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습관이다. 뭐든 잘 못 버린다. 영수증도 마찬가지다. 안 들던 가방이나 외투 주머니에서 잉크마저 지워진 영수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습관도 변한다. 영수증을 굳이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카드 사용내역이 문자로 전송되기 때문이다. 내가 버리거나, 사업주가 버리거나 좌우지간 종이영수증은 버려진다.
자원낭비다. 발급 즉시 버려지는 영수증이 약 60%라고 한다. 한 해 동안 발급된 영수증만 무려 지구를 62바퀴 돌며, 10톤 대형 트럭 1,340대 분량이다.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비스페놀 A 때문에 재활용도 안 되고, 개인 정보가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일찍이 종이영수증 발급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2012년부터 ‘페이퍼리스’ (paperless)를 시행한 BC카드는, 절감된 종이영수증 발급비용을 환경보호를 위해 쓰고 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BGF리테일, 세븐일레븐 등과 함께 한 이 사업은, 고객이 원할 경우에만 영수증을 출력해 불필요한 종이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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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영수증들. |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책을 읽는 시대다. 종이가 사라지며 시작된 변화는 일상에서 다채롭게 드러났다. 입원했던 딸의 보험서류를 팩스로 보내야 했다. 집에 팩스가 있을 리 없었다. 문방구에 가자니 많은 서류가 번거로워, 남편에게 부탁해 회사에서 보내도록 했다. ‘모바일 팩스’ 라는 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나고야 알았다. 한참을 더 배울 나이다.
용돈을 체크카드로 넣어달라는 아들 녀석 때문에,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했을 때다. 그 많던 종이서류가 전자문서로 대체됐고, 서명 역시 태블릿에 했다. 기계에 하는 사인은 잠시 어색했지만, 그뿐이었다.
바야흐로 모바일의 전성시대다. 생각해 보니, 휴대폰 개통 설명부터, 학교의 가정통신문도 이미 앱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다. 연말정산 종이 증빙자료도, 쿠폰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도착한 종이쿠폰으로 할인이나 서비스를 받던 시대도 이제 지났다. 앱을 통한 스캔 한 번으로 쿠폰 적용 및 포인트 적립, 다둥이클럽 혜택은 물론 전자영수증까지 발행된다.
지난해 10월부터, 국세청은 ‘전자사업자등록증’ 서비스를 하고 있다. 종이로 출력해야만 했던 사업자등록증을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다. 상거래나 금융거래 시 쓰이는 사업자등록증은 종이 형태로만 발급돼, 보관과 사용이 불편하고, 훼손, 분실이 많아 연간 수십만 건이 재발급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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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지난 해 10월부터 전자사업자등록증 서비시를 시행하고 있다.(출처=국세청블로그) |
뿐만 아니다. 병원에서 종이문서로 작성하는 각종 동의서 및 설문지는, ‘병원 모바일 전자동의서’로 했으며, 보험 상품 소개부터 계약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전자청약 시스템’을 도입한 보험사도 등장했다. 묵직한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는 대는 대신, 태블릿을 꺼내면 됐다.
‘페이퍼리스 시스템 구축’ 이후, 카드 발급률도 월평균 63% 증가했다는 통계다. 고객 편의성을 높여 민원이 줄었으며, 개인정보를 태블릿PC에서 곧바로 입력하는 방식을 사용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낮춘 것이 포인트다.
정부도 힘을 보탰다. 지난 달 19일, 환경부는 ‘종이영수증 없는 점포 선포 협약식’을 개최했다. 신세계그룹 13개 기업을 비롯, 스타벅스와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한 ‘페이퍼리스’는 종이영수증을 모바일 영수증으로 대체하는 국민 캠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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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영수증을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해당기업의 앱을 다운받고, 종이영수증 미출력을 체크하면 끝, 물건 구입후 곧바로 전자영수증이 발급됐다.(출처=환경부) |
이용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해당기업의 앱을 다운받고, 영수증을 클릭, 종이영수증 미출력에 체크만 하면 된다. 물건 구입 후 결재 내역은 모바일 전자영수증으로 실시간 입력됐다. 모바일 영수증으로도 교환·환불이 가능하다. 잘못 구입했으나 영수증이 사라져 당황할 일은 없어진 거다.
2012년 발급된 종이영수증은 310억 건으로, 약 2,500억 원의 비용이 들었고, 생산과 폐기과정에서 나온 온실가스 배출량도 약 5만5,000톤에 달한다. 종이영수증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덕분에 종이를 대체하는 전자기기의 도입은 기업과 공공기관에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어릴 적, 책장 넘기는 소리가 좋다던 아들 녀석이 태블릿으로 책을 보기 시작한다.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적응하기란, 때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종이가 사라지는 대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원 절약과 환경 지키기, 이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