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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6·10만세운동'

서울 중앙고등학교 일민 강당에서 열린 제99회 6·10만세운동 기념행사 참석(6.10)
1926년 6·10만세운동의 외침을 통해 오늘을 다짐한 하루

2025.06.12 정책기자단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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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한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
모두 한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

◆ "대한독립 만세!" - 1926년 6·10만세운동의 기억을 걷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황제의 국장일에 맞춰 서울 단성사 앞에서 일제의 탄압에 맞선 격렬한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운동이었으며, 학생, 종교계,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펼친 조직적인 독립운동이었다.

이날 시위를 주도했던 청년들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수형 생활을 겪었다.

독립기념관에는 이들의 고통과 용기를 전하는 전시물이 생생히 남아 있다.

특히 바구니처럼 생긴 '용수'를 얼굴에 씌운 채 줄로 묶여 이동하는 시위 참여자들의 모습은, 재현 조형과 당시 사진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전시된 수갑, 포승줄, 일본 헌병의 검 등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판정에 끌려가는 6·10만세운동 참여 학생들 (독립기념관 소장)
공판정에 끌려가는 6·10만세운동 참여 학생들 (독립기념관 소장)

권오설, 홍종현 등 6·10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카드와 판결문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권오설은 6·10투쟁특별위원회를 조직한 혐의로 1930년까지 복역했으며, 홍종현은 단성사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6·10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민족의 독립 의지를 다시금 확인시킨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잊혀가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다시 기억하고, 현재의 자유가 수많은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되새기게 된다.

2025년 6월 10일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일민 강당에서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제99회 6·10만세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6·10만세운동 참여자 재판판결문, 수형기록, 당시 학생들 격문 (독립기념관 소장)
6·10만세운동 참여자 재판판결문, 수형기록, 당시 학생들 격문 (독립기념관 소장)

◆ 선열의 외침, 오늘의 다짐

기념식은 국민과 국가유공자, 유가족, 학생 등 각계각층의 참석자들로 가득 찬 가운데, 차분하면서도 숭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대한, 모두의 독립, 하나된 만세"라는 구호와 함께 낭독된 연설문에서는 6·10만세운동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다.

보훈부 장관은 기념사에서 "6·10만세운동은 이념과 신분을 초월한 대동단결의 장이었습니다. 이는 이후 신간회의 창립 등 좌우합작 민족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침체되었던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전환점이었습니다."라며 국가보훈기본법 제2조, 제6조, 제30조를 인용하여 "국민 통합의 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계승해야 할 선열들의 유산"임을 거듭 강조했다.

보훈부 장관 기념사
국가보훈부 장관 기념사

◆ 만세의 역사

선언사 낭독
선언사 낭독

◆ 재판정으로 옮겨진 만세의 기억 - 연극과 낭독

이날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준비한 6·10만세운동 상황극이 무대에 올랐다.

경성지방법원 재판정 형식으로 구성된 이 연극에서는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소속 학생들이 일제 법정에서 끝까지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외치던 장면이 생생히 재현되었다.

6·10만세운동 참여 학생 재판정 상황극
6·10만세운동 참여 학생 재판정 상황극

"격문 500장을 뿌렸습니다. 조선 독립을 위한 정당한 행동이었고, 내게는 부끄러움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판결문을 낭독하던 '판사'는 결국 징역 1년을 선고하며, 일제가 학생들에게 가했던 탄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기념 공연에서는 6·10운동을 모티브로 한 창작 가요와 랩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넘어져도 앞으로만! 여긴 영원히 우리의 것!"이라는 가사로 구성된 공연은 과거와 현재, 미래세대를 잇는 연결고리를 대중적으로 풀어냈다.

랩 퍼포먼스
랩 퍼포먼스

일제의 '불온 세력' 프레임과 해방 후 이념 갈등은 지금까지도 운동 주도 세력에 대한 공적 인정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훈부는 올해 행사에서 처음으로 '고려공청'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앞으로도 유족회의 아쉬움이 더 많이 덜어지길 바란다.

2026년은 6·10만세운동 100주년이다.

이제는 운동의 전모를 사실에 기반하여 통합적으로 재구성하고, 공과를 초월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점이다.

기념식이 끝난 뒤 한 학생은 조용히 말했다.

"저는 오늘 처음 6·10운동이 그렇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외쳤다는 걸 알았어요. 단지 교과서의 한 줄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 외침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이제 조금 알게 됐어요."

6·10만세운동 시발점 표지석과 시위 학생들 이동 경로
6·10만세운동 시발점 표지석과 시위 학생들 이동 경로

◆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함께하겠다"는 실천으로

99년 전의 함성은 단지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오늘의 기념식은 그 함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선열들이 외친 '대한독립 만세'는 단지 국권 회복의 외침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로 뭉쳐야 할 이유, 서로를 인정하고 통합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공존의 디딤돌로 삼는다면, 100주년을 맞는 내년의 기념식은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우리의 대한, 모두의 독립, 하나된 만세'를 외쳤던 오늘의 목소리가 그 시작이 되기를 기원하여 본다.

☞ '정책뉴스' 제99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 10일 중앙고에서 거행

정책기자단 정재영 사진
정책기자단|정재영cndu3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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