 종부세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당시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나섰지만, 2004년 말 입법과정에서 종부세 과세대상은 원래 생각했던 공시가격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완화되고, 가구별 합산도 개인별 합산으로 크게 후퇴한다. 시민단체는 종합부동산세가 ‘종합구멍세’가 돼버렸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다.
잇단 건설경기 부양책, 종부세 후퇴는 시장에서 정책 후퇴로 받아들여졌다.
2003년 10·29대책 이후 1년 넘게 잠잠했던 집값은 2005년 들어 판교신도시분양, 강남 압구정동 초고층 재건축 추진 등 휘발성 강한 재료와 겹치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정부는 2005년 8·31대책을 통해 후퇴시켰던 종부세 등을 원상복귀시켜야 했다.
종부세의 후퇴와 원상복귀 과정은 원칙의 후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투기심리가 팽배한 부동산시장에서 작은 후퇴의 신호 하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투기꾼들이야 말로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믿음의 수호자이자 기다림의 달인이다. 이들은 아무리 혹독한 투기근절책이 나와도 언젠가는 풀린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들의 소위 ‘학습효과’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기부양의 요구였다.
투기꾼들에게 가장 화창한 봄날은 역설적이게도 IMF외환위기였다.
IMF외환위기 이후 경기부양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고, 경기부양을 이유로 각종 부동산관련 규제가 대대적으로 풀리기 시작한다.
◆ IMF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경기부양
2001년 2월 7일, 건설업계가 마련한 당시 김윤기 건설교통부장관 초청 간담회.
이날 행사에서 김 장관이 “올해 건설예산의 85%를 상반기 중 집행하는 등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운을 떼기 무섭게 건설사 사장들의 요구가 쏟아졌다.
이중근 부영회장=과거 투기억제 수단으로 도입된 양도세는 주택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만큼 폐지돼야 한다. 집을 살 때 부담하는 취득·등록세도 주택업을 제조업으로 분류해 감면해 달라.
박성대 대동주택 명예회장=유지, 관리가 미흡해 붕괴사고가 일어나도 건설업계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시설물의 유지, 관리비 책정을 늘려야 한다.
김언식 삼호건설 사장=대한주택보증 출자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나 주택보증의 부실화로 출자금은 날아가고 대출 빚만 남게 됐다. 주택보증 출자금은 업체가 원해서 낸 게 아니라 주택업을 하려면 의무적으로 내도록 했던 것으로 출자금이 없어졌으니 대출금도 탕감해줘야 한다. (중앙일보 2001년 2월8일)
그리고 3개월 뒤인 5월 23일, 정부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집값의 70%까지 대출해주고, 2001년 말까지 구입한 신축주택에 대해 양도세 면제, 취득·등록세 50% 감면 등의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 구조조정 및 투자적정화방안’(5·23방안)을 발표한다. 국민의정부 들어 10번째 발표된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이었다.
당시 정부는 1998~2001년 5월까지 3년 6개월동안 모두 10번, 평균 4개월에 한 번꼴로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업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어서라도 건설경기를 살리는 것이 절실했다.
2001년 2월 청와대가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공개한 김대중 대통령의 메모에는 당시 대통령이 건설경기부양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김 대통령의 노트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지방경제 어렵다는 여론, 건설경기 위축, 재래시장 문제, 기업 지방 이전, 지방건설업 자율조정, SOC사업 조기 시행’ 등의 친필 메모가 적혀 있었다.
취임 1년 반 만인 199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IMF졸업’을 공식선언했던 정부는 같은 해 8월 말 대우그룹 사태, 다음해 3월 현대그룹 ‘왕자의 난’ 등으로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자 경기부양효과가 큰 주택시장 부양책을 쓰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1999년 4월 9일자. 당시 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실시한다. |
2001년에는 2003년 6월까지 전용 25.7평 이하 신규 주택을 취득할 때 취득·등록세 25% 감면, 부동산 투자회사가 부동산을 취득할 때 취득·등록세 감면, 소형주택 구입자금 저금리 지원 등의 지원이 잇따른다.
