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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 만나는 부천아트벙커B39 그리고 감자탕

어떤 도시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도시의 '인상'이 있다.
경험에 의해서든 신문이나 TV 같은 미디어에 의해서든, 혹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 덧입혀진 이미지든, 어쨌거나 사람이나 도시는 이름만 들어도 그만의 색깔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던 나의 아버지는 누이가 있는 '마산'으로 이사했다.
지금에야 '마산'은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통합으로 이름마저 '창원시'에 빼앗겼지만(?) 40년 전만 하더라도 제법 잘 나가던 도시 중 하나였다.
아귀와 갈치, 도다리, 전어, 호레기(꼴뚜기) 등 마산어시장은 사계절 활기찼고, 무엇보다 한일합섬이라는 거대한 섬유제국과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이 든든하게 도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나랑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는 큰집의 사촌 언니는 고향 함안을 떠나, 한일그룹에서 세운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기름때, 먼지때 속에서 항상 파리한 얼굴을 했지만 공부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던 앳된 언니.
언니 같은 '산업체' 역군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았던가?
오로지 잘살아보겠다는 꿈 하나로 상경한 공돌이 공순이가 그 얼마나 흔했던가?
수도 서울의 강력한 배후 도시 '부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 아남산업, 삼성전자 반도체, 로켓트보일러공장을 비롯한 공장만 2000여 개 들어섰고, 사람들은 공장 따라 줄 섰다.
1975년~80년 전국 인구 증가율이 27.7%일 때 부천은 이미 102.9%였고, 80년대 초(1981~86년) 수도권 인근의 안양, 수원이 각각 56%, 48%로 인구 증가할 때, 부천의 인구는 무려 126%로 수직 상승했다.
서울 개발에 떠밀려 왔든, 시골에서 상경한 이들의 최소한의 보금자리였든, 부천은 지상에서 내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서민들의 땅이었다.
적어도 50년 전엔 그랬다. 서울은 포화였고, 부천은 그 흘러넘치는 사람들을 받아주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 유명해지면서 전국적으로 부천 원미동을 모르는 이 없다.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원미동(遠美洞)은 소설을 통해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되살아났다.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내는 이웃들이 사는 땅, 슬픔 속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땅, 그렇게 원미동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밀레니엄이라 불리던 새 천년을 지나고 다시 수 십년 세월이 흘렀건만 '원미동 사람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읽히고 읽히는 것을 보면 뭔가 아련하다.
소설의 배경이 된 부천 원미동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로컬100'에 이름 올린 부천아트벙커B39가 있다.
생경한 이름 부천아트벙커B39. 그 역사는 약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환경부의 지침에 따라 부천 삼정동에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건축 허가와 건물 착공이 시작됐다.
1995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를 하루 200톤씩 처리했다.
그러나 1997년, 환경부의 '소각로 다이옥신 농도 조사 결과' 시 부천 삼정동 소각장에서 허가 기준치의 20배, 제곱미터당 23.12㎎의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마을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엄격한 관리 기준을 세우고 개선 조치와 소각장 폐쇄 운동을 벌였다. 지역민들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한 일에서 한 번 잃은 신뢰는 끝내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2010년, 대장동 소각장으로 폐기물 소각 기능이 이전 및 통합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쓰레기를 소각하던 그 기능마저 다한 쓸쓸한 폐건물은 곧장 허물어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터였다.
그러나 도시에도 운명이 있고 건물에도 명운이 있기 마련일까. 이곳 삼정동 폐소각장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2018년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경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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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의 문화비축기지(옛 석유비축기지 자리에 있는 문화공간)를 상당히 좋아하는 나로서, 솔직히 부천에 이런 히스토리를 지닌 복합문화공간이 있는지 몰랐다.
먼저 건물을 들어서기 전부터 커다란 굴뚝과 쓰레기 소각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아해 이 건물에 깃든 이야기를 미처 알지 못했다면 여기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소각로는 주택 설계에 흔히 사용되는 '중정'을 모티브로 하늘과 채광을 가득 끌어들여 다양한 각도와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에어갤러리(AIR GALLERY)'로 변신했다.
눈부신 고도성장과 도시 개발,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삶의 폐기물들을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던 이 소각로의 햇살이 어찌나 눈부시고 쨍한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회색빛 공간이 압도한다.
그 옛날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BANKER)다. 이 벙커는 소각장의 핵심 공간이자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공간이다.
지하 깊숙한 바닥으로부터 높이 39m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거대한 상자. 모든 쓰레기들이 온전한 모습을 바라본 마지막 관문이자 '관'이었으리.
벙커의 한쪽 벽면에는 여닫을 수 있는 육중한 쇠문 세 개가 눈길을 끈다.
벙커와 연결된 공간을 따라가 보니 쓰레기 반입실이다.
즉 쓰레기 수거 트럭이 도심의 생활 쓰레기를 모아 싣고 와서 이곳에서 쓰레기를 쏟아낸 것이다. 지금은 멀티미디어홀(MMH)로 이용된다는 정말 환골탈태가 따로 없다.

