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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한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공직단상] 앱 설치, 본인 인증, QR코드에 작아지는 당신, 할 수 있어요

2025.05.20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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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씨름하고, 정부24에서 '세대주 확인'을 하지 못해 읍행정복지센터에 숨 가쁘게 뛰어오신 어르신을 보며 조용한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늦는 게 아니라는 것을, 행정서비스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업무 시작 전, 교육을 다녀온 팀장님께서 신기한 것이 있다며 우리를 불러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셨다. 

화면엔 챗 지피티(Chat GPT)가 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이 입력한 내용은 단순히 "이것 좀 해줘"라고 요구하는 명령이 아니었다. 

먼저 예문이 될 글을 제시하고, 그 글의 문단 구조에 맞게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거기에 몇 가지 정교하고 섬세한 명령어를 사용하자 정말로 사람이 며칠은 고민해서 작성한 것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업무 시간이 단축되어 일이 한결 수월해질 거란 생각을 하며, 디지털이 우리 곁에 밀착되어 있는 일상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오전 아홉 시가 되고, 업무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민원 창구를 찾은 민원인께서는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안내문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발급해야 하는 서류들이 꽤 많았다. 

그중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가 있었는데 건강보험공단에서 발급받아야하는 서류다 보니, 행정복지센터 민원 창구에서는 발급할 수 없었기에 민원인께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발급받으시면 된다고 안내했다. 

다른 서류들을 다 떼드리고, 남은 것이 건강보험 관련 서류였다. 

청사에 무인민원발급기가 있지만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민원인들은 어려워하셨다. 

어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모습, 연세로 미루어 짐작하니 왠지 이분도 그럴 것만 같았다.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엔 늘 사람이 많아, 뒤에 대기하고 계신 다른 민원인들도 있었기에 직접 안내해 드리지 못하고 발급기 위치만 알려드렸다. 

어르신은 잠시 주저하더니 해보겠다고 말씀하시고 사무실을 나가셨다. 

그 뒤로 세 분의 민원인을 더 응대했다.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사무실을 나오니, 아까 그 어르신이 발급기 앞에서 한참을 씨름하고 계셨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일인데, 내가 민원을 응대하고 있는 동안 계속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며 고민했을 어르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민원인들이 계셔서 차마 다시 돌아와서 물어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공단에서 발급을 받자니 20분 넘게 운전해서 시내로 나가야 하는 어르신의 난감함이 짐작이 되었다.

챗 지피티가 업무시간의 단축에 크게 기여하고, 카페나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를 먼저 찾게 되는 일상을 보내며 기술의 발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편리해진 생활에 감탄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원 현장에서, 발급기의 사용을 어려워하고, 정부24에서 전입 신고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어르신 민원인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모바일 신분증 발급이 시작되고 나서 모바일 신분증을 발급받고 싶어 하는 어르신 민원인들은 많이 계셨지만, 정작 그분들은 애플리케이션 설치, 본인 인증, 정보무늬(QR코드) 촬영 등 발급에 필요한 절차를 낯설게 느끼고 어려워하셨다. 

그때마다 어르신도 하실 수 있다고, 자꾸 해보면 익숙해진다고 말씀드리고 발급 과정을 천천히 보여드리고, 알려드리지만 밖에 나가셔서도 익숙하게 사용하고 계실지는 걱정이 된다. 

한 시민이 충주시 동량면 행정복지센터 청사에서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하는 모습. 필자가 4년 전, 무인민원발급기 점검을 다녔을 때, 능숙하게 이용하시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필자 제공)
한 시민이 충주시 동량면 행정복지센터 청사에서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하는 모습. 필자가 4년 전, 무인민원발급기 점검을 다녔을 때, 능숙하게 이용하시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필자 제공)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고 행정서비스를 요구하는 일을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끼는 어르신들을 보면 무언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색한 표정과 담당자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걸음걸이로 읍행정복지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르신 민원인들을 뵙고 나면, 그들이 '기약 없는 마라톤'을 하는 마라토너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라는 트랙 위에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뛰어가는 젊은 세대의 뒤에서 불편하고 무거운 신발이라도 신은 듯이 첫걸음을 뗄까 말까 망설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디지털 행정이 급속히 확산되는 요즘같은 시대에 공무원은 이 트랙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가장 중요한 순간은 주자가 지쳐갈 때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어르신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함께 걸어가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사람의 온기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다. 공무원의 역할은 단순히 행정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씨름하고, 정부24에서 '세대주 확인'을 하지 못해 읍행정복지센터에 숨 가쁘게 뛰어오신 어르신을 보며 조용히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어르신도 하실 수 있다고,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나는 이런 걸 못해.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우리 아들, 딸 올 때만 기다려."라고 말씀하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무인민원발급기 앞에만 서면 조급해지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읽으며 공무원으로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친절하게 기기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일이겠지만, 언젠가 어르신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급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늦는 게 아니라는 것을, 행정서비스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김윤서

◆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충주시에서 민원담당으로 일하며 겪은 일상을 수필로 쓴 글이 등단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공직 업무의 꽃인 '민원 업무'로 만난 수많은 일화들이 매일 성장통이자 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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