이런 조치들은 정부가 암묵적으로 투기를 감수하더라도 주택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 통화정책이 총동원되면서 콜금리도 2001년 한 해 동안 모두 4차례 인하돼 사상 최저치인 연 4%로 떨어진다. 같은해 9월 19일 4번째 콜금리 인하를 결정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전철환 한은총재는 “미국 테러 참사에 따른 대외여건 악화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콜금리 인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건설경기를 중심으로 서서히 경기가 달아오르고, 강남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투기조짐이 나타나자 2002년부터 부동산정책은 완연한 안정정책으로 돌아선다.
당시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이었던 이춘희(현 건교부 차관)의 회고다.
“2001년 경기가 싸늘할 때 5·23부양대책을 발표하고 한 달 뒤 당시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투기대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 집값이 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면과제는 투기억제가 아니라 경기부양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걱정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부터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연말 이 수석에게 투기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래서 2002년 들어 1·8대책, 3·6대책 등이 발표됐다.”
대대적인 규제완화로 투기가 부활할 조짐이 보이자 2002년 완연한 안정정책으로 돌아선다. 표는 재정경제부, 김종찬 저서 '황금낙하산' 109페이지 인용 |
2002년 들어서는 1, 3, 9, 10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안정대책이 쏟아진다.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대대적인 규제완화의 효과, 확장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과잉 그리고 IMF외환위기 이후 3년(1998~2000년)간 연간 50만호를 밑돈 주택공급 부족분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집값 상승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부동산 1차 순환기, 80년대 말 2차 순환기 등 집값 폭등기 때의 공통적 특징은 과잉 유동성과 주택공급 부족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었다. 2001년 이후부터 참여정부 기간 내내 지속된 최근 집값 파동은 이러한 2가지 원인 외에도 이전 정권에서 이뤄진 대대적인 규제완화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노출됐다는 특징을 갖는다.
국민의정부 시절 IMF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추진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결국 부동산투기 부활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003년 초 당시 인수위 경제2분과로부터 부동산관련 대책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이렇게까지 많이 풀었습니까”라고 말했다.(이춘희 현 건교부 차관의 회고)
건설경기부양을 위해 일정 수준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투기억제를 위한 필수 규제마저 무장해제 시켰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일련의 대책들은 이전 정권에서 마구잡이로 해체된 투기억제책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 82년의 경험
경기부양을 위해 섣불리 규제를 풀었다가 부동산투기를 일으켰던 경험은 5공화국 시절인 1982~84년에도 있었다. 1982년은 이철희·장영자 사채파동을 수습하기 위해 자금이 집중적으로 풀린데다, 그린벨트에서도 목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초지조성계획’(10년간 1조원 투자사업)이 발표되면서 부동산경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앞서 1980년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가 가속화되자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여러 차례 양도소득세를 내리거나 각종 건축규제를 풀고, 부동산 거래자금의 출처 조사와 특정지역에 대한 투기활동에 대한 감시를 중단한다.
이러한 규제완화의 효과가 누적되면서 1982년부터 한동안 잠잠했던 투기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투기조짐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1982년 11월, 당시 김준성 경제부총리는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대책마련에 나선다. 이에 따라 1983년 4월 아파트 불법전매,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 부동산 중개업소의 불법 거래중개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등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4·18조치’가 발표된다.
1982년 12·22 주택투기억제대책, 1983년 2·16 부동산투기억제대책에 이은 3번째 대책이었다.
1978년 8·8조치 이후 침체됐다가 1982년을 전후해 반짝했던 부동산시장은 당시 5공 정부의 투기억제 대책으로 다시 1986년까지 침체기로 빠져든다.
규제완화의 유혹은 언제나 경기부양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며, 규제완화를 동반한 섣부른 경기부양책은 결국 투기의 부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1982년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 경기부양의 정치논리
그렇다면 왜 경기부양의 요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일까.
