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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 몰렸던 오지 학교에 학생들 몰리는 이유
그 비결이 뭘까 궁금하던 차 지난 12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모한 ‘제3회 전국 방과 후 학교’에서 최우수상까지 수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폐교 위기서 인기 학교로 거듭난 전북 이성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봤다.
전주 시내에서 차를 타고 40분 쯤 달렸을까. 시내를 벗어나자 온통 산과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이성초등학교를 가리키는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자 비좁은 골목길이 나타났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골목길 끝자락에 다다르자, 허름한 외관의 이성초등학교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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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이성초등학교는 1946년 개교해 2,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인근 8개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
1946년에 개교한 이성초등학교는 완주군과 김제시, 전주시 접경해 있는 학교로,
지금까지 졸업생 2,500여 명을 배출했다. 인근 주변은 8개 마을(256가구) 764명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작은 농촌마을로, 전체 주민의 46%가 65세 이상인 고령 지역이다.
보통 학교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법한 학원이나 슈퍼,
오락실, 도서관 등은 눈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 없는 오지 중에 오지이다. 학교 주변에는
그저 허허벌판과 냇가, 나무들이 찾는 이를 반길 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생 수가 점점 줄어 2007년에는 고학년과 저학년반 단 2개 반만 운영되고,
전교생은 25명으로 대폭 줄었다. 전북교육청으로부터 ‘폐교 대상학교’로 선정돼
이듬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랬던 학교를 구해준 건 바로
‘방과 후가 행복한 학교’ 프로그램이었다.
먼저, 매주 토요일을 ‘가족
등교일’로 삼아 소외된 농촌 지역에서 누릴 수 없었던 수영과 연극 같은 문화교육을
비롯해 원어민을 활용한 영어교육, 그리고 지역 특성에 맞는 특기적성 교육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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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일환으로 ‘수묵화 그리기’를 마친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고 있다. |
물론 처음에는 예산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다보니 길은 열렸다. 성락인 교장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학교를 살리자는 생각에 지역주민과 교사가 똘똘 뭉쳤다.”며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학교의 인적자원으로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바둑, 주산을 잘 하는 지역주민을 강사로 초빙하는 것은 물론 인근 군부대의 협조로 축구, 탁구 강사 지원을 받아 총 29개의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방과 후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학생들만 이용하는 학교가 아닌 지역 주민이 함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평생교육기관으로 학교를 개방했다.
덕분에 이성초는 주말이 더 활기찬 학교가 됐다. 가족들의 화합을 돕는 ‘난타 학교’를 비롯해 지난 11월부터는 매주 화, 목, 금요일 오전을 이용해 지역주민들에게 요가와 퀼트 등을 가르치며 주중 평생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이성초 학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손꼽은 ‘스쿨팜’. 학년별 아이들이 학교 뒷편에 마련된 농장에서 직접 자신의 작물을 키우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체험활동이다. (사진=이성초) |
여름이면 학교 앞 냇가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고기잡기를 하고, 물놀이를 하며 자연을 활용한 수업방식도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다. (사진=이성초) |
그런가 하면 방과 후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를 마친 뒤 교육을 실시하는 것뿐 아니라 정규 수업 과정에도 특기적성 교육을 집어넣어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정규 수업이 1~2교시라면 3~4교시에는 특기적성 교육을, 5~6교실에는 정규수업을 하는 식이었다. 또, 대부분의 학교가 6교시면 수업을 마치지만, 이성초는 보육과 돌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정규 교육과정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합해 전일제로 운영, 전교생 모두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6시까지는 종일 돌봄 교실과 학력향상 캠프를 운영했고, 오후 6시~9시까지는 야간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해 언제나 ‘열린 학교’로 변화시켰다. 늦게까지 직장을 다니거나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역민을 배려한 프로그램이다.
