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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의 시는 애시당초 노래였는지 모른다

[노래, 시를 만나다] ③대중가요의 큰 축을 이룬 소월의 노래들-2

2021.09.17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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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소월(1902~1934)이 남긴 154편의 시 중에서 무려 59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장르도 팝, 발라드, 재즈, 모던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5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와 가수가 죽은 소월에게 노래를 헌정했다. 

소월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넘치지만, 그의 시와 대중가요와의 관련성을 연구한 이는 별로 없다.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평생을 소월 연구에 천착한 문학평론가 구자룡 시인과 그의 딸 구미리내 시인 부녀다. 59편도 구씨 부녀가 일일이 과거 음반 기록과 문헌을 뒤져 찾아낸 것이다. 

두 사람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소월의 시에 처음으로 곡이 붙은 건 1958년 박재란이 부른 ‘진달래꽃’이다. 작곡가는 손석우(1920~2019)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노래는 음반은 물론 악보와 음원도 찾을 길이 없다.

손석우는 ‘노오란 셔쓰의 사나이’(한명숙),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최희준), ‘이별의 종착역’(손시향), ‘삼오야 밝은 달’(김상희), ‘꿈은 사라지고’(안다성)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한국 대중음악의 1세대 작곡가다. 

그는 소월을 대중가요계에 확실하게 불러낸 첫 인물이다. 소월의 시로 작곡한 노래만 해도 ‘못잊어’ ‘먼 후일’ ‘혼’ ‘가시나무’ ‘산 위에’ ‘옛이야기’ ‘임의 노래’ ‘가는 길’ 등 9편이나 된다. 

‘진달래꽃’은 2000년에 김진표 작곡, 노바소닉 노래로도 나왔고, 2003년에는 우지민 작곡에 마야의 데뷔곡이 되었다. 두 노래 다 가사는 통째로 소월의 시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폭발적 가창력과 풍부한 감성으로 개성적 존재감을 드러낸 마야가 부른 ‘진달래꽃’이 가장 대중적 노래로 남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에서 시작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로 끝나는 이 시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일한 시다. 그런 시를 여러 작곡가와 가수가 탐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진달래꽃’은 한국의 현대시가 도달한 최고의 이별미학으로 흔히 평가받는다. 사랑하는 이를 ‘곱게’ 떠나 보내는 사무친 정과 한, 슬픔을 체념으로 빚어낸 아름답고 처절한,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인고의 마음이 깊게 드리워진 시다.

가장 한국적 꽃인 진달래꽃은 소박하고 청순하고 가냘프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 여인의 이미지다. 보내는 사람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떠나는 이의 걸음걸음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며 뿌리는 붉디붉은 진달래꽃잎에는 미련과 원망, 체념의 정한이 서려 있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이자 이별가인가. 이 이별가는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고 읊은 ‘못잊어’(가수 장은숙)를 지나서 ‘초혼’(가수 이은하)에서 절정을 이루며 완성된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소월의 시가 노래가 된 음반들. (구자룡·구미리내 저, ‘김소월 대중가요를 만나다’에서)
소월의 시가 노래가 된 음반들. (구자룡·구미리내 저, ‘김소월 대중가요를 만나다’에서)

소월 시를 노랫말로 삼아 가장 많은 곡을 만든 사람은 서영은(1927~1989)이다. 원로 코미디언 서영춘의 친형인 그는 ‘고향무정’(오기택) ‘뜨거운 안녕’(자니리) 등 1000여 곡을 작곡한 사람이다.

평소 소월의 시를 입에 달고 다녔다는 서영은은 소월 시 중 ‘부모’ 등 무려 39편을 작곡했다. 그가 1968년 낸 2장짜리 프로젝트 음반 ‘가요로 듣는 소월 시집’은 소월 시가 본격적으로 여러 가수에 의해 노래로 불려진 출발점이다. 신세기레코드사 전속 작곡가로 일하며 수시로 작곡해 두었던 소월 시를 한데 묶어 음반으로 내놓은 것이다. ‘님에게’ ‘어버이’ ‘바다’ ‘왕십리’ ‘잊었던 맘’ ‘님과 벗’ ‘가을아침에’ ‘무덤’ 등 시에 곡을 붙여 최희준, 한상일, 최정자, 리타김 등 당대 유명가수와 신인가수들에게 주었다. 

그가 작곡한 소월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부모’다. 1971년 신세기 레코드사에서 나와 죠커스라는 가수가 불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 이야기 들어라/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가 압권이다. 어릴 적 겨울밤의 화롯가 정경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체온이 느껴진다. 가슴이 짠하다. 존재의 근원을 어찌 이리 쉽게 풀어냈단 말인가. 작가 김동인은 “소월의 시는 시골 과부라도 넉넉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여 이 시가 마냥 동요 같지는 않다.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한 이래 누구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답을 주지 않는다. 묻지 말으라 한다. 그게 정답이다. 

겨울밤 한 잔 술에 거나해져서 노래방에 가면 나는 꼭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짧아서, 답이 없어서 더 눈물이 난다.

구자룡 시인의 조사에 따르면 소월의 시 중에서 ‘부모’가 가장 많은 가수가 취입한 노래라고 한다. 무려 59명의 가수가 불렀다. 그 다음으로 많은 가수가 부른 소월의 노래는 ‘엄마야 누나야’ ‘못잊어’ ‘개여울’ ‘진달래꽃’ ‘먼 후일’ ‘초혼’ ‘님의 노래’ ‘님에게’ ‘실버들’ 순이라고 한다.

소월의 시는 1950년대 손석우에 의해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바쳐진 후, 1970년대에 접어들어 대학가요제나 그룹사운드가 소월의 시를 창작곡으로 만들어 불렀다. ‘세상모르고 살았노라’(지덕엽 작곡, 활주로 노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원용석 작곡, 라스트 포인트 노래) 등이다.

소월 시를 노래로 가장 많이 부른 원곡 가수는 ‘하숙생’의 가수 최희준이다. 최희준은 ‘엄마야 누나야’ ‘잊었던 맘’ ‘꿈’ ‘팔베개’ 등 6곡을 불렀다. 

소월의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소월은 시를 쓰면서 아마 노래를 꿈꾼 것 같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아, 이 노래가 소월 시였다고?”라고 놀란다. 그의 시에는 노래가 갖는 운율과 리듬이 넘실댄다. 시도 노래도 어려울 이유가 없다. 심금을 건드리면 그만이다. 소월에게 시는 애시당초 노래였는지 모른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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