이는 경기 자체가 상승기와 하강기를 반복하는 자율적인 순환사이클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재정과 금융통화라는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기의 진폭을 줄이는 경기부양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한 나라의 경제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잠재성장률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인위적으로 경기를 자극할 경우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 하강기에는 생산 감소, 실업증가 등으로 경기부양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기 때문에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은 인위적 경기부양의 카드를 꺼내드는 경우가 많다. 이중 선거는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절이기 때문에 인위적 경기부양의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부동산투기라는 부작용이 연례행사처럼 뒤따르곤 한다. 6공화국 출범 직전인 1987~88년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야 대선후보들은 전국을 돌면서 선심성 개발공약을 남발, 이들이 지나간 곳은 어김없이 땅값이 폭등하곤 했다. 특히 당시 노태우 후보가 서울과 설악산을 잇는 동서고속전철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해당지역 땅값은 평당 5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뛰어올랐고, 역시 노 후보의 공약이었던 서해안종합개발계획으로 평당 8000원짜리 녹지가 1만5000원으로 치솟았다.
2007년 1월 현대경제연구원이 1995~2004년 4월까지 총 8번의 전국 선거(대선, 국회의원선거, 동시지방선거 등)를 분석한 결과 1998년 2회 동시지방선거를 제외한 7번의 선거에서 선거가 열린 달의 전국 아파트 값이 6개월 전과 비교해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평균 가격상승률은 약 2.8%였으며, 특히 강남은 4.05%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강력한 경기부양책이 등장하는데다 각 후보들이 득표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규제완화, 도시재개발사업 등 각종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 투기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건설업과 경기부양
그렇다면 경기부양의 요구가 나올 때마다 건설업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으로는 건설업의 특성상 전후방산업연관효과, 고용창출효과가 매우 커 경기부양의 효과가 가장 화끈하기 때문이다. 2005년 건설산업연구원은 1조원의 건설투자가 이뤄지면 대략 2만8000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1조9900억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돼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높아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커짐에 따라 건설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은평뉴타운 공사현장 |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 따르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은 2005년 9%였다.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총 부가가치 중 9% 가량이 건설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또 2005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건설투자의 비중은 19%였다.
특히 건설업의 총 부가가치 비중과 GDP 비중이 1990년대 초를 전후해 급격히 높아졌다. 부가가치 비중은 1985년 7%에서 1990년 11.3%, 1995년 11.6%까지 높아졌다가 2000년 8.3%로 다소 낮아진다. 또 GDP 비중 역시 1980년대까지 15% 안팎에 머물다가 1990년 22%로 높아진 뒤 1998년까지 20%대를 유지하다가 1999년부터 다소 낮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를 전후해 건설업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커진 것은 이 시기 분당·일산 등 5개 신도시를 포함, 주택 200만호 건설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25만호 수준에 머물던 주택건설 실적은 1989년 46만호로 늘어났다가 1990년 사상 최대인 75만호까지 폭증한다. 건설과열을 빚자 1991년 들어서는 잇달아 건설경기 진정책을 내놓아야 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처럼 주택 200만호 사업을 계기로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확고해짐에 따라 건설업의 부침에 의해 국내 경기 전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가장 먼저 건설업, 특히 주택부문을 자극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건설업이 경기부양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역사적 뿌리는 1960, 70년대 개발연대의 토건국가적 사고방식일 것이다.
토건국가란 원래 우리처럼 건설업이 비대해진 일본의 정·관·건설업계의 부정적 공생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사회학)는 “개발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가 바로 토건국가”라며 “토건국가는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를 뜻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개발독재시대 비대해진 건설, 토건업은 자신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커짐에 따라 건설, 토건업이 경착륙하면 경제가 갑작스럽게 침체에 빠진다는 논리를 앞세워 주기적으로 경기부양의 요구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일으키고 이에 투자하는 것을 전체 경제성장과 동일시함으로써 끊임없이 대규모 토목·건축사업을 부추기게 된다.
