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노랑 천막이 이어진 부스 위로 '2025 중증장애인생산품 박람회—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입구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이었다.
상담장을 향해 서두르는 공공기관 관계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제품을 살펴보는 시민들, 자신이 만든 물건 앞에 서서 또렷하게 설명하는 생산자들까지.
서로의 목적은 달랐지만, 같은 공간에 모여 '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주제를 몸소 풀어내고 있었다.
통로 한편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마련한 '기업 지원 사업 안내' 부스가 있었고, 맞은편 직업재활 체험 부스에서는 작은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관람과 구매, 상담과 체험이 동시에 이뤄지는 전시장은 하나의 종합시장이자 정책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중증장애인 생산품은 이제까지 보호나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일반적 인식을, 일상에서 당연히 소비되는 제품으로 바뀌고 있는 현장이었다. ◆ 손끝이 말해주는 자립, 그리고 환해진 눈빛
직업재활 체험 부스에서는 종이 쇼핑백 만들기와 꽃 만들기 체험활동을 한다.
박람회장에서 가장 많은 발걸음을 붙잡은 곳은 직업재활 체험 부스였다.
길게 늘어선 테이블 위에서 관람객들은 꽃잎을 맞물려 작은 조화를 만들고, 종이봉투 손잡이를 꿰매며 쇼핑백을 완성했다.
단순히 종이를 접고 끈을 꿰는 과정 같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참가자들은 생산 현장의 무게와 세심한 노동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모자를 쓴 한 참가자가 끈을 꿰다 연이어 실수하자, 주황 앞치마를 두른 작업장 선생님이 옆에 앉아 손을 맞잡았다.
마지막 매듭을 함께 완성한 순간, 참가자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고 선생님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이는 가르침이라기보다 동료의 도움에 가까웠고, 모두를 뿌듯하게 했다.
완성된 쇼핑백 위에는 굵은 글씨로 '일상으로'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단순한 브랜드명이 아니라, 중증장애인 생산품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한 어머니는 "직접 만들어 보니 제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지 알겠다" 라고 말했다.
체험에 참여한 청년 장애인 금천구 박O광 씨(32)는 "쇼핑백 손잡이를 꿰매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몇 번이나 실수했는데 옆에서 선생님이 손을 잡아주며 도와주셨습니다. 마지막 매듭을 완성했을 때 제 손으로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장애인 생산품을 특별히 사주는 물건으로 보기보다, 정직하게 만든 생활 속 제품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참가자인 강서구의 이O도 씨(27)도 "제가 만든 쇼핑백이나 조화를 누군가 실제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이번 경험이 일자리로 이어져 더 많은 청년 장애인이 안정적인 일터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며, "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주제가 제 삶과도 맞닿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라고 말했다.
◆ 상품 앞에 선 자부심—'맛·품질·가격'으로 증명하다
전시장 안쪽에서는 다채로운 제품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래그랜느 쿠키' 부스에서는 달콤한 향이 퍼졌다.
포장 뒤로는 작업장의 위생과 공정을 안내하는 배너가 세워져 있었고, HACCP 인증 문구가 신뢰를 더했다.
'쌤물자리' 부스에는 누룽지와 국수, 곡물 가공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투명 포장 너머로 보이는 식품은 담백했다.
가격표는 지나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합리의 영역에 있었고, 옆에서 직원은 조리 영상을 보여주며 제품의 장점을 차분히 설명했다.
구립강서구직업재활센터는 제설제와 세정제를 내놓으며 '장애인 생산품=소품'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뜨렸다.
산업 현장에서도 쓰이는 제품들이 시민과 기업 관계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제품 앞에 선 생산자들의 표정은 단정했다.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구매자가 아니더라도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경쟁력은 동정이 아닌 '맛·품질·가격'으로 증명됐다.
◆ 무대 위의 약속—우선구매 포상과 협약, 그리고 이어질 내일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스마트 모바일 솔루션 협약식.
행사장 한쪽 무대에서는 우선구매 유공자 포상이 이어졌다.
수상자들이 꽃다발을 안고 무대에 서자 객석에서는 긴 박수가 흘렀다.
이어진 협약식에서는 내일의 판로를 약속하는 서명이 오갔다. 포상이 어제의 성과를 기리는 자리라면, 협약은 내일의 공급망을 열어가는 다짐이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스마트 모바일 솔루션 협약식과 한국교직원공제회, 한국장애인개발원, 전국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협의회의 협약식도 가졌다.
통로를 걷다 보면 공공 조달 담당자와 생산 시설 종사자가 부스 한가운데서 납품 조건을 논의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포장 규격은 어떤지, 단가는 어떻게 맞출지, 납기와 A/S는 어떻게 관리할지" 짧은 대화 속에 현장의 언어가 오갔다.
무대 위의 박수와 통로의 대화는 높이는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다.
안정적인 수요와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이 두 목표가 박람회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다.
◆ 소비가 바꾸는 일상, 오늘 여기서 시작된다
장애인 기업 지원 사업 및 상담 부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제도는 경쟁 고용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공공기관이 해당 생산 시설의 제품과 서비스를 연간 총구매액의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적용 대상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지방의료원 등 대통령령과 관련 법률에 따라 정해진 공공기관이며, 구매 방법은 생산시설·판매시설을 통한 직접구매,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한국장애인개발원 등의 수의계약 대행, 또는 공공기관 계약 시 중증장애인생산품을 포함하는 간접구매 방식이 있다.
이러한 제도는 단순한 상업적 거래가 아니라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실질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만난 제품들은 앞으로도 온라인몰, 직영점, 협동조합 매장, 지역 행사장에서 이어질 수 있다.
공공기관의 우선구매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시민들의 재구매는 신뢰로 축적된다.
중요한 것은 첫 경험을 다음 소비로 연결하는 것이다.
행사장에서 마주한 손끝의 성실함, 무대 위의 약속, 통로에서 오간 대화는 "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주제를 구호가 아닌 현실로 바꾸어냈다.
쿠키 한 봉지, 누룽지 한 팩, 쇼핑백 하나가 누군가의 내일 출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실, 그것이 이번 박람회의 가장 큰 성과였다.
구립강서구직업재활센터 부스.
*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제7조 ① 공공기관의 장은 중증장애인생산품은 타 우선구매보다 우선적으로 촉진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