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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상군이에요”

[김준의 섬섬옥수] 영도해녀

2021.06.30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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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을 마친 해녀가 뭍으로 올라오자 아들이 망사리를 천막 아래로 옮겼다. 그리고 채취한 해산물을 쏟았다. 돌멍게가 가득이다.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멍게를 접시에 담아 좌판에 올렸다. 그리고 나를 보며 ‘우리 어머니는 상군이에요’라며 자랑했다.

작은 고둥은 바다 가장자리에서 쉽게 줍지만 돌멍게는 깊은 곳에 서식한다. 숨을 오래 참고 깊은 곳까지 물질을 해야 얻을 수 있다. 날씨가 좋아 깊은 곳에 햇볕이 들어야 돌멍게를 찾기 수월하다. 옆에서 작은 고둥을 접시에 담아 좌판에 올리던 나이 든 해녀가 고개를 돌려 돌멍게를 보고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녀도 한 때 울릉도, 격렬비열도, 청산도 등 바다를 휘젓고 다니던 상군이었다. 영도에 머무르며 물질로 아이들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 나이들어 하군보다 낮은 ‘똥군’이지만 그래도 바다를 떠날 수 없다.

남항동 해안에서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오는 영도 해녀.
남항동 해안에서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오는 영도 해녀.

영도해녀들의 삶터, 자갈마당

전국에 물질을 하는 해녀는 약 1만여 명으로 추정한다. 그중 절반은 제주에, 나머지는 경북·충남·부산·강원·전남 지역 바닷마을에 각각 수천 명에서 수백 명이 활동하고 있다. 부산에는 약 800여 명, 그중 100여 명이 영도에서 물질을 한다. 한때 기장·가덕도·다대포·수영구·해운대·영도 등에 2000여 명이 물질을 했다. 대부분 제주에서 뭍으로 ‘바깥물질’을 나온 분들이다. 이렇게 나왔다가 결혼을 하고 정착했다.

영도에는 등대자갈마당, 태원자갈마당, 감지자갈마당 등 ‘자갈마당’이란 지명이 많다. 영도 자연해안치고 자갈마당이 아닌 곳이 어디 있던가. 특히 영도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동삼동 해안은 대부분 해식애와 바위해안이다. 이곳에 옴팍진 구미에는 어김없이 자갈이 깔린 해변이다.

자갈마당은 해녀들 쉼터이자 일터였다. 해안 매립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남항동에 개안자갈마당도 있었다. 영도해녀들은 자갈마당에서 물질을 해 건져온 해삼·멍게·소라·전복·성게·문어·고둥을 펼쳐놓고 팔았다.

동삼동 중리해변에서 물질을 하는 영도해녀.
동삼동 중리해변에서 물질을 하는 영도해녀.

동삼동 해녀식당을 찾은 한 가족이 물질을 하고 자갈마당에서 선별을 하고 있는 해녀를 구경하다 낙지를 보고 흥정을 시작했다. 붉은색을 띤 굵은 ‘돌낙지’다. 낙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문어라 할만하다. 동삼동 해녀들이 작업한 것은 해녀전시관에서 판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식당에서는 해녀들이 작업한 것을 구입 해 간단하게 조리해서 판매한다. 그 이익금을 다시 해녀 구성원들과 나누기 때문에 사사로이 팔 수 없다. 해서 손사래를 쳤지만 손님은 끈질긴 흥정으로 낙지구입에 성공했다. 낙지 네 마리를 3만원에 구입한 손님은 누가 볼세라 쇼핑백에 집어넣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날 채취한 해산물은 낙지 네 마리 외에 말똥성게(앙장구), 보라성게, 고둥, 해삼, 미역 등이다. 말똥성게는 너무 작고 앙장구는 아직 철이 아니다.

에코뮤지엄 진수, 해녀문화전시관

동삼동 중리해변에 2019년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제주 해녀박물관을 제외하고 뭍에 만들어진 유일한 해녀 관련 시설이다. 1층에는 해녀식당이 있고, 2층에는 해녀문화전시관이 자리했다. 가운데 재현한 자갈마당에는 바닷가에서 천막을 치고 장사하던 옛날 모습이 만들어졌다.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에 전시된 영도해녀들이 사용한 도구.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에 전시된 영도해녀들이 사용한 도구.

그리고 벽면에는 소중이·물안경·호맹이·빗창·테왁 등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해녀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깁고 또 기워 사용한 오리발만 보아도 제주해녀의 시난고난한 영도살이를 엿볼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소중이에 예쁘게 수를 놓아 장식을 했다. 깊은 바닷물 속에서 누가 봐주겠는가. 그래도 어머니는 천상 여자였다. 아쉽게 이러한 소중한 유물이 어디서 수집했고 누가 사용했는지 기록이 없다.

전시관이나 박물관 유물이 일상에서 보는 것과 다른 것은 그 기록 때문이다. 전시관 밖으로 나오면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작해 보냈다는 해녀동상이 있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도 곧잘 눈에 띈다. 역시 아쉬운 점은 동상 얼굴과 목에 검은 돌이 버짐처럼 박혀 있어 볼썽사납다는 것이다. 영도해녀들이 고향에서 보내온 동상을 보고 자랑스러워할까 아니면 고개를 돌릴까. 일부러 팔등신 해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영도문화유산, 해녀

해녀식당에는 자리가 없고,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영도에 새로운 명물이 될 만한 상징공간이 마련되었는데 정작 전시관 주인은 없다. 이 해녀전시관은 영도다리나 영도등대만큼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 내부.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 내부.

특히 동삼동에는 부산시가 운영하는 패총박물관도 있고, 멀지 않는 곳에 국가가 운영하는 해양박물관도 있다. 여기에 해녀문화전시관을 연결한다면 국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마을까지 연결하는 해양문화 프로그램으로 마련할 수 있다. 더구나 현장에서 물질하는 모습과 전시물과 또 해녀가 채취해온 해산물로 맛까지 볼 수 있어 에코뮤지엄 진수가 아닌가. 서로 연결하는 프로그램이나 운영 시스템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어촌마을에 있는 ‘동삼동해녀문화전시관’을 주목한다면 풍성한 전시물과 운영방안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녀식당도 ‘해녀문화’라는 전시관에 어울리는 음식과 운영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방문을 했던 제주도 종달리 ‘해녀의 부엌’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 부엌은 종달리해녀와 어촌계와 문화예술인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부산에는 다른 곳에 비해 문화예술인과 청년이 많다. 이들과 해녀문화전시관을 연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옛 동삼동 중리 해녀촌.
옛 동삼동 중리 해녀촌.

이를 위해 우선 청년과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녀문화전시관 문을 열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운영방식이 기존 방식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해녀 소득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후계해녀들도 생겨날 수 있다. 영도해녀를 개인이 아니라 영도와 부산의 소중한 자산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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