과도한 건설투자(특히 주택부문)의 문제점은 건설업의 한계자본계수(GNP 한 단위를 늘리는데 필요한 자본량)가 제조업에 비해 크기 때문에 수요 진작 효과는 크지만 생산유발효과는 크지 않은, 기본적으로 소비성 투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적정수준을 넘어선 건설투자는 경기부양이라는 반짝 효과는 크지만 장기적인 성장동력 확충에는 별 효과가 없다.
2001년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1970~94년까지 25년동안 투자유형별로 1조원을 투자했을 때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건설경기 부양에 쓸 경우 △첫 해에 0.42%의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나지만 △5년 후 첫해 대비 마이너스 0.01% △20년후 마이너스 0.16% △30년 후 마이너스 0.31% 성장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1조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경우 △첫 해에 0.25%의 경제성장을 가져온 뒤 △5년 후 첫해 대비 0.06%로 성장률이 떨어지지만 △10년 후 0.24% 성장으로 높아지고 △30년 후 1.54% 성장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기여도가 높았다.
2006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권오규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인위적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고 답했다. 이 한마디는 개발독재시대의 토건국가적 사고와 손쉬운 단기 경기부양 처방, 부동산투기를 무릅쓰고서라도 경기부양에 매달리는 모험주의적 정책관행 등 부정적인 과거유산에 대한 참여정부의 결별 선언이자, 정책적 원칙에 대한 확인이었다.
이전다음기사 영역
이전기사[특별기고] 부동산정책의 과거와 현재 다음기사['왜올랐나'②유동성과 부동산]‘큰 칼’이냐 ‘작은 칼’이냐지금 이 뉴스
- 정책뉴스 100만명 이상 가입한 청년도약계좌로 ‘내 자산’ 마련하기 5년 만기 시 최대 5000만원 목돈 마련이 가능한 청년도약계좌가 지난해 6월 15일부터 시작한 이래 곧 1주년을 맞이한다. 출시 이후 청년들의 많은 관심으로 지난 5월말에 123만명이 가입한 청년도약계좌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청년의 45%가 향후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는 만큼 꾸준한 성원을 받고 있다. 이는 금융연구원이 분석한 청년희망적금·청년도약계좌 가입자 등 청년층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 청년 자산형성 지원상품이 청년층 금융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처럼 청년도약계좌가 청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필수적으로 고려하는 대표 금융상품인만큼, 정부는 청년도약계좌가 자산형성·축적의 기틀이자 청년층 자산 포트폴리오의 기초(anchor)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청년도약계좌 도입 이후 청년들의 목소리를 기민하게 반영해 제도를 개선하고, 정부 및 유관기관은 청년층의 금융 여건과 수요를 면밀히 분석해 추진과제를 지속 발굴할 방침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중구 청년도약계좌 비대면상담센터에서 개최한 청년도약계좌 운영 점검회의에서 향후 제도 및 서비스 개선 방향 등을 논의했다. (사진=금융위원회) 청년도약계좌는 일정한 개인소득 및 가구소득 기준을 충족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기 5년의 자유적립식 적금상품이다. 가입은 19~34세 청년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바, 11개 은행 앱에서 비대면으로 청년도약계좌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청년도약계좌에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청년들이 자산형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이 상품은 적금금리에 더해 본인 납입금에 따른 정부기여금을 추가적으로 지급하고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는데, 정부는 청년도약계좌의 안정적인 운영과 지원 강화를 위해 약 359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아울러 가구소득의 경우 보다 많은 청년을 지원할 수 있도록 지난 3월부터 기존 180% 이하에서 250% 이하로 개선된 기준으로 적용하고, 연령 계산 시 병역을 이행한 경우 병역이행기간을 최대 6년까지는 산입하지 않도록 했다. 