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랍 속에 든 일기장을 발견했어요. 아버지가 특별한 날에 짧게 기록해 둔 일기였어요.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 젊은 날 한때의 저를 추억할 수 있었어요.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순간입니다. 저도 뒤늦게 일기를 쓰고 있어요."
과거의 기록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2층 홀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기획전시실에서 해설했던 로렌(Lauren)이 했던 말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그날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하면 연상되는 키워드가 있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관련된 국제기구가 국내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도 충청북도 청주에!
아마도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2023년 11월, 충청북도 청주에 세계 최초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개관했다.
지난 2023년 11월 1일 충청북도 청주에 세계 최초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개관했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이하 센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지원하고 기록유산의 보존과 활용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찜해두고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드디어 청주를 방문하게 되었다.
8월 19일(화) 오후에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를 방문하면서 센터가 청주에 소재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센터가 흥덕사지 근처에 있었다.
흥덕사지라면 흥덕사(절)가 있었던 곳이다.
☞ (정책뉴스) 세계 최초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11월 1일 개관
청주 흥덕사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인쇄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절이 소실되고 터만 남아있다.
청주 흥덕사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했다.
직지심체요절을 줄여서 직지심경이라고도 한다.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간행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다.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8년 앞섰다.
그만큼 지금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있는 곳이 기록과 연관된 역사적인 장소다.
국제기록유산센터는 기록유산 분야에 세계 최초로 설립된 유일한 국제기구다.
2017년에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우리나라가 유치에 성공했다.
현재 130개국 9개 국제기구의 496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우리나라는 18건의 기록유산을 등재해 세계에서 다섯 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훈민정음(1997), 조선왕조실록(1997), 직지심체요절(2001), 승정원일기(2001),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 조선왕조 의궤(2007), 동의보감(2009), 일성록(2011), 5·18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난중일기(2013),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한국의 유교책판(2015),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 조선통신사 기록물(2017),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2017), 4·19 혁명 기록물(2023), 동학농민혁명 기록물(2023)이 있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1층 북카페는 무더위쉼터로도 이용할 수 있다.
센터의 관계자가 아니라도 국민이라면 누구나 센터를 방문할 수 있다.
센터의 1, 2층 공간이 국민에게 열려 있다.
1층 북카페는 무더위쉼터로도 지정되어 있었다.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무더위쉼터라고 지정된 공간을 보니 반가웠다.
북카페답게 벽면에 책장이 있고, 중앙에 원형으로 조성된 공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전시하고 있었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다.
기록물을 떠올리면 대부분 종이에 글자가 기재된 구성일 것이다.
그런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다양한 기록물의 형태로 전해진다.
전시물을 보면서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기록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답게 기록물의 가치가 뛰어나다.
<세계보건기구의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에 관한 기록물>(2017년 등재)은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
오늘날까지 공중 보건의 역사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인류를 괴롭혀온 질병의 퇴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독보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을 보니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항해서 사투를 벌여왔던 지난 3년간의 기록도 하나의 기록유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1층 북카페에 전시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악보를 볼 수 있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제9번, d단조, op. 125>(2001년 등재)는 악보였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손끝에서 탄생한 악보를 대하니 위대한 작곡가가 환생한 듯했다.
교향곡 제9번은 합창교향곡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포함된 것은 교향곡에서는 거의 최초의 구성이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는 세계 모든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1층 북카페 중앙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려면 그 기준이 까다롭다.
유네스코가 정한 등재 기준이 있다.
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 독창적(Unique)이고 비(非)대체적(Irreplaceable)인 유산, 세계적 관점에서 유산이 가지는 중요성.
이 3가지 기준에 덧붙여 희귀성, 원 상태로의 보존, 안전성, 관리 계획 등이 있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전시물을 둘러보면서 잠시나마 각각의 기록물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2층 기획전시실에서 <달빛이 비추는 기록의 여정> 전시가 열리고 있다.
2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지금 2025년 세계기록유산 기획전시 <달빛이 비추는 기록의 여정>이 열리고 있다.
6월 12일(목)부터 12월 13일(토)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센터가 2024년 10월 이루리 작가와 바루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선보인 그림책 <예쁜 아기 오리>를 바탕으로 기획되었으며,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방법으로서의 '기록'의 의미를 따뜻하게 풀어내었다.
