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내 첫 봉사활동은 중학교 1학년, 가까운 지역의 아동센터에서 환경 정리를 한 것이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아 점점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모인 봉사 시간이 이미 고등학생 때는 1000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처음 환경정화 활동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은, 시간이 흐르며 피아노 교육봉사, 멘토링 및 상담 봉사 등 내가 잘할 수 있는 활동으로 이어졌고, 때로는 지방자치단체 행사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행사, 또 국가적 재난 상황에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재난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봉사에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변화는 코로나19 시기 나타났다.
해당 시기를 전후로 봉사의 종류와 형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고 느낀다.
비대면 봉사가 더욱 다양해졌고, 단순히 봉사를 넘어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 계획되거나, 기존에 강조되던 전통적인 봉사의 개념에 더해 봉사자에게도 소소한 혜택과 봉사에 대한 추억을 심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1365 자원봉사포털. 메인에서부터 온기나눔 볼룬투어와 관련된 팝업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출처=1365자원봉사포털 누리집)
지난 5월 초, 오랜만에 코로나19 센터에서 함께 활동했던 지인과 봉사 관련 대화를 하던 중 최근 재미있는 봉사활동이 많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튿날 오랜만에 1365 자원봉사 포털에 접속해 봤더니 '여행도 즐기고, 온기도 나누고!'라는 이름의 2025 온기나눔 볼런투어 팝업이 눈에 들어왔다.
볼런투어, 봉사(봉사자)를 뜻하는 Volunteer과 여행을 뜻하는 Tour가 결합한 신조어로 각종 명소에서 관광도 즐기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내문에는 역사, 환경, 문화 등 다양한 테마의 볼런투어 프로그램이 2025년 4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된다며 지인과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의미 있는 활동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안내되고 있었다.
자원봉사 검색란에 '볼런투어'로 검색을 해보니, 집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대구, 부산, 경주, 남해 등 관광 명소로 이야기되는 곳에서 진행되는 볼런투어도 찾을 수 있었다.
부산 볼런투어의 경우 이태석신부코스, UN평화기념관 활동 등 지금까지 수차례 부산에 방문했던 나도 잘 알지 못했던 역사와 장소에서 진행되어 볼런투어에 더 많은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몇몇 봉사를 살펴보던 중 '진달래 심기와 함께하는 착한 여행'이라는 내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식목일도 지났는데 지금 진달래를 심는다고?'
호기심을 안고 관련 내용을 살펴보니 이번 영남권을 덮친 산불로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인 영덕에서 진행되는 행사였다.
내가 처음에 찾았던 볼런투어 활동은 아니었지만, 산불 피해지역에서 봉사도 하고 관광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볼런투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해당 활동을 신청했다.
영덕 진달래심기 봉사활동은 영덕 리부트 캠페인의 하나로 진행되는 활동으로 6월 22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상시 운영된다.
활동 시간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이며 참가비 1만 원이 발생하지만, 참가비는 영덕 지역화폐로 전액 환급되어 활동 전후 영덕 지역을 여행할 때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더위가 살짝 가신 지난 23일, 자원봉사가 진행될 영덕으로 이동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향했다.
산불이 영남을 휩쓴 직후 자원봉사를 알아보던 지인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은데 해당 지역까지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네"라고 말한 것처럼 영덕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환승을 포함해 왕복 약 7시간이 걸리는 정도였다.
철도를 이용해 영덕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포항역에서 한 번의 환승을 거쳐야 했다. 환승편이 하루에도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방문을 계획한다면 빠른 예매가 권장된다.
이른 아침, 피곤함이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런저런 업무를 하다 보니 금세 포항역에 도착했고, 이내 영덕역에 도착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기억이 있는데, 성인이 된 후 영덕에 처음 오기도 했고, 기차를 타고 영덕에 온 건 처음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역 밖으로 나왔다.
포항역에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영덕역에 도착했다. 역 내외부는 물론 도시 곳곳에서 영덕의 상징인 대게의 조형물을 마주할 수 있다.
