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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시민구단' 조기축구회가 아니잖아요
언론의 관심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구단인‘서산시민구단', 그들은 해당 지역의 시민들이 관심를 갖고 참여하는 구단을 표명하며 마치 외인구단처럼 5년째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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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는 광역 지자체보다 축구열기가 높은 지방 중소도시를 위주로 강릉시청, 고양 국민은행, 김포 할렐루야,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부산 교통공사, 서산시민, 수원시청, 울산 현대미포조선, 이천 험멜, 인천 한국철도, 창원시청 등 11개의 구단이 운영중이다.
‘서산 시민구단’은 후자인 내셔널리그에 속한 팀이다. 시민의 축구, 시민의 구단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2002년 7월 창단한 ‘서산 시민구단’이 인구 15만 명 정도 되는 도농복합지역인 충남 서산시에 생긴 것은 참 의외의 일이다. 다른 구단과는 달리 누가 들으면 마치 동네 조기축구회 같기도 한 ‘시민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고....
‘시민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이곳 서산에 축구구단을 창립하자고 한 건 최종덕 감독이다. 지금은 그동안 같이해온 구단주가 지난 5년간 압박되는 재정문제로 축구단을 운영하지 못한 채 떠나버리자 최 감독이 감독직과 대표직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 대표, 국가대표, 방송사 해설위원, 대학 교수직을 역임하는 등 축구계에서 그의 행보를 주목하였고 좋은 길도 많았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 선진 축구제도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클럽 시스템을 보고 국내에 적용시켜보고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서산 시민구단’을 구상한 것이다.
소규모 지역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시민구단을 만들기 위한 그만에 신념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서산 시민구단’에 모여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축구를 거친 백전노장이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민구단은 희망을 준다. 국내 축구 구조상 마음껏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맛보는 선수들은 얼마 안되기 때문이다.
최종덕 감독은 “국내 축구구조는 유소년 축구에서 성인축구로 올라갈수록 그 영역이 매우 좁아서 축구를 좋아하는 꿈나무 및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민구단이 활성화되면 축구를 좋아하는 선수며,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역이 형성되게 된다, 가까운 일본은 이미 10만 명의 소도시에 이러한 시민구단이 활성화되어 있기도 하다”고 시민구단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최 감독이 생각하는 긍정적인 시민구단의 역할은 국내, 그리고 지역적 현실에서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와 지역연고 기업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타 내셔널리그팀에 비하여 ‘서산 시민구단’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아니 예산이라는 항목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창단한 첫 해에 당시 K2리그에서 준우승을 하여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던 ‘서산 시민구단’, 그들은 꿋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코치도 없이 감독과 선수 28명이 마치 외인구단처럼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선수들은 적은 연봉, 아니 급여를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감독은 집도 팔고 흉가와 같은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서산시에서 홍성군 쪽으로 가다가 고북면에서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를 한참 지나서야 그들만의 숙소가 나온다. 부도가 난 시멘트 공장의 기숙사를 지역의 자선사업가가 제공하여 시민구단의 선수숙소로 개조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숙소도 어렵게 구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시민구단은 항상 부족하다. 특히,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운동기구 하나 없어서 시내 사설 운동기관에 나가 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선수나, 축구단 모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서산 시민구단’의 창단멤버였고 3년간 선수생활을 한 남웅기 선수(31)의 경우. 당시 결혼하여 재정문제로 팀을 떠나 ‘한전’에서 2년, 싱가포르에서 1년 선수생활을 했지만 귀국 후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그는 급여가 없었다. 바로 최 감독의 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저를 발굴하여 육성해준 분으로 항상 도와 드리고 싶었는데, 결혼과 동시에 수익이 없어 가정생활이 힘들어 구단을 떠났다. 그런 점이 항상 마음이 걸렸고,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국내로 다시 들어왔는데 최 감독님의 사정이 더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인과 아기손을 이끌고 무조건 서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앞으로 지역민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한다. 훈련을 하는 서산농공고 운동장에 나오셔도 된다.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축구기술을 알려달라면 선수들이 정성껏 가르켜도 드릴 것이다. 제발 관심좀 가져달라” 고 호소하고 있다.
‘서산 시민구단’의 경기가 있는 대회 당일이면 몇 명의 학생들과 청년들이 경기준비를 분주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서산시 조기축구 회원들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지난 5년 여간 이렇게 의례적으로 도움을 준다.
지난 5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일씨(서산시 읍내동, 40)는 항상 아들 민건이(학동초 4학년)와 함께 운동장을 찾는다. 그는 월드컵할 때 대한민국을 모두 외쳤듯이 서산시와 지역민들 모두 운동장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지난 9일 강릉시청과의 홈경기가 있었는데 비가 와서 인지 평소보다 곳곳에 자리가 비어있다. 서산시 관계자가 도와주겠다는 했으나 정책적 지원이 전혀 없는 시스템에서 홍보라고는 달랑 현수막 5개를 게시한 것이 전부이다. 이것도 시민구단의 딱한 사정을 안 광고사가 무료로 후원해 준 것이다.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펼치기가 어렵다.
아주자동차 대학 레저문화계열 교수이자 축구전문가인 최병성 교수는“경기도 축구협회가 백화점이라면 충남도 축구협회는 동네 가게이다. 규모로 보나 그 어느 자치단체보다 체육기반시설이 매우 취약하다. 특히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지자체의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이해도가 약하다”며 충남도와 서산시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월드컵때 전국민이 축구 매니아였을지 모르지만 국내 첫 모델이 될 수도 있는 서산 시민구단은 지역민과 해당 지자체의 관심이 지금처럼 멀어지면 얼마 있지 않아 그 이름은 국내 축구의 역사 속에서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서산 시민구단’을 기초로 하여 축구뿐 아니라 충남의 스포츠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적 대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넷포터 김봉덕 (cnnews01@naver.com)
*이 기사는 충남영상뉴스(www.cnnews.co.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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