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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개헌 논의가 필요하냐구요?
오늘날 국민연금 개혁, 양극화, 저출산 등 많은 국정과제를 풀기 위해선 단임제가 정책의 일관성이나, 책임정치의 면에서 한계가 있는 만큼 대통령 4년 연임제와, 선거에 발목이 잡혀 소모적 정쟁이 일상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 일치 시키는 것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개헌논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이후 정치권과 학계, 언론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과 언론은 개헌논의가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막연하고 근거없는 불안감 등을 이유로 논의조차 가로막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개헌논의는 새로운 시대구조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개헌논의의 장을 넓히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입장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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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
개헌에 대한 국민과 정당의 반응을 보면 개헌의 내용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아 반대한다는 것이 다수로 나타났다. 야당에서는 개헌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개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제헌헌법 이후 9차례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정치적 이해 때문에 무리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개헌논의의 중점이 정부형태나 최고권력 담당자 선출방법의 변경 등 권력구조 개편이었고 국민의 기본권이라든가 다른 부분들은 거의 무시되었다.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국민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권력 장악의 정당성을 위한 동원용이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개헌 논의에 대해 국민들이 곱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임기제 변경에 대해 반대가 많지 않은 것은 5년 단임제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임기제의 변경은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면서 형성된 헌정체제인 87년 체제의 변화를 의미한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의지와 6월 항쟁의 성과물인 현행헌법은 장기집권과 독재정치를 막기 위해 대통령 단임제와 대통령 권한의 축소·국회 권한의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독재정권이 빼앗아 간 국민의 대통령 직접선출권이 회복되었다.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제로 되었고, 대통령의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삭제했으며, 국정감사권을 부활하고 국회의 자율성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제6공화국을 거쳐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단임과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져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확립되고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행헌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부각되었으므로 개헌논의는 불가피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무조건 폐기해야 할 것만은 아니다. 5년 단임제가 채택될 당시에는 장기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는 87년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채택되었다. 단임제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장기집권의 폐단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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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각 당과 대선주자들이 개헌을 약속하면 개헌발의를 유보하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하면서 “1차적 목표는 개헌 자체의 성사이고, 타협을 해서라도 다음 정부에서 개헌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면 차선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홍보지원팀> |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을 무리하게 개정해 4년 중임제를 폐기했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막은 나쁜 선례를 만든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꾀하다 국민의 분노에 쫓겨나고 말았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대통령도 정권 연장을 위해 3선개헌을 통해 4년 중임제를 폐기했다. 그 뒤 박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꾀해 헌정을 짓밟고 10월 유신을 일으켰다. 유신헌법에서는 절대적 대통령중심제가 채택되어 대통령 권한이 막강해졌다.
국민의 대통령 선출권을 빼앗아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영구집권을 꾀했던 유신 정권은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폭압적 통치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막지 못했다. 부마항쟁과 10·26으로 유신체제는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신군부가 헌정질서를 유린하면서 정권을 다시 탈취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유신체제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선거인단으로 형태만 바꾼 간선을 유지하면서 7년 단임제를 채택했다.
전 정권은 내내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고, ‘대통령을 직접 내 손으로 뽑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주장이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이에 대응해 집권 민정당은 내각제를 주장했으나 87년 6월 항쟁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됐다. 당시 6년 단임(민정당)과 4년 중임(신한민주당)으로 의견이 맞서다 5년 단임으로 결정된 것이다.
단임제는 장기집권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7년 임기를 5년으로 줄인 것은 당시 권력을 둘러싼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 졸속적으로 합의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누구도 승리의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낙선되더라도 쉽게 재도전할 수 있도록 타협했다는 것이다.
연임제 개헌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5년 단임제를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가 뿌리를 내렸고, 장기집권이나 쿠데타 등의 우려도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5년 단임제의 폐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임제는 임기 중 국민의 신임을 묻기 어렵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 받지 못함으로 인해 책임정치를 하기 어렵다. 5년의 임기도 짧고 임기말 현상(레임덕)이 너무 일찍 찾아와 소신 있는 국정운용이 어렵다.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과 임기가 맞지 않아 정치권과 행정부가 불협화음을 내게 된다. 이것이 잦은 국회 파행의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아도 연임제가 주류다. 대통령(중심)제를 실시하는 95개 나라 가운데 단임제를 채택한 나라는 12개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꾸는 나라들도 많다.
