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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다시 걷는 조선통신사 길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에서 만난 신뢰와 교류의 한일 역사

2025.05.08 정책기자단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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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 나라,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멀게 느껴지는 일본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일 간의 첫 교류는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역사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문화적으로 긴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와 같은 비극을 겪으며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가 남았고, 그 여운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남아 있다.

그렇게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영광스러운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그리고 2025년, 그로부터 꼭 6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았다.  

경희궁에서 시작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출처: KTV 국민방송)
경희궁에서 시작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출처: KTV 국민방송)

이를 기념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산문화재단은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준비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행사는 한일 문화 교류의 역사이자 상징인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이다. 

이 행렬은 4월 24일 서울 경희궁에서 시작해 부산, 오사카, 요코하마를 거쳐 9월 도쿄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각 도시에서는 기념식과 공연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

이 외에도 조선통신사 관련 전시, 양국 국립박물관 교환 전시, 한일 현대 미술전, 합동 무형 문화유산 및 클래식 공연, 스포츠 교류까지 풍성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 자료와 일반에 최초로 공개하는 유물까지 만나볼 수 있어 깊이 있는 전시로 기대를 모은다.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은 국내외 18개 기관이 소장한 총 111건, 128점의 유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평화를 이끈 외교 시스템으로서의 조선통신사를 재조명한 1부, 서울에서 에도까지의 대장정을 유물과 함께 따라가는 2부, 개인 간 교류와 민중의 문화로 확장되는 3부로 구성되었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통신사의 행렬을 따라가는 보드게임
한양에서 에도까지 통신사의 행렬을 따라가는 보드게임
통신사가 전해준 고구마. 외교뿐만 아니라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신사가 전해준 고구마. 외교뿐만 아니라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실 앞에는 조선통신사의 사행길을 따라갈 수 있는 보드게임이 설치돼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끌었다. 

조선시대 머나먼 길을 오갔던 선조들의 노고와 4월부터 9월까지 이어질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을 미리 짚어볼 수 있어 여정 속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나는 전시를 보기 전 예습 삼아 먼저 게임을 즐겼지만, 관람을 마친 뒤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회례사'로 일본에 파견된 송희경이 귀국 후 저술한 일본 사행록. 국립중앙도서관
'회례사'로 일본에 파견된 송희경이 귀국 후 저술한 일본 사행록.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에 따르면, 통신사 파견은 이미 '회례사' 형태로 1392년부터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에만 존재했던 줄 알았던 통신사는 사실 조선 전 시기를 아우르며 이어져 왔다.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이 극심해지자 조선 정부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단속을 요청했고 그 결과 1404년 조선과 일본은 각각 '국왕' 명의로 국서를 교환하며 국가 간 대등한 교린 관계를 수립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양국 간 외교는 점차 일정한 형식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사명대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회담을 앞두고 쓴 시. 일본 개인 소장
사명대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회담을 앞두고 쓴 시. 일본 개인 소장

그러나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양국의 교린 관계는 단절되었고 두 나라가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깊은 골이 생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외교 복원을 시도했다. 

이에 조선은 1607년, 사절단을 파견해 국교를 재개했다.

통신사로 떠나는 조엄이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읊은 시. 최초 공개, 서울역사박물관
통신사로 떠나는 조엄이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읊은 시. 최초 공개, 서울역사박물관

이후 조선은 총 12차례 걸쳐 통신사를 파견했다. 

한양에서 에도까지의 여정은 왕복 4,600km가 넘는 거리로, 6~11개월이 소요되는 대장정이었다. 

지금처럼 비행기로 금세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장장 몇 개월이 걸릴지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그 불확실한 길을 따라가며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사명을 지녔던 이들의 고뇌와 책임감이 생생히 느껴졌다.  

통신사 종사관선과 수행선을 그린 그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오사카역사박물관
통신사 종사관선과 수행선을 그린 그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오사카역사박물관
에도성에서의 통신사 행렬과 국서를 전달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교토시 지정문화재
에도성에서의 통신사 행렬과 국서를 전달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교토시 지정문화재
에도성에서의 통신사 행렬과 국서를 전달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교토시 지정문화재
에도성에서의 통신사 행렬과 국서를 전달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교토시 지정문화유산

통신사는 일본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통신사 행렬은 일본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 간 문화 교류도 활발히 이뤄졌다. 

통신사의 여정은 단순한 외교 사절단의 방문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문화와 신뢰의 교류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흔적은 오늘날 문화유산의 형태로 우리 세대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쇼군의 회답서와 예물목록을 담은 국서함 그림. 최초 공개, 국사편찬위원회
쇼군의 회답서와 예물목록을 담은 국서함 그림. 최초 공개, 국사편찬위원회
일본의 농민들이 통신사 선단 행렬을 그려 신사에 봉헌한 그림. 최초 공개, 돈다바야시 지정문화재
일본의 농민들이 통신사 선단 행렬을 그려 신사에 봉헌한 그림. 최초 공개, 돈다바야시 지정문화재

끊길 듯 끊기지 않은 조선-일본 간 교린의 역사는 근대 이전의 외교 방식을 거부한 메이지 정부 때 완전히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한일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렇게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영광스러운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양국은 다시 국교를 맺었고 2025년인 지금 그 6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본어 통역을 위한 한, 일어 학습용 문서. 한림대학교 박물관. 통번역 대선배님들의 흔적
일본어 통역을 위한 한, 일어 학습용 문서. 한림대학교 박물관. 통번역 대선배님들의 흔적

나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첫 기쁨을 안겨주고, 번역가의 꿈을 품게 해준 언어는 바로 일본어였다. 

일본 문화를 처음 접한 건, 한국어로 인명과 지명이 번역된 해적판 일본 만화였다. 

요즘처럼 전 세계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21세기 초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접할 수 없었다. 

일본 만화에 이어 일본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일본으로 출장 가는 아빠나 숙모에게 CD를 사달라고 부탁하곤 했고 CD를 받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산을 배경으로 첫사랑을 향해 외치던 여성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는 내가 극장에서 본 첫 일본 영화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1999년 일본 대중문화 2차 개방 덕분이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단계와 나의 추억은 나란히 쌓여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정책이 나의 일상과 취향에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한 셈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문화가 가진 힘과 정책이 일상에 미치는 힘을 누구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한류의 원조~ 인기를 얻어 수출된 호랑이 그림. 오사카역사박물관
한류의 원조~ 인기를 얻어 수출된 호랑이 그림. 오사카역사박물관
'조션국' 한글이 쓰여진 철화백자 병. 최초 공개, 료소쿠인
'조션국' 한글이 쓰인 철화백자 병. 최초 공개, 료소쿠인

통신사( 通信使)는 '믿음을 통하는 사절'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번 전시를 통해 '통신'의 '신'이 '믿을 신'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의외였지만, 이는 결국 정보 전달의 기반이 신뢰임을 말해준다. 

신뢰 없이는 소통도 불가능하다. 

바로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수개월이 걸리는 여정도 마다하지 않고 조선과 일본은 오랜 시간 교류를 이어올 수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신뢰의 길을 열어야 할 시점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위해 마련된 이 자리가 그 첫 단추이자 새로운 물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카드뉴스 바로가기) 서울→도쿄, 조선통신사 행렬로 미래를 잇다

정책기자단 정수민 사진
정책기자단|정수민sm.jung.fr@gmail.com
글을 통해 '국민'과 '정책'을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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