한편 청년도약계좌의 금리 수준은 최대 6%(기본금리 연 4.5%+우대금리 연1.0~1.5%)로 타 적금상품 대비 높은 편이다. 특히 청년도약계좌 가입자에 대해 정부기여금과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부기여금은 청년도약계좌 가입 청년의 저축액에 매칭해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이다. 이를 통해 소득이 낮을수록 더 높은 매칭비율이 적용되며 월 최대 2만 4000원까지 기여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적금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세율 15.4%)은 전액 비과세되어 일반 적금 상품과 비교하여 실질 수익률이 높아지는 혜택이 있다. 이밖에도 정부는 청년도약계좌에 납입금을 매달 꾸준히 납부하는 청년들이 신용점수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금융권과 협의 중이다. 청년도약계좌 지원 강화방안 주요내용 금융위원회는 청년도약계좌 1주년을 앞두고 지난 5월 22일 관계기관, 청년 등과 함께 청년도약계좌 운영현황을 점검하고 청년들의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면서 향후 제도 및 서비스 개선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은행권은 청년도약계좌 3년 이상 가입 유지시 적용하는 중도해지이율을 당초 1.0~2.4% 수준에서 각 은행별 청년도약계좌 기본금리 수준인 3.8%~4.5%까지 상향하는 약관 개정을 모두 완료하고 전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은행권은 청년도약계좌의 자산형성 지원 취지를 고려해 중도해지이율을 은행권 3년 만기 적금금리(3.0%~3.5%)보다 높은 수준으로 설정했으며 이를 청년들에게 적극 홍보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청년도약계좌 가입을 3년간 유지한다면 상향조정된 중도해지이율과 함께 정부기여금 일부(60%) 지급 및 이자소득 비과세가 적용되어 연 6.9%의 일반적금상품에 가입한 것과 동일한 수준의 수익 효과가 기대된다. 한편 서민금융진흥원은 청년도약계좌 1주년을 기념해 오는 10일까지 숏폼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 이벤트는 청년의 저(축)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만의 생각이 반영된 영상을 20초~1분이내로 만들어 유튜브 혹은 인스타에 영상 업로드 후 접수하면 된다. 이에 심사를 거쳐 오는 18일에 결과를 발표하는데 1등 1명에 200만원, 2등 2명 50만원, 3등 5명에 10만원의 상금은 물론 인기상 50명에게는 다이소 1만원 모바일 상품권을 제공할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청년도약계좌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 청년도약계좌 https://ylaccount.kinfa.or.kr
- 카드뉴스 6월에 가기 좋은 어촌 안심 여행지 ① 제주 제주 김녕마을 바다와 바람이 만든 보물마을 김녕어촌체험휴양마을. 김녕마을은 바릇잡이체험, 씨글라스석고방향제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 해안길을 따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어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어촌체험휴양마을입니다. # 김녕어촌체험휴양마을 추천여행코스 출발! 가족과 즐기기 좋은 낚시체험 나만의 작품만들기 씨글라스석고방향제만들기 금속벽화를 찾아보는 재미 금속공예벽화마을 여름 휴양지로 딱 좋은 김녕해수욕장 우리나라 최초의 미로공원 김녕미로공원 # 가족과 즐기기 좋은 낚시체험 김녕수산문화복합센터 체험장에서 낚시체험을 해봐요!물이 빠지면 바릇잡이체험도 가능하답니다. 평평한 돌 위에서 하는거라, 아이들도 안전하게 할 수 있어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김녕어촌체험휴양마을 · 1인 15,000원 # 나만의 작품 만들기 씨글라스석고방향제만들기씨글라스는 바다에 버려진 유리가 깨지고 풍화되어 형성된 유리조각인데요. 씨글라스를 이용해서 나만의 석고방향제를 만들 수 있는 체험입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 향기나는 기념품 만들어보세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김녕어촌체험휴양마을 · 1인 6,000원 # 금속벽화를 찾아보는 재미 금속공예벽화마을 버려진 금속제품과 제주의 현무암을 이용한 벽화가 있는 아름다운 김녕마을이예요. 그 안에서 보여주는 제주 해녀의 일상!