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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한국인(韓國人)]“한국의 페스탈로찌가 꿈”
오늘도 최대천(崔大天)(45·서울시 도로시설과 지방행정주사)는 도로관련 소송업무로 정신없이 하루를 마치고 체구의 절반만한 가방을 들고 ‘상록야간학교(동대문구 휘경동)’로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겼다.
崔씨는 올해로 17년째 어려운 청소년들을 배움의 길로 이끌고 있다.
지난 75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해 ‘상록야학'을 설립. 지금까지 두 가지 일을 모두 거의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현재 崔씨가 서울시에서 맡은 일은 서울시내의 도로·육교·교량· 등의 관리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주는 일과 도로 관련 소송민원을 처리 하는것.
崔씨가 야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이문1동사무소 근무시절 관래 중랑천 주변 무허가 판자촌 구역의 사회담당을 맡고부터.
당시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던 이곳에는 생활고(生活苦)때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청소년이 많았다고.
“공장에서 막 돌아온 지친 몸이었지만 모르는 것을 하나 하나 깨우쳐 가며 즐거워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崔씨는 야학을 계속하는 동안 갖은 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崔씨는 그간의 시련을 꿋꿋이 이겨낸 결과 3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낼 수 있었다.
“야학사람들은 모두 내자식 내형제나 다름없지요. 야학은 이젠 내 가정입니다.”
혹시나 야학에 소홀해질까를 우려하여 그는 불혹(不惑)이 넘어선 나이에도 총각신분이다.
봉급의 절반이상을 매달 야학운영비로 내놓는 崔씨는 만약 결혼 할 경우 솔찮게 드는 생활비 때문에 야학유지가 힘들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또 학생들의 개인신상 문제에도 만사를 제쳐 놓는다. 때로는 장사하다 부도를 내 실의에 빠져있는 졸업생들의 인생상담역을 자청, 재기할 수 있도록 힘쓰기도 한다.
요즘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주례선생님까지 겸하고 있다. 야학을 거친 졸업생들의 결혼주례만도 70회정도 서왔다고.
우리 사회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는 崔씨는 ‘한국의 페스탈로찌'가 꿈이라고 말하면서 “야학 교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야학이 없어지는 것이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崔씨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 서서 열심히 노력하면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신한국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