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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즈, 그리고 대중 예술의 시작점

[장르의 개척자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2023.02.02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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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 빌리 테일러는 ‘재즈’에 대해 “재즈란 음악이라는 것의 미국식 해석, 혹은 연주 방식이다”라 정의 내린 바 있다.

미국 의회의 경우에도 재즈를 ‘미국의 값진 보석’이라 천명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재즈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과연 재즈의 시작을 어느 기점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있어왔다.

그리고 대체로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두 인물이 거론되곤 했다. 한 사람은 듀크 엘링턴,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루이 암스트롱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위대한 재즈 뮤지션이자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즈를 가장 대중화시킨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여러 예시를 들 수 있다.

루이 암스트롱은 국내에 최초로 내한한 미국의 재즈 뮤지션이었는데, 1963년 4월 무렵 내한해 2주 정도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당시 그가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사진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이후 여러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모창을 접할 수도 있었으며, 각종 TV CF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재즈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의 1963년 내한 공연 모습.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계적인 재즈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의 1963년 내한 공연 모습.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올리언스의 극심한 빈곤 속에서 자란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 루이 암스트롱은 인종적 장벽을 허물면서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주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틀림없이 최초의 재즈 스타였으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즈 뮤지션으로 남아있다.

리드미컬하고 정교한 오페라 스타일을 재즈에 이식시켜 내기도 했고, 현란한 스캣 창법(무의미한 단어를 사용하여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재즈 보컬 스타일)을 대중화 하는 데에 일조했다.

무엇보다 ‘What a Wonderful World’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팝 히트곡을 남기면서 그의 음악은 대대로 구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루이 암스트롱은 보컬리스트로서의 활동이 유명하지만 적어도 재즈 뮤지션들, 혹은 재즈 팬들에게 있어서는 개성 넘치는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로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이끌었던 재즈 밴드 핫 파이브, 그리고 핫 세븐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창의적 재능이 두드러지곤 했다.

특히 루이 암스트롱의 예측할 수 없는 솔로 파트에서의 즉흥연주 같은 전개 방식은 이후 재즈 밴드들에게 있어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됐다.

루이 암스트롱의 활약은 뉴욕의 흑인 지구 할렘에서 퍼진 흑인 문화예술의 부흥, 즉 ‘할렘 르네상스’에 영향을 미쳤고, 더 나아가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빙 크로스비 같은 백인 보컬리스트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 널리 사랑받으면서 미국의 아이콘이자 문화 대사가 되기도 했다.

시카고, 그리고 뉴욕에서 다양한 밴드를 거쳐가며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루이 암스트롱은 이후 가나와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는 물론 2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유럽에 위문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한국과 일본에도 공연을 다녀갔다.

몇 번의 심장마비를 겪었던 루이 암스트롱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기 직전까지 트럼펫을 연습했고 투어공연을 계획했다.

투어를 준비하던 와중 70세 생일을 한달 앞둔 1971년 7월 6일, 결국 수면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곳곳에서 그의 업적을 기렸다.

뉴올리언스의 주 공항은 이후 ‘루이 암스트롱 뉴올리언스 국제 공항’으로 개명됐고, US 오픈이 열리는 뉴욕 퀸스 부근 스타디움은 루이 암스트롱의 집 근처에 지어졌기 때문에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으로 명명되었다.

한참 세월이 흘러서도 그의 곡들은 다수의 매체와 영화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프렌치 키스> 그리고 <굿모닝 베트남> 등에서 그의 노래는 은은한 한편 강렬하게 활용되곤 했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루이 암스트롱.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트럼펫을 연주하는 루이 암스트롱.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영화 <12 몽키즈>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What a Wonderful World’가 깔리던 순간이다.

바이러스로 인류 대부분이 사망하는 것이 확정되는 영화의 결말을 두고 감독 테리 길리엄은 “그래도 인류는 어찌어찌 적은 숫자라도 살아남을 것이고 이는 자신만의 낙관론”이라며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일그러진 목소리로 부르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바치는 찬가는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 묘하게 맞물려 때로는 농담처럼 보이기도 하며 가끔씩은 처연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때 ‘인류의 엔딩 크레딧’에 올라갈 만한 노래를 너도나도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곡이 지닌 내용적 측면에서도, 그리고 실제 그가 남긴 업적으로 미뤄봤을 때 충분히 공식적으로 ‘인류의 엔딩 크레딧’에 올라갈만한 자격이 있지 않나 싶다.

☞ 추천 앨범

◆ <Hello, Dolly!> (1964: KAPP/LONDON)

심장마비로 인한 휴식 이후 2년만에 녹음한 앨범 <Hello, Dolly!>는 그의 경력에 있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무려 비틀즈를 제치고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당시 ‘최고령(63세) 빌보드 차트 1’의 기록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Moon River’나 ‘Jeepers Creepers’, 그리고 팻츠 도미노의 명곡 ‘Blueberry Hill’ 등이 수록되어 있다.

◆ <Ella and Louis> (1956: Verve)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 엘라 피츠제럴드와의 합작으로 주로 느리거나 중간 정도 템포의 발라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은은하고 우아한 엘라 피츠제럴드와 거친 루이 암스트롱의 조합은 하나의 공식이 됐고 결국 고전으로 남겨졌다.

이 첫 합작의 성공으로 인해 이후 <Ella and Louis Again> 그리고 <Porgy and Bess>라는 후속 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재즈라는 장르의 관심유무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오며 가며 들었을 앨범.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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