영덕의 상징인 대게를 오마주한 다양한 조형물들이 인상적이었던 영덕역 뒤로 풍력 발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강원도 출장 당시 대관령에 들렀을 때 봤던 풍력발전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쉬지 않고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 수십 대를 보니 자원봉사가 아닌 정말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그래도 바다가 있는 지역에 왔으니, 바다는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불렀다.
동해안 블루라인이라는 관광 테마, 대게와 송이의 산지로 유명한 영덕이지만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인지 콜택시를 이용해야 편리하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앱에서 수차례 택시 호출에 실패한 후에야 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기사님에게 서울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말하자 기사님은 산불 피해 난 곳에 진달래를 심으러 가는 거냐고 되물었다.
하루에도 서너 번은 자원봉사를 위해 영덕을 찾은 손님들을 태우게 된다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건지 영덕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저 고마운 마음 뿐이라는 말을 전했다.
얼핏 보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크게 자란 나무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나무가 검게 그을려있었고, 적지 않은 나무가 이미 타버려 순차적으로 벌목을 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영덕역을 출발한 지 3분 가량이 지나자, 영남의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산의 수려한 모습에 그저 감탄만 하고 있을 때 기사님이 저 능선을 한번 잘 보라고 했다.
기사님이 가리킨 곳에 보이는 긴 능선에는 내가 그동안 알던 푸른 빛의 나무가 아닌 온통 검게 타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기사님은 처음 영덕에 오는 분들은 잘 모르지만 지금 보고 있는 나무들도 다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며 "아래쪽이 전부 타버려서 결국 잘 자라지 못할 나무들이라 벌목해야 한다고 들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원봉사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해맞이공원 일대를 둘러봤다. 역시 대게를 따온 조형물이 있었고, 오른편으로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다.
처음 산불이 시작된 곳에서 약 100km도 더 떨어졌다는 영덕도 거센 불길을 피해 가진 못했다.
중간 중간 타버린 나무를 지나며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원봉사 활동이 진행될 영덕 조각공원에 도착했다.
활동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영덕까지 온 김에 바다를 보고 싶어 해맞이공원 쪽으로 이동해봤다.
시원한 바다, 그리고 파도 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영덕의 바다. 잘 조성된 산책로 중간중간 화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산책로들이 산불로 훼손되어 출입 금지 상태였다.
시원하게 뚫린 바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바람까지 불어오니 공원에 있는 것이 너무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방문객도 많지 않아 사색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영덕의 상징인 대게 조형물에 웃음이 나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산불의 흔적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산불이 훨씬 심각했다는 것을 체감했다.
활동 시간에 맞춰 다시 조각공원으로 돌아갔다. 공원에 도착하자 진달래심기 활동을 위한 접수처와 배부처가 눈에 들어왔다.
활동 시간에 맞춰 조각공원을 찾으니 진달래 심기 활동의 접수처와 진달래 배부처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현장에서 참가비 1만 원을 냈고, 바로 영덕사랑 상품권 1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활동 담당자는 나와 함께 방문한 다른 봉사자들을 모아 활동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활동이 진행된 별파랑공원 일대도 거센 불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야외 데크와 휴식 공간은 모두 불탔고, 나무들 역시 많이 정리되어 있었다.
담당자는 30년 전, 영덕 지역에 산불이 크게 나 조각공원을 비롯해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영덕을 포함해 영남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로 또다시 피해를 보게 되었고, 황량해진 산을 가꿀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던 중 진달래 심기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산불로 300채가 넘는 가구가 전소되었고, 향후 30년 간 영덕의 특산품이었던 송이버섯을 출하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다며 "여러분의 도움으로 진달래가 피고, 추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 기억에 남는 영덕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이후 진달래 심기 활동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설명이 끝난 후 각자 진달래 심기에 필요한 도구와 진달래를 챙겨 활동 장소로 이동했다. 개인적으로 태어나서 처음 풀을 심어보는 순간이었다.
안내를 마친 담당자는 참가자 모두에게 목장갑과 호미, 물조리개와 기본 제공되는 진달래 묘목 묶음을 나누어주었고, 물건을 받은 나는 다른 참가자들과 진달래 심기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지난주부터 시작된 행사였기에 위쪽부터 상당 부분 진달래가 심어져 있었다.
