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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편에 뜨거운 기운이’…상해 임시정부에 가다
임시정부는 임시의정을 구성하고 3권 분립제도를 표방해 민주화 역사의 기원을 이룩하고, 외교활동, 의열투쟁, 광복군 창설 등을 통해 27년간 항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심어준 기구다. 그러기에 한 세기가 지나는 이 시점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고 주권의식을 기릴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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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
이에 정부는 1979년부터 매년 4월 13일이 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4주년을 맞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역시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원로 독립유공자 및 유족, 각계대표,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주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대한민구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은 식전 공연과 함께 박유철 광복회장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약사 보고, 국무총리 기념사, 기념공연, 기념노래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기념노래 제창 시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제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념식 이후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임시정부요인들을 추모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추념식’이 같이 개최됐으며, 군악대와 의장대의 사열도 이뤄져 이목을 끌었다. 이 날 기념식은 공중파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국가기념일이기는 하지만 달력에서 빨간일로 공표되어 있지 않아 새간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일은 엄연한 국가기념일이다. |
국가기념일이기는 하지만 달력에서 빨간일로 공표되어 있지 않아 새간의 관심에서 살며시 벗어나 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일은 엄연한 국가기념일이다. 이 날 행사에는 연로하신 독립유공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도 많이 보여 국가기념일을 잊지 않고 전수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헌화와 분향, 추념사를 진행할 때에는 나이든 유족들은 눈시울을 붉혀 보는 이로 하여금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고 밝힌 한 어르신은 “나라의 어려움이 있을 때를 되달오보고, 많은 사람이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웠으면 한다.”고 전했다. 성원중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학생들은 “조금은 경직된 분위기라 어색하지만 뜻 깊은 곳에 참석해 많은 것을 배우고 가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이 날에 앞서서 중국 상하이와 충칭에서도 중국 지역 독립유공자 후손, 현지 교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뜻을 기리기 위한 기념식이 개최됐다. 내가 아닌 중국의 상하이와 충칭에서도 열린 까닭은 바로 그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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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록에 이름을 남기는 독립유공자 가족의 모습. 추념사를 진행할 때 눈시울을 밝히는 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했다. |
기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바로 그곳 최초의 임시정부 본거지인 중국 상하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현재의 상하이는 엄청난 문명의 발달로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했다. 다만,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적 과거의 현장이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엄청난 변화의 물길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묵묵히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니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역사와 자랑스러움이 교차했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 외의 모습이었다. 상하이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임시정부를 찾아갈 수 있어 편리했지만 버스에서 하차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을 눈앞에 두고도 ‘어? 어디지?’라고 느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골목길 옆에 있었다.
역사의 의의를 가진 의미 있는 건물이었지만 첫인상이 정말 허름해보였고, 그저 몇몇 한국 관광객들이 찾아올 뿐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한국어로 된 관람 및 입장가격 표지판을 통해 여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터임을 알리고 있었다.
이렇게 이제는 그저 상하이의 관광코스 중 한 곳이 되었기에 어떤 이들은 그냥 그렇게 스쳐지나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곳을 실제로 방문해보면 그 생각은 바뀔 것이다. 이 작은 건물에서 과거의 독립 운동가들이 어렵게 조국을 위해 활동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있는 주택가 골목길 전경(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알리는 명패와 김구 선생의 집무실(우). |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택가에 위치해 있기에 인근 골목길에는 여기저기 빨래가 널려 있었다. 허름한 집들이 많은 주거지 옆쪽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겉은 비록 허름해 보여도, 멀리 타국의 땅에 위치해 있어도, 이 작은 건물에서 대한민국의 위엄과 위상이 마치 강한 에너지처럼 흘러나오는 듯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은 상하이 도시의 역사적 명소 중 하나로 탈바꿈해 관광객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고 있다. 임시정부 내부를 살펴보니 임시라고 하지만 그래도 ‘정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은 곳이었다. 일제의 탄압 때문에 주택가로 숨어 있고자 했던 당시의 임시정부 멤버들의 고된 삶의 흔적이 엿보였다. 실내는 경사가 급한 계단 등으로 조밀하고 좁은 공간이지만 이곳저곳 조국을 되찾기 위한 손길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위층에는 집무실이 위치하고 있다. 집무실에는 김구 선생 모습의 실사 인형이 태극기 아래 집무를 보는 모습으로 연출돼 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과거 긴박했던 역사적 한 순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이 제한적이어서 많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오지는 못했지만, 용맹했던 과거의 현장을 가슴 속 깊이 담아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편,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의미있는 기념사를 남겼다. 정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민 행복시대의 첫 요건은 안보”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나가는 데 있어 선열의 의지를 받들면 어떤 난관도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정책기자 박종근(직장인) ewpwis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