군사독재를 겪은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화 초기에 단임제를 채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 국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위해 연임(또는 중임)제로 바꾸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이 대표적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는 문제도 논란이 많다. 임기를 맞추자는 주장은 선거 반복으로 인해 안정적 국정운영이 어려워지고 국력낭비, 국정혼란이 초래된다는 데 근거한다.
또 대통령 선거, 총선거, 지방선거의 임기와 선거주기가 서로 달라 재임 대통령이 5년 임기 중에 정권 평가적 성격을 갖는 선거를 3번씩이나 치러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1987년 이후 20년 동안 전국적 단위의 선거를 한 번도 치르지 않은 해는 8년뿐이고 12년은 전국적 단위의 선거가 한 차례 내지 두 차례씩 치러졌다. 이렇게 잦은 선거가 정당의 정치행위를 선거에 맞추게 함으로써 정쟁이 일상화, 구조화되어, 국력 낭비 및 국정혼란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조정해야 하는 이유로는 국정의 효율성과 안정성, 연속성, 책임성을 기할 수 있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조정을 할 경우, 매년 선거가 치러지는데 따른 정치적 갈등, 정치·사회적 비용이 감소될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조정으로 대통령과 국회의 이원적 정통성에서 기인하는 책임과 권한의 불일치를 해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아도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주기를 일치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달랐던 대표적인 나라였던 프랑스는 2000년에 개헌해 대통령의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여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를 일치시켰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반드시 일치시키거나 동시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주기를 맞춰야 한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만료가 거의 비슷한 시기가 되는 올해가 좋은 기회이다. 올해를 넘긴다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임기를 조정하지 않는 한 임기주기를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 개정에 대한 반대의 주요 논거는 ‘개헌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국회통과가 불가능하고, ‘국민도 찬성하지 않는’ 헌법개정안을 ‘지지율 낮은 대통령’이 ‘임기 말’에 ‘갑자기’ 꺼낸 것은 정략적이며, 헌법에 개정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대통령 임기만 논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몇 년 전부터 개헌 논의는 있어왔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5년 단임제를 유신 이전의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주장, 미국처럼 정·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주장, 내각제를 하자는 주장,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 그리고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자는 주장들이었다.
지난 1997년 대선 때에는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연립정부가 탄생했고, 2002년 대선 때에도, 2004년 총선 때에도 개헌 논의가 있었다. 2002년 대선 때에는 유력한 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을 주장했다.
17대 국회에서도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나 대정부질의를 통해 개헌 주장들이 있었다. 이런 논의와 주장들의 연장선상에서 개헌 제안이 나온 것이다. 또 헌법상 개헌안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의 발의권 행사 자체를 비난해서도 안 된다.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헌법 규정에 따르면 헌법 개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3개월 정도이다.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면 20일 이상 공고하고,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치러 헌법 개정이 확정되면 대통령이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한다. 따라서 4월초에 발의한다 해도 국민투표를 거쳐 공포하는 절차까지 아무리 늦어도 6월말 이전에 마무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12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개헌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거의 제헌 수준 정도로 많은 부분이 개정되었지만 논의를 시작한지 40여 일만에 합의를 이뤘다. 더구나 원 포인트 개헌은 대통령 임기 문제만 고치자는 것이므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차기 정부로 넘기자는 주장이 많은데 차기 정부로 넘기면 개헌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차기 정부 초기부터 개헌을 논의하면 오히려 국정운영에 전념하지 않고 개헌논의에 휩싸인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결국 차기 정부도 임기 말에 가서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법은 한 나라의 대표적 규범으로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제반 구조와 상호관계를 기본적으로 틀 짓는다. 따라서 헌법의 변경은 가능한 한 억제하며,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 국가 사회의 질서유지에 바람직할 것이다.
개헌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다수가 어떤 제도를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적합한 제도가 어느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형태만 논의해서는 안 되고, 현행헌법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 경제, 문화, 복지, 기본권, 영토문제 등 모든 것을 다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헌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의 제안은 논란이 많은 부분은 다음으로 미루고 당장 합의 가능성이 높은 임기 문제, 그리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문제로 국한시키는 원 포인트 개헌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대통령이 제안한 임기 문제에 국한시켜 다룰 수밖에 없다. 표결은 대통령이 제안하는 원 포인트 개헌에 한해 이뤄지겠지만 논의는 현행 헌법의 문제점 모두에 대해서 열어두고, 그 동안 다양한 형태로 논의되던 개헌 문제를 집약시켜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부분에 대한 추가개헌이 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