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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

한류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2025.08.21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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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은 글로벌 문화가 로컬을 전용한 사례로, 수많은 로컬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개방된 구조다. 또한 이와 같은 형식적, 서사적 가능성에 더해서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새로운 서사자원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로 전세계 언론의 문화비평란이 분주하다. 더 상승할 곳이 없는 기록의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은 그동안의 한류현상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준 것이 틀림없다. 

필자는 영화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초반의 짧은 '무당 헌터스' 영상에 놀라기도 했지만, 넘어뜨린 화분을 일으키는데 정신 팔려 자신의 임무를 잊어버린 호랑이 더피를 보는 순간, 이 영화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원본에 대한 집착없이 극강의 소통능력을 위해 동원된 이 캐릭터의 매력은 한국 문화산업이 제작했더라면 실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로컬의 내용을 어떻게 글로벌로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은 장면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굿즈 매장 '뮷즈샵'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켰던 까치 호랑이 배지가 판매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K콘텐츠의 흥행과 여름방학 시기가 맞물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2025.8.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굿즈 매장 '뮷즈샵'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켰던 까치 호랑이 배지가 판매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K콘텐츠의 흥행과 여름방학 시기가 맞물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2025.8.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과 그것이 파생시키는 문화간, 국가간,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적 동력을 의미해왔다. 따라서 케이팝을 주된 내용으로 한 <케데헌>도 한류현상의 일부로서 큰 효과를 내고있지만 한국이 제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뮬란>이나 <쿵푸팬더>처럼 글로벌 문화가 로컬을 전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케데헌>은 북미의 한인 2세 정체성을 지닌 원작자와 제작자들이 대거 참여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애플 TV의 2022년작 <파친코>를 닮았다. 

그런데 <파친코>가 3대에 걸친 가족스토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실사 시리즈여서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 등을 세트로 만들고 한국배우들을 대거 기용해서 만들었다면, <케데헌>은 한국 문화의 오랜 무당서사와 케이팝이라는 대중문화를 주된 내용으로 서울의 상징적 장소들에서 서사가 전개되는 애니메이션이다. 

세트에서 찍은 실사드라마가 한국으로 여행자를 이끌지 못했지만 <케데헌>의 서울은 노스텔지어와 호기심을 자극하며 여행객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있다. 

<케데헌>이 개봉되자마자 디즈니의 가족용 뮤지컬 영화들과 비교된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케데헌>의 반복시청과 싱어롱 욕망은 경쟁자가 없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삽입곡 경제에 드디어 대안이 등장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케데헌>의 성공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매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소니가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의 기술을 적극 활용해 귀마 사냥꾼들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재현했고, 제작진은 적극적 시청자에게 수용의 즐거움을 듬뿍 제공할 수 있는 텍스트 전략을 잘 이해했으며, 디테일에 강한 일러스트레이션의 효능과 케이팝이 지닌 힘을 적극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이란 표현양식은 탈식민적 세계화의 가장 큰 장벽인 비서구인의 몸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케이팝은 아이돌의 아시아성이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팬들의 영역에 머물러온 측면이 있는데, 애니메이션은 이 장벽을 낮추거나 아예 제거해버린다. 

즉, 그림으로 표현된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인종주의적 복잡함 없이 전세계의 시청자가 좋아할 수 있고 코스프레하기도 쉽다. 게다가 현재 플레이브나 이세계 아이돌 같은 버츄얼 아이돌 그룹이 해외 투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케이팝문화 속에서도 캐릭터문화가 진전되어 있으니, 헌터스나 사자보이즈는 <케데헌>을 통해서 세계관을 지닌 채 전세계 케이팝 무대에 데뷔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 문화 속에서 세계관, 즉 그룹의 서사는 매우 중요하다. 서사는 고만고만해보이는 케이팝 그룹들에게 변별적인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해독해야 할 케이팝 텍스트를 더 두껍게 만들기 때문에 적극적 팬활동을 유도한다. 

가치 지향성이 중요해진 현금의 글로벌 문화 환경 속에서 자아발견 공주이야기를 반복해온 디즈니, 개인성장형 모험스토리를 제공하는 일본 애니, 세계를 구하는 우주 대전쟁을 전개하는 DC와 마블 유니버스에 비교할 때, 인간세계를 보호하려는 이중 정체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케데헌>의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세계관 속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이국적이고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프리퀄, 시퀄로 열려진 <케데헌> 서사는 동시대적으로도 헌터스의 세계 투어 중 로컬 귀마들과 싸우는 스토리 라인을 통해 수많은 로컬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개방된 구조이다. 

이와 같은 형식적, 서사적 가능성에 더해서 <케데헌>은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새로운 서사자원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캐데헌>의 경우 북미 한인 2세 제작자들의 독특한 한국문화 경험과 애정이 녹아있어서, 글로벌과 이토록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중재(mediation)'가 가능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은 세계사를 한국인의 경험으로 품을 수 있는 광범위한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 주제는 한류를 넘어서 어떻게 한국의 미래가 한인 디아스포라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다른 지면이 필요하다. 한류는 바야흐로 <케데헌>을 통해 다른 세계로의 문이 열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홍석경

◆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한류 연구자로 정진하면서 팬덤 온라인 참여관찰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거쳤으나 스스로는 여전히 세상 속 의미의 생산을 묻는 기호학자라고 이해한다.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를 출판했고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문화산업, 한류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다년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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