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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⑪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2022.02.16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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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양인자 작사·김희갑 작곡, 1985년)

이 노래 하나로 모든 사랑은 무죄임을 고한다. 사랑이 비록 죄를 잉태했다 해도 그 죄목은 ‘아름다운 죄’다. 그 누가 피의자로 단죄할 것인가.  

이 노래 하나로 사랑을 잃은 모든 자여, 실연의 아픔을 견딜 일이다. 사랑은 그 겨울의 찻집 유리창에 서린 입김 같은 거다. 언젠가는 스르르 자취를 감춘다. 그 찬란했던 여름의 꽃도 시들어 마른 꽃으로 찻집의 정물로 남은 것처럼. 겨울의 찻집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들로 조용하다. 창가에 앉아 홀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힘은 추억과 외로움뿐이다.

그대 나의 사랑아, 이제 차가운 겨울바람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라. 나는 이른 아침, 그 바람 속을 걷는다. 내 얼굴은 웃는다. 웃는 걸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이제 긴긴밤 홀로 지새울 일 없다. 그런데 뜨거운 이름 가슴에 남아있어 한숨이 나는구나. 나는 사랑을 잃은 걸까, 사랑을 이긴 걸까.   

노래방서 이 노래 한번 불러보지 못하고 지나간 겨울이 벌써 몇 해째다.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이 노래를 불렀다. 또는 카페에 앉아 이 노래를 들으며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한 가지’를 생각한다. 누구는 봄을 기다리고 누구는 봄이 다시 오지 않길 바랐다. 사랑은 겨울인가, 봄인가. 

남자가 불러 남자의 노래 같지만, 노래는 여자의 가슴을 더 적셨고 여자들이 더 많이 사랑했다. 중년의 아낙들은 겨울이 오면 라디오에 이 노래를 신청했다.

1950년생인 조용필(72)이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를 때는 35세였으니 ‘오빠’는 아니었다. 이 노래는 1985년 겨울에 나온 그의 8집 앨범에 실렸다. 8집은 1집부터 인연을 맺은 작사 양인자, 작곡 김희갑 콤비의 노래 5곡이 실렸다. 두 사람은 앨범을 같이 작업하다가 2년 후 결혼해 조용필은 물론 여러 가수에게 수많은 명곡을 선사했다.  

‘그 겨울의 찻집’은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이 전하는 말’에 밀려 앨범 재킷에 제목을 올리지도 못했다.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불세출의 노래 ‘허공’은 한국 가요 사상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당시 중학생이던 김혜수가 조용필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그 겨울의 찻집’은 천천히 역주행했다. 짧은 데다 부르고 연주하기 쉬운 세련된 트롯풍 멜로디, 조용필의 처연한 목소리로 노래방을 점령했다.

1985년 발표한 조용필의 8집 앨범 재킷에 ‘그 겨울의 찻집’은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러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중가요 첫 번째가 되었다.
1985년 발표한 조용필의 8집 앨범 재킷에 ‘그 겨울의 찻집’은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러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중가요 첫 번째가 되었다.

2014년 KBS 해피FM ‘임백천의 라디오7080’이 신청곡을 기준으로 조사한 ‘7080 세대가 좋아하는 팝, 가요 베스트100’에서 그룹 아바의 ‘댄싱 퀸’과 함께 가요 1위로 뽑혔다. 그 10년 전인 2004년 CBS FM의 ‘애청자가 뽑은 베스트 1500곡’에서도 첫 번째였다. 2위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연재⑧)였다.

작사가 양인자는 지금은 없어진 경복궁 내 다원에서 차를 마시며 30분 만에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그가 집필한 KBS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계절’ 주제곡으로 쓰였는데 여기 출연한 왕영은이 처음으로 불렀다.

노래는 잊히지 않는 오묘한 피아노와 기타 전주를 지나 ‘바람 속으로…’로 시작한다. 조용필은 ‘바람의 가수’다. 노랫말이나 제목에 바람이 많이 등장한다. 같은 8집에 실린 ‘바람이 전하는 말’ 가사는 (마종기 시인의 시 ‘바람의 말’ 표절 시비가 있었지만) 마치 ‘그 겨울의 찻집’ 후편 같다. ‘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여봐/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 갔느니/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 소리라 생각하지마’

‘바람 소리처럼 멀리 사라져 간 인생길/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 했나/…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7집, ‘어제, 오늘,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문학의 경지로 칭송받은 가수가 어디 있을까. ‘조용필을 통하면 가사는 문학이 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지난해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이란 책을 펴낸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유 교수는 평생을 조용필에 꽂혀 살았고 그의 노래가 지닌 문학적 힘에 주목한 사람이다. 조용필에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 이상이라고 헌사를 바친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평범한 언어도 조용필을 거쳐 발화되면 시가 되었다. 누가 작사 작곡을 했든, 그의 모든 노래는 가사와 곡조와 스스로의 해석과 창법과 시대의 반향이 모두 ‘조용필’로 귀납됐다. 조용필의 미학은 단연 ‘위안’의 힘에서 극대화한다. 그것은 수용자들이 스스로를 긍정하게끔 하는 힘을 말한다. 그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온몸을 쥐어짜는 정성스런 목소리로, 나를, 타인을, 시대를, 인생을 끌어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눈물이나 웃음을 부추기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필을 따라 부른 게 아니라 조용필을 통해 육화되고 승화됐다.”

‘그 겨울의 찻집’은 휴전선을 녹인 노래다. 이 노래를 18번으로 둔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조용필은 2005년 평양 단독 공연에서, 2018년 4월 평양 남북예술단 합동공연 ‘봄이 온다’에서, 곧이어 열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평화의집 만찬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입춘이 지났건만 창밖에는 눈발이 날린다. 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또다른 비애를 느끼게 하는 임영웅 버전을 들어본다. 누가 불러도, 언제 불러도, 이 노래는 눈물을 부른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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