소각동 2층 3층 역시 볼거리가 많다. 거대한 설비 공간들이 육중한 몸체를 지탱하며 과거를 증명하고 있다. 펌프실이나 배기가스처리장은 물론이고 기존의 중앙청소실을 리모델링해서 아카이빙실로 활용하고 있다.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이 상설전시 중인데,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여기 소각장이 어떻게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게 됐는지 그 눈물겹도록 생생한 역사가 한 눈에 그려진다.
요즈음 본 그 어느 건물이나 전시회보다 깊은 감동과 여운이 일렁였다.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거대한 벽화를 마주한다. 2021년 아트벙커 공공미술 프로젝트 '숲이 그린 이야기' 는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의 작품이다.
소각장을 상징하는 굴뚝 모양의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소리와 색으로 가득한 숲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 거리를 나서면서 꽃이든 나무든 다시 새삼스럽다. 모든 것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다시 부천 원미동, 아니 정확히는 '조마루사거리'로 향한다.
이제는 다들 조마루를 식당 이름으로 알지만, 원미동의 원래 이름은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산'이라 멀뫼(멀미산)였고, 그 이전에는 조씨 일가 집성촌이어서 '조종리' 또는 '조마루'라고 불렸다.
이 사거리에는 전 국민이 아는 가맹점 양대산맥 '청기와뼈다귀해장국'과 '조마루뼈다귀해장국'의 본점이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주머니 사정 가벼운 서민들이 애정하는 감자탕은 감자가 있든 없든 인천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 뼈다귀의 산물이다.
미군에서 버려지는 뼈 중에서 살코기가 많은 등뼈가 유통되었고 이런 뼈 중 일부가 알감자를 닮았다고 감자탕이라 불렀다는 얘기들이 전해지는 정도, 감자탕의 정확한 어원은 밝혀진 바 없다.
식객 허영만 선생과 작가들이 머릴 맞대고 자료를 뒤졌지만, "이거다!" 싶을 정도로 딱 떨어지는 이야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
감자탕의 어원이 그 무엇이든 간에 감자가 들었으면 감자탕, 없으면 뼈다귀해장국.
이렇게 우리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만 원 한 장으로 소주 한 잔 거나하게 기울일 수 있는 해장국을 만날 수 있다.
도축이나 발골 기술이 우리처럼 예리하지 못한 수입돼지고기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뼈다귀에 붙은 살은 더욱 큼지막하고 풍성해서 뼈다귀해장국만큼은 시대에 역행하는 가격으로 대결할 수 있다.

"감자탕에 국산은 게임이 안 돼! 작아서 어디에 쓰냐? 쓸 수 없지. 수입산이 훨씬 크고 고기 양이 많아. 맛이야 내가 내는 거고 우리는 고기 큰 거만 들이면 되지. 그래야 손님들이 좋아하지!"
국산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시장통에서 배웠다.
오늘 나의 선택은 "1988년 부천시 원미동에서 창업 이래"로 시작되는 주인장의 인사말이 벽 한쪽을 장식하는 파란지붕 가게다.
깍두기에 양파, 청양고추, 소위 '국룰'과도 같은 반찬이지만 깍두기가 한 입 베자마자 침이 뚝뚝 떨어질 만치 시원하고 달큼하다.
다소 텁텁한 등뼈 살점과 매콤한 뼈다귀해장국 국물을 가다듬을 딱 좋은 맛이다. 양파와 고추도 자극적으로 매운맛이 아니라 입맛을 돋을 정도로 적당하다.
주문한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뼈다귀해장국이 나왔다.
감자탕 소짜, 대짜로 주문해서 끓여 먹으면 당면이나 감자 사리든 이것저것 넣어 끓여 먹고 마지막에 밥도 볶아 먹을 수 있건만, 내 선택은 거의 뚝배기다.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나오는 해장국의 입천장 델 것처럼 화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깊은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도 못 당한다. 세상 모든 뚝배기 앞에서 나는 언제나 흥분되고 경건하다.
두툼한 뼈다귀가 무려 세 점. 푹 익힌 우거지에 밥 한 공기.
뼈다귀해장국은 먹는 방법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뼈다귀 살점을 하나하나 먼저 다 발라서 밥이랑 풍덩 말아먹는 선(先) 작업 파가 있고, 하나씩 손에 잡히는 대로 살점을 발라 바로 먹는 파로 나뉜다. 나는 철저한 후자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던 고기붙이를 꺼내 살을 뚝뚝 발라서 국물 한 숟가락 푹 적셔 먹으면, 소고기 스테이크가 부러울까?
더욱이 이 집 국물은 다른 해장국과 달리 맑고 깨끗하다.
입술에 쩍쩍 들러붙는 기름진 국물이 아니라 제법 가볍고 산뜻한 맛이 있다. 가맹점을 경계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발견이다. 역시 편견은 깨지라고 존재하는 거다.
요새 외국인들도 이 감자탕에 빠졌다고 한다. 감자탕에 얹어주는 깻잎 향과 들깨 향이 낯설 법도 한데, 이것도 케이(K)-푸드의 매력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기꺼이 이 맛있는 유희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알까? 이 감자탕과 뼈다귀해장국이 개발도상국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는 것을.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은 이제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됐다.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아무튼 오래 견디고 볼 일이다.
◆ 부천아트벙커B39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작로 53 (삼정동)
이용시간 | 10:00~17:00 휴일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주차 가능 (요금 무료)
문의 및 안내 | 032-321-3901
공식 누리집 | http://artbunkerb39.org/ko/main/main.html
공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artbunkerb39/
※ 프로그램 진행에 따라 휴관일이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누리집 확인 요망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3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