곳곳에 있는 금속벽화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항3길 18-16 # 여름 휴양지로 딱 좋은 김녕해수욕장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해변이에요.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관광객과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답니다! 스노클링, 투명카약 명소로도 유명해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 우리나라 최초의 미로공원 김녕미로공원우리나라 최초의 미로공원으로, 사계절 푸른 랠란디나무와 제주 천연 화산석 송이의 붉은 바닥으로 조성되어 힐링할 수 있으니 미로에서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길 122 · 어린이 5,500원 청소년 6,600원 성인 7,700원 ● 바다와 바람이 만든 보물마을 김녕어촌체험휴양마을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항1길 50-11- 문의 : 064-784-2880
- 건강 나트륨·당류 줄인 가정 간편식 요리 ⑤ ‘해산물 완자볼을 곁들인 양장피 콩국수’ 나트륨·당류 줄인 가정 간편식 요리 해산물 완자볼을 곁들인 양장피 콩국수 자료=식품의약품안전처
- 사진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 개회식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 개회식’에 앞서 환담장에서 무사 파키 마하맷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 개회식’에 앞서 환담장에서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 개회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 개회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 개회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이렇게 귀여운 곳이 보훈전시관이었어? 아니야, 이건 펌프차야.와,고모는 몰랐는데, 다르구나. 어떻게 알았어? 내게는 코로나19 때 태어난 조카가 있다. 마스크 낀 사람만 봐 와 모두의 걱정을 샀는데, 웬걸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모른다. 또 그 또래들처럼 자동차를 보면 넋을 잃는다. 특히 군용차, 소방차와 경찰차 장난감을 들고 와 묻는다. 그럴 때마다 적당히 대답하지만, 매서운 아이 눈을 피해 가지 못하고 차종에 관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어쩐지 울 동생 때부터 늘 청취자는 나였다). 현충일과 6.25가 있어서 그럴까. 6월마다 친정에 가면 장손인 조카에게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귀여운 조카는 아직 증조할아버지가 참전용사였다는 걸 모른다. 단지 태극기가 우리나라 국기라는 걸 알 뿐이다. 좀 더 커야 이해할까. 이 아이에게 쉽게 나라 사랑을 전해줄 순 없을까. 용산어린이정원에 어린이 보훈전시관 보보의 집이 개관했다. 6월 3일 용산 어린이정원에 어린이 보훈전시관 보보의 집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여운 보훈부 캐릭터인 보보에 관심이 생겨 일반인 관람 첫날인 4일 그곳을 찾았다. 볕이 뜨겁다 못해 따갑던 오후였다. 용산어린이정원. 예약 1년 안에 재방문시 현장 신청도 가능하다(신분증 필수). 보보의 집은 국가보훈부에서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군인, 경찰, 소방 등 제복근무자의 헌신과 노고를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체험과 교육, 문화를 통해 자연스레 나라 사랑까지 배워나간다. 전시, 체험, 영상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돼 다섯 가지 제복(육, 해, 공군 및 경찰관, 소방관)근무자를 구분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콘텐츠를 체험하고 함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제복근무자의 역할을 이해하고 경험하게 된다. 어린이 보훈전시관 보보의 집. 보보의 집에 오기 위해서는 용산어린이정원 누리집(https://yongsanparkstory.kr/)을 통해 방문 6~11일 전 예약을 해야 한다. 단 1년 간 방문 기록이 있으면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다행히 난 지난 가을에 방문한기록이 남아 있었다. 사랑스러운 보보가 반긴다. 보보의 집은 입구와 가까이 있었다(뜨거웠는데 다행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얼굴. 보훈부의 캐릭터로 탄생한 보보다. 어쩐지 난 보보가 우리 조카를 빼닮아 더 친근한 느낌이다. 