담당자는 흰색 표시가 된 곳에 자유롭게 진달래를 심으면 된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가장 아래쪽으로 이동해 진달래 심기를 시작했다.
처음 진달래를 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활동을 지속할수록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받침대를 제거하지 않아 심었던 진달래를 다시 파야 했지만, 이내 적응되어 심는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호미로 땅을 적당히 파고 나눠준 진달래 묘목을 흙 속에 심었다.
이후 다시 흙을 덮고 땅을 다진 후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을 주는 것의 반복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나무를 심어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어색했고, 묘목이 담겨있던 화분도 제거하지 않아 진달래 심었던 곳을 다시 파서 화분을 제거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평일임에도 희망을 심기 위해 영덕을 찾은 봉사자가 꽤 많았다. 가족과 함께, 나처럼 개인 자격으로, 혹은 봉사 겸 릴스 촬영을 위해 방문한 방문객도 만날 수 있었다.
쪼그려 앉아 진달래를 심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심는다는 봉사활동의 취지를 생각했고 산불 피해지역을 내 손으로 변화시킨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을 계속했다.
나중에는 진달래 심기에 재미를 붙여 추가로 묘목을 더 받아와 총 30개 가량의 진달래를 심는 것으로 활동을 마쳤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며 영덕의 새로운 관광지로 발돋움할 진달래 동산을 사진에 담아봤다. 지금은 다소 황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진달래꽃이 만개할 것이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다시 영덕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또 다른 택시 기사님 역시 영덕 산불의 심각성을 생동감 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마치 회오리가 치듯 불기둥이 솟구쳤다며, 밤에 잠을 자다 대피 방송을 듣고 주민들이 대피하려 했지만, 안개와 재로 인해 플래시를 켜도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감이 계속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불이 완전히 진압된 지금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지인도 있다고 했다.
산불이 모두 진화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산불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회복이 불가능한 나무를 정리하고, 파손된 산책로와 관광지 복원이 시작조차 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이제는 산불이 사그라들어 푸른 하늘이 보이는 영덕, 시원한 파도 소리에 봉사를 넘어 휴식의 시간이 되었던 재난 봉사활동이었다.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최근 하루에도 서너 명씩 영덕을 찾는 자원봉사자를 보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이 재난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심각했던 산불 피해와 영덕의 아름다운 산림이 파괴된 것만 기억에 남아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 들까봐 걱정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도움은 해당 지역을 찾아 여행을 즐기고, 시간이 된다면 나처럼 소소한 봉사활동도 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 다시 아름다워질 영덕에 기대가 많아졌다.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한 최고의 기부는 해당 지역을 찾아주는 것이 아닐까?
5월 말 기준 산불 관련 물자 정비 봉사활동 봉사자 모집이 계속 진행 중이며, 내가 했던 진달래 심기 자원봉사 역시 오는 6월 22일까지 계속된다.
참고로 이번 여행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후 통행료를 지원받기도 했다.
정부는 재난지역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국민을 위해 통행료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열차 이용의 경우, KTX와 SRT를 비롯한 모든 열차에 대해 지원하고 있고 자차 이용 시 톨게이트나 고속도로 사무실에 들러 100% 면제 혹은 환불을 신청하면 된다.
단, 교통비 지원 혜택은 자원봉사지에서 봉사 확인증을 발급 받아야 하고, 티켓 당 자원봉사 확인증 한 장이 필요하다.
왕복 지원 혜택을 받으려면 확인증 두 장을 발급받으면 된다.
가족과 친구 혹은 나처럼 혼자라도 산불 피해 지역에 희망을 심어보는 건 어떨까?
작은 힘이 모여 아름다운 진달래 동산을 이루듯 연분홍 희망으로 피어날 것으로 믿는다.
영덕 곳곳에는 국민의 방문과 봉사활동에 대한 기대감과 영덕을 방문한 방문객에 대한 감사를 담은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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