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계열 학과로의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어떤 질문을 할까, 미리 고민해 보면서 예상 답안을 여럿 마련하여 학교를 찾아갔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부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까지 다양한 학년의 학생들을 만나보았는데, 그중에서도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멘토링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의 상담이었다.
당장 고교학점제가 적용된 학년이라, 진로 선택이나 진학을 위한 과목 선택의 고민이 다른 학년에 비해 조금 더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로 학과 멘토링에 출강했을 때가 기억난다. 다양한 진로 고민을 가진 1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이 물어봤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당장 2학기가 되면 과목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대학 진학에 유리할지 고민이에요."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에 선택과목에 따라 분반으로 나뉘어서 수업을 받았던 경험이 있지만, 지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뒤로부터는 그때와는 이야기가 또 다르다.
고교학점제가 전면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과목명을 보고 고르라거나, 교과서의 목차를 참고해 보라는 간단한 조언으로 답을 해주기가 어려워졌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바탕으로, 과목을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출처: 교육부)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바탕으로 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자면, 학생 개개인의 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권을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2학기에, 2학년 때 이수할 선택과목을 결정하게 되며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1학년 1학기 때부터 학생들에게 진로와 학업 설계 지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2학기 선택과목의 수가 대폭 늘어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인 학생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미술 관련 학과 멘토링을 진행하기 위해 어떤 과목이 개설되었는지 찾아보니, 매우 많은 세부 과목들이 개설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미술 과목이 '일반 미술' 과목 하나만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조형예술, 시각디자인, 패션디자인, 회화, 색채학, 미디어아트, 미술 비평 등 대학에서 배우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하위 과목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졌기 때문에 학생이 원하는 진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찾을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느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거점형 선택교육과정인 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공통 과목 외에 '미술 전공 실기' 과목을 추가로 이수했던 경험이 있다.
거점형 선택교육과정은 내가 재학 중인 학교에 개설되어 있지 않은 과목을, 수요에 따라 여러 학교의 학생과 함께 하나의 거점 학교에서 방과후 교실의 형태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대학 입시에 있어 나의 전공 관심도나 전공 적합성을 보여주기도 유리하고, 공통 과목에 비해 조금 더 심화된 내용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어 흥미가 생긴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지만, 거점 학교, 즉, 우리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이동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는 점과, 우리 학교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나눌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고교학점제가 조금 더 좋은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 멘토링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치는 학생뿐 아니라, 고교학점제를 통해 진로를 뚜렷하게 설정한 학생도 만나볼 수 있었다.
마침, 멘토링을 갔을 때, 시범적 고교학점제를 경험했던 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학생은 고교학점제로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한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제가 직접 고민해서 고른 과목이라 조금 더 흥미 있게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힘이 생겼고, 호기심이 가는 과목을 수강하다 보니 만족도도 높았어요."라고 말하며, "대학에서 수강할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과목을 고등학교에서 미리 수강해 보면서 제가 이 진로를 잘 선택한 건지, 그리고 이 진로를 갖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살게 될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희망하는 진로를 아직 찾고 있는 학생에게는 과목 선택이란 큰 산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고교학점제에 참여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3년 동안 같은 진로만을 희망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고, 진로 선택의 자유가 넓어졌다고 해도 대학 입시와 동떨어진 선택을 할 수는 없으니, 선택과목을 마냥 가볍게 고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만 해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을 하겠다며 구체적인 진로가 바뀌었고,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대학 진학 원서를 쓸 때 생각지도 않았던 학과에도 원서를 냈던 경험이 있는 만큼, 학생이 하는 고민이 아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고교학점제를 경험했던 학생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과목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진로와의 관련성이었지만, 그 뒤로는 대학 입시와의 관련성, 과목 내용의 수월성, 내신의 유불리까지도 모두 고민 대상인 것으로 보였다.
진로를 결정하지 않았다가 과목 선택 이후에 미술 교사를 꿈꾸게 되었다고 소개한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진로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과목 선택을 하기 이전에 진로에 대해 스스로 찾아보고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라고 하면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장래 희망을 적어보라고 하면,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적는다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직업, 혹은 안정적인 직업을 써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진로 고민에 있어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교육부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운영하는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은 전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양질의 진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로체험 인증기관을 선정해 왔고, 24년 하반기에 411개 기관이 새로 선정되어 현재 전국에서 총 2771개의 진로체험 인증기관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 지능형 농장 등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신산업 분야는 물론,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국립현대무용단 등 120개의 공공기관도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진로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이 두루 체험하기에 좋을 제도라고 느꼈다.
이번 2025 교육기부 우수인증기관은 강원 영월군의 '조선민화박물관'이라고 하는데, 작가, 전시 도우미(도슨트), 전시기획자(큐레이터) 등의 진로를 꿈꾸는 초·중·고 학생이 현장에서 직접 민화 반지갑 체험 등을 해보며 진로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