보보의 집은 5~7세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좀 더 어린 아이도 올 수 있도록 수유실과 유모차 놓는 시설 등을 마련했다. 보보의 집 로비에 서 있는 보보. 유아들을 위한 수유실과 유모차 주차장이 있다. 들어서면 보이는 작은 공간은 다섯 분야로 구분해 흥미롭게 잘 갖춰 놓았다. 보보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말한다. 우리들이 지금 행복한 건 영웅들이 나라를 잘 지켜줘서라고. 소방관으로 분한 보보와 소방차. 보보캠프에서 미끄럼을 타고 안에서 특수 손전등으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공간마다 소방관, 육, 해 공군과 경찰관 옷을 입은 보보가 서 있다. 육군을 소개하는 보보캠프에는 초소를 모티브로 해 미끄럼틀과 탱크 모형이 세워져 있다. 소방관을 소개하는 나라사랑 소방서에는 소방차가 늠름하게 들어서 있다. 아, 아이들이 봤다면 입이 딱 벌어질 만하다. 전투기에 불빛을 맞혀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다. 물줄기로 불을 끄는 게임. 6월에 한해 미션 완료한 어린이들에게 보보 키링을 제공한다. 육군, 해군, 공군, 경찰관 및 소방관 모두 각각의 미션을 즐겁게 수행하며 영상 그림을 그린 후, 기념사진을 찍고 나면 6월 한 달 간은 보보 키링을 선물로 받는다. 소방차의 종류가 많다는 걸, 익히 들어왔었다. 체험을 통해 경찰관, 소방관 등의 임무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안내자가 내게 소방차의 종류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나도 모르게 저도 그 차들을 다 알게 됐답니다라고 말했다. 문득 조카가 떠올랐다. 아이가 오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흥미로운 곳에서 미션을 수행하고놀다 보면 자연스레 소방관, 경찰관, 군인의 임무를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되겠지. 그렇게 어린 마음속에 나라 사랑의 씨앗이 서서히 자라나지 않을까. 보보의 집은 아이 눈높이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 정확한 길잡이 같다. 아이의 일상에서 보훈은 이런게 아닐까. 지난 5월 보훈문화제를 통해 독립운동가 정세권에 관해 알게 됐고 은반지 등에 한글을 새겼다. 지난 5월 초, 난 북촌에서 열린 보훈문화제에 참가했었다. 북촌에서 독립운동가 정세권에 관해 들으며 한글 프로그램에참여했다. 한글 여권 지갑을 한땀한땀 바느질해 만들며 은반지에 또박또박 내 이름을 새겨넣었다. 비가 몹시 내리던 날이었다. 처마를 따라 떨어지는 빗소리는 정세권이란 인물과 함께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듯 세차게 울려댔다. 난 그날 만든 여권 지갑을 들고 바로 해외에 다녀왔다. 일일이 다 적진 못하지만, 여권 심사대에서 대한민국이라서 뿌듯했고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면서 한국인임에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조카가 자라나고 아이들이 살아갈,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다. 이건 내 일상에서의 보훈 아닐까. 올해 호국보훈의 달의 주제가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이듯이. 보보는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영웅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대한민국은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6월 6일 현충일, 6월 25일 한국전쟁일을 비롯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올해 한 뼘은 더 큰 조카에게 좀 더 우리나라에 관해 알려주고 싶다. 증조할아버지가 지켰던 나라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보의 집이 조카에겐 딱이다. 올 6월이 가기 전에 조카와 함께 보보의 집을 다시 방문해야겠다. 어린이 보훈전시관 보보의 집 운영시간 : 09:00~18:00(입장 마감 17: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및 1월 1일, 설, 추석 당일관람 문의 : 044-202-5572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
- 숏폼 #내일은_두근두근 어르신 편 행복하고 든든한 노후를 위해 어르신께 전하는 두근두근 희소식! 노인 일자리 수 역대 최대 14만 7천 개! 노인 일자리 수당 7% 인상! 기초연금 3.6% 인상!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 완화!노인맞춤 돌봄 서비스 이용자 55만 명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