최한경 교사는 “중간 중간 특기적성과 정규수업을 섞어서 진행하다보니 정규 수업만 진행할 때보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다.”며 “다른 학교들의 경우 특기적성 교육을 선택적으로 하거나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지속성이 떨어지는 반면, 정규 교육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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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이 수확한 배추로 직접 김장김치를 담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눔행사도 펼쳤다. (사진=이성초) |
특기적성 과목의 경우,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사전조사를 해 그 과목을 1년간 깊이 있게 가르치고 있다. 특히 요즘 학교마다 강조되고 있는 인성 교육도 빼놓지 않고 있는데, 학년별로 배정된 ‘스쿨팜’이 바로 그것이다. 완주군청의 지원으로 마련된 이 공간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완두콩, 감자, 배추 등의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아울러 수확한 작물은 학급별로 요리대회를 개최해 직접 급식실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자신이 재배한 작물을 집에 가져가 부모님과 함께 나눠먹기도 한다. 지난 11월에는 이곳에서 수확한 배추로 직접 김장 담그기 체험도 실시해 학교 근처의 독거노인 가정과 요양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동욱(11)군은 “우리 학교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저는 스쿨팔 활동이 가장 재미있다.”며 “직접 작물을 심고 가꾸면서 흙과 자연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직접 키운 작물들로 음식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성초등학교에 6학년에 재학 중인 박인호(13)군은 사교육에서 벗어나고자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박 군은 “이곳에 처음 전학 왔을 때는 학원을 가지 않는 것이 어색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저만의 특기교육을 통해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지를 알게 됐다. 처음으로 취미를 갖게 됐고, 현재 바둑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며 학교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박 군은 “예전에는 시간에 쫓겨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제 주위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전교생 이름을 서로 다 알 정도로 대가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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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학부모 등교일을 맞아 아이들과 부모님이 합작해 만든 작품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
학생들만큼이나 학부모의 만족도도 높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학부모 박모(40)씨도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우려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다들 부러워한다.”며 “돈을 들이지 않고 아이들의 재능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해줘서 학교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 시간 한국바둑의 메카로서 자리매김한 전북지역의 전통을 살려 이성초는 전국 최초로 전교생에게 체계적인 바둑교육을 실시해 바둑 꿈나무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4학년에 재학 중인 황유승(11)군 역시 바둑으로 자신의 재능과 생활 태도를 바꾸는데 많은 도움을 됐다고 귀띔했다. “전에는 오래 앉아 있지를 못했어요. 몸이 근질근질해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제겐 벌 받는 것처럼 힘들었거든요. 특기적성 교육으로 바둑을 배우고 나서는 마음도 차분해지고, 컴퓨터 게임과는 담 쌓았어요.”
평소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홍시윤(10)군은 “전에는 댄스나 대중가요 음악을 주로 들었는데, 방과 후 교육을 받고 나서는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방과 후 학교를 통해서 전통음악을 배우니 이해도 쉽고, 제가 배운 악기로 직접 학예회, 미니 음악회를 통해 바로 응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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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초등학교 전교생의 공통 취미인 바둑. 바둑교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무학년제로 도입돼 전교생이 함께 어울리며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
마지막 지푸라기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완주 이성초등학교의 눈물 겨운 노력이 이제 다른 도시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고 있다. 실제로 시행 1년 만에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 학생들 덕분에 학생수가 25명에서 100명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인기 학교가 됐다.
전국 각지는 물론 대만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이다. 학부모 만족도 역시 방과 후 학교 시작 전 72%에서 98%로 향상됐다. 아울러 2008년에는 제5회 평생학습대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 등 20여개가 넘는 성과도 거뒀다.
성 교장은 “학교가 일주일 내내 주민들로 하여금 북적이게 되자 교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오픈된 수업 방식에 책임감을 느끼게 돼 수업의 질도 높아졌다.”며 “주민들도 학교에 자주 오시게 되면서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도 언제든 마음 터놓을 수 있어 아이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초교육은 물론 자연과 함께 하는 나눔과 인성 교육을 병행했던 인성초등학교만의 방과 후 프로그램이 폐교 위기의 보잘 것 없던 시골 학교를 인기 학교로 탈바꿈시킨 ‘진짜’ 비결이 아니었을까. 이성초의 성공 모델이 앞으로 다른 농촌 학교에도 하나의 바람직한 본보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정책기자 박이슬(직장인) loiny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