☞ 세계기록유산 기획전시 소식 바로가기
기획전시를 안내하는 해설사가 있어서 단 1명의 관람객이 와도 해설을 진행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관람객을 맞이하는 해설사가 있다.
여기선 별칭으로 부른단다.
'로렌(Lauren)'이 필자를 반겼다.
해설사는 단 1명의 관람객이 와도 해설한다고 했다.
아직 그림책 <예쁜 아기 오리>를 읽지 않은 필자로선 먼저 해설을 듣는 게 유익할 것 같았다.
그림책 주인공의 발자국 표시를 따라서 걷다 보면 그림책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기획전시실은 크게 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 '달빛이 비추는 길'에서는 그림책 속 장면과 함께 오리와 곰이 보낸 하루를 따라가면서 걷는 방식이다.
바닥에 주인공의 발자국 표시가 있다.
그림책 주인공의 발자국 표시를 따라서 걷다 보면 그림책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해설사와 함께 이동하면서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구연동화를 하듯 해설사는 오리, 곰, 달님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림책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었다.
오리와 곰의 모형도 있고 소리도 들린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오리와 곰, 달님이 함께 보냈던 하루를 일기로 남기면서 그 시간을 간직하는 내용이다.
그림책이 끝나는 곳에는 잠시 앉아서 그림책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었다.
그림책의 해설을 들었던 관람객이 자신만의 동화를 상상하고 그려보는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공간 '달빛을 그리는 시간'에서는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림책을 따라가 본 관람객이라면 이제 그림책에 흥미를 느낄 법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작가에 대한 소개가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등의 이야기를 쓴 그림 형제의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안데르센 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관람객이 나만의 동화를 상상하고 그려보는 활동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관람객들이 손수 만든 작품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적고 있었다.
그림일기를 대하는 것 같았다.
하루의 일과 중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면 그건 일기다.
학교를 졸업하면 대다수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짧게라도 하루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해 두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기록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내 마음이 어떤지 구구절절 쓰다 보면 감정 정리가 된다"라는 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마지막 공간 '달빛이 전하는 기억'에서는 글이나 그림의 형태로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이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록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적어본 글에서 "내 마음이 어떤지 구구절절 쓰다 보면 감정 정리가 된다"라는 글이 유독 필자의 눈에 띄었다.
해설사도 이 글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고 추천했다.
기획전시 공간에 작가의 작품만 전시된 게 아니었다.
관람객의 작품으로도 빈 여백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기획전시가 끝나는 12월 중순이면 이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공간과 마지막 공간에서 관람객이 체험 활동한 결과를 전시함으로써 누구든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일깨워주고 있었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토요일 운영 여부와 일정은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누리집(unescoicdh.org)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흥덕사지로 가는 길목에서 이곳이 '직지'와 연관된 장소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있는 곳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했던 흥덕사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흥덕사 절의 대부분이 소실되고 절터만 남아 있다.
흥덕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절이다.
세계기록유산이 탄생했던 지역답게 흥덕사지 주변에는 인쇄와 관련된 공간이 많았다.
흥덕사지 아래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있다.
길 건너편에는 근현대인쇄전시관이 있다.
그 옆으로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이 있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누리집 바로가기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인근에 청주 흥덕사지, 청주고인쇄박물관, 근현대인쇄전시관이 있다. (출처=네이버 지도)
흥덕사지에 이어 청주고인쇄박물관, 근현대인쇄전시관을 차례대로 방문함으로써 직지심체요절에서 비롯된 우리나라 인쇄와 관련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청주시 금속활자전수교육관은 금속활자 제작 기술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공간이다.
금속활자 주조 과정을 시연하거나, 옛사람이 그랬듯 금속활자로 책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다.
☞ 금속활자전수교육관 누리집 바로가기
청주시 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옛사람이 그랬듯 금속활자로 책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주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흥덕사지, 청주고인쇄박물관, 근현대인쇄전시관,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이 모여 있어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청주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직지와 관련된 공간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우리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책으로 세상을 만